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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15 23:09
[기타] 만주잃은게 억울하면
 글쓴이 : 맘마밈아
조회 : 3,801  

1차로 여진정벌해서 만주를 수복했던

윤관장군이 있으니 만주경영하기가 힘겨워서 조공받기로 하고 돌려줬던 고려조정을 욕하세요.

2차로 일본도 먹은 만주를 못먹었던

조선을 욕하세요. 우리도 일본처럼 근대화를 일찍했으면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와 만주까지 먹었던것처럼

무주공산이었던 유목민들 살던땅을 거저 먹었을거 아닙니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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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덜 14-11-15 23:12
   
고구려가 애초 신라외세 개입 계략 없었으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란 나라도 없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 첫 단추를 외세에 받친 병x 신라가 나쁜놈 맞음.
     
맘마밈아 14-11-15 23:14
   
고구려는 오랑캐인데 오랑캐땅을 누가가지든 무슨상관임. 신라가 만주를 경영했었고 후에 말갈족과 요나라가 쳐들어와서 빼앗긴것인데..
          
덜덜덜 14-11-15 23:25
   
한반도 서울, 평양까지 고유의 영토를 가진 나라를 오랑캐래 ㅋㅋㅋ

그럼 신라도 오랑캐인가요??
               
맘마밈아 14-11-15 23:37
   
신라가 서울과 평양은 수복했어요.
                    
덜덜덜 14-11-16 00:11
   
평양은 고유영토로 따지면 고구려꺼입니다.^ ^
                         
맘마밈아 14-11-16 00:46
   
고구려의 수도를 신라가 점령했으니 고구려는 신라에 병합된 것입니다.
                         
덜덜덜 14-11-16 00:47
   
ㅋㅋㅋㅋㅋㅋㅋㅋ역사를 혼자 쓰세요.

평양이 무슨 신라의 고유영토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와나 14-11-16 00:16
   
신라가 만주를 경영했다고요??
그게 언제죠? 이제 아예 창작을 하시는 건가..
               
맘마밈아 14-11-16 00:45
   
길림=계림입니다. 신라가 잠깐 만주를 경영했다가 발해 말갈족들에게 빼앗긴 겁니다.
                    
나와나 14-11-16 01:02
   
무슨 소린지.. 소설 그만 쓰시고 관련 사료 하나라도 보여주시죠?
                         
맘마밈아 14-11-16 01:58
   
                         
나와나 14-11-16 02:24
   
신라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조선 뿐인데 이걸 증거랍시고 가져온 건 가...

설마 중국 지도에 나오는 길림성 하나 보여주려고 링크 단 건 아니죠?
                         
맘마밈아 14-11-16 02:33
   
해방 블로그의 신라영토부분을 찾아보세요. 주소북사로는 딱 그부분이 나오게 안되네요.
     
맘마밈아 14-11-16 01:56
   
고려는 신라땅에서 일어난 나라인데 무슨 고구려운운..실제로 고구려땅에서 일어난 나라는 발해가 맞고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가 계승함.
          
나와나 14-11-16 02:28
   
중요한 건 그 당시 주변국들의 인식임

소손녕은 서희와의 외교 속에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을 인정하였고,

원나라의 쿠빌라이도 항복하러 온 고려 태자를 보고 당태종도 이루지 못 했던 걸 자신이 이뤘다고 기뻐했음(고려를 고구려의 후예로 인식한 것)
망조 14-11-16 00:32
   
아 그 오랑캐가 우리랑 같은 말을 사용했군요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도 오랑캐란 말이죠? ㅎㅎ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가 그리고 남북국시대인 발해와신라가  같은말을 사용했다는건 후한서나 구당서 등등 여러 역사서를 통해서 확인할수있고  중국또한  이것만은 인정하고있는사실인데 님께선 다른민족 대하듯하시네요 ㅎㅎ 그럼 북한주민들도 오랑캐라는 말인가요? ㅎㅎ
     
맘마밈아 14-11-16 00:45
   
고구려의 인구중 절대 다수는 말갈족입니다. 말갈족과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망조 14-11-16 01:00
   
고구려와 숙신(말갈)은 서로 말이 달랐습니다
          
나와나 14-11-16 01:06
   
통일 뒤 신라의 중앙군 9서당에는 고구려인과 백제인은 물론이고 말갈족까지 들어있었는데요? ㅋㅋㅋㅋ

적어도 서로 이질적인 세력은 아니었다는 뜻.
          
