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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05 12:50
[한국사] 펌글) 한사군 관련 따끈따끈한 기사가 떴네요!!
 글쓴이 : 목련존자
조회 : 4,216  



<대동문화>라는 잡지 2017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이라는군요. (링크 참고)

역시 생각했던 대로 낙랑재평양설은 개구라일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ㅉㅉㅉ

아무리 평양 유적 들이대면서 사기를 쳐도 진실은 감출 수 없지!!!





한사군은 어디에 있었는가

문성재



2017.1.3.

특집-한국의재발견
낙랑재평양설(樂浪在平壤說)’은 어디까지가 진실?



  



우리 세대라면 다들 중고등학생 시절 “한반도에 한사군(漢四郡)이 있었다.”고 배웠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사기(史記)》등의 중국 역사서들을 찾아보면 그런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고,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이른바 ‘낙랑재평양설(樂浪在平壤說)’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조선시대에는 ‘패수요동설’이 대세


‘낙랑재평양설’은 조선시대에 출현하였다. 당시 한사군 논쟁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패수(浿水)가 어느 강이냐’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강의 위치를 통하여 고조선의 강역과 그 도읍 왕험성(王險城)의 위치를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학자들은 압록강·청천강·대동강(국내), 요하(遼河)·어니하(淤泥河)·난하(灤河)·혼하(渾河)(중국) 등을 그 후보지로 거론했으며, 영·정조 시기의 유득공· 한진서· 정약용· 안정복 등이 제기한 대동강설은 당시만 해도 ‘소수파 의견’으로 간주되었다.


사실 《사기》에서는 위만(衛滿)이 패수를 건너 왕험성을 점령했다고만 했을 뿐 그 패수가 대동강이라고 밝힌 적이 없는데다가, 역사지리적으로 보더라도 평양 남쪽을 흐르는 대동강은 애초에 사마천(司馬遷)이 소개한 왕험성에 이르기 전에 나타나는 패수와는 강의 흐름 자체가 정반대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동강과 평양은 고대의 패수·왕험성과는 역사적으로 전혀 별개의 땅인 셈이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기자가 조선으로 건너왔고 지금의 평양이 고조선의 왕험성 및 한대의 낙랑군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학자들로서는 역사기록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정약용이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대동강을 패수로 추정하면서 《사기》의 기록을 부정한 데에는 이같은 배경이 있었다. 물론, 이같은 괴리는 중국 역사 기록에 대한 당시 조선 학자들의 잘못된 이해와 ‘소중화(小中華)’라는 편향된 세계관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다른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패수·낙랑·한사군 나아가 고조선의 위치를 찾는 데 있어서만큼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민해야 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조선 후기에는 패수의 위치와 관련하여 역사지리적으로 더 설득력이 있는 요동설이 대세를 이루었다.




