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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13 20:51
[한국사] 낙랑국의 역사 정리 -5-
 글쓴이 : 꼬마러브
조회 : 637  

5. 낙랑국의 멸망


대무신왕 27(서기 44) 가을 9한나라 광무제가 병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서 낙랑을 정벌하고그 땅을 빼앗아 군현을 만들었다이에 따라 살수(薩水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위의 기록을 보면, 한나라의 광무제가 낙랑국을 정벌하여 군현을 설치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고구려는 낙랑국의 영유권을 잃게 된다. 이에 대하여 중국인들이 남긴 역사서 후한서에는 이렇게 전한다.

 

건무 20(서기 44), 한국(韓國)의 염사(廉斯사람인 소마시(蘇馬諟등이 낙랑군에 배알하고 조공을 바쳤다광무제는 한염사읍군(漢廉斯邑君)에 봉하고낙랑군에 복속시켜 사철마다 입조시켰다.

 

서기 44, 같은 시기에 위의 기록에 따르면 한국(韓國) 사람이 광무제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한국은 낙랑국을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인들은 낙랑국이 위치했던 평양이 본래 마한의 영토였기 때문에 낙랑을 한국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 낙랑국은 고구려에게 저항하기 위해서 외세를 끌어들인 것이다.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다시 말해, 낙랑국은 고구려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 한나라의 광무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기록이 바로 위의 후한서의 기사이다.

 

그렇다면 낙랑국은 정말로 한나라의 지배를 받았을까?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한나라가 정말로 낙랑국 땅에 군현을 설치하였다면, 낙랑군이 2개 라는 기록이 존재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 군현을 설치했다는 기록은 실제로는 없던 일이거나, 중국측의 과장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사, 실제로 낙랑국 땅에 군현을 설치했다고 가정해도, 그 기간은 길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고고학 유물들을 보았을 때, 이 시기에 낙랑국에 대한 한나라의 입김은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당연하다. 낙랑국의 독립을 한()나라가 도와주었으니, 한나라는 그에 대응하는 이익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그 이익이란 낙랑국을 배후세력으로 이용하여 고구려의 후방을 위협하는 것이다. 한나라는 이것을 위해서 낙랑국의 독립을 도왔고, 이를 긴밀히 하기 위해 위의 후한서의 기록처럼 낙랑국(한국)을 낙랑군에 복속시킨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실제로 군현을 설치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평양의 낙랑국에 대한 한나라의 입김이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평양 지역의 고고학 유물들을 보면 광무제 시기를 이후로 중국계 유물들이 대량 출토되는데, 이는 이러한 이해관계에 따라 중국의 입김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아마 당시 평양은 지금의 차이나타운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 하지만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있다고 인천이 중국 땅은 아니듯이, 실제로 당시 평양이 중국의 군현일 가능성은 없다. )

 

한나라의 도움으로 국가를 재건한 낙랑국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은 삼국사기태조대왕조의 기록이다.

 

태조대왕 4(서기 56) 가을 7동옥저(東沃沮)를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삼았다국경을 개척하여 동으로는 창해(滄海), 남으로는 살수(薩水)에 이르렀다.

   

대방국.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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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7-08-13 20:52
 
서기 56년 당시, 고구려의 남쪽 경계가 살수라고 한다. 즉, 서기 56년 당시, 낙랑국은 고구려의 지배를 받지 않은 것이다.
아마, 낙랑국은 한나라의 도움으로 나라를 재건한 이후, 예전의 강성함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한다. 즉, 낙랑국은 예전의 강대국의 지위를 되찾지 못하고 평양에 위치한 일개 소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후한서》<동이열전>이나 《삼국지》<오환선비동이전>에 낙랑국이 별도로 기술되지 않은 이유는, 당시 낙랑국이 약소국이었기 때문이다. ( 개마, 주나, 조나국 등의 소국들이 별도로 기술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맥락) - ( 이 두 책의 기술 시기는 태조대왕 이후이다.)

이후, 낙랑국은 고구려에 통치를 받았다 독립하기를 반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태조대왕 시기에는 고구려에 군사력을 제공하는 일개 속국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인다. 계속해서 기록을 살펴보자.

