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김서정의 숲과 쉼]전북 남원시 광한루원에서 천상의 나무를 만나다

김서정 승인 2023.02.18 13:37 | 최종 수정 2023.03.04 17:19 의견 0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 “이 골 아름다운 곳 어드메냐? 시흥(詩興) 춘흥(春興)이 흘러넘치니 아름다운 경치 말하여라.”

방자 놈 여쭈오되,
“글공부하시는 도련님이 경처(景處,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 찾아 부질없소.”
이 도령 이르는 말이,
“너 무식한 말이로다. 자고로 문장재사(文章才士)도 아름다운 강산 구경하는 게 풍월 읊는 근본이라. 신선도 두루 놀아 널리 보니 어이하여 부당하랴.”

<춘향전> 한 부분이다. 시 짓기라는 맞춤형 핑계를 대고 단옷날 이 도령이 놀러간 곳은 광한루다. 거기서 그는 직녀처럼 애절한 춘향이를 보았고, 이후 신분을 뛰어넘는 이팔청춘의 위대한 사랑은 결핍으로 고독한 이들에게 춘정(春情)을 불러일으켰다. 연인으로 갔든, 부부로 갔든, 친구로 갔든, 혼자 갔든 광한루를 만나는 순간 모두가 이 도령이 되고 춘향이가 되고 싶어했다.

한번쯤 받았을 아린 이별의 통보가 봄눈처럼 녹으며 확고한 새 사랑이 움틀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현실로 다가올 것 같았다.그래서 광한루에 가 오작교를 건널 때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비밀 같은 사랑 이야기 하나 만들려고 한다. 그게 꼭 이승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은하수 그 어디에서 별보다 더 빛나게 완성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다. 그렇게 광한루에는 봄이 아니어도 사계절 내내 춘정이 연못 물길처럼 흐르고 또 흐른다.

광한루는 광한루원에 있는 팔작지붕의 누각이다. 광한루원은 광한루가 있는 정원이고, 관리 주체는 남원 관아였다. 그래서 그곳에 올라 기필코 이룰 사랑을 꿈꾼다고 해도 조선시대에는 아무나 오를 수가 없었다. 양반들만이 노니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아랫것들은 오며가며 시중을 들었을 것이고, 기생들은 흥이나 돋다가 내려갔을 것이다. 그 중 기생 연옥은 과감히 도전 가득한 시를 남겼고, 광한루 편액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오색 무지개 치마로 춤추기를 멈추고 홀로 누대에 기대니 / 가을밤 대밭 사이로 오작교의 절반쯤 걸린 밝은 달이 비치네. / 소첩의 몸으로 성춘향 낭자의 절개 지키고저 하지마는 / 이몽룡 같은 낭군을 찾을 수 없어 공연히 수심만 이는구나.”

이렇게 되면 공연한 춘정은 낭패를 가져올 수 있어 정신 바짝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데, 광한루 앞 원앙 노니는 연못 안 삼신산 숲이 지상의 모든 근심 털어버리고 천상으로 생각을 밀어 올릴 것 같아 마음만은 훨훨 하늘을 난다.

광한루 역사는 세종 시대 황희 정승부터 시작한다. 벼슬에서 밀려 잠시 남원에 머무는 동안 광통루를 짓고 시름을 달래던 중 한양으로 부름을 받게 된다. 얼마 뒤 정인지가 전라도 관찰사로 왔다가 광통루에 들르는데, 주변 경치가 자신도 본 적 없는 달나라 궁전 같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의 앞글자를 따서 광한루라고 고쳐 짓는다. 그때부터 광한루는 지상에 만들어진 천상의 세계가 된다.

말로만 천상의 이름을 가진 광한루는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에 의해 상징이 부여되는 구체적인 모습을 갖게 되는데, 진시황이 불로초를 캐오도록 했다는 신선의 정원 삼신산 조성이다.

가운데 있는 산은 봉래산으로 금강산을 상징한다. 여기에 가면 사시사철 푸른 잎사귀를 보여주는 대나무들이 가득하다. 중간 중간 베어낸 대나무가 빈속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선비들의 청렴결백, 정직 등을 상징한다는 대나무를 보고 있으면 겨울 추위가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삶도 변화가 일어나지만 살아가는 진짜 모습은 한결 같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어서다.