‘낙랑재평양설’이 통설로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조선시대에는 ‘소수파 의견’에 불과했던 대동강설이 확고부동한 통설로 자리잡은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1910년부터 대대적인 고고 조사·발굴을 벌인 조선총독부는 평양에서 “낙랑”, “대방(帶方)” 유물·유적들을 차례로 발견해내고 이를 근거로 기존의 통설이던 패수요동설을 파기하고 대동강을 패수로 선언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이를 빌미로 삼아 한일합방 이전만 해도 ‘백가쟁명(百家爭鳴)’의 국면을 이루었던 다양한 패수 관련 주장들을 한꺼번에 정리하고 대동강설만 유일한 진리로 받들어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조선총독부와 일본인들이 주도한 고고 조사·발굴들이 전혀 투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효문묘 동종(孝文廟銅鍾, 1910)·대방태수 장무이전(帶方太守張撫夷塼, 1911)·점제현 신사비(秥蟬縣神祠碑, 1913)·낙랑 봉니(樂浪封泥, 1920-) 등, 강점기에 이루어진 일련의 세기적인 대발견이 전부 일본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점, 고고 발견이란 것이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인출하듯이 호락호락한 일이 아닌데도 단기간에 일사천리로 동시다발적으로 온갖 성과들을 쏟아낸 점, 한반도에 실제로 고조선과 한사군이 존재했다면 관련 유물, 유적이 황해도·함경도에서도 폭넓게 출토되어야 정상인데 그 후 80년이 흐를 동안 평양지역을 제외한 어디에서도 한사군과 관련된 ‘의미 있는’ 유물·유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는 점, 한 무제(漢武帝)가 설치한 것은 4개 군인데 그동안 발굴된 것은 ‘낙랑군’의 것들 뿐인 점, 대량의 “낙랑 출토류” 유물들이 1910년대 중국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등이 중국을 드나들며 “조선총독부를 위하여” 거액을 들여 “한대 발굴품”이나 “낙랑 출토류” 발굴품들을 대량으로 사 들인 점, 1993년 평양에서 출토된 이른바 ‘낙랑호구부(樂浪戶口簿)’에 19세기 일본에서만 사용되던 한자어 표현이 들어가 있는 점 등등은 일제가 벌인 고고 조작·위조의 방증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일제의 대대적인 고고 조사·발굴의 과정과 역사지리적으로 문제 투성이인 패수대동강설·낙랑재평양설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과정 등을 살펴보면 그 모든 것이 결국 고고 유물·유적의 조작·위조를 통하여 한낱 가설에 불과한 ‘낙랑재평양설’을 역사적 진실로 만들고, 이를 발판으로 한반도에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영구화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품고 벌인 일들이었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인보가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에서 일제의 고고 조작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킨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문헌적 근거가 전혀 없는 ‘낙랑재평양설’


지금의 강단 사학자들은 평양의 고고 유물·유적들을 ‘낙랑재평양설’을 입증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증거로 믿고 싶은 듯하다. 그러나 학자가 고대사를 연구할 때 역사자료이든 고고자료이든 간에 어느 한 쪽만 100% 맹신하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짓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양의 고고적 유물·유적들이 그 진위나 성격에 있어 “낙랑=평양”, “한사군=한반도”라는 등식을 충족시키기에는 상당히 미흡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작 이 지역 유물·유적들의 역사적 성격을 문헌적으로는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 유물·유적들이 온갖 조작·위조 의혹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인 결함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몇 가지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중국의 역대 사서·문헌들이 공통적으로 추정하는 한사군의 위치는 거의 예외없이 압록강 너머의 요동지역이다.


게다가 1993년 중국에서 발견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봉니는 한사군 중에서 가장 동쪽에 설치되었던 임둔군이 강원도 강릉이 아니라 중국의 요령성(遼寧省) 태집둔(邰集屯) 즉 고대의 요서(遼西)에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이다.


또, 인근에서 출토된 청동검은 날이 다소 마모되기는 했으나 부여·평양 등 국내에서 많이 출토되는 고조선계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의 전형적인 외형을 보여주고 있다. 즉, 문화적으로 한반도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기존의 문헌적 근거들이나 최근의 고고적 발견들은 한사군 또는 고조선이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하북-요령 일대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00년 가까이 국내 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낙랑재평양설’은 이제라도 파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애초부터 조선을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일본인들이 부풀려 놓은 식민사관의 방편이었다는 점은 둘째치고라도 무엇보다도 역사적 진실과는 너무도 괴리가 큰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성재 우리역사연구재단 책임연구원|승인2017.01.03 08:45 


대동문화 98호 [2017 1,2월호]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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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 17-01-05 13:22
   
중국 정신 나간 놈들. 경상도 지역을 제외하고 지들이 다 먹었었다고 주장하는 거 봐라 ㅡㅡ;;
     
목련존자 17-01-05 13:27
   
그러게 말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 학자들이 저렇게 대놓고 역사를 조작하도록 멍석 깔아주는 인간들이
우리나라 강단에 있는 것들이라는 사실이죠!!!
동북공정 막으랬더니 거꾸로 중국 학자들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자빠졌으니 ㅉㅉㅉㅉ
eo987 17-01-05 13:24
   
님 저는 개인적으로 한사군 한반도설?은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다라고 생각하는데 ...서울대 권오중교수님만 해도
그렇게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셔도 한사군에 대해 한번도 이의를 제기하신 적이 없을 정도로 사실 주류학계에서는
사실 그 자체거든요 물론 학계분들도 고조선이 동이 전체의 수장으로서 통합되는 과정에서 한의 침략으로 와해 된것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차라리 이럴 시간에 한사군으로 인해 수백년간 중국의 최선진문명을 공급 받을수 있었던 것에 주목을 해서 발전상을 알아 보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꼬마러브 17-01-05 13:26
   
맞습니다. 한사군재한반도설은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아예 말이 안되는 이론이거든요
동의합니다.