2월, 임금이 마한(馬韓)과 예맥의 1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나아가 현도성을 포위하였다.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尉仇台)를 보내 병사 2만 명을 거느리고, 한나라 병사와 힘을 합쳐 막고 싸우니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70년(서기 122), 임금이 마한, 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입하였다. 부여왕이 병사를 보내 요동을 구하고, 우리를 격파하였다.

앞서 《후한서》에서 낙랑국을 한국(韓國)이라고 기록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이 기록에서의 마한은 바로 낙랑국을 말할 가능성이 높다. 거듭 말하지만 낙랑국이 위치했던 평양은 본래 마한의 땅이기 때문이다. (마한은 이미 온조왕 시기에 멸망했다.)

낙랑국은 예전의 영광을 잃었다. 그러자 낙랑국 치하에 있었던 여러 소국들이 독립을 하기 시작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황해도의 대방국이다. (위의 지도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책계왕 원년 (서기 286년) 고구려가 대방(帶方)을 쳐서 대방이 우리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앞서 임금이 대방왕의 딸 보과(寶菓)를 부인으로 삼았기에, 임금이 이르기를 “대방은 장인의 나라이니 그 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드디어 병사를 내어 구원하니 고구려가 원망하였다

위 기록에 따르면 대방국이 백제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고구려가 황해도에 있는 대방국을 공격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낙랑국은 고구려의 영역으로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낙랑국을 흡수한 고구려는 낙랑국에서 떨어져 나간 대방국까지 점령하려고 하지만 백제에 의하여 저지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기 300년 경이 되면 낙랑과 대방은 고구려에 완전히 흡수되어 이름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삼국사기》<신라본기>의 기록이다.

가림이사금 3년 (서기 300년) 낙랑(樂浪)과 대방(帶方) 두 나라가 항복하였다.

이 기록 이후로 낙랑국은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낙랑국과 대방국은 이 시기 이후로 완전히 고구려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한 때, 한반도 중북부를 장악하고 강원도 지역까지 진출하여 신라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던 낙랑국의 최후는 결국 소국으로 전락해 고구려에 흡수된 것이다.
     
꼬마러브 17-08-13 21:14
 
추가) 일부 인간들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대방이 중국의 대방군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 가림이사금 3년 (서기 300년) 낙랑(樂浪)과 대방(帶方) 두 나라가 항복하였다.

기록은 대방을 일개 군현이 아니라 나라로 보고 있다.
즉, 이는 중국의 대방군이 아니라 이와 별개의 대방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애초에 일개 군현의 태수가 백제와 혼인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른 기록들을 검증했을 때, 한사군의 위치는 절대로 한반도에 위치할 수 없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낙랑과 대방은 중국의 낙랑군 대방군이 아니라 별개의 낙랑국 대방국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지명이 중첩되는 이유는 2편에 있다.
          
촐라롱콘 17-08-13 21:55
 
당시 낙랑-대방이 중국에서는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군현에 불과하지만....

여러 국가와 정치집단으로 난립한 한반도와 주변의 여러 소국들 개개의 나라들과 비교하면

그 어떤 나라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을 것입니다만.....

한반도와 주변의 여러 소국의 입장에서는 "일개 군현의 태수"가 아니라

웬만한 나라들에서는 자기들보다 더욱 강력하고 큰 나라의 왕이나 다름없는 위치입니다만...

당시 삼한지역 소국 여러 나라에서 낙랑-대방의 귄위를 인정하고 복속했던 증거로

진솔선예백장, 위솔선한백장 등의 동인들이 오늘날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도 엿볼 수

있습니다만....
               
꼬마러브 17-08-13 22:14
 
중국 입장에서는 군현인데요.

왕이나 다름 없었다 ??

그럼 왕이나 다름 없는 군현이네요.
                    
러브슈터 17-08-13 22:18
 
요동 공손씨 세력만 봐도 왕으로 칭하지 않나요?
                         
꼬마러브 17-08-13 22:20
 
공손씨는 굉장히 예외의 경우입니다.
사실상 요동왕국으로 보아야 하지요.

다만 본래 군현의 태수라는 자리는

스스로 왕을 취할 수 당연히 없고
외국과 혼인동맹을 맺는 것도 말이 안되지요.

