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30년의 수레바퀴..한·미·일 기술史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2013.03.1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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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30년..한국반도체 출신 마이크론 가서 삼성에 기술이전

↑세계 최초 전계효과트랜지스터(MOS-FET)를 개발해 전세계 반도체의 산업의 씨앗을 뿌린 故 강대원 박사(왼쪽)와 한국 최초 전공정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를 설립했던 강기동 박사(오른쪽). 두사람은 경기고, 서울대, 오하이오주립대 선후배 사이로 강대원 박사는 1992년 작고했다.↑세계 최초 전계효과트랜지스터(MOS-FET)를 개발해 전세계 반도체의 산업의 씨앗을 뿌린 故 강대원 박사(왼쪽)와 한국 최초 전공정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를 설립했던 강기동 박사(오른쪽). 두사람은 경기고, 서울대, 오하이오주립대 선후배 사이로 강대원 박사는 1992년 작고했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

지난 6일 삼성전자가 위기에 빠진 일본 샤프에 자금지원 형식으로 지분 3%(104억엔, 약 1200억원)를 확보하며 구원투수로 나선 가운데, 일본 내 일부에서는 "일본에서 기술을 빼간 삼성이 다시 일본 기술을 빼내려 한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15일은 삼성전자가 VLSI(초고집적회로, 메모리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하지 30년이 되는 날로 삼성의 VLSI 사업 진출 초기 일본 샤프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상황을 보면 삼성을 지원했던 샤프가 삼성의 지원을 받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더 있다. 삼성을 지원했던 샤프도 전자산업의 끈을 이어보면 한국인의 큰 도움을 받았고, 한 때 D램 1위였던 일본 NEC 등도 한국인 천재공학자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

호암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1983년 3월 15일 VLSI 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기술은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샤프의 것을 중심으로 도입했다고 밝혔다.



당시 일본 반도체 업계는 한국에 대한 VLSI 기술 제공에 불응했지만, 샤프사의 각별한 호의로 그 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다고 호암은 밝혔다. 당시 일본 업계에서는 샤프가 국익을 해치는 '매국노'라고까지 혹평하는 업체도 있었다.

그러나 불과 2개월도 안돼 일본 히타치와 미쓰비시가 미국 IBM의 반도체기술을 빼돌린 스파이 사건이 적발되면서 13명이 미국 FBI에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미국 AT&T(밸 랩 모회사)로부터 특허료를 내고 반도체 기술을 도입한 샤프가 기술료를 받고 삼성에 기술을 제공한 것이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분위기로 반전됐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당시 일본이 도입했던 반도체 기술의 핵심은 벨랩에 있던 한국인 공학자 강대원 박사가 개발했던 기술이다. 벨랩은 전세계 전자산업의 산실로 세계 최초 반도체인 트랜지스터가 개발됐고, 이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IC)가 대량양산의 길을 걸어 산업화하는 단초가 된 전계효과반도체(MOS-FET)가 개발된 곳이다.


이 모스펫(MOS-FET)은 현재 전세계 모든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기초소자 구조다. 이를 개발한 사람이 한국인 천재 공학자 강대원 박사다. 故 강대원 박사는 이 모스펫을 비롯해 도시바가 처음 상용화한 낸드플래시의 기초기술인 플로팅게이트, 발광다이오드(LED), 디카의 핵심칩인 고체촬상소자(CCD)의 기초기술도 개발한 세계적인 공학자였다. 지난 2009년에는 에디슨, 노벨 등이 이름을 올린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그는 반도체 관련 22개의 미국 특허를 보유했으며, 1984년 일본이 미국 내 최초로 NEC연구소를 설립했을 당시 초대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강 박사의 3년 후배인 강기동 박사는 국내 최초로 전공정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를 1974년 설립했다. 여러 사정으로 1976년 한국을 떠날 당시 강 박사와 함께 한국반도체에서 일했던 테리 마틴 등 엔지니어들은 미국 아이다호로 건너갔다.

이들은 1978년 아이다호에서 미국 D램 벤처 기업 마이크론테크롤러지를 설립했고, 이 회사는 성장해 1983년 삼성전자가 D램 사업을 할 때 반도체 기술을 전수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던 기술이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가 10년만에 한국에서 D램 사업의 씨앗을 뿌리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일본 내 일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일본 때문에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성장했다는 주장은 어딘지 어설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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