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을 표현한건 정말많고 유명합니다
하지만 문헌과 자료의 부족으로 고조선의 멸망과정을 그린건 정말 적은데요
학교에 자료 발표 할 겸 해서 조사한 고조선 멸망과정을 짧게 적어봅니다
자료가 없는만큼 야사를 위주로 했으니 틀린점도 많을겁니다 정사와 야사의 짬뽕이라 생각하세요
먼저 고조선은 기자조선 시절 전국칠웅중 하나이던 연나라와 대판 싸웁니다
싸운 이유는 조선이 건방지게 중국이나 쓰는 왕의 칭호를 사용한다는 거였죠(황제칭호가 없던시절)
결과 조선은 서쪽영토 2000리를 빼앗기고 요동에서의 영토를 거의 다 잃습니다
후에 진이 중국을 통일하였는데 몽엽이란 장수를 조선 북쪽에 보내 만리장성의 기틀을 닦게하니
연과의 상처가 다 치유되지 않은 조선은 황제국가이던 진과의 충돌을 피해 소수남은 요동영토와
압록강변의 땅을 그냥 진에게 주고 진의 속국이 됩니다
(진의 속국된건 기분 나쁘지만 당시 동쪽에서 진이 국가로 인정한 나라는 조선이 유일)
그리고 얼마안가 진이 멸망하고 한이 세워지니 조선은 자연히 한의 속국이 됩니다
이떄쯤 부터 본격적인 위만 조선인데
위만조선은 한의 발달된 문명과 최신 철강무기제조법을 다 흡수합니다
그 결과 조선은 한을 제외한 동쪽의 최강국이 되죠 게다가 한나라도 감히 함부로 건들지 못하던
흉노와 동맹를 맺고 압록강변의 땅을 되찾고 야금야금 요동을 넘보기 시작합니다
흉노와 남월 정벌에 바쁘던 한은 조선을 섯불리 건들지 못하고 조선은 그틈에
주변의 진번과 임둔이란 세력을 복속시키고 지리적 위치를 이용
한과 무역을 하려는 나라는 반드시 조선을 거치게 강요합니다
그리하여 한반도남부에 있던 진국이나 북부의 예군,남려 등의 나라가 조선에게 굴복하죠
조선의 세력이 이렇게 팽창하자 때마침 남월의 정벌을 마친 한무제는 흉노에 앞서 조선의 정벌을 준비하고
때마침 조선에게 압박당하던 예군과 남려가 한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하여 기원전109년 한나라는 양복과 순체를 보내 육군 5만과 수군7천으로 조선을 침공하죠
세력이 커졌지만 한의 상대가 되지 못하던 조선은
패수를(패수가 요하냐 압록강이냐를 두고 요즘도 한국이랑 중국이대판 싸움)
건너기 전인 한군대에 세자를 보내 협상을 하고자 하지만 한은 꺼지라고 하고 조선을 침공합니다
하여 세자는 수도인 왕검성에 오면서 지방의 군대를 1만을 끌어모아 수비군 1만까지 합해
왕검성의 수비군은 약 2만정도 됩니다
지방에서 별다른 저항을 겪지않던 한군은 왕검성에서 격렬한 저항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상태로 약 1년정도 전쟁이 지속되자 조선의 패색이 조금씩 짙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지도층의 내분이 일어나는데 먼저 왕검성이 포위당하기 전에
조선상 벼슬의 역계경이 한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고 강화를 하자고 주장하지만 당시의 왕인 우거왕이
거절하자 자신의 무리인 2000호 약 1만명을 데리고 진국으로 망명합니다
그뒤 전쟁이 지속되었을 때는 여러 고위층이 항복을 주장하였으나 우거왕이 거절하자
조선상 벼슬의 노인, 상벼슬의 한음, 장군벼슬의, 왕겹, 이계상 벼슬의 삼(혹은 니계상 벼슬의 참)등이
모의를 하여 한에 투항할 계획을 세움니다
일단 노인은 투항하는 과정에서 발각되어 죽지만 한음,왕겹은 왕검성의 함락에 결정적인 역활을 하며
투항을 합니다 그리고 니계상 참은 자객을 보내 우거왕을 암살하고 항복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우죠
사태가 이리되자 대신 성기가 소수의 결사대를 이끌고 왕검성의 수비성(성안에 조그마한 성)에서
항전을 벌이나 얼마안가 함락되고 일년여에 걸친 조선의 항쟁은 막을 내립니다
허나 조선 정벌에 나온 인물들은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먼저 조선 정벌군의 대장이었던 양복과 순체는 정치적인 이유와 소국을 정복하는 데 너무 긴 시간과
물자와 인력을 잃었다는 이유로 참수를 당합니다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조선정벌에 참여한 한 장수는 거의 다 사형 당합니다
또한 항복을 하고자한 노인은 항복전에 발각되어 죽고
항복을 한 한음은 조선 멸망후 적저라는 척박지에 540읍을 다스리는 조그마한 벼슬을 받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었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기록이 끊기고 얼마안가 생존한 후손도 없이 죽었다고 합니다
왕겹도 평주라는 척박지에 임명되었는데 조선 멸망후 1년도 살지 못하고 갑자기 남긴 자손도 없이 죽으니
아마 한나라가 뒤처리를 하지 않았나 추측할수 있습니다
항복에 가장 큰 공을세운 니계상 참은 공에 걸맞지않게 조그마한 벼슬과 식읍1천호 정도만 받자
이에 불만을 품고 조선인 유민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된후 옥사되고 그 역시 남은 후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