망조 14-11-16 01:06
   
그리고 말갈은 한반도에도 있었습니다 경기도일대에 쭉 ㅎㅎ
          
나와나 14-11-16 01:14
   
님이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죠

그러면

고구려 인구 중 대다수는 말갈족-> 고구려의 대다수 언어는 말갈어-> 말갈어는 우리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고구려 언어는 백제, 신라와 통하지 않았다

즉, 고구려는 백제, 신라와 말이 통하지 않았다는 모순이 생기는 군요
수많은 사서에서 말하는 것과 반대로 말이죠
               
맘마밈아 14-11-16 01:17
   
고대 사서는 모순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유족 유물등 보완되는 증거로 증명을 해야지요. 고대 말이 어떠했는지 서로 통했는지 솔직히 알수가 없습니다. 증거도 없고요.
                    
덜덜덜 14-11-16 01:19
   
후한서 보시면 증거가 어마어마하게 나오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와나 14-11-16 01:24
   
삼국의 언어와 풍습에 대한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의 언어에 차이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학계에서는 고대삼국의 언어가 개별언어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언어는 백제와 신라하고는 차이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면밀한 분석과 연구로 삼국의 언어가 방언적 차이는 있지만 단일어였다고 인식합니다. 
  
삼국언어의 연구결과 한(韓)민족의 고대삼국에 계통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언어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자들은 삼국의 언어차이뿐 아니라 방언차이도 부정하고 있다. 
  
고대어가 개음절(열린음절)로 이루어져서 국명과 지명어휘를 몇개의 기원어의 범주로 묶어 고찰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확대되어 비교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고대삼국의 언어가 동일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 삼국의 언어를 서로 다른 개별언어로 볼 수 있는지 검토했는데 고구려어휘 자료들에는 중세국어와 이어진다고 본 어휘가 각각 44%, 68% 였는데 이는 오히려 삼국의 언어가 모두가 중세국어에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단일어라는 전제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기문- 고구려어 76개중 31개를 중세국어와 대응 발견 
*박병채- 고구려어 63개중 41개를 중세국어와 연관 발견 
  
<후한서>  
東夷相傳以爲夫餘別種故言語法則多同 
[고구려는 동이족들이 서로 전하기를 부여의 별종인 까닭에 언어와 법제가 많이 같다고 한다] 
  
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일들이 부여와 많이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데가 있다] 
  
言語食飮居處衣服有似句驪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耆舊自謂與句驪同種言語法俗大抵相類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 
[예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고 고구려와 같다] 
  
이렇게 화하족 사서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예(濊)의 언어와 풍습이 같았음을 증언합니다. 
  
<후한서>권85 
弁辰與辰韓雜居城郭衣服皆同言語風俗有異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산다 성곽과 의복은 다 같은데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삼국지>'위지'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더불어 같고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다] 
  
한(韓)에 대한 화하족 사서의 기록이며 여기서 [다른점이 있다]와 [서로 비슷하다]의 상반되는 기록에서 두 가지를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사서의 기록자가 실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책이 다른 한 책을 가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후한서>의 기록자가 이 지역의 방언차이를 목격하고 [다른데가 있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쪽이든 변진과 진한의 언어차이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서라벌신라지역에 대한 기록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언어는 단일어였음이 실증된다. 
  
<양서>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이 기록은 당시에 화하족과 신라가 의사소통을 하려면 백제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제어와 신라어는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고 백제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양서>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行不張拱拜不申足則異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남사>권79 
言語服章略與高麗同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위략> 
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 모두 조선의 후예들로 같은 언어를 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부여, 옥저, 예의 언어가 같았고 한(韓)의 언어 즉 백제와 서라벌신라의 언어가 같았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으므로 결국 고대 한(韓)민족의 언어는 단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서>의 기록에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고 하는데 왕을 ‘어라하’ 또는 ‘건길지’라고 불렀는데 ‘어라하’는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고 ‘건길지’는 평민들이 사용한 호칭이었다. 
  
