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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14 20:16
[세계사] 유럽 중세시대에 관한 잘못된 인식들.txt
 글쓴이 : 흑요석
조회 : 4,485  

흔히 중세시대는 그저 암흑시대. 고대 로마에 비해 모든 게 뒤쳐졌던 시대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전혀 사실과는 다릅니다.

후세를 위해 라틴어를 보존하고 라틴 문학을 전수한 다리 역할을 해낸 게 바로 중세시대. 

특히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 때 대대적인 라틴어 문학 보존작업에 들어갔는데 이를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도 부릅니다. 당시에는 당연히 인쇄술이 없었기에 

그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을 일일이 손으로 써가며 보존했는데 중세 초기에는 카롤링거 왕가가, 후기에는 수도원에서 해냈습니다. 

단테, 롤랑의 노래, 베오울프 등등 많은 문학작품이 나왔고 

고대 로마 멸망 후 거의 사라질 뻔했던 연극이 다시 부활하는데, 글도 못 읽고 무식한 농노들을 위해 유랑 연극단들이 지방 곳곳에서 연극을 했습니다 (주로 교회에서 파견). 

고대 로마 멸망 후 일시적으로 건축학이 퇴보되기도 하지만 곧 엄청나게 발전하게 되지요. 11세기에 등장하는 고딕 양식은 석재를 활용한 건축의 한계까지 밀어붙인 구조로 

플라잉 버트레스 구조기법, 그리고 천창의 무게를 감소시키기 위해 리볼트를 활용하는 등 지금 보아도 굉장한 건축기법/건축물들이 많이 탄생했죠. 

식문화는 현대인 입장에서 보면 서양이나 동양이나 많이 빈약해 보이겠지만 

중세시대 식문화는 최악이다는 편견과는 달리 굉장히 많은 양의 요리책들이 서술되었고 

돈도 많고 여유도 많던 귀족들은 놀고먹는 데에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에 요리 문화도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잘못 알려진 건 바로 중세 하면 '마녀사냥'을 떠올리는 것.

정작 마녀사냥은 '근세'에 벌어진 일입니다.  

수많은 생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종교재판 안내서인 '마녀의 망치'는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하는 15세기 말에 나왔고 

르네상스 시기에 아주 활발하게 화형 같은 무자비한 박해가 시작합니다.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오히려 중세시대에 여성에 대한 종교적 보호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등 로마시대보다 훨씬 진보합니다.

특히 전통적인 게르만 또는 켈트족의 여성인권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영주가 결혼하는 여자와의 첫날밤을 먼저 치른다는 '초야권도 사실상 도시괴담.

즉 인터넷에서 돌고 도는 대표적인 떡밥이죠. 초야권으로 인해 역사서에 이름을 남긴 이도 없으며 초야권 때문에 어떤 분쟁이 있었다는 기록도 전혀 없습니다. 

역사학계의 견해는 20세기 말까지 "초야권이 있긴 있었지만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인데
현재 역사학계에선 "초야권이 거의 실행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예 초야권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이유는 초야권이 실제로 행사되었다는 사료가 전 유럽 대륙에 걸쳐 단 한건도 없기 때문.

초야권이 실제로 시행된 사례는 유럽이 아니라 유럽 외부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지구 반대편 동아시아에서는 실제 했던 제재죠. 대표적으로 원나라 시대 몽골인들이 한족들에게 행했죠. 

다만 이때도 실제로는 한족에 의한 자치가 이뤄졌기 때문에 초야권 자체가 그리 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초야권이 제일 많이 이뤄졌던 곳은 라마교가 퍼졌던 몽골. 

몇몇 돌팔이 의사들에 의해 진행됐던 막장스러운 진료 기록을 보고 유럽 중세의 의학은 최악이라고 보고 무시하는 시각이 있지만 이는 굉장히 잘못된 것입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죠. 당시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럽 의사들이 돌팔이였던 건 당연히 아니었죠. 돌팔이 의사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고대 그리스와 고마의 발달했던 의학기술은 중세시대에도 거의 대부분 보존되어 전해졌습니다.다만 중세시기로 넘어가며 사라져 버린 학문적 요소는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고대 로마든, 중세 유럽이든 당시의 의학은 굉장히 좋지 못한 건 팩트입니다. 