애초에 태수라는 자리는 세습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이 강원도지사가 세습되지는 않잖아요.
                    
러브슈터 17-08-13 22:24
 
한나라 시대에 군현의 군을 국으로 칭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낙랑군이나 대방군도 이와 딱히 다르지 않은 케이스라고 봅니다
                         
꼬마러브 17-08-13 22:24
 
근거를 제시해 보세요.
                         
러브슈터 17-08-13 22:32
 
한대의 문헌과 금석문이 郡을 '邦' 또는 '國' 으로 표기한 예는 일일이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楊鴻年(1985),「漢人視郡如邦國」, 『漢魏制度叢考』, 武漢大學出版社, 275~276쪽은 한대인들이 郡을 邦國으로 인식한 사실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삼국사기』중 낙랑군을 '國' 으로 표기한 예로 낙랑국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주장은 찬성하기 어렵다.

<이성규,「중국 군현으로서의 낙랑」, p123, 『낙랑문화연구』, 동북아역사재단(2006)>
라고 하네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꼬마러브 17-08-13 22:36
 
그럼 일일이 소개해 보세요.
                         
러브슈터 17-08-13 22:38
 
저랑 말장난 하시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럼 그냥 정신승리하십시오
                         
꼬마러브 17-08-13 22:55
 
저는 러브슈터님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근거를 제시해 주시질 않으시네요.
                         
러브슈터 17-08-13 23:04
 
제가 읽지도 못하는 한문으로 된 책에서 정보를 굳이 찾아서 님께 갖다 바쳐야될 정도로, 제가 인용해온 글이 신빙성이 떨어지진 않는 것 같네요. 명쾌하게 어디가 국가라고 칭했다라고는 안나왔지만요.
                         
꼬마러브 17-08-13 23:07
 
한대의 문헌과 금석문이 郡을 '邦' 또는 '國' 으로 표기한 예는 일일이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楊鴻年(1985),「漢人視郡如邦國」, 『漢魏制度叢考』, 武漢大學出版社, 275~276쪽은 한대인들이 郡을 邦國으로 인식한 사실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삼국사기』중 낙랑군을 '國' 으로 표기한 예로 낙랑국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주장은 찬성하기 어렵다.

--------
그래서 결국은 소개 안 했잖아요. 근거가 없는 주장은 소설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게 실증사학의 기본 자세에요.
                         
러브슈터 17-08-13 23:11
 
이게 왜 실증사학의 기본자세죠? 제가 귀찮고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러는 건데, 저는 그냥 역사에 관심많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실제 실증사학자님들이 들으시면 기분 나빠하실 겁니다
 ㅎ 그리고 근거 없는 주장을 저보다 많이 하시는 건 꼬마러브님 같은데, 제 얼굴에 침 뱉는 건 도로 제 얼굴에 침 뱉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해석에 이견이 있어서 그러니까요
                         
꼬마러브 17-08-13 23:13
 
러브슈터님은 무엇을 어떻게 해석하시는데요?

저 역시 역사를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Marauder 17-08-13 20:56
 
살수를 청천강 유역으로 비정하신듯 한데 이 경우 살수의 위치가 확정되기 때문에 평양의 위치에 이견이 없어지지 않나요? 살수가 여러군데라면 모를까 다른분들은 살수의 위치를 다르게 잡으시던데
후기 평양을 현재 평양으로 보셔서 그러시는건진 모르겠는데 비교하게되면 문제 소지가 있어보이는군요.
     
꼬마러브 17-08-13 21:15
 
평양의 위치가 여러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살수의 위치도 여러 군데에 중첩될 수 있겠지요. 다만 평양에 출토되는 중국계 유물들을 볼 때, 낙랑국의 위치는 지금의 평양이 맞는 것 같습니다.
도배시러 17-08-13 21:13
 
마한은 서기 382년까지 중국기록에 등장합니다.
     
꼬마러브 17-08-13 21:24
 
그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윤내현 교수는 서기 4세기 경까지 한반도 남부지역에 마한세력이 잔존해 있었다고 말하더군요.