연못 서쪽은 영주산으로 한라산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배롱나무가 있다. 백일 동안 꽃을 피우고 있는 백일홍과 개화일은 같지만 백일홍은 풀이고 배롱나무는 나무다. 그래서 목백일홍이라고 부르다가 배롱나무가 되었다는데, 뜨거운 여름 정열적으로 붉게 혹은 하얗게 피어나는 배롱나무를 보면서 선비들은 일편단심 충신의 가치를 부여했다고 한다.

연못 동쪽은 방장산으로 지리산을 상징한다. 이곳에는 나무 둘레가 절구만한 왕버들이 섬섬옥수 같은 가녀린 가지들을 흔들고 있는데, 강한 생명력 때문에 신선 사상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보면 볼수록 그 품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봄이라면, 버드나무는 암수딴그루라, 이 버드나무가 암나무인지, 이 버드나무가 수나무인지, 가지 끝에 피어오르는 수꽃이삭과 암꽃이삭으로 구별해, 괜히 네가 이 도령, 네가 춘향이, 막 의미부여를 하겠지만, 아직 남은 겨울, 아직 오지 않은 봄, 애만 태우는 것 같다.

그래도 삼신산을 돌아 나오는 순간 지상의 꼿꼿한 정신이 영원한 천상을 보장하는 것 같아 들떠 있을 무렵, 천상의 색조로 무늬를 직조한 듯한 원앙 수컷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연못 위를 둥둥 떠다닌다. 그 주위로 단조롭고도 빛바랜 암컷들이 헤엄치고 있는데, 일부다처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유영이 광한루에 어울리지 않을 듯해도 그들은 그들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사는 법, 애처롭고도 탄탄한 사랑에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다.

춘향전을 떠올리며 춘정을 찾다가,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 고백에서 차라리 천상의 삶을 꿈꾸다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곧은 정신을 나무를 통해 되새겨보다가, 사랑만 쫓아다니는 듯한 원앙에서 다시 춘정으로 돌아오다가, 일제강점기에 광한루 누각 아래 기둥 사이 사이에 감옥이 있었다는 역사에 숙연해진다.

한 권의 소설로 완성될 수 없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광한루가 광한루원으로 그리고 역사로 인식되는 찰나, 다큐가 되는 무게감이 오작교 구멍으로 삶을 밀어 넣을 것 같아, 빠른 듯 느린 듯 월매집으로 향한다.

광한루가 아닌 광한루원이 더 강했다면 월매집이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을 텐데, 조선의 관아 정원 이미지보다 춘향전 영향이 큰 만큼 월매집 풍경도 그윽하기만 하다. 그래서 쑥 들어가려는데, 그 앞에 가시나무가 푯말을 달고 있다.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과 상록교목인 가시나무는 가시가 많아 가시나무가 아니다.

이름과 관련 여러 유래가 있는데, 제주도에서 가시를 도토리라고 해서 가시낭, 가시나무가 되었다고도 하고, 흉년이나 춘궁기에 배고픔을 가시게 해서 가시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자생지가 드물어 만나기 어려운 가시나무가 이제는 정원수로 많이 심어진다고 하는데, 중부지방에서는 여전히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반갑기는 한데, 조선시대에 없었던 나무들이 속속 광한루원에 들어온다는 모습에 역시 식물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정원보다 영원한 고전 춘향전이 우월하게 출렁거리는 것 같다.

사랑 따위는 다시 안 하겠다면, 상처가 덜 가셔 늘 욱신거린다면, 언제든 광한루를 찾아 춘정 한 자락 싹이라도 틔워보자. 광한루에 꺼지지 않는 천상의 기운을 불어넣는 광한루원 식물들이 있기에. 일일이 글에 담지 못한 무궁무진한 나무들이 지금도 강인하게 생명을 피워가기에. 광한루와 광한루원은 이 도령과 춘향이, 그리고 우들을 하나로 묶어주기에.

[김서정 작가 소개]
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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