중세시대 사람들의 위생은 최악이었다? 위생이 정말 안 좋았던 시기는 근세이지 중세가 아닙니다. 

중세는 근세 (르네상스) 보다 더 나았습니다. 로마로부터 내려오는 목욕탕과 목욕문화가 남아있어 

꽤 자주 씻는 편이었고 기록을 보아도 근세 사람들보다 더욱 깔끔 떨었습니다.

중세시대인들의 사상과 영혼을 지배하던 기독교에서는 청결하게 씻는 것을 거룩한 행위로 보았고 교회의 사제들은 교회에 올 때 미리 씻고 오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물론 삶 자체가 고달픈 평민들이 평소에 철저하게 위생을 챙기기에는 당연히 힘들었죠. 현대인과 비교하면 당연히 위생적으로는 떨어집니다.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죠, "우리가 중세를 배우는 이유는 중세를 까기 위해서다."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수백 년 동안 가루가 되도록 까이던 중세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재평가를 받기 시작합니다. 

현재는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말 자체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꺼리는 표현입니다. 

오히려 조선시대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살기 괜찮았던 시기인 건만 마치 조선시대의 몇몇 참혹했던 시기, 조선 말기의 막장을 달리는 사건 등을 보고 조선을 뼛속 깊이 증오하며 까대는 조선까들이 이성적이지 못 한 것처럼 

중세시대의 참혹했던 시기, 부정적으로 묘사된 기록 등을 보고 중세시대는 그저 '암흑시대'였다고 하는 건 이성적이지 못 한 행동이자 현재 역사학자들도 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중세시대의 부정적인 인식, 예를 들어 최악의 위생 상태, 초야권, 마녀사냥 등은 중세가 아니가 근세 시대에 더 부합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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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맛치킨 16-12-14 21:57
   
흑사병, 카노사의 굴욕 ,십자군 전쟁
중세하면 생각나는게 이런거 밖에 없네요....
     
그노스 16-12-15 03:55
   
사실 흑사병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먼저 맹위를 떨쳤습니다.
이 당시 아시아는 대부분 몽골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몽골인들은 공성전의 결과로 도시 인구의 씨를 말리기를 즐겼고, 이런 일들을 중앙 아시아나 중국에서도 반복했으며 이 지역들에서 인구 30~50프로가 격감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대량 학살에 의한 시체들, 비위생적인 대처, 초원의 몽골인들이 접하지 못했던 농경 민족들의 대량 곡식창고에 기반한 쥐떼들 등등이 상황을 악화시켜 재앙을 불러왔다고 하지요.

이 흑사병이 유럽에 퍼지게 된 근원에 대해 이런 저런 설들이 있는데, 많은 학자분들은 역시 몽골제국과의 관련설을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동유럽 끝자락에 있는 크림반도에 제노바의 무역 사무소 겸 성채가 있었는데, 몽골군들이 흑사병으로 추정되는 역병걸린 시체들을 성채 안에 투석기로 쏘아넣어(시대를 초월한 생물병기), 성채 안에 흑사병과 유사한 역병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수개월 만에 북아프리카와 유럽 지역을 흑사병이 초토화 시키는데, 그 당시 유럽 지역의 기후 변화, 대기근, 신이 내린 형벌이라며 체념 속에 겸허히(?) 받아들이던 종교적 분위기 등등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악화시켰다고 하더군요.
솔루나 16-12-14 22:33
   
