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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중국역사 / 양하이잉 지음, 우상규 옮김 / 살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마오쩌둥(毛澤東)과 동등한 반열에 올라선 지난해 공산당 대회부터 연일 ‘중화문명(中華文明)’의 부흥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문명권에 사용해온 ‘중화’란 용어에는 한족(漢族)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을 오랑캐(夷·이)로 규정해 구별하는 화이(華夷)의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 티베트와 네이멍구(內蒙古),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지역 등에 대한 탄압과 견제, 가깝게는 ‘동북공정’부터 한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간섭의 바탕에도 이런 세계관이 깔려 있다.
‘오랑캐-주변국 지식인이 쓴 반(反)중국역사’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은 이 같은 세계관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한다. 저자는 중국 네이멍구 출신으로 베이징(北京)대 일본어학과를 거쳐 일본 유학 중에 귀화한 뒤 문화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시즈오카(靜岡)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문화혁명 때 네이멍구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고발한 ‘묘지 없는 초원’이란 저서 등으로 유명하고, 중화주의가 아니라 유라시아적 관점에서 유라시아 역사를 해석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책에서 저자는 “황허 문명이 지나(支那·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중심 지역, 현재의 허난(河南)성 주변에서 일어난 것은 맞지만, 고고학의 연구결과 그 문명과 현재의 중국인과는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도 단절됐다”고 말한다. ‘유라시아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중국사’가 야만인으로 규정한 유목민이 동서로 시베리아부터 유럽까지 퍼지고 문화적·인종적으로도 섞여 세계사를 움직여온 반면, ‘한(漢) 문명’이 퍼진 곳은 화북과 화중이라는 이른바 중원을 중심으로 한 로컬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4000년사’는 중국인의 천진난만한 바람과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족이 항상 이민족의 침략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으며, 근대 이전에는 북방의 유목민족, 이후에는 바다를 건너온 서구열강과 일본이 ‘적’이었다”면서 ‘중국사’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피해자 사관’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사관은 중국 중심으로만 세상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국이 국제적으로 개방되고 더 발전을 이룰 가능성을 스스로 묶는 ‘족쇄’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한족의 중국 역사에서 가장 번성했던 때는 당나라 시대였다고 자부하지만, 당나라는 한족이 아닌 탁발·선비인이 수립했다면서, 당·원·청 같은 다른 민족, 다른 문화의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제적인 국가를 지향해야 중국 문명의 잠재력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소위 ‘오랑캐’ 유목 민족의 후예로 편향된 주장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역사에서 ‘중심과 주변’이 없다는 이 같은 주장은 국제 역사학계에서는 일반화됐고, 중국 본토에서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저자는 다양한 문헌과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이런 사실을 하나하나 입증한다. 책은 중심과 주변의 역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강력한 힘을 갖게 됐는지, 적어도 ‘중화’와 동격이었던 ‘오랑캐’인 거란과 탕구트, 몽골, 만주족 등 유목민이 어떻게 중국 역사를 창조적으로 만들었는지 등을 나열하며 유라시아 대륙에 펼쳐진 실제의 중국사를 복원한다. 327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