아니면 일본열도로 건너간 마한세력이 중국기록에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망상해봅니다.
          
도배시러 17-08-13 21:32
 
자료정리 중입니다. 유령처럼 아무때나 나타나는 마한과 백제는 한국사의 불가사의죠.
382년 이후에도 마한이 존재했는지 중국정사를 더 조사중입니다.
          
촐라롱콘 17-08-13 22:01
 
오늘날의 전남지역에서 5세기말~6세기초까지 잔존했던 마한의 잔여세력들이

정리된 것은,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범위가 쪼그라든 백제의 자구책으로 인한

연쇄작용의 결과입니다.

오늘날의 충청-전북지역까지는 장수왕의 남하정책 이전이라도 상당한 백제내지화가

이루어졌지만... 전남지역은 반독립적인 마한의 영역으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고구려에 밀린 백제의 진출로 말미암아 6세기를 전후하여 한반도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지요!

훗날 백제부흥운동도 충청-전북일대에서는 비교적 활발히 벌어졌지만

나중에 편입된 전남지역에서는 거의 전무했던 것도 그 배경이 될 것입니다.
러브슈터 17-08-13 22:37
 
글 쓰나라 고생하셨습니다만 좀 이해가 안되서 말이죠.

1. 후한서 동이열전과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에 낙랑과 대방의 위치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여기에 공통되는 조선이 나라이지 일개 현일리가 없으므로 낙랑국이다?
- 저도 조선현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저기서 말하는 조선이 한나라에 멸망한 고조선을 뜻하는 것이고 그 지역을 관념적으로 일컫는거라고 말이라 해도 낙랑이 낙랑국이다라는 걸 정당화시켜주진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꼬마러브 17-08-13 22:56
 
실제로 낙랑국이 스스로 조선이라고 칭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일 뿐, 저는 그것으로 낙랑국이 실존했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러브슈터 17-08-13 23:01
 
제가 그걸 여쭙는게 아니라 조선이 현이 아닌 나라이기 때문에 동급(?)으로 쓰인 낙랑이 낙랑군이 아니고 낙랑국일 것이다라고 하는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대방도 마찬가지구요
               
꼬마러브 17-08-13 23:09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러브슈터 17-08-13 23:18
 
그건 오히려 제가 묻고 싶은 건데, 꼬마러브님이 첫번째로 스신 글에
"위의 기록들을 보면 모두 '조선'이라는 나라가 공통된다. 이에 대하여 일부 인간들은 기록의 조선이 낙랑군의 군현인 조선현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기록의 조선이 고작 낙랑군의 일개 현이었다면 조선을 다른 국가들과 대등하게 기록할리가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 서울이란 도시가 있다고 해서 한국을 서울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기록의 조선은 낙랑군의 조선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낙랑국의 별칭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즉, 낙랑국은 스스로를 고조선의 후예임을 자칭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이 일개 현일리가 없으므로 조선=낙랑이라는 말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이런식으로 하나하나 꼬투리 잡고 싶은 게 아닙니다. 당연히 추측이겠지만, 이건 논리 전개가 이상한 비약이나 다름 없고 그 이상한 비약 위에서 주장을 하고 계시다 이 말입니다
                         
꼬마러브 17-08-13 23:22
 
낙랑의 위치가 평양이라는 것은 학계의 통설입니다.

그런데 기록에서 조선이 있는 자리가 지금의 평양 지역이란 말이지요.
예의 서쪽, 한의 북쪽, 고구려의 남쪽 말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은 낙랑의 별칭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 것입니다.

거듭 밝히지만 확고한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조선이 낙랑의 별칭이든 아니든

그것은 낙랑국이 실존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증거가 아닙니다.
                         
러브슈터 17-08-13 23:33
 
낙랑이 조선의 별칭일 가능성은 공감합니다. 추측하는 거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그럳데 자신의 주장은 논리가 부족하고 근거 없지만 남에게는 근거 가져오라고 하는 모습이 내로남불 아닙니까?

