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범족(虎族)의 출현
북적北狄가운데 곰족이 불(화火)을 발명했다면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족도 의당 나타나야 할 것이다. 北狄이 발명한 불(火)은 당시로서는 혁명과 같은 사건이었으며 의식주 생활이 달라졌을 것은 물론,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틔웠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불(火)로 광석을 녹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신석기시대를 마감하고 청동기시대의 서막을 열게 됨을 의미한다. 北狄의 한 일파인 西戎족의 戎에서 창(戈)과 방패(十)가 드러난다. 문자학으로 보면, 이 종족은 北狄의 불(火) 문명을 받아 처음으로 창과 방패를 만들었음을 뜻한다. 창과 방패를 만들려면 쇳물을 녹일 솥이 있어야 하는데, 흙으로 만들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상형문자 鬲(력)이다. 그 실물과 금문은 아래와 같다. 이 흙솥을 어느 종족이 만들었느냐가 관건이다. 戎에서 창(戈)과 방패(甲)가 있는 것으로 보아 西戎族이 흙솥을 만들고 쇳물을 녹였을 것이라 짐작되나 이것이 인류의 시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戎族이 처음 흙솥을 만들었다는 증거를 문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림은 쇠를 녹이는 흙솥이다. 북적北狄은 처음에는 새를 숭상하는 종족으로 북추北翟을 쓰다가 후에 북적北狄을 쓰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서융西戎도 처음에는 흙솥(격鬲)을 만들고 뱀(충虫)을 숭상하는 융融을 쓰다가 후에 융戎을 썼던 것이다. 융融에 흙솥(격鬲)이 있음을 보아 융족融族이 흙솥을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세 개의 발은 모두 속이 비어 있어서 쇳물이 이를 통해 고이면서 나오도록 했다. 그런데 솥 권鬳 자字에는 흙솥 鬲(력)에 범 호(虍)가 올려져 있다. 문자학으로 보면, 이것은 호虎족이 흙솥을 처음 만들었다는 증좌이고 이보다 앞선 ‘솥’은 아직 발견된 바가 없다. 또한 융戎에서 병장기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융西戎족 가운데 호虎족이 있었던 것이다. 솥 권鬳 자字는 아래와 같다.
권鬳 = 虍(범 호) + 鬲(흙솥 력)
성부聲部인 鬲(력)의 상고음은 krek이고 초음은 kərərk이다. 상대형 ɨ와 운미 rk를 나누어 표기하면 하나는 [kɨlɨr(그를)], 다른 하나는 [kɨrɨk(그륵)]으로 나뉘어 변천하였다. 전자는 국어음절말 ㄹ, ㅅ 교체현상에 의해 현대국어 표준어 ‘그릇’이되었고, 다른 하나는 현대국어 경상방언 ‘그륵’이 되었다. 이는 앞서 지적한 바, [그를]의 음절말 ㄹ ㅅ 교체이다.
북적北狄의 불(화火)을 갖고 분파된 서융西戎은 처음에 흙솥을 만들었을 단계에서는 흙솥 融(융)을 쓰다가 후에 창과 방패를 만든 후에 융 戎을 쓴 것으로 보는 것이다. 융融의 상고음音이 [di ̯uŋ](디웅)이었고, 그 후 융戎은 [ni ̯uŋ](니웅)으로 읽었다. 흔히 일어나는 d/n의 교체이다. 융融[di ̯uŋ]에서 융戎[ni ̯uŋ]으로 변천했다가 나중에는 n조차 없어져 [i ̯uŋ]이 되고, 그 후에 현재 우리가 말하는 융[juŋ]이 된 것이다. 결국, 서융西戎족은 호虎(범)족이었고 흙솥을 만들어 쇠를 녹인 融(융)족이었으며 뱀(虫)을 숭배하는 종족이며 북적北狄의 불을 전수받은 북적北狄의 일파였음을 추단할 수 있는 것이다. 오행에서 동東을 청룡, 동이東夷라 했고 서西를 백호, 서융西戎이라 했다. 중간의 황이黃夷를 중심으로 좌청룡(청색靑色), 우백호(백색白色), 남주작(적색赤色) 북현무(흑색黑色)는 오방신이었고 이것은 음양오행에서 나온 것이다. 음양오행도 우리민족이 창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火)과 쇠(金)을 만들었으니 당시로서는 핵무기와도 같았을 것이다. 나무와 돌로 무기를 만드는 시대에 쇠로 만든 무기가 있으니 전장에 가는 곳마다 승리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리민족이 환국桓國의 이름으로 아시아 땅 전체를 재패한 것은 결코 신화나 상상이라 보기 어려운 것이다. 환桓의 초음初音이 가라[gərə]인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3) 이夷족의 출현
북적北狄의 불의 발명이 인류에게 빛(밝음)을 가져다 준 것은 삶의 일대 혁신이었다. 여기에 서융西戎이 쇠를 발명하면서 다시 혁명이 일어났지만 쇠로 만든 병장기는 멀리서 쏘는 활을 따르지 못했던 것이다. 활의 발명은 요즘으로 말하면 미사일과 같은 강력한 무기였다. 북적北狄과 서융西戎을 합한 문명이다. 그래서 음양오행에서는 오수五數로 북北을 1로 두고 서西를 2로 두며 이 둘을 합한 3은 동東에 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하였지만, 음양오행을 창조한 종족은 화족華族이 아니라 예족濊族인 것이다.
4) 만蠻족의 출현
만蠻은 벌레 충虫, 사糸, 언言의 합성자이다. 충虫을 보면 역시 뱀(바얌<바람)이 있어 서융西戎, 북적北狄의 일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융西戎족은 북적北狄의 일파이고 동이東夷족은 또 북적北狄의 일파이니 사이四夷가 모두 하나의 종족인 것이다. 만자蠻 字의 뜻을 보면 <오랑캐 만> 외에도 <새소리 만>이 있다. 이 字의 어디에도 새(조鳥)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새가 등장하는 것은 바람(충虫)만으로 새(추隹)를 대신했던 것이다. 만蠻족은 역시 새를 숭상하는 종족이며, <소리>는 언言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절묘한 비밀이 글자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단군신화는 신화가 아니라 역사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濊의 '예리한 가시'를 뜻하는 형이荊夷를 형만荊蠻이라고도 한 것은 이들이 모두 하나의 종족에서 나온 것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