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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4 20:46
[한국사] 근데 한국사에서 가장 아쉬운게 위만조선 멸망아닌가요??
 글쓴이 : 설설설설설
조회 : 1,837  

웬만한 분들께 질문하면 대체적으로 고구려의 멸망이나 아니면 발해 멸망을 꼽는 분도 계실텐데..

저는 그것보다 더 아쉬운게 기원전2세기경(bc108) 의 위만조선 멸망 같습니다.

그 당시 위만조선은 진짜 고대국가로서 완벽하게 진입하기 바로 직전의 국가였다고 하더라구요.

조선이 한나라에게 보인 패기는 좋았지만 솔직히 너무 강경했습니다...;; 

만약 그때 조선이 멸망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 일대에서 나타다는 정치제재의 출현이나 문화발전은 훨씬 훨씬 빨랐을터인데... 

아.. 조선의 멸망 많이 아쉽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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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10-24 20:52
   
흉노족 위만의 멸망은 그닥이네요.
감방친구 17-10-24 21:03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1. 대체 위만 조선을 계승한 나라가 우리 역사에 무엇이 있습니까?

ㅡ 위만 조선이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만주에는 북방의 강자로서 부여가 자리하고 있었고, 이 부여는 진ㆍ한을 비롯한 중원계 왕조의 대북방ㆍ대동북방 정책에 있어서 이해를 공유하고 있어서 BC 3~2세기로부터 AD 5세기까지 아주 친밀한 우호관계를 맺고 숙신(-읍루-물길)을 지배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ㅡ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가 부여요

ㅡ 선비계통으로 의심되었던 가야문화의 성격이 부여계통임이 드러났으며

ㅡ 신라의 뿌리조차 그 문화적 성격으로 볼 적에 부여와 흉노와의 친연성이 보이고

ㅡ 신라의 선주민인 6부족이 조선의 유민이라 하나 위만조선의 유민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으니

대체 위만 조선이 우리 역사에서 역할한 것은 무엇입니까?

2. 과연 위만조선이 지금 북한 평양에 왕검성을 두고 있던 나라가 맞습니까?

ㅡ 요서나 요동도 아닌 한반도 귀퉁이에
ㅡ 그것도 한나라에 비하면 쥐좆만한 크기의 위만 조선을 치겠다고
ㅡ 세계 최강대국 한나라 수만 대군을 몰아 수 년을 걸쳐서, 그 엄청난 재정을 써 가면서 원정을 감행할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ㅡ 그리고 그 한나라의 수만 대군을 맞아, 특히 마지막 1 년은 수성전을 펼쳤는데 지금의 평양에 그러한 규모의 왕성과 성이 있습니까?
ㅡ 게다가 한나라는 전투에서는 거듭 패하였지요
굿잡스 17-10-24 21:27
   
魏略曰:其國殷富,自先世以來,未嘗破壞。

위략 왈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며, 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번도 파괴당한 적이 없다.

-삼국지 동이전 부여조

위만조선(BC 194년 ~ BC 108년) 멸망 이전 이미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고조선 말기 문명권에서는

이미 청동의 독점적 지위가 무너지고 철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위만뿐 아니라 북만주의 강자 부여부터 삼한, 동예, 옥저등 열국시대로 분화된 상태.

즉 당시 위만 조선의 멸망은 우리 열국중 하나였을 뿐이군요.
     
설설설설설 17-10-24 21:39
   
솔직히 민망하지만  " 부여 " 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것저것 알아보니깐 상당한 강국이였더라구요 ㄷㄷ

기록처럼 "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여 선대 이래로 한번도 파괴된적이 없다 " 라는 기록은 물론

읍루족도 기원전2세기경에 부여한테 공격맞고 근 400년간 간접지배 당했던데 ㄷㄷ

부여인에 대한 묘사도 " 체격이 장대하며 용감하고 근면성실하다 " 라는 기록도 있구요.