그리고 진나라 이전의 동이와 진나라 이후의 동이는 다릅니다만
          
eo987 17-01-05 13:31
   
님 적어도 제각 파악하고 학계가 파악하고 있고 당시 중국의 사서에 등장하는 고조선의 위상은대단한게 맞아요 중국 사서에서도 고조선은 동이국가들중 가장 크고 당하다고 하고 있고
만주일대 부터 왜(일본)까지 통합하는 동이의 수장이라고 하고 있고요 근데 어떠한 것을 비교해도 당시 중국의 문명에 비하면 너무 격차가 커용....더군다나 유물이나 사서가 논란의 여지가 없을만큼 명확하고..적어도 제가 공부한 것은 그렇네용...
               
꼬마러브 17-01-05 13:33
   
그렇다면 님이 공부했다던 그 증거와 근거자료를 대시면 제가 반박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이어나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반대로 할까요?

만약 님이 제시한 증거가 제가 제시한 근거보다 더 설득력있고 현실성이 있다면 저는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증거 자체가 있을...까??
중국의 한사군인, 낙랑군이 한반도 평양에 존재했었다고 말하는 그 당시의 사서 내용 한 줄이라도 가져와보세요
               
목련존자 17-01-05 13:33
   
유물은 둘째치고 (일단 진짜라고 쳐 주고)
사서의 기록을 증거로 내놔 보라니까요??
                    
eo987 17-01-05 13:37
   
제가 뭘 논하기 보다는 이 문제는 동북아역사재단 가시면 1~3차 까지 토론회가 존재합니다.
그것으로 대신하도록 하죵..
                         
목련존자 17-01-05 13:41
   
1차 2차 다 들어봤는데 무슨 고장난 녹음기도 아니고 맨날 똑같은 소리던데용??
되지도 않을 강단 학자들 자기최면 하는 헛소리들 말고
평양이 낙랑이었다고 기록한 역사서나 자료들을 증거로 내놓으라니까용??
님들 증거 엄청 좋아하시자나용?
실증주의라매용??
     
목련존자 17-01-05 13:29
   
아 그러면 님이야말로 이럴 시간에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는 역사기록이나 제시하시라고요
중국 기록 갖고 와서 증거 보여 달라고 하는데도 왜 증거 못 내 놔요??

저 글 읽어보니까 낙랑재평양설 제기한 것도 조선시대 후기부터라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패수나 왕험성이 평양에 있었다는 소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뜻아닙니까?

아무 증거도 못 내놓으면서 한다는 소리는 맨날 한반도설은 역사적 진실이라고 일단 우기고 보자는 식이니
그러니까 맨날 사기꾼 취급을 당하는 거에요 강단 학자들이!! ㅉㅉㅉ
구름위하늘 17-01-05 14:23
   
증인(사서)와 증거(유물)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말하는데,
판사(주류역사학)은 증거를 기준으로 증인의 말을 무시하고 있는 상황.

누가 맞는 건지는 the truth is out there.
     
꼬마러브 17-01-05 14:31
   
증인의 증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유물 같은 경우는 일본의 왜곡과 날조로 얼룩되어있지않냐는 의혹이
오래 전 부터 있어왔는데

유물이 설득력이 있다고 가정을 하였을 때,
사서의 내용과 다르므로
둘 중 하나는 진실이고 나머지 하나는 거짓, 즉 위증이라는 것이겠지요
사서의 내용은 조상을 통하여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것으로 왜곡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서와 유물 중 어느쪽에 신뢰성이 더 있을까요?
그리고 논란이 되는 한사군 위치인 북한과 중국 요서요동지방..
현재 우리나라 땅이 아니라.. 학계에서 고고학적 접근이 불가능한데..
정작 논란이 되는 위치의 당사자인 북한에서는
한사군요동설이 정설
          