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anff 16-12-15 09:19
   
유럽도 지역마다 다른데, 적어도 야만인들의 전쟁놀이터가 된 이탈리아반도는 고대로마보다 뒤쳐진게 맞죠. 이탈리아엔 고대로마, 르네상스시대 유물은 많아도 그 중간 중세시대 유물비율은 매우 적은지라.  영국은 서로마멸망후 2,3백년간 다시 원시시대급으로 살았다는데, 유물이 나오지도 않고.  프랑스, 독일지역만 보면 당연히 고대때 야만인으로 살다가 서로마 멸망후 유럽중원을 다스렸으니 중세때 더 번성한게 맞습니다. 동로마지역은 번성하긴 했는데 4차십자군이후로 헬이 되었고.  원글은 카롤링거 왕조, 볼테르를 얘기하는걸 보니 프랑스사관에서 봤을때를 얘기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그노스 16-12-15 18:36
   
글쎄요.
단순히 프랑스적인 사관이라고 할수 있을지...

일단 중세 이탈리아 반도가 고대 로마시대보다 뒤쳐졌을 것이라는 말씀에는 당연히 공감하지만, 프랑스(갈리아)는 로마의 오래된 속주로서 로마 문명화가 고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제국말기의 로마화를 논하자면 말씀처럼 본국 이탈리아와 그렇게 크게 차이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현제 중의 하나인 안토니우스 피우스의 경우에도 그의 집안은 원래 갈리아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원로원의 경우에도 갈리아에서 숱한 위원들을 많이 배출했고 제국의 조폐소까지 갈리아에 설치되기도 했었습니다.
현대 학자분들은 프랑스가 라틴 문화의 장녀라고 종종 표현들 하시기도 합니다.

워낙 발달된 시기였던 고대 로마시대와 중세시대(이탈리아든 프랑스든)가 당연히 차이점을 보일수 밖에 없으나, 사실 중세라는 시대를 보통 천년 정도의 긴 세월로 구분짓다 보니 지역과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므로, 전체 중세시대가 암흑시대였느냐 아니었느냐는 학자분들마다 뜨거운 논란이 있습니다.

발제자분 말씀의 후대의 마녀사냥과는 별도로 중세 내내 문제였던 종교 재판 같은 어두운 문제가 분명 있었고, 국가 시스템의 낙후로 '시민의 정의'에서 '군주에 대한 충성'으로의 봉건적인 문제 등이 있었으나, 이같은 통속적인 부정적인 시각에서 재평가 해볼만한 시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서로마 멸망후 동고트, 서고트가 로마제국 시스템을 이어 받아 일정 기간 번영을 누리기도 했고,


서고트 왕국의 브로치(동시대 유럽에서 거의 동로마만 보유했다는 붉은 모자이크 유리 기술)

기독교를 중심으로 고대 서적들을 꾸준히 번역 연구하여, 9세기에는 프랑크 왕국에서 요하네스 스코투스가 서구 논리학에 큰 영향을 끼쳐 14세기까지의 스콜라 철학의 핵심이 됩니다.

12세기에 이르면,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서적들이 재연구 되고, 부분적으로 이슬람 과학까지 받아들여 '12세기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기가 중세에 분명 있었습니다.
이런 학문들은 중세 대학 교과 과정의 중심이 되었지요.
가장 유명한 볼로냐 대학을 위시해서 옥스포드, 파리 대학 등등...
중세시대에 당국과의 투쟁 끝에 많은 대학들이 자치권까지 얻습니다.


중세 자연과학, 수학 교재

위와 같은 중세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굳이 프랑스식 사관이라기 보다는 현 영미권에서도 활발히 진행 연구 중인 시각으로 보입니다.
애당초 중세의 저런 꾸준한 노력들이 없었다면 나름 평가받는 후대의 르네상스 시대는 도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많이들 보시더군요.

서구 중세가 살기 좋은 시절은 분명 아니었겠지만, 발제글의 중세 재평가 시각에는 공감합니다.
          