그렇다고 언어가 다른것은 아니고 관료들은 '주상' 또는 '전하'라고 부르고 백성들은 '상감마마' 또는 '임금님'으로 부른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이다. 
  
비류와 온조가 주도한 초기백제가 건국한 곳은 대륙의 발해만인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남하하여 산동성과 한반도로 이동하므로 백제는 마한과는 별도의 국가로 존재했으며 후대에 마한을 통합한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07&wr_id=282995&page=2

=====================
마침 잡게에 좋은 글이 올라와있네요
                    
망조 14-11-16 01:25
   
증거가 없다고요?  역사서는 그냥 장식인가요? ㅎㅎㅎ
                    
나와나 14-11-16 01:27
   
다양한 나라들이 국가적 차원으로 편찬한 역사서들을 모조리 휴지 조각 취급하는 패기.

반박을 하려면 님이 말하는 고대 사서의 모순들, 그러니까 삼국의 언어가 달랐다는 내용을 담은 사료를 하나만이라도 가져오셔서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괜히 자기 혼자만의 망상을 역사적 사실마냥 적지마시고요
                         
나와나 14-11-16 01:45
   
<양서>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行不張拱拜不申足則異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남사>권79  
言語服章略與高麗同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위략>  
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 모두 조선의 후예들로 같은 언어를 쓴다]  

====================
고구려와 백제가 같다는 부분이 없다고요?
이 분 난독증 걸리셨나??
                         
맘마밈아 14-11-16 01:49
   
고대의 언어가 달랐다는게 핵심이 아닙니다. 제가 발제한 내용이 언어에 대한 내용도 아니며. 고대 언어가 남아있지 않고 사료가 없어서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고대 사서의 특정 내용만으로 확인할수 없다고 봅니다. 이미 서두에 강단사학=공식역사학계의 입장에서 부정하고 있다고 서두를 시작하고 있네요.
                         
맘마밈아 14-11-16 01:51
   
고대 사서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곧 증명이라고 주장하면 곤란합니다. 고대사서의 기록만으론 고대 중국영토가 고구려 백제 신라는 대륙삼국설도 연역이 가능해 집니다. 교차검증이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건 당대의 언어로 기록된 문헌이 필요합니다.
                         
나와나 14-11-16 01:53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245827

강단사학계가 주장하는 헛소리들을 알면 사학계 말이 진리는 아니인 걸 알 텐데..?
                         
맘마밈아 14-11-16 02:03
   
강단사학을 부정하면 할말이 없네요. 강단사학=정론입니다.
                         
나와나 14-11-16 02:09
   
아무런 반박도 못하고 주저리주저리하다가 강단사학에 위배되니 절대 아니다!가 결론?

마치 송시열의 사문난적으로 몰아가기가 생각나는 군
                         
맘마밈아 14-11-16 02:11
   
강단사학=정론인데 일단 정론을 추종함.
맘마밈아 14-11-16 01:43
   
여진족이나 몽골족이 우리민족의 기원이며 동질성이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언어를 보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이미 국정교과서에도 고구려의 구성민족의 대다수라고 나오는데(심지어 발해는 지배층도 말갈족) 말갈족이 바로 여진족의 조상입니다.
맘마밈아 14-11-16 01:47
   
강단학계에서는 고대삼국의 언어가 개별언어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언어는 백제와 신라하고는 차이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망조 14-11-16 01:51
   
後漢書:婁,古肅愼之國也...人形似夫餘, 而言語各異
읍루는 옛 숙신이다..사람들은 부여와 닮았지만 유독 언어가 다르다

勿吉國在高句麗北, 一曰靺鞨. … 言語獨異.
물길국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는데 ‘말갈’이라고도 한다. … 언어가 고구려와 다르다
     
맘마밈아 14-11-16 01:52
   
그 말갈이 고구려 인구의 대다수였습니다.
          
