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19 十六年 春二月 北溟人耕田 得[濊王印] 獻之 -S남해차차웅 삼국사기
AD21 四年 冬十二月 王出師 伐扶餘 次沸流水上 望見水涯 若有女人 舁鼎游戲 就見之 只有鼎 使之炊
不待火自熱 因得作食 飽一軍 忽有一壯夫曰 是鼎吾家物也 我妹失之 王今得之 請負以從 遂賜姓負鼎氏
抵利勿林宿 夜聞金聲 向明 使人尋之 得金璽兵物等 曰 天賜也 拜受之
上道有一人 身長九尺許 面白而目有光 拜王曰 臣是北溟人怪由 竊聞大王北伐扶餘 臣請從行 取扶餘王頭 王悅許之
又有人曰 臣赤谷人麻盧 請以長矛爲導 王又許之 -G대무신왕
三國史云 溟州古穢國 野人耕田 得[穢王印]獻之 又春州 古牛首州 古貊國 又或云 今朔州
是貊國 或平壤城爲貊國 - 삼국유사 마한
魏略曰:其國殷富,自先世以來,未嘗破壞。其印文言[濊王之印],國有故城名濊城,蓋本濊貊之地,
而夫餘王其中,自謂亡人,抑有(似)也。-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
남해차차웅 - 북명인이 경작을 하던중 [예왕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쳤다.
대무신왕(호동왕자 아부지) - 비류수 상류에서 부여를 토벌하러 가던중...
키가 9척(2.7m)이요 얼굴이 희고 눈에 광채가 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왕에게 고하되,
신은 북명인 괴유라 합니다. 듣건데 대왕께서 북쪽의 부여를 정벌하신다고 하니
신은 따라가기를 청하며 부여왕의 머리를 취하고자 합니다.
삼국유사 마한 - 신라후대의 명주는 옛 예국이다.야인이 밭을 갈다가 예왕인穢王印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쳤다. 또한 춘주는 옛 우수주이며 옛 맥국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고려의 삭주는 옛 맥국이다. 평양성도 그러하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 - 위략에서 말하기를, 부여는 그 선대로부터 부유했고, 파괴된 적이 없다.
부여의 인장에는 [예왕의 인]濊王之印 이라고 적혀있다. 부여에 고성이 있는데, 예성濊城 이라 한다.
본래 예맥의 땅이다. 부여왕이 그중에 있어서 스스로 (예의)망인이라 칭하고 있는것이다.
■ 예 濊, 穢 는 어디인가 ?
신라후대의 명주가 예의 땅이라면, 거기에 부여가 있었다는 것인가 ?
신라가 취한 고구려 땅에는 3주가 설치되는데 서쪽에서부터 한주, 명주, 삭주가 설치된다.
[예왕의 인]은 모두 2개 인가 ?
부여에 1개, 신라 남해차차웅에게 1개...
부여-신라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예왕의 인은 어케 설명되어야 하는가 ?
[예]의 강역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졌다는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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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명 北溟
북명이란 북쪽의 큰 바다를 말한다.
대개 북명이란 발해만을 의미하는데, 발해만과 부여, 신라는 연관이 없다는게 정설이다.
하지만 대무신왕이 만난 북명인은 9척 장신의 백인인데... 고구려와 발해는 지척에 있었다.
잡설 : 마한에 대해 공부하던중 삼국유사는 마한과 예맥, 고구려를 연결하려 했다.
최치원의 마한즉 고구려... 에 의미를 두고 일연 스님은 논지를 이어가지만 명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