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동학교 인장이 찍힌 발해태조건국지 표지 <<서울시 제공>>
서울시, 박은식 저술 발해태조건국지·명림답부전 문화재청에 신청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국체(國體)는 비록 망했어도 국혼(國魂)이 소멸하지 않으면 부활이 가능한 데, 국혼인 역사서마저 불태우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백암 박은식(1859∼1925) 선생은 독립운동에서 늘 국혼을 강조했다. 이러한 생각은 '한국통사' 등 그가 남긴 수많은 역사서와 논설에서 확인된다.
그 중 만주 흥동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했던 '발해태조건국지'와 '명림답부전'이 광복 70주년에 즈음해 국가 등록문화재로 등록을 앞둬 관심을 끈다.
흥동학교는 일제하에서 제대로 민중을 교육할 수 없었던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건너가 세운 학교 중의 하나다. 1915년 운허스님 등이 봉천성 신빈현에 설립한 이 학교에서는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역사교육 등이 이뤄졌다.
명림답부전 표지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백암 선생이 1911년 완성한 발해태조건국지와 명림답부전의 표지 오른쪽 위에 학교 인장이 찍힌 것을 토대로 흥동학교에서 교육용 교재로 사용하던 책임을 확인하고 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달 11일 문화재청에 등록을 신청했다고 14일 밝혔다.
두 책이 한데 묶여 있으나 원래는 분리된 책이었음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책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발해태조건국지는 발해 이전 고구려 말운, 태조 대조영의 가계와 인격, 고구려 유민의 생기, 영웅의 은둔과 활동 시기, 천문령의 대승첩, 건국, 발해의 종교와 풍속, 문학, 태조의 외교와 후손 등을 다루고 있다.
백암이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는 자신이 중국에 망명한 뒤 독립운동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었던 만큼 발해가 고구려의 후신으로 우리 민족사의 한 부분임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명림답부전은 상무적인 고구려의 많은 인물 중에서도 대표적인 충신인 명림답부(67∼179)를 선정해 조국 독립을 위해 혈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시키고자 쓴 책이다.
명림답부는 고구려 7대 차대왕을 제거하고 그의 아우 백고를 신대왕으로 모신 인물로, 고구려 최초의 국상이었고 뛰어난 지략으로 한나라 대군을 물리친 명장이기도 했다.
백암 박은식 선생 (연합뉴스 자료사진)
백암은 이번에 문화재 등록이 추진되는 2개 저서 외에도 '대동고대사론', '동명성왕실기', '천개소문전', '몽배금태조', '단조사고' 등 고대사 관계 저작을 다수 집필했다.
저작들은 모두 고대사, 만주, 영웅, 대종교와 연관성을 가져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향한 실천적 역사학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백암 선생은 1989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장지연과 함께 황성신문의 주필로 활동하며 민중 계몽운동을 벌였다.
선생은 자신의 저작이 '금서'로 분류되자 만주로 건너가 역사서를 저술해 재만 한인동포들의 교재로 사용했다. 발해태조건국지와 명림답부전도 이때 쓴 것이다.
선생은 광복 후에는 임시정부 제2대 임시대통령으로 선출, 정부 요인들을 화합시키는 데 애썼으며 1925년 66세를 일기로 중국 상하이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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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