나와나 14-11-16 01:57
   
말갈이 고구려인의 대다수였다는 근거 자료를 보여달라니까 자꾸 혼자만의 의견만 주구장창...

나도 말로는 프랑스인의 조상이 일본인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음
               
맘마밈아 14-11-16 02:00
   
국정교과서에 나오며 고구려사를 기술한 대중역사서적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맘마밈아 14-11-16 02:00
   
                    
나와나 14-11-16 02:04
   


'말갈이 고구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다는 증거'

를 보여달라 했음
                         
맘마밈아 14-11-16 02:07
   
고구려관련 대중역사서를 보면 고구려는 지배층은 한민족 피지배층은 말갈족이라고 나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피지배층이 비지층보다 인구가 많을수가 없음. 어디서나 피지배층이 인구가 절대다수임. 특히 발해는 그 지배층조차 말갈족으로 의심됨.
                         
맘마밈아 14-11-16 02:10
   
                         
나와나 14-11-16 02:12
   
그런  역사서, 전혀 없고 있으면 제발 자료 제시해주길 바람

애초에 한민족이라는 표현은 근대 이전에 쓴 적이 없고

지배층이 고구려, 피지배층이 말갈이니 하는 건 유취국사에서 나온 발해 묘사인데 이것도 오류로 판명났음
                         
맘마밈아 14-11-16 02:15
   
그건 주장일뿐이고 증거가 안되는것임. 논파되었다는 주장일뿐이고 통설로 인정되는것도 아님. 대중역사서에는 그런식으로 기술되고 있고. 인터넷 검색으로도 수도 없이 나옴. 강단사학=정론도 부정하고 주장만 하고 있는 그런 입장에서는 내가 적시한 블로그의 주장도 주장으로서 일응의 논거임.
                         
나와나 14-11-16 02:16
   
맥족은 예족과 함께 고대 한민족의 일파로 고구려인데, 왠 말갈이니 뭐니 하는 지...
                         
나와나 14-11-16 02:19
   
강단사학이 많이 까이는 건 사실인데?
왜 진리 취급하는 지 모르겠군..
오죽하면 뉴스에까지 보도되겠나?
teran 14-11-16 01:58
   
신라는 북방의 오랑캐 흉노족이야  KBS 역사스페셜 보면 나옴
     
맘마밈아 14-11-16 01:59
   
흉노족은 실크로드를 지배했던 위대한 민족입니다.
          
덜덜덜 14-11-16 02:01
   
위대한 오랑캐 민족에게 지배당한 나라가 신라지.ㅋㅋㅋㅋㅋ암.ㅋㅋㅋ
               
맘마밈아 14-11-16 02:04
   
김씨와 박씨가 흉노성씨인데 넌 왜 니 할어버지 할머니 부정하니..
                    
덜덜덜 14-11-16 02:13
   
흉노성씨 경주김씨 몇프로됨??ㅋㅋㅋ

그리고 경주김씨가 다 진짜라고 믿니??ㅋㅋㅋㅋㅋㅋㅋ
                         
맘마밈아 14-11-16 02:16
   
족보라는 서증도 부정하면서 넌 뭘 믿니 혹시 대뇌망상?
                         
덜덜덜 14-11-16 02:39
   
신라시대때 족보가 있었니?ㅋㅋ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가 뭔지 알고 말하니??

안동권가 성화보임.ㅋㅋ조선중기 거의 1600년도에 생김.ㅋㅋ

근데 신라의 흉노족의 김씨일가를 대한민국 '김이박'으로 치부하는 패기는 무슨 패기임?ㅋㅋ
                         
맘마밈아 14-11-16 03:56
   
자기 시조를 김수로왕 김알지 박혁거세 그렇게 적어 놓았음. 문서화 되기전에 구전으로라도 일응의 근거가 있으니 그렇게 적어 놓은것이지. 위에 자기 직계 조상이 고구려 장군이라는 분도 있구만...
망조 14-11-16 02:08
   
제 시조할아버지가 고구려대장군 강이식인데요 그럼 전 뭔가요? ㅎㅎ농담하나할가요?일본제국시대 인구의 대다수는 한족이었습니다 일본제국시대 주체도 한족이고 그러므로 제1공용어가 일본어가 아니라 중국어였습니다 ㅎㅎ
     
맘마밈아 14-11-16 02:10
   
고구려의 평양이 통일신라에 병합되면서 고구려 유민중 상당수가 신라로 편입됩니다. 님의 조상도 그중 한명이겠지요.
     