두부국 17-01-05 15:53
   
주류사학계들이 자신들이 실증사학자 라고하는데  하지만 가짜 실증사학자죠

원래 실증사학자들은 유물이 나왔어도 사서의 내용이 다르면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목련존자 17-01-06 08:28
   
꼬마러브님 두부국님 말씀이 옳습니다.
유물과 사서 중 신뢰도가 높은건 당연히 사서지요.
유물은 유사이래로 어느 나라에서든지 조작 위조 시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최근인 1990년대의 일본 구석기 조작 해도 모두가 속아 넘어간거 보세요 (속았는지 일부러 눈감아 줬는지 그건 수수께끼임)
한 사람도 얼마든지 유물을 조작해내는데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와 일본 식민사학자, 기자놈들이 똘똘 뭉쳐서 유물 몇 개 조작 못하겠습니까?

저 글에서 문성재씨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200-300년전만 해도 낙랑재평양설은 여러 가지 가설들 중의 "소수파 의견"이었는데
일본놈들이 수상한 고고학적 발굴 연타로 뚝딱 해 놓고 "패수=대동강", "낙랑=평양"이라고 선언해 버린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평양이 낙랑이고 패수가 대동강이라는 주장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500년을 넘어가지 못한다는거죠.
즉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씀!!
두부국 17-01-05 16:08
   
바람따라0 17-01-05 16:22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평양설 보다 요서설이 더 타당합니다.

원문의 글에서 나타난 것처럼,
평양설이 소수이다가, 일제시대 대규모 발굴로,
팡양설이 강화됐지만,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제가 발굴한 유물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
북한 학자들에 의해서 증명돼고 있습니다.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979560

북한 학자들에 의하면 광복 이후 평양 일대의 무덤 3천여 기(基)를 발굴 조사한 결과 목곽묘 850여 기가 발굴되었는데, 이들은 낙랑군을 설치했다(BC 108)는 한(漢)나라가 출현하기(BC 206) 전인 BC 3세기 이전의 평양 일대의 지배적인 무덤 형태였으며, 귀틀무덤을 거쳐 벽돌무덤으로 발전하고 고구려 무덤형식인 돌 칸 흙무덤으로 전환되어 BC 1세기 무렵에는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출토된 유물은 한나라 것과 다른 고조선의 대표적인 무기인 세형동검을 비롯해 조립식 쇠단검, 조립식 쇠장검, 질그릇과 마구 등이 나왔다한다. 오수전과 화천은 한나라의 화폐가 맞으나, 한반도 곳곳에서 출토되기 때문에 당시 동아시아 무역의 실태를 알아야 올바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효문제동종과 점제현신사비는 일제가 한사군 재평양설의 결정적 근거라고 흥분한 유물이었으나, 대방태수묘와 함께 일제의 조작으로 밝혀진 바 있다(SBS 스페셜 2011. 3.1절 기념 참조). 공문서에 해당하는 봉니(封泥)와 목간 역시 진위의 시비가 많고 일률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허점이 많다.
----------------
전쟁망치 17-01-05 17:10
   
가장 확실한 증거는 고대에 쓰여진 역사기록 원문이 가장 맞는거겠죠
그리고 각 문화권의 특유의 문화나 유물 비교 동검이나 토기
그런데 중국의 역사기록물에는 한반도내에 한사군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라고 한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애초에 역사를 잘못 배우고 있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죠

현재도 일본에서 유물을 땅에 묻었다가 꺼내서 발굴하는 가짜 역사 조작과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와있는 한글창제 원리가 공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고대 문자인 신대문자? 가 원조 라고 발언하는 수준을 보면

일본강점기때 우리나라 역사 조작은 이것보다 훨씬 심각했을꺼라 추측됩니다
     
목련존자 17-01-06 08:33
   
1990년대 일본의 구석기 조작사건은 개인이 저지른 해프닝이지만
1920-30년대 일제 강점기의 유물 조작은 조선총독부와 일제 식민사학자들, 일제 관리들, 그리고 어용언론들이 똘똘 뭉쳐서 자행한 집단범죄라고 봅니다.
물론 일본놈들보다 더 나쁜 인간들은 해방된지 6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일제 식민사관에 푹 빠져서 사기를 치는 강단 야바위꾼들들이지만 ㅉㅉㅉ
아비요 17-01-05 17:20
   
현도군1이 저기가 아니고 원래 강 건너편인걸로 알고 있는데요? 거기서 쫒겨서 1로 가고 1에서 다시 공격받아서 2로 쫒겨가는거 아닌가요?