그리고꼬마러브님은 낙랑국을 논하면서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할 낙랑군은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쏙 빼놓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낙랑국 때문에, 중국 정사의 낙랑 구별의 혼동이 심하고 이견이 엄청 갈리는데 이걸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러브슈터 17-08-13 22:43
 
열국시대가 뭔지도 잘 이해가 안되는데요

2. 멸망한 위만조선이나 기자조선이 거대한 조선의 번국(?)처럼 변경에 있었다라거나 부여 옥저 예 고구려 등의 국가들이 제후국으로서 요동 요서에 있었다라는 것의 근거나 증거가 있습니까? 신채호 선생님의 삼조선설이라면 그건 '진번'이라는 말을 선생께서 오독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굳이 고조선의 왕검성이 요서에 있어야하니 당연히 낙랑군도 요서에 있어야하고/ 고구려 부여 옥저 동예등의 위치는 이론의 여지없이 너무도 확고한데 고조선의 영역 안에 제후국으로 존재해야하니 요동 요서에서 옮겨왔다 이런식으로 말하는 거라면 너무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요수난하설이 근거라고 하신다면 대체 전국7웅의 연나라와 요동 공손씨 세력은 어디 있어야 하는거죠? 요동군과 낙랑군 대방군이 난하에 따른 요동에 같이 있어야 하는 건가요?
     
꼬마러브 17-08-13 23:04
 
고조선의 영역이 만주 일대와 한반도 전부이고

고조선 멸망 이후, 여러 국가들로 분열되는 시기를 열국시대라고 부릅니다.

고조선의 거수국 중 하나인 옥저와 예가 동쪽으로 이주하여
동옥저와 동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 7웅 연나라 당시에는 낙랑군이나 대방군이라는 개념이 없었는데요.

낙랑군과 대방군은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나서야 생기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공손씨의 위치는 지금의 요서입니다.
          
러브슈터 17-08-13 23:29
 
근거나 있냐고 물었는데 굉장히 단정적으로 그냥 그렇다라고 대답하시면 딱히 더 할 말은 없습니다. 고조선이 제후를 다스린 제국이다 이런건 윤내현 선생님 견해인 것 같네요.

낙랑군 대방군이 전국시대에 없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근데 낙랑군, 대방군이 요서에 있었다면 당연히 연나라의 위치는 그 서쪽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 안되잖아요. 연나라 위치는 국내 사서랑 비교해볼 필요 없이 중국 정사에서 어디가 어디인지 비정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요동 공손씨는 양평성 그러니까 고구려 요동성 지금 요양에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말이 안되잖아요.
               
카노 17-08-14 14:19
 
러브슈터// 낙랑군, 대방군이 연나라와 왜 연관됩니까?
연나라가 망하고 진나라 다음에 한나라 그리고 위만조선과 전쟁 낙랑군 설치, 이런 가장 기본적인 역사 흐름도 모릅니까? ㅉㅉ
공손씨는 기본적으로 요서와 산동반도가 그 영역입니다.
요동반도 지역은 전부는 아니고 전성기에 일부는 차지했겠지요.
                    
러브슈터 17-08-14 16:27
 
유사역사학자들 주장대로 낙랑군, 대방군이 요서에 있었다면 멸망 당시 고조선 왕검성도 요서에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고조선과 전쟁해서 2천리의 땅을 뺐었던 연나라의 수도는 북경 근처 '계'일 수가 없고 연나라 위치는 하북성에서 더 뒤로 물러나야 할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혹시 고조선이 다시 그 땅을 되찾았다 이런 얘기면 듣고 싶지도 않네요.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 말이죠. 요동 지역에 전국 연나라계 유물이 발견되고 있지만 당연히 인정 안 하겠구요. 그리고 양평성이 지금의 요양이 아니라는 근거는 있습니까?

왜 고조선 영토는 비파형 동검이다 미송리식 토기다 해서 유물들 분포를 통해서 강역을 설정하려고 하면서 다른 경우는 인정하지 않는 걸까요? 하북성에 고구려 고려성 고려영이 발견됐다고 하면서 거기까지 고구려가 먹었다 이런 소리는 자주하면서 말이죠. 우리 역사를 제가 깎아내리려고 하는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접근법이나 인식이 너무도 잘못됐습니다.
                         