11학번 16-12-15 20:18
   
12~13세기면 중세 후기 르네상스 가기 전 과도기 시기인데 당연히 그 정도 발전은 했죠;; 그리고 자기들이 스스로 발전시킨 것도 아니고 십자군 원정갔다가 어부지리로 이슬람에서 보존하던 그리스 로마 유물들하고 진보된 이슬람 과학이 넘어와서 발전한건데 이게 재평가 할 정도가 되나요? 거기다가 중세가 12~13세기만 있는것도 아니고 서로마 멸망 후인 5세기 때부터 13세기까지 800년 동안인데 그 중 600년이 제자리 걸음 심지어 퇴보한 부분도 있었는데 마지막 200년이 발전했다고 재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음.
               
그노스 16-12-16 01:48
   
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중세가 천년 정도의 긴 시간이다보니 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시각도 있으며 학자분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습니다.
또한 중세 시기조차도 님께서 말씀하셨듯 800년 정도라고도 보지만, 5세기에서 15세기까지라고 넓은 의미로 보시는 학자분들도 계십니다.

보통 중세를 암흑시기라고 통속적인 표현을 한다면,  학문의 자유가 없고 종교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 암울한 시기를 말해왔는데, 비록 님 말씀대로 많은 새로운 것을 창조한 식은 아니라고 해도, 고대 로마 문물들과 이슬람 과학을 받아들여 재연구되고 대학에서도 학문의 자유가 분명 있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재평가가 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중세가 살기 좋은 시절은 아니었지만, 저런 재평가에는 저도 공감한다는 뜻입니다.
중세가 학문의 등불이 완전히 꺼진 시기였다면, 또는 정말로 고대와 단절하고자 모든 학문과 유물을 말살, 폐기처분한 시대였다면 근세 르네상스가 오기는 어려웠겠지요.
저는 그런 부분에서 평가합니다.
선대를 능가하는 문명을 가진 후손들이 있는 반면에, 선대의 문명을 보존코자 노력을 기울인 후손들이 있듯이(때론 이런 후손들도 필요) 말입니다.

말씀대로 보존하던 그리스 로마 유물과 이슬람 과학을 들여와서 발전했을 뿐이라고는 해도, 그런 방법으로 그 문물을 자기들 것으로 만들었다면 보통 그것도 중세 문명의 하나라고 존중을 많이 합니다.

고대 로마 신화도 극단적으로 얘기한다면 그리스 신화를 그대로 들여와 로마식으로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사'에서 '사르데스'까지 이어진 2600㎞의 포장도로도 유명한 로마식 가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헤로도토스와 타키투스가 언급했던 가라만테스 문명의 방대한 지하 관개수로도 로마식 수도와 건축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지요.

예를 들어 켈트족의 유명한 로마식 황금보검이 원래는 그들 자신들의 기술력이 아니었겠지만, 그런 유물을 자신들의 취향대로 재해석해서 만들어 사용했다면 그것도 그들 문물이라고(혹은 트라키아, 불가리아) 존중을 하시더군요. 기술의 기원 출처만 확실하게 인정된다면 저도 그런 부분에서 그런 재평가에는 공감합니다.

님의 말씀도 잘 들었고 공감이 갑니다.
          
Banff 16-12-16 13:28
   
서고트 Visigoth도 프랑스지역 역사이고 결국 유럽역사가 아니라 그냥 프랑스 역사 얘기에요.  좀 넓게 봐서 영국 프랑스 중심의 서유럽역사. 유럽이라는게 영국과 프랑스만 있는게 아닌데, 보통 유럽역사라 하면서 영국과 프랑스 중심으로만 얘기하죠. 스페인 독일 터키친구들과 얘기하면 전혀 다른 관점의 대화를 하는걸 쉽게 볼 수 있을 거에요. 그래서 얘기하는건 유럽중세가 아니라 서유럽의 중세라고 하는게 맞겠죠.

중세라는게 결국 서로마 멸망후 서유럽은 동고트 서고트 롬바르디아 프랑크 야만족의 시대라 주무대가 아니었고, 유럽역사의 중심은 동로마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서 동로마, 그리고 경쟁했던 베네치아공화국 이 두 나라가 중심이 되니 이 두 나라위주로 얘기해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죠. 당시 이 두 국가의 역사를 보면 서로마 못지않은 화려한 면모가 있어요. 베니치아는 이탈리아임에도 불구하고 동로마가 라벤나까지 지배한 기간이 있고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실제 베니스가면 이탈리아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로마 카톨릭보다는 동로마 양식의 문화유산이 많이 볼수 있어요.