거기다 솔직히 한사군이 엄청 의미가 없는게 점령하고 얼마안가 낙랑제외하고 다 쫒겨나잖아요?
솔직히 북한 영토를 노려서 중국이 강조하는거지... 한사군이 아니고 낙랑군이라고 호칭하는게 정답일걸요.
굿잡스 17-01-05 17:37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낙랑군재평양설등 낙랑군에 대한 체계적인 우리쪽 고고학적 연구가 오랜 시간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는데 아니군요. 조선시대의 실학자등에서도 요서,요동,재평양설등이 분분했고 이게 이후

근대 학문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잽의 식사관에 바탕한 제국주의 연구 아래 재평양설이 마치 통설마냥

박힌채 이후 국내 학계에서는 거의 외면하다시피 하는 가운데 자칭 국내 고조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재탕에 우려먹는  반복작업이 이어졌을 뿐이군요.

그러다 최근 몇년 사이에 정인성, 오영찬, 복기대같은 교수들에 의해 본격적 수장된 토기 관련 연구부터

무덤 양식 그리고 기존 잽강점기때 재평양설이 당연시 되어 왔던 여러 근거들에 대한 재검토가 조금씩 이루어

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확고한 근거라는 것들이 확증적이지 않다는 내용들이 나오고 있고

어디서는 평양에 대해 기존의 한나라에 종속된 식민지배지적 성격이 아니라는 반론이나 이에 대한

대안으로 중계무역지 어쩌고 나오는 상황임. 즉 다시 말하면 지금은 낙랑군 위치에 대해서 혹은 낙랑

재평양설에 대해서 과도기적 상황에 본격적 전체적 연구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군요.

무엇보다 현재 남북한이 분단되어 연구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 만주일대 조차 짱국의 동북공정과 맞물려

우리쪽 연구의 접근은 극도로 차단된 점등은 향후 계속해서 주시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되어야

할 상황이군요.
     
목련존자 17-01-06 08:39
   
고고학적 연구는 100년전부터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겠죠.
문제는 우리나라에서의 고고학 연구는 불행하게도 우리가 주역이 아니라 일본놈들이 주역이었고 문헌기록 무시하고 지들 멋대로 평양에 낙랑 깃발 꽂아버렸다는거..
남의 나라 역사 멋대로 조작하고 지들은 세기적인 대발견을 한 위대한 고고학자로 칭송받고 ㅎㄷㄷ
문제는 위대한 고고학자로 빠는 데에 일본 국민들보다는 우리나라 강단 야바위꾼들이 더 적극적이라는거..
참 아이러니하고 어이없는 상황 아닙니까?
코스모르 17-01-06 00:06
   
여기서는 한사군한반도설을 말하면 친일매국노라고 단정됩니다.....  현실적으로 북한에서 연구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그래요
     
꼬마러브 17-01-06 00:56
   
동아시아게시판은 토론게시판입니다.
본인이 무언가 주장을 하고싶다면 그에 걸맞는 '설득력있는' 근거들을 제시하면 됩니다.
한사군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며 저번에도 이 문제와 관련해, 여러번의 토론이 오고갔습니다.
만약 님께서 한사군재한반도설을 주장하신다면 그것의 근거를 제시해보세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근거를 가져올 수 없다?
역사학에서 근거 없는 주장은 그냥 역사소설이지요.
     
목련존자 17-01-06 08:42
   
지들 하고 주장이 다르면 거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지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검증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무작정  사이비 역사학자니 유사 역사학자 심지어 역사 파시스트.. 운운
출세욕에 불타는 홍위병들과 기레기들 앞세워서 대놓고 언어폭력 일삼고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시키는 천하의 잡놈들이 누구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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