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목공이 친히 진(辰)나라 정벌에 나섰는데 하곡(河曲)에서 싸웠다. 진(晋)나라는 여희(驪姬)가 난(亂)을 일으키자 태자 신생(申生)이 곡옥(曲玉)의 신성(新城)에서 xx하였고 공자 중이(重耳)는 적(翟)나라로 달아나고 공자 이오(夷吾)는 소량(少梁)으로 달아났다. 목공 즉위 9년 제환공(齊桓公)이 규구(葵丘)에서 제후들을 회맹(會盟)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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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란 발음의 국명을 쓴곳이
후고구려 궁예의 마진국
여진족의 금(진발음)
진한땅의 부여
발해의 대진국
금나라 패잔병이 세운 대진국, 동진국
사서에 진한이 진국이고, 삼한이 모두 진국이라고 했다.
고조선 삼한중 단군이 직접 다스린곳이 진한이고,
이 고조선 진한은 요동, 만주 부근이다.
그지역에서 진한, 진국이란 최고의 명분이 되니 후대에 그부근에 세운 나라들이 '진'이란 국명을 쓴것이다.
고조선 해체후 고조선의 마한 지역인 한반도에서 진국왕(진한) 칭호는 마한왕이 가진게 되는것이다.
신라의 기록에 오랫동안 입조하지 않은 신라사신을 꾸짖는 마한왕에게,
신라사신은 신라에 2명의 대인이 등장했으니, 지금 마한왕을 방문한것도 예를 넘어선것이라 했었다.
신라가 신라 사신의 패기, 마한왕의 통제를 넘어섰다는것을 남기기위해 기록했지만 생각해 보면,
원래 신라는 마한왕의 제후국이였단 얘기다.
온조 십제(백제) 역시 초기에는 마한왕을 충실하게 섬겼던 기록이있다.
한반도 남부의 가야, 신라의 원형이 되는 변한, 진한은 고조선의 변한, 진한 유민의 마한땅 정착이었고,
실질적으로 마한왕의 통제 아래있는 세력이었다고 생각할수있다.
기자조선 준왕이 위만에게 쫓겨나서 마한으로 넘어온후,
마한왕을 칭했다가 마한인들에게 쫓겨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진(신),막,번 / 진,마,변의 고조선 삼한에서 변한 기자조선 준왕은 단군이 아니기 때문에 마한까지 통치할 권한이 없었고,
마한땅에는 마한왕의 세력이 갖춰져 있었단 얘기다.
위서라고 하는 한국기록에는 쫓겨난 준왕이 마한왕의 허락하에 남부에 정착했다고 한다.
지나 사서에 기록된 고조선 당시 영역의 진한, 변한은 한반도 내의 지명이 아니다.
고조선을 지도에 나타내면서,
고조선 당시의 진한, 진국이 아닌,
고조선 해체후의 진한, 진국을 같은 지도에 그려넣는다는건 무슨짓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고구려가 멸망한 통일신라시대 지도에다가 한반도를 제외한 고구려를 그려넣고 고구려는 한반도와 관련없다고 하는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