맘마밈아 14-11-16 02:12
   
언어가 중요한건 아니죠. 언어로 따지면 13억 중국이 전세계의 헤제모니를 쥐어 야죠. 그러나 이미 대영제국시절 헤지모니는 인구 3천만의 영국이 지배했고 오늘날은 인구 3억남짓의 미국이 13억 중국 12억 인도를 압도하고 있는 실정이죠.
Centurion 14-11-16 04:13
   
하나가 빠졌네요.

신라가 고구려-백제 멸망을 시켰다해도,,
엄연히 발해가 들어서 해동성국 소리 듣고, 일본에 고(구)려국왕을 자처했죠.

고구려가 계속됐다한들..
발해처럼 거란한테 수도가 급습당해 멸망안한다는 보장도 없구요..
고구려 멸망할 무렵만 하더라도 이미 거란족의 성장세가 만만찮았던 시절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역사란 가정이 무의미한 것도 사실이고,
만에 하나 고구려가 존속되었다해도 다른 요소에 의해 멸망안한다는 보장도 없는것이죠.

사실상 북방영토가 사라진것은 발해 멸망 이후이고.. (이후 거란(요나라),여진족(금나라),몽골족(원나라)
몽골의 부마국으로써 고려왕이 심양왕 자리를 겸할 때는 북방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살아났다가,
다시 고려왕가와 심양왕가가 분리되고, 나중에 공민왕 때 요동정벌로 잠시 수복할 기회가 있었죠.
다만, 군량미 부족으로 철수.

그러다 주원장이 원나라를 몰아붙이며, 요동에 진출하고, 여기서 철령위 문제가 발생하죠.
여기서 위화도 회군이 터지면서 요동정벌이 날아가버린거고..

이후 명나라와 조선이 요동지역에 일종의 완충 공백 지대를 형성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청나라가 세워지면서 이 완충지역도 청나라 관할이 되어 버리죠.

그래서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지고 청나라랑 국경선 확립이 되는데..
뭐.. 따지고 보면 이 요동지역에 대해서는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영유권 문제가 복잡하게 오락가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고구려 멸망 이후 만주가 우리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하는 것도 백프로 옳은 말은 아니지요.
엄연히 발해가 있고, 그 뒤에도 고려왕의 심양왕 겸직, 공민왕 때의 요동 점령, 명나라와의 국경 문제,
청나라와의 국경문제 등을 통해 간도문제로 이어지는 복잡한 역사가 얽혀있거든요.

그런데 신라때문에 한반도로 찌그러 들었다고 못을 박는것도 잘못된 주장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건 엄연히 발해의 존재를 부정하는 발언입니다.
SRK1059 14-11-16 04:41
   
이 글 쓰신 분.
자기 논리에 우리한 것은 무조건 옳은 사서이고
자기에게 불리한 사서는 믿을 수 없는 사서라고 우기는 것을 보니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사서를 자기네에게 유리한 것만 채택하거나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 해석하는
일본 사람들이랑 똑 같네.

그리고 길림과 계림이 똑같은 것이라고요?
듣다듣다 별 괴상한 소리를 다 들어 보네.
Centurion 14-11-16 04:57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59221

신라가 만주에 위치하고 있었다?

청나라의 건륭제(乾隆帝)는 전 국가적 사업으로『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라는 역사서의 편찬에 착수하였다. 만주족이 건국한 청나라는 압도적인 인구와 압도적인 문화적 우위를 지닌 한족(漢族)이라는 엄청난 존재에 맞서기 위하여 만주족 자신들의 역사적 원류를 찾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정립함으로써 국가와 만주족의 자긍심을 고양시킨다는 취지와 목적을 가지고 건륭제(乾隆帝) 시기에 만주족의 학자들을 총망라하여 역사 편찬을 추진하였다.