대한국 17-08-14 18:15
 
참말꼬리잘돌리시네 진짜유사사학자들께서 다른사람들한테유사사학하면서 비방하나는 잘하시네요 차라리 남북한이 중국식민지라하시지요. 근거도제대로 제시안하면서 태도가그게 뭡니까
                         
러브슈터 17-08-14 18:48
 
딱히 그 쪽에 욕 먹을 정도로 글을 못 쓰진 않았구요. 그정도 비방만 할 거면 그냥 댓글 달지를 마세요 ㅎ
그리고 제가 뭐하러 남북한이 중국 식민지라 합니까? 수틀리면 학자들 학계 자체를 식민사학이다 매도하는 게 특징입니까?
                         
대한국 17-08-14 18:58
 
ㅋㅋ 웃기신분이네 먼저유사사학거리면서  비방한게 당신아닌가요. 근거도 제대로 제시안하시면서 꼬마러브님에게 정신승리나 하라면서 비방하고 비꼬신게 누굽니까.
                         
카노 17-08-14 19:10
 
러브슈터 이분도 공손씨가 요동전부에 낙랑군 대방군으로 황해도와 경기도까지 차지했다는 식민빠들의 망상에 빠져있는 것 같은데 역사는 망상소설이 아닙니다.
어서 깨어나세요.
그리고 위만조선 왕검성 당연히 요서에 있었지요.
그게 연나라가 2천리땅 빼앗았다는 진개 침략기록과 뭐가 상충되는지?
난하에서 요하까지 2천리쯤 되는데.
물론 이후 사료를 분석해보면 고조선은 곧 그땅을 되찾았지요.
요동, 요서에 널린 고조선 유물은 생각안합니까?
연나라 기와조각 하나 발견됐다고 연나라가 청천강 이북을 차지했다는 짱개와 식민빠들의 헛소리는 신봉하시면서
고이왕 17-08-13 22:57
 
유사역사학자들의 말 장난.. 낙랑국이라는 용어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만 존재하고 교차할 수 있는 기록이나 유적등이 전무함.. 그냥 낙랑군이라고 보는것이 옳음...
     
꼬마러브 17-08-13 23:27
 
근거를 제시해 주세요.
     
도배시러 17-08-13 23:36
 
낙랑군 위치의 기록 교차검증은 중국 북경 부근이죠.

게다가 위만조선은 유적이 전무함. 기자조선보다 유물이 부족.
그래서 위만조선의 위치조작이 쉬움.
     
고독한늑대 17-08-14 02:50
 
가장 황당한 개소리가 그거에요..
왜 우리나라 역사서는 다 무시하고 남의 나라 역사서만 인정할까요???

그것에 문제점은 엄청난 차이를 갖어옵니다.
명나라는 초기 만주의 토착세력들에게 작위를 내려주고 조선도 마찬가지로 작위를 내려줍니다.
그럼 명나라 기록은 명나라것이되고 조선의 기록은 조선의 것이 됩니다.

그런데 식민사학들의 주장대로면 우리것은 못믿고 남의것만 믿어야 한다는 주장이죠..

또 왜의 경우도 조선의 기록으로는 왜자국으로 부르고 왜는 조선을 황제국으로 칭하면서 조공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선 다르죠.. 실제 기록상에 어떻게 되어있는지 일제는 믿을수가 없을 정도로 왜곡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일본 주장만 찬양하죠..

무조건 우리 기록은 불신불신불신..
     
대한국 17-08-14 12:16
 
진짜유사사학이 다른사람들보고 유사사학거리는 말장난보소
     
카노 17-08-14 14:17
 
삼국사기에 낙랑이라고 해서 낙랑국과 신라, 백제등의 전쟁 기사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식민빠들이야말로 그 낙랑을 낙랑군이라고 개소리함.
그리고 삼국사기에 낙랑국, 대방국 사람이 신라에 항복했다는 기사도 나오는데 제발 좀 기본적으로 최소한 삼국사기라도 읽고 나대시기를.
당신 부류가 말하는 소위 유사역사부류는 그래도 삼국사기는 기본적으로 읽었다오 ㅉㅉ
그리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2군데나 나오는데 사서 교차검증이 아니라고?
우리나라 역사서는 기본적으로 불신하는 전형적인 식민빠의 작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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