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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6 13:42
[기타] 고려시대 기병의 무기와 기병전술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512  

. 고려시대 기병의 무기와 기병전술

고려는 북방유목민족인 요()()()의 세 왕조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들 국가는 주력군이 기병이었으므로 평지 기마전을 선호하였다. 반면에, 고려는 요새형 산성을 쌓고 수성전(守城戰)을 전개했지만, 상황에 따라 성 밖으로 기병을 출격시켰다. 거란전쟁과 여진전쟁 때 고려는 성 밖 기마전과 수성전의 비중이 비슷했지만, 몽골전쟁 때는 왕실이 강도로 피난했기 때문에 본토에서는 소규모의 수성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는 기마민족의 기동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였다. 거란전쟁 때는 선봉에 검차를 배치하고, 여진전쟁 때는 기병으로만 편제한 신기군(神騎軍)을 창설하였으며, 몽골전쟁에서는 화포를 사용하였다. 여기서는 고려시대 기병에 사용된 향마(鄕馬)(과하마(果下馬))와 호마(胡馬), 그리고 기병의 무기와 기마전을 수행할 때 사용한 쇠뇌(())와 검차에 대해 살펴보고, 그것과 관련한 기병전술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고려에는 두 종류의 말이 있었다. 북방에서 온 호마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향마가 그것이다. 향마는 고구려의 과하마를 말하는데, 고려 초기에는 중국에 명마로 알려져 조공하는 품목이었다.26 그러나 중장기병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체구가 큰 말이 필요하였고, 이에 따라 거란과 여진에서 말을 수입하였다. 특히 여진과는 130회에 걸쳐 마필을 교역했는데, 이러한 말들은 고려에서 종마(種馬)나 전마(戰馬)로 사용되었다.27 결과적으로 고려는 여진으로부터 확보한 양마(良馬)로 신기군(神騎軍)을 창설하여 그들을 격퇴하였다. 한편, 한국에서 호마가 급속히 증가하는 것은 고려 충렬왕 2(1276) 원나라 세조가 제주도에 서역마(西域馬)를 방목하면서 부터다.28

고려 기병의 마구(馬具)와 무기는 경기병과 중장기병에 따라 차이가 있다. 경기병은 기동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마구와 무기의 숫자를 줄여 무게를 가볍게 할 필요가 있었다. 반면에, 중장기병은 기병의 안정과 방어력 향상을 위해 다량의 마구와 무기를 사용하였다.

경기병의 마구는 재갈고삐안장등자 등이 있고, 무기는 원거리에서는 만궁(彎弓), 근거리에서는 단검(短劍)을 사용하였다. 중장기병의 마구는 등자와 안장이 있고, 공격용 무기는 베는데 사용한 대검(大劍)과 찌를 때 사용하는 창(())이 있다. 방어용 무기는 기병의 갑(甲冑) 있고, 말의 갑옷(마갑(馬甲))과 투구(마면갑(馬面甲))가 있다. 한편, 진을 치고 적과 대치하면서 기마전을 전개할 때 사용하는 무기는 쇠뇌와 검차가 있다.

쇠뇌29는 보병의 주력무기로 기병전에서 장점을 발휘했다. 잘 알다시피, 고려는 북방 유목민족인 거란족여진족몽골족과 전쟁을 했는데, 그들의 주력군은 기병이었다. 따라서 이들 기마민족은 쇠뇌에 제압당하지 않으려고 중장기병을 발전시켰다.30

적의 기병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무기는 검차가 있다. 검차는 길이 9자의 수레체에 예리한 칼날을 꽂고 방패를 설치했다. 말이 수레에 설치된 칼에 찔려 놀라거나 상처를 입었다. 검차는 고려 거란의 2차 전쟁 때 삼수채 전투에서 강조가 사용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31 다음의 사료가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강조는 군사를 거느리고 통주성 남쪽으로 나와 세 개 부대로 나누어 강을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한 부대는 통주 서쪽의 세갈래 물길이 합쳐지는 지역을 거점으로 포진하고, 강조는 그 중앙에 위치하였으며, 한 부대는 통주 근처에 있는 산에, 그리고 또한 부대는 성벽에 밀착하여 진을 쳤다. 강조는 각 부대에 검차(劒車)를 배치하여 거란병이 공격해 오면, 검차와 병력이 함께 적을 공격하였으므로 거란군의 공격은 번번이 실패하였다. 강조는 마침내 적을 깔보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사람들과 한가로이 바둑을 두었다. 이때 거란군의 선봉 야율분노가 상온 야율적노와 함께 삼수채(三水砦)의 강조부대를 격파하였다.32

위 사료는 흥화진에서 남진한 거란의 서북계 남로 주력부대와 고려 강조의 주력군이 통주성 밖에서 전개한 삼수채 전투에 대한 설명이다. 삼수채는 청강의 3개 지류가 합쳐지는 합수목 일대를 지칭한다.