이 역사서는 흥미롭게도 우리의 삼한(三韓), 부여, 백제, 신라, 발해 등의 국가와 민족을 만주족의 '강역(疆域)'과 '부족'란에 포함시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은 건륭제가 직접 썼는데, 건륭제는 '계림(鷄林)'과 '길림(吉林)'의 발음이 동일한 사실을 예시하면서 이를 근거로 하여 "신라라는 국가가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의 길림성에 존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건륭제의 문제의식은 상당히 날카로웠으나 거기에서 한 수를 더 생각했어야 했다.

계림주(鷄林州)의 설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당나라 시대에 '계림주(鷄林州)'가 현재의 길림성에 실재(實在)하고 있었다(『구당서』).

원래 당나라는 AD 662년에 백제를 멸망시킨 뒤 백제의 고토(故土)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663년에는 신라에 계림도독부를 설치하고, 신라 문무왕 김법민(金法敏)을 계림도독에 임명하였다. 이렇게 하여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신라 역시 당나라에 편입시켰다.

그 뒤 668년 고구려가 멸망당한 후 670년에 일어난 고구려 유민 검모잠(劍牟岑: 고구려 멸망 이전에 大兄 벼슬을 하고 있었던 인물이다)과 안승(安勝)의 부흥 운동이 실패했을 때, 한반도 전체를 손에 넣으려 획책했던 당나라에 맞서기 위하여 신라는 고구려 부흥운동의 잔여세력을 끌어들여 당나라에 저항하였다. 그러자 당나라는 신라 문무왕 김법민의 계림도독 직위를 삭탈하고 대신 당나라 장군 유인궤(劉仁軌)를 계림도총관(鷄林道總管)에 임명하여 신라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이 전쟁에서 신라는 패배하여 항복하였으며, 사신을 보내 입조하고 예물을 바쳤다. 하지만 그 뒤 신라를 중심으로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은 한반도 전체를 속국으로 편입시키려는 당나라의 야욕에 끝까지 맞서 강력한 저항을 전개하였다. 결국 당나라는 이 끈질긴 투쟁에 배겨내지 못하고 계림도독부를 한반도로부터 오늘날의 길림성으로 이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뒤 유명한 설인귀(薛仁貴)가 유인궤에 이어서 계림도총관에 임명되었다.

이렇게 하여 본래 신라를 지배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계림도독부는 여전히 '계림(鷄林)'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고는 있었지만 이미 신라에 대한 지배라는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대신 만주 지역을 그 관할 통치범위로 하는 지배기구로 변화하였다. 그 뒤 당나라는 계림도독부가 있던 오늘날의 길림성 지역을 공식적으로 계림주(鷄林州)라는 행정구역으로 칭하게 되었다. 당나라 시대 이후 그곳은 발해를 거쳐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 북방민족의 세력권 하에 놓여 있었고(이러한 역사 시기에서도 중국 한족들은 상당 기간 그곳을 계속하여 鷄林州로 지칭했을 것이다),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때 처음으로 이곳에 길림장군(吉林將軍)을 임명하는 등 '길림(吉林)'이라는 용어가 정식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여기에서 '길림(吉林)'이라는 말은 세월이 흘러 이미 그 기원과 뜻이 상실된 '계(鷄)' 자 대신 발음은 같고 '길하다'라는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길(吉)' 자로 대체하여 사용하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길림(吉林)'과 '계림(鷄林)'이라는 단어의 중국어 발음은 모두 '지린(jilin)'으로 동일하다(다만 발음의 聲調만 서로 다르다).

