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임나일본부설은 60년대에 북한의 김형석부터 시작해서 쭉 제기되어 왔습니다. 특히 김형석은 고대조일관계사를 발표해 일본서기에 왜와 전쟁을 했거나 사신 왕래를 했다고 기록된 부분의 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는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열도에 있었던 나라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반도에 있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사람들이 왜(倭)열도로 이주하여 그곳에 나라를 세우고 자신들의 조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일본서기의 내용 대부분은 왜와 이들의 관계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였습니다.
이 나라들은 일본열도에 세워진 우리민족의 분국으로써 고대에 우리가 오히려 일본열도를 지배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김형석 이후 남한 학계에서는 일본서기는 원래 백제의 역사인데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로 변조한 것으로서 임나일본부는 백제가 가야에 설치했던 기구였다는 주장이 있었는가 하면 임나일본부가 대마도, 북규슈에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일부 일본학자들은 슬그머니 그들의 원래 주장(임나일본부는 왜가 가야를 지배했던 기구)을 변형하여 임나일본부는 왜가 가야를 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가 아니라 가야와 통상을 하거나 외교통로로 이용하기 위해 가야에 설치해 놓은 기구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주장은 우리 학자들 가운데도 동의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의 가야지역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다만 그 성격을 달리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정작 임나일본부의 근거로 사용되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면 임나와 가야는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면 한반도에 있었던 가야가 멸망한 뒤까지도 왜는 계속 임나와 교류를 가지었고.. 삼국사기에 따르면 한반도의 가야는 서기 562년에 완전히 멸망하였는데 일본서기에는 그 후 서기646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임나와 사신 왕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서기에는 임나의 북쪽에 바다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가야가 있었던 경상남도 북쪽에는 바다가 있을 수 없습니다.. 즉 임나와 가야는 별개의 존재라는 것이죠. 애초에 아직 나라도 제대로 못세우고 제대로된 철기도 없던 놈들이 바다를 건너 우수한 철기를 사용하고 있던 한반도남부를 지배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임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바로 일본열도에 있었습니다. 일본열도 남부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계 지명들과 신찬성씨록에 써진 일본 명문가 가운데 한반도에서 온 도래인 출신이 많다는 점이 근거가 됩니다. 또한 일본열도에서 발견되는 한반도 남부와 같은계통의 고고학적 유물도 근거가 됩니다.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는 모두 일본에 있는 지명이라고 하죠.
가야지명도 가야가 망한지 백년후까지도 여전히 등장하고, 신라의 위쪽에 바다가 있다는 부분도 일본서기의 신라가 한반도가 아니라는 거죠.
일본 서기에 나오는 삼국은 일본에 존재했던 삼국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어느 지역,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항상 이름 짓는것에 극도의 보수성을 보입니다.
우리 역사에도 평양이란 지명이 세군데나 등장하고,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하기 위해 출발했던 도시인 카르타헤나 라는 지명은
한국전에 콜롬비아 군이 출발했던 카르타헤나 와 완전히 이름이 같죠..
일본안에있는 삼국이다? 그건아니라고 봅니다. 일본서기의 우리나라삼국 역사기록은 판타지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서보다 정확할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령왕나이에 대한 기록도 무령왕릉의비석으로 인해 삼국사기가 틀렸고 일본서기가 맞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또한 백제 일본은 간접한 관계라 삼국사기 백제편보다 일본서기를 참고로 역사를 이해할때가 많습니다.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난 점이라던가...
임나일본부설 입증을 위해 광분했던 왜정때..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들이 발견됬고 왜인 학자들이 총독부의 지원하에 발굴합니다. 근데 왜정때 왜인학자들이 벌인 전방후원분 발굴 및 조사 후에 나온 보고서는 딸랑 몇장밖에 안되요.
일본 고유의 양식이라 자부하던 전방후원분이 전남지방에서 발견되서 조선총독부와 왜인학자들이 기뻐 날뛸수밖에 없었고 이걸 임나일본부설의 확증을 위한 결정적인 증거로 쓸수 있겠다 기대만빵이다가 그 발굴결과 보고서는 딸랑 몇장으로 끝.
그 보고서에는 임나일본부설을 확증해준다는 내용도 없었고. 보고서 발표하자마자 해당 고분들을 그냥 방치해서 도굴로 막심한 피해를 입음.
그후 왜정때 다시 발굴을 추진했으나 별 성과없이 흐지부지 끝나버림.
단순히 왜의 전방후원분과 닮은 고분의 형태만 보지말고 거기서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백제계의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더욱 주목해야 함.
설령 영산강 유역 전방후원분에 묻힌 고인골들의 유전자가 현재 한국인보다 규슈지방의 일본인과 흡사하다 할지라도 이들이 왜 야마토정권의 지배자인지 아님 백제통치의 관리의 성격이 강한지 그걸 더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겁니다. 야마토정권이 이지역을 지배한것이었다면 당연히 여기서 발굴된 유물들은 야마토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들이 대부분 발견되어야 하는데 백제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들이 대부분. 이건 뭐를 뜻하는 거임?
전방후원분의 원형인 주구묘는 한반도에서 초기형이 발전해서 열도로 건너감.
그 말은 즉슨.. 한반도 남부에서 발달한 무덤양식이 일본으로 건너가 완성되고,
일본을 지배했다는 소리임..(한반도 주구묘 연대가 몇백년씩 앞섬)
전방후원분을 평생연구한 일본학자가 이걸보고 평생 연구가 뒤집혔다고 울고감.
일본의 건국신화는 큐슈 지방의 가라쿠니타케(한국악) 옆의 구지후루타케(구지봉)에서 시작됨.
단군신화와 가야건국신화를 짜집기한게 일본 건국신화임.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나라 이전에도 이미 고조선, 삼한 시절부터 일본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한반도 거주민들이 이미 왜 열도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민족 최초의 국가도 아님.. 고조선, 삼한, 가야 등의 존재를 잊으면 안됨.
그리고 그 중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가야인데, 일본 큐슈에 구지봉이란 지명이 왜 존재하는가?
왜 신라를 공격한 왜인들이 가야의 요청에 따라 왔으며, 가야의 용병처럼 활동하며,
가야지역에선 그 어떤 약탈이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잠잠했던가 이걸 생각해봐야됨.
당시 가야는 철정을 생산하던 요즘으로 치면 기축통화국이었슴.
왜 열도를 지배하고, 용병으로 부릴 수 있는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던 영국같은 존재였다고 사료됨.
왜_지금의 일본을 우리한반도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나라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설명이 가능할듯 합니다 ...신라 고구려 백제 왜 이 네나라가 당시 동아시아에서 차지한 위치를 보면 ...지금의 외국개념으로 이해하면 안되지 않을까요?...그러면 한반도 남쪽에서 발견되는 무덤양식이 일본에서 동시에 발견되는것이 뭐가 이상해 라고 생각할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