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 대한 욕심은 강했는데 금강,낙동강 유역등의 대평야 지대를 탐내지 않았다는게 의문입니다. 당연히 탐나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멸망까지 몰고갈 명분을 찾지 못해서 압도적인 힘이 있어도 끝내 치지 못한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가는데 관심이 없어서 내버려 둘 정도로 먼 땅도 아니고...
한강 유역에서의 치열함이 쉽게 납득이 안가서요.
명분이 없다던가 백제 신라 양국을 동시에 상대할(북방의 외적과 함께) 정도의 힘은 없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순망치한 이라고 신라나 백제나 서로 싸울때 싸우더라도 어느 한쪽이 고구려에 무너지는 걸 원치는 않을테니까요.
고구려는 신라에게 있어 당나라 처럼 한발 멀리 있는 파트너를 구하지 못했던게 통일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이지 않나 싶어요. 백제나 신라 그 어디라도 고구려와 연합으로 나머지 한나라를 쳐서 무너뜨렸을때 고구려를 상대로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이라도 서면 모르겠는데...그런게 아니라면 사실 제대로된 연합이 어렵지 않나 싶어요.
만약 고구려가 한,수,당 등에 위협이 되지 않는 좋은 관계였다면 진작에 연합해서 백제,신라를 점령했겠지만...
지리적으로 그들이 고구려를 도와도 실질적인 영토이득을 갖기는 어려우니 연합에는 크게 협조도 안할 거 같고..
더불어 고구려 자체가 이미 위협인지라 파트너로서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역사는 모르지만 고구려가 자세를 낮추고 겸손할 줄 알고 고압적이지 않게 주변국과 우호를 다져갔다면 아마도 고구려가 통일을 했겠지만 고구려는 전성기 시절 콧대가 좀 높지 않았나 싶어요. 비하하는게 아니고 그래서 주변국에 시기나 두려움을 심어준게 장차에는 비수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나 싶어서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날라다니기 전 시절을 보면..
연나라 모용씨 세력과의 전쟁에서 백제와의 전쟁에서 고구려가 아주 죽을 쑤던 시절이 있었죠.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은
연나라 모용선비족한테 아버지인 미천왕 시체도 뺏기고, 어머니를 납치당했으며,
백제와의 전쟁에서 전사까지 당하지요.
고구려 군은 그런 의미에서 사방으로 적이 많았기 때문에,
남부를 평정해도 그걸 지킬만한 병력의 여유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정예 5만의 기동군을 단시간 운용하더라도, 이걸 남부에 그대로 배치해서..
이질적이고 반항적인 세력을 무력합병하여 지배하에 두기 어려웠는지도 모릅니다.
광개토대왕 자신의 정복전쟁을 보면, 북쪽, 동쪽, 서쪽, 남쪽, 바다 건너의 왜까지..
참 상대해야될 적이 많았죠.
그래서 완전한 합병보다는 신하로써의 충성맹세만 받는 것에 만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백제의 경우는 잘모르겠으나, 사실 신라의 경우를 보면..
고구려가 신라 경내에 병력을 배치해두고 속국처럼 다스리긴 했으나..
어느날 "고구려의 개들을 죽여라"라는 구호와 함께
신라군들이 일제히 공격해 고구려 감시군을 도륙하여 몰아낸 기록이 있지요.
사실, 신라도 별로 다르지 않았던게..
고구려, 백제 왕조가 망했음에도, 이후 고구려, 백제 부흥군이 만만찮은 세력으로 일어서는데..
아마 신라-당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나, 백제, 고구려 유민들이 반당 연합전선을 펼치지 않았으면,
신라가 고구려, 백제 지역을 다스리기도 참 곤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신라가 미워도, 당나라보단 낫다.
그래도 같은 고조선 단군 할배 핏줄 아니냐? 뭐~ 이런 유대감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자연히 당나라라는 외세와의 전쟁으로 이어지니,
신라에 대한 원한보다 당나라에 대한 원한으로 동맹이 형성되고,
묵은 감정도 어느 정도 정리되고,
고구려 왕족인 안승은 신라 김씨 성을 받고 , 문무왕의 질녀와 결혼해 귀족세력에 편입되기도 했죠.
그리고, 어떤 점에선 고구려, 백제 부흥군이
내분과 전쟁의 패배로 인해 내외로 붕괴되어 소멸된 것 역시
신라가 통일 합병한 고구려, 백제 지역을 안정적으로 보유할 수 있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