20여 만 명의 거란군은 1010 11 23일 통주 서북쪽 60리의 동산 일대에 진을 치고, 24일에는 삼수채 전방 1㎞까지 진출하여 통주성 함락 작전을 준비하였다.33 통주성의 고려 방어군도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방어적인 수성전보다도 성 밖에서 거란군에 정면으로 맞서는 공격적인 기마전을 선택하였다. 이에 따라 11 24일 고려 방어군은 성 밖 삼수채 주변의 산과 하천을 이용해 진을 쳤다. 강조는 부대를 중군좌군우군으로 구분한 다음, 강조가 지휘하는 중군은 3개의 하천 지류가 모이는 통주 서쪽에 진을 치고, 좌군은 통주성 서북쪽 20리 지점에, 전방의 하천을 방패로 삼아 진을 쳤다. 그리고 우군은 통주성 서쪽 낮은 산등성이에 성을 등지고 진을 쳤다. 그리고 거란군의 기병돌격을 저지하기 위해 각 진영의 선봉에 검차를 배치했다.34 고려가 부대를 세 개로 나눈 것은 거란군의 전력을 분산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거란군은 부대를 3()로 구분한 다음, 각 로()가 고려의 삼군을 각자 공격하여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한편, 고려 방어군이 초기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세 개의 부대가 상호 유기적인 협력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군을 통주성 근처에 진을 친 것도 위기에 처하면, 성에 주둔한 군사의 지원을 염두에 둔 전술이었다.35

먼저 거란군의 선봉 보병대가 쇠뇌를 쏘았고, 그 사이에 기병이 강을 건너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고려 방어군의 선봉에 배치한 검차의 방패가 그들의 쇠뇌 공격을 막아냈다.36 만약 거란의 기병이 강둑으로 올라오면, 고려의 보병대가 원거리에서 쇠뇌를 쏘아 제압하였다. 계속 돌진하여 고려 진영에 접근한 거란 기병은 검차에 장착된 예리한 칼이 말을 찔러 놀라게 하거나 상처를 입어 기병이 낙마하였다.37

고려 방어군은 검차를 강 언덕에 근접 배치함으로써 거란 기병의 상륙을 적극 봉쇄하였다. 이에 거란군은 고려 방어진지를 정면 돌파하려던 전술을 포기하고 고려군의 3개 진영을 좌우로 우회하여 측면공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고려군은 검차의 대열을 신속히 거란군의 공격 방향으로 이동시켜 거란군을 격퇴하였다.38

병법에서는 승리한 후 경계를 강화하라고 했다. 그런데 강조는 초반의 우세에 교만하여 장기를 두는 등 경계를 늦추었다. 거란군 선봉장 야율분노는 강조가 방심한 사실을 간파하고, 삼수채에 진을 친 중군을 야간에 기습공격함으로써 고려군이 패배하였다.

그러면 고려 여진전쟁에서 양국의 기마전은 어떠하였을까? 여진군의 전투방식은 공성전투와 평지전투로 구분한다. 공성전투는 군대가 성을 포위하면, 기병이 성 주변의 교통망을 장악하여 구원병이 오는 길목을 차단했는데, 이것은 상황이 위급할 경우, 퇴로를 확보하는 목적도 있었다. 평지전투는 50기를 최소단위의 한 대로 하되, 중장기병과 경기병의 협력전술에 중점을 두었다. 전투 대열 앞에는 돌파용 타격무기를 장착한 20기의 중장기병을 배치하고, 뒤에는 활로 무장한 30기의 경기병을 배치하였다. 만약 적의 약점을 찾으면, 중장기병이 돌진하고, 경기병이 뒤에서 활을 쏘아 엄호하였다.

고려는 윤관이 9성을 설치하기 이전에는 성 밖 기마전이 많았고, 9성을 설치한 이후에는 수성전이 많았다. 평지 기마전에서는 예종대 창설한 별무반 소속의 신기군(新騎軍)이 기마전을 이끌었다. 다시 말해서 고려 보병이 선봉에서 화전(火箭)을 쏘아 적진을 돌파하면, 대규모 기병대인 신기군이 측면에서 적의 대열을 격파하였다. 신기군은 수성전으로 방어하면서도 개문 출격하여 적을 기습한 다음, 곧 성으로 돌아오는 전술을 폈다.39

그러면 몽골과의 전쟁에서 고려의 기마전은 어떠하였을까? 몽골 기병은 공성전투에서 대부분 승리했는데, 그것은 성을 공격할 때 투석기충차포 등을 능숙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평지 기마전에서는 속전속결 전술로 신속하게 적을 제압하였다. 반면에, 보병이 없었으므로 후방의 방어가 취약하고 산악지형에 크게 불리했다. 고려의 기병은 여진정벌 때 설치한 별무반 소속의 신기군이 있었지만, 1170년 무신정변 이후 권신들의 사병이 확대되면서 신기군의 숫자가 크게 감소했다. 따라서 고려는 평지 기마전보다 수성전을 전개하다가 개문 출격하는 성 밖 기마전이 많았다.

1231 9 3일 몽골의 살례탑이 귀주성을 포위하였다.40 고려병마사 박서는 군사를 세 부대로 나누어 배치하고, 12명의 기병 결사대를 결성했다. 몽골군이 귀주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서문과 남문, 북문을 연속으로 공격하였다. 이때 기병 결사대가 남문으로 출격하여 몽골군을 격퇴하였다. 초전에 패배한 몽골군은 운제와 포차 등을 동원하여 남문북문동문을 공격했는데, 예비대를 번갈아 투입하면서 파상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고려 기병이 개문 출격하여 기습하자, 몽골군은 귀주성 북방으로 퇴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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