거기다가 그 갈래에서 고구려,백제까지 갈라져서 나오고 발해까지 부여의 풍속을 계승하고 ㄷㄷ

일본판 환뽕샛기들은 부여를 자기들하고 연관시키는 샛기들도 더러 있던데 (걍 잽몽키들)

어쨋거나 한국사에 정말 중요한 위치에 존재하는 국가가 부여인듯 ㄷㄷ
          
굿잡스 17-10-24 21:51
   
부여 전신인 서단산 문화부터 부여의 노하심 유적의 황금문화나 철제 갑옷등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 보시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겁니다.(지금 워낙 짱국 공산당 주도의

정치적 동북공정이 심하다 보니 이런 만주일대 우리 고조선, 부여 관련 유적 공개나

연구 논문도 상당히 제한적인 상태군요)

http://blog.daum.net/shnaga/3745
               
도배시러 17-10-24 23:01
   
부여의 위치는 代, 薊, 상곡의 북쪽입니다.
굿잡스 17-10-24 21:45
   
부여라는 국가명은 사료적으로 서토의 상서대전이나 산해경,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등 이미 기원전 2세기에

등장하며 다들 알 듯 우리 고구려의 건국자인 주몽 역시 이런 부여 출신으로

남하해서 기존 고조선 재지 5부와 연합, 결합해서 탄생한게 고구려.

백제 역시 남부여를 자처할 만큼 부여가 주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뼈대는 대단히 강렬하고 도도하며

고조선뿐 아니라 매우 중요한 우리의 중추 역사군요. 이런 부여는 이후 5세기경 고구려에 흡수되기 전까지

이웃나라이자 한때 전쟁도 있었지만 고구려가 강성해지면서

동족의 예로서 대했으며 (이후 부여성은 고구려 5부 중 북방 욕살로 북부를 책임지는 중요 대성으로 자리)

일부의 예맥계 부여 세력은 북부여 지역으로 북상해서 다시 두루막국을 세우고 8세기까지 존속.

고구려 멸망후 30여년이 안되서 생긴 고구려 후신

해동성국 대발해 역시 이런 우리 예맥계 부여족이 큰 중추 역할을 담당.
밥밥c 17-10-24 21:57
   
'그 당시 위만조선은 진짜 고대국가로서 완벽하게 진입하기 바로 직전의 국가였다고 하더라구요.'


이것은 단지 주류사학에서 근거없이 떠들어대는 식민사학일 뿐입니다.

진짜 정사에는 전혀 다르게 적혀있습니다.


8. 찬자평(撰者評)
 
1) ○ 논(論)한다.
옛날 기자(箕子)가 쇠망하는 은(殷)나라의 운수를 피하여 조선(朝鮮) 땅에 피난하였다.
처음엔 그 나라의 풍속이 알려진 바 없었으나, 팔조(八條)의 법(法)을 시행하여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알게 하니, 마침내 그 읍락(邑落)에 음란한 행동과 도둑이 없어져서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았으며, 악하고 나쁜 풍습을 바꾸고 너그럽고 간략한 법을 이루어 수백년 동안 행하여졌다.
그러므로 동이(東夷)의 전체가 유근(柔謹)으로 풍화(風化)되어 삼방(三方)의 풍속과는 다르게 되었으니,
진실로 정교(政敎)가 창달되면 도의(道義)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중니(仲尼)가 분연히 구이(九夷)에 가서 살으려 하였더니 어떤 이가 그곳은 더러운 곳이 아닌가 하므로,
공자(孔子)가 ‘군자(君子)가 살고 있으니 어찌 그곳이 더럽겠는가’ 한 것도 특히 그런 까닭이 있어서 일 것이다.
그 뒤 드디어 [중국과] 통상을 하게 되고 점차 상국(上國)과 교역하더니,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그들의 풍속을 어지럽히자, 이에 [그들도] 따라서 나빠지게 되었다.
노자(老子)는 ‘법령(法令)이 불어날수록 도적이 많아진다’고 하였다.
기자(箕子)가 법조문을 간략하게 하고 신의(信義)로 다스린 따위는 성현(聖賢)의 법(法)을 만든 근본취지를 얻었다 하겠다.


http://blog.daum.net/cdh571/604


 후한서 '동이열전'에서  '위만은 날강도이며, 위대했던 조선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적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한나라의 정사인 '후한서'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진짜 한나라 공식기록이죠.