4차 십자군때 베네치아의 단돌로가 동로마를 멸망시키고 (영화 인페르노에 중심배경인물로 나오죠) 라틴제국을 세우면서 콘스탄티노플 문화유산을 싹쓸이 훔쳐오면서 베니스를 통해 선진문화가 서유럽으로 흐르게 되는 것이고, 때마침 몽골제국 훌라구에 의해 당시 선진문명국이던 바그다드가 파괴되면서 많은 학문과 유산들이 콘스탄티노플, 베네치아를 통해 다시 서유럽에 흘러가는데, 그것이 베니스와 피렌체를 중심으로 르네상스가 피어 서유럽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고 봐야지, 서유럽이 중세에 스스로 번성했다고 보는 것은 그냥 영국과 프랑스의 억지 시각으로밖에 안보여요.

유럽인들이 일본의 역사만 보고 동아시아 역사는 어떻다 얘기하면 우리가 좀 열받겠죠. 이토히로부미를 보는 관점은 미국, 유럽과 피해국 한국/중국이 보는 관점이 전혀 달라요.  19세기 초강대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가들의 조작의 역사는 일본 뺨치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유럽역사를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 로마카톨릭의 역사를 중심으로 보고들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동로마 영향을 받은 동유럽, 러시아에서는 12/25가 아니라 1월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잖아요. 카노사의 굴욕, 아비뇽 유수보다 사실 동로마 유스타니아누스 황제의 업적이나 베네치아의 경제적 업적이 더 중요한데,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고. 나폴레옹이 교과서에선 프랑스혁명사상을 전파한 공로자라며 미화되곤 한데, 사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입장에선 쿠데타한 독재자이며 히틀러급 전쟁광인데, 우리가 피해국 입장에서 나폴레옹을 배우지는 않은것등등.
               
그노스 16-12-16 15:07
   
글쎄요. 서고트를 프랑스만의 역사라고만 볼수 있을지요.


중세를 논하는데 동유럽 지역의 동로마가 빠질수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초기 중세를 보면 엄연히 낙후된 서유럽보다 동유럽이, 동로마가 훨씬 많이 발달되어 있었던 것을 보면, 중세에 대한 재평가 시각이 당연히 더 힘을 받을 수 밖에 없지요.
동로마 같은 국가도 중세 시대에 있었다는...

하물며 말씀하신 베네치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베네치아 역사 내내 베네치아는 종교재판에서 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자유로웠고, 당당히 출판의 자유도 허용되는 등...
결국 말씀드렸듯이 중세가 암흑시기만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베네치아 같은 국가도 중세 시대에 있었다는...

말씀하신대로 동로마 지역에 대한 서유럽 십자군의 약탈, 몽골의 아시아 파괴에 따라 유럽으로 흘러든 문물의 잔해로(팍스 몽골리아의 최대 수혜자는 서유럽이라는 말도...) 일어난 유럽의 급성장도 제가 평소 공감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그것을 받아들여서 다시 발전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그것도 그들 문명의 부분으로 봅니다.
그 문물에 영향을 끼쳤던 기원 출처만 명확히 인정되어 준다면 말입니다.
세계사에서 소위 순수 창조적이라고 불릴 만한 문명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중세에 대한 재평가가 프랑스 사관이라는 님의 견해에 대해 제가 영미 지역의 재평가 움직임을 말씀드렸는데 이 영미 지역이란 영국만이 아니라 북미의 미국, 제가 거주하는 캐나다의 움직임을 말씀드린 겁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지요.

대표적으로 위스콘신 대학의 로널드 넘버스 교수가 '서구에서 과학 혁명이 일어난 바탕과 계기는 11~13세기의 중세 전성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세의 과학'의 저자, 에드워드 그랜트 교수도 중세 과학의 합리성을 분명 인정하고 있고요.

