나에게는 낙동강 재첩국에 대한 추억이 있다.
1987년.
회사의 한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에 문제가 발생했다.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하라"는 오더.
부품의 소재를 생산하는 업체부터 시작하여, 공정을 쭉 따라가며 현상과 문제점을 파악하던 중,
타발 및 프레스 성형 공정을 담당한 업체 (부산 사상구 소재)를 방문하여 공정 조사를 했다.
시간이 흘러, 점심 시간.
업체 사장이 점심을 먹으러 가잔다.
사장 차를 타고 모르는 길을 이리저리 돌아가더니
강변 둑 옆에 위치한 허름한 초가집에서 내리잔다. (아마도 낙동강변으로 추정)
제법 넓은 마당에는 평상이 있고
진흙 담벽에는 화덕을 쌓아 올리고, 큰 가마솥 세개가 걸려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밥과 국을 끓이던 가마솥이었던 듯)
업체 사장은 방으로 들어가더니 방에 놓인 상 중의 하나에 앉더니
"여기 두 그릇"하고는 주문 끝. (메뉴가 달랑 하나였던 듯)
잠시 후에, 밥그릇 하나, 국그릇 하나, 깍두기 하나가 나왔다.
난생 처음 보는 국.
멀건 국물에 부추 썰은 것 조금, 그리고 바닥에는 고양이 발톱만한 크기의 덩어리들이 들어있다.
먹어보란다.
이게 뭐야 싶은 생각에 한 숟가락 떠 보았는데,
어마나, 이게 웬 일?
참으로 이렇게 시원한 맛이 또 있을까 싶었다.
퍼먹다가, 밥말아 먹다가.
배터지게 먹었다.
물어보니 "재첩국"이란다.
강원도 촌놈에게는 낯선 이름.
재첩이란 것도 처음 보고 들어봤고.
그리고 두어달 후에는 사직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 이후에 그 맛을 잊지 못해 몇 군데 식당에서 재첩국을 시켜봤지만
낙동강변에서 먹었던 그 맛을 다시 맛보지는 못했다.
재작년에 어쩌다 생각이 나서 이리저리 검색해봤고
부산의 할매재첩국이 유명하다고 해서, 혹시나 싶어서 전화를 걸어봤다.
전화를 받은 중년의 여성분에게 내 사연을 이야기하고 혹시나 싶어 불어봤더니
그 식당이 할매재첩국(원조삼락할매재첩국)이 맞단다.
혹시나 찾아가면, 옛날의 그 맛을 볼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옛날의 그 맛은 나지 않을 것이란다.
1980년대에는 낙동강물이 그나마 깨끗해서,
낙동강에서 잡은 재첩들도 상태가 좋아 맛이 괜찮았는데
이제는 똥물이라 낙동강 하구에서는 재첩을 잡아 쓸 수 없고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오는 재첩인데, 옛날의 그 맛이 아니란다.
그나마 섬진강 쪽에서는 재첩을 잡아서 끓이는 것이 제법 맛이 나지만
수확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역시 많은 부분을 중국산으로 대체하고 있단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통화 끝.
혹시, 제대로 된 재첩국, 추억의 그 맛을 다시 맛볼 수 있는 식당을 소개해 주실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