http://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472

< 흠정만주원류고>에서 이처럼 금나라의 연원이 신라로부터 기인되었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이 책의 ‘부족’편과 ‘강역’ 편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처럼 신라의 9주가 현재의 만주 지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 요사습유(遼史拾遺)>와 <흠정만주원류고>에는 <봉사행정록(奉使行程録)>을 인용하여 신라산(新羅山)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신라산은 함주(咸州)로부터 북쪽으로 가서 동주(同州)에 이르면 동쪽으로 큰 산이 바라보이는데 신라산이며 산의 깊은 곳과 더불어 고려와 경계를 이룬다.”고 되어 있으며
이 신라산은 오늘날(청나라 건륭제 당시) ‘철령(鐵嶺)과 개원(開原)의 사이’라고 하고 있어 이곳이 신라의 강역이었으며 고려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길림(吉林)’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신라를 뜻하는 ‘계림(鷄林)’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 한자 독음으로는 ‘길림’과 ‘계림’이 서로 다르지만 현 중국어 발음으로도 ‘지린(Jilin)’으로 발음이 같다. 김함보가 추장으로 있었으며 아구다가 금나라를 세운 요나라의 완안부가 신라의 강역 안에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http://saso8888.egloos.com/m/8579018

청나라 시대 건륭 42년(1777년) 한림원에서 편찬된
<만주원류고>에서는 신라의 강역을 현재의 만주지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만주원류고에 따르면
<구당서>에 신라를 계림도독부로 삼고
그 왕 김법민을 계림도독으로 삼았다는 내용과

<신당서>의 신라왕은 금성(金城)에 거처하며
금성의 둘레는 8리이며 그 왕을 계림주도독으로 삼았다는 내용과
신라는 한나라 시대의 낙랑지역에 할거하였고
횡으로 천리이며 종으로는 삼천리였다는 내용을 인용하면서
계림은 현재(청나라 시기)의 길림이라 하였다.

계림(鷄林)과 길림(吉林)은 우리 발음으로는 달리 부르지만
중국 발음으로는 지린[jilin]으로 발음이 같으며
현 길림이라는 지명이 신라의 계림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을 한다.

또한,
신라의 구주(九州)를 설명하는 항목에서는
"신라의 땅은 동남쪽으로 오늘날 조선의 경상도 강원도의 2개의 도를 아우르고
서북족으로는 길림 오랍에 이르고 또한 서쪽으로 개원 철령에 가깝다"라고 하였으며
"개원(開元) (당나라 현종 713 ~ 741)이후 발해가 성할 때 압록강으로 경계하였다. "고 하였다.

그리고
"구주(九州)의 설치는 동쪽으로 길림에 이르고 서쪽으로 광녕에 이른다"고 되어 있어
길림 광녕이 현재도 있고 광녕 근처에 철원 개원이 있으니
신라의 서쪽은 개원 철령 광녕으로 이어지는 선을 경계로 나타내고
동쪽은 길림으로 이어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신라강역은 북쪽의 동쪽은 길림에서 서쪽은 개원 철령까지라고 하였다.

***************

여기에서 제일 앞쪽 프레시안의 분석은..
"계림도독부"가 한반도 내에서 만주로 밀려났고,
그래서 길림이 계림도독부의 터전이 된 것이다로 보고 있고..

후자의 청나라 역사서 만주원류고의 경우엔..
신라가 요동지역에 위치한 개원, 철령, 광녕 등에 걸쳐 진출했고,
현재의 길림을 차지했었다로 보는 시각입니다.

개원과 철령은 나중에 고려와 조선초기 문제가 되는 철령위 문제에도 나오는 지역인데..
개원은 심양 북쪽에 위치한 곳이죠. 철령 역시 그 남동쪽에 위치한 지역이고.

우리나라는 철령위를 저 강원도 북쪽지역이라고 비정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고려가 철령위 문제로 명나라와 충돌해, 압록강을 건너 요동정벌에 나서려 한 것을 봐도
철령이 요동의 철령을 의미하는걸 알 수가 있죠.
(아니라면 명나라가 설치한 철령위를 부수러 함경도나 강원도쪽으로 출병해야 마땅한데..)
아름다움 14-11-16 08:15
   
이런 왜구 쪽발이종자들에게 진진한 댓글은 사치입니다.
그냥 맘마 더 쳐묵고 온나라고 댓글 다세요^^
     
맘마밈아 14-11-16 11:22
   
저 일본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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