중세시대를 영미, 프랑스만이 대표해서 그 시대를 논한다는 것은 저도 역시 반대입니다만, 사실 영미, 프랑스에서만 이런 재평가 움직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르만 중세 연구소 소장이자 중세 원전 간행을 이끌었던 독일의 호르스트 푸어만 교수도 중세가 암흑의 시대만은 아니었다는 시각에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자국 사관을 대표해서 중세에 대한 정의를 모두 독점할 수는 없으나, 중세에 대한 재평가가 님의 처음 말씀대로 마치 프랑스만의 시각은 아니다 라는 것을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19세기 초강대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역사가들의 자국 역사 미화가 당연히 있었지만, 그 동안 중세 유럽사에 대한 해석을 정말로 지금까지 이들만이 독점 미화해서 전해져온 것이기만 했다면, 중세가 암흑시대였다는 지금까지의 통속적 일반적인 해석은 말이 되지 않지요. 최근 들어 중세에 대한 재평가가 커질 이유도 당연히 없고요.
기존 학설에서 중세는 천국이었다가 주류가 되었어야 되지 않을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중세가 정말 암흑기였느냐에 대한 질문은 학자분 사이에도 논란이 있고, 저의 '재평가'라는 의미는 중세가 살기 좋았다라기 보다는 통속적으로 보듯이 학문의 자유가 없고 종교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 암울한 시기이기만 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중세를 암흑기로 보신다는 님의 견해도 존중합니다.
저도 중세시대에 대해 비판할 부분들이 많기도 하고, 소위 프로분들(학자분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은 문제인데요^^
                    
Banff 16-12-18 09:20
   
제가 첫 댓글에서 프랑스나 영국이나 같은 서유럽 사관이라고 얘기했으면 좀 더 매끄러웠겠네요. 그냥 댓글 몇줄로 간단히 답하다보니. ㅎㅎ

캐나다는 영연방국가이고 미국도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제가 거주하는 미국 서점에 있는 역사책들을 보면 영국프랑스 위주의 서유럽 사관밖에 안보여요. TV사극은 유럽에 대해선 영국왕실밖에 안나오고. 그래서 영프외 지역애들과 얘기하면 늘 이런건 학교서 또는 책으로 배우지를 않았구나를 알게되고요.   

몇몇 분들도 얘기했듯이 그냥 중세유럽이라고 시공간을 너무 넓게 잡기보단, 좀더 구체적으로 동로마와 바그다드 멸망이후 서유럽의 발전사 정도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싶어요.
          
페닐 16-12-16 23:52
   
저정도 기하학책은 이집트나 인도는 5~6천년 이상 중국도 2~3천년전에 나왔던 걸로 아는데...
발전이라 보기엔 쫌...- -a
               
그노스 16-12-17 03:02
   
네, 말씀드렸듯이 저 예시는 고대 기하학을 집대성한 유클리드 같은 인물의 중세 논문이 아니라, 자연과학-수학의 중세 교재입니다.
저 예시는 중세의 발전상을 보여주기 위한 예시가 아니라, 암울했다는 중세 암흑시대에도 학문이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입니다.
말씀드렸던 '12세기의 르네상스'에서 '르네상스'의 원래 의미도 revolution(혁명)이 아니라 rebirth(재생) 이지요.
전쟁망치 16-12-15 20:14
   
제가 알고 있는 중세 암흑기는
서로마가 무너진후 곳곳의 게르만일파의 야만족들이 우후죽순으로 크고작은 나라를 건설하던 시기가 아닌가 싶은데.
아비요 16-12-16 19:38
   
근데 애초에 중세로 접어들고 서유럽 통일이 프랑크왕국에 의해 달성되는데 당연히 프랑스지역 일대가 중심지인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정상인 16-12-17 11:03
   
중세하면 종교재판밖에 안떠오름
수학 과학 침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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