( 위 저자의 논평중 10번째줄)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그들의 풍속을 어지럽히자, 이에 [그들도] 따라서 나빠지게 되었다.
도배시러 17-10-24 22:30
   
상고사에서 고조선과 함께 등장하는 3국가가 부여, 예맥, 고조선
굿잡스 17-10-24 22:36
   
그리고 더 첨언하자면

이런 우리 고구려 발해 문명은 다시 동북아의 패자였던 북방의 대국 요와 금의 도시문명에게도

우리 고구려계가 주도해서 건설할 만큼 지속적 지대한 영향력을 주였고

몽골의 남송 정벌과 세계제국도 결국 앞선 시기 몽골의 전신인 실위를 잡고 있던 요나라가 연운 16주를

얻고 이후 다시 신라계 황제 여진족 +발해인 연합의 금나라가 다시 요나라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몽골의

부족이 점차 구속에서 벗어나 이후 금이 송을 멸하고 우리 고구려계 장호가 북경에 중도라는 도시 문명을

건설하고 반발해적인 3대 희종에 반발하면서 이를 제거하고 발해계 대씨 부인의 아들 4대 해릉이

옹립되면서 이후 이 해릉이 주도적으로 남송 정벌을 위해 대대적 이주 정책등 강북쪽에

북방 이민족의 토대가 마련된 여건하에서 이후 정강지변으로 독오른 남송 수십만과 몽골의 양사이드 연합 공격

과 내부적으로 복속된 거란의 이탈과 배신으로 금이 멸망하고 그 자리를 몽골이 차지한 이런 일련의

동북아의 격변하던 국제적 힘과 공백기의 역학적 흐름을 통해서

몽골이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큰 그림의 기반을 보고 이해해야 할 듯 하군요.


몽골부족이 테무진이라는 걸출한 영웅의 등장으로 몽골 초원의 부족을 통합하면서 거란과 금에서 벗어나

독자적 강성한 유목기병을 만들고 여러 승리를 장식했지만 그렇다고 이 몽골이 마냥 무적이 아니군요.

아래 보니 몽고의 원수 살리타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던데 초기 몽골의 병력 수는 많아야 10만 내외정도로

보고 있고 아직 금과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에서(이후 금의 멸망으로 몽골은 점차 거란, 금의 병력까지

흡수하면서 규모가 커지게 되며 이슬람계의 기술력까지 흡득해서 발달한 공성무기까지 사용)

당시는 무신 집권기로 고려 황제는 허수아비로 전락해서 전기

광군 30만을 동원하고 요와 3차대전까지 가면서 3차에서 전사적 유목 요나라 10만 정예를 회전에서 궤멸시킨 그런

고려가 아니였고 무신집권기의 정치적 혼란기가 점철되다 이후 최씨가 정권을 잡았다고 해도

이런 역성 쿠데타가 일반화되다 보니 전국적인 민란부터 북방의 반란등 몽골의

침입때의 고려 조정은 이전의 통일된 정치 체재때의 결집양상과는  사뭇 다른 상황일 수 밖에 없었군요.

그러함에도 이런 천하의? 강성한 몽골이 당시 금과의 대치속에서 3만 이상이라는 건 결코 적지

않는 대군이였고 이런 살리타이가 고려 경기 처인성(고작 농구장 크기 정도의 소성) 전투에서 그것도 일개

당시 승려였던 김윤후와 노비로 구성된 고려 민병대에 사살당하면서 퇴각한게 2차 몽골 칩입때의 상황.


만약 역으로 가정해서 몽골이 금의 위치로 들어가서 독오른 남송과 금나라에 양사이드로

수십만 대군의 협공을 받았다면 몽골이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후방의 고려 역시 무신집권기가 아니라 전기처럼 일원화된 정치체재로 2,30만

대군을 뽑아 냈다면 후방에서 상당한 체력을 소비한 몽골이 과연 제대로 세계 제국을

건설해 볼 수는 있었을까?

물론 몽골의 뛰어난 기병과 전술운용, 용맹,유연함, 응집력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였지만 몽골 역시 병력의 한계와 마냥 무적이 아니였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였고 이런 동북방 지역의 국제적 격변기와 혼란기속에서

몽골이 성장하고 세계 제국을 이끌 수 있었던 시대적

흐름이지 않았나 생각해 보군요.
꼬마러브 17-10-25 00:16
   
고조선은 BC 2333년에 세워진 명백한 고대'국가'이고

그 이후의 삼국시대는 고대가 아니라 중세시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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