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恭愍王) 19년(1370) 5월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가 면복(冕服)을 하사하였다.
면복은 규(圭)가 9촌(寸)으로, 면관(冕冠)은 푸른 구슬이 박힌 구류관(九旒冠)이며, 푸른색 상의[靑衣]에 분홍색 하의[纁裳]로 된 구장복(九章服)으로서 용(龍)·산(山)·화충(華虫)·불(火)·종이(宗彝)의 5장(章)이 그려져 있는 상의[衣]였으며, 마름[藻]·쌀[粉米]·보(黼)·불(黻)의 4장이 수놓아져 있는 하의[裳]였다.
그리고 흰색의 실로 된 중단(中單)은 깃에 보를 수놓았으며 푸른 실은 소매 단에 둘렀다.
폐슬(蔽膝)은 분홍색으로 불과 산을 2장에 수놓았다. 혁대에는 금고리[金鉤䚢]와 옥을 매달았는데, 붉은색과 흰색, 옥색, 푸른색의 네 가지 색으로 하였으며, 인끈[綬]은 소수(小綬)로서 두 개 사이에 금고리를 달았다.
대대(大帶)는 겉과 속이 흰 비단에 홍록색을 넣었다. 흰 버선[白襪]과 붉은 신도 있었다.
이 옷은 제사를 지내고 조근(朝覲)하는데 입는 것이었다.
<조선 숙종실록 19권, 숙종 14년 4월 8일 경술 1번째기사>
임금이 강교(江郊)에 나가서 태조 대왕(太祖大王)의 영정(影幀)을 공경히 맞이하여, 자정전(資政殿)에 모시고 들어가서 봉심(奉審)한 뒤에 작헌례(酌獻禮)를 행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영정이 첨배(瞻拜)한즉 태조 대왕께서 입은 곤의(袞衣) 빛깔이 푸르니, 예복(禮服)이 아닌듯하다. 혹시 국초(國初)에 복색(服色)을, 푸른 빛을 숭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니, 영부사(領府事) 김수흥(金壽興)이 아뢰기를,
"사람들이 이르기를, ‘고려(高麗)에서는 푸른 빛을 숭상하였다.’고 하니, 태조조(太祖朝)는 고려와 시대가 멀지 않기 때문에 더러는 푸른 빛으로 곤의(袞衣)를 만들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