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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07 23:22
[한국사] 대한제국군의 마지막 전투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3,409  

1907년 8월 1일

남대문 전투

 

전투 발생 며칠 전인 7월 24일에 체결된 정미 7조약의 일환으로

일제 통감부는 조선군의 후신인 대한제국군의 해산을 감행하였다

통감부는 한국군의 반발을 예상하여

 일단 한국군 대대장 이상급 장교들에게만 우선 해산소식을 알린 후

사병들에겐 비밀을 유지한채 

병력들을 무장해제 시킨 후에 훈련원으로 모을것을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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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군 시위대 1연대 1대대장 박승환 참령(소령)은

이 참담한 명령에 할 말을 잃었다

1887년에 참위(소위)로 임관하여 1904년에 참령까지 오른,

당시로서써는 찾기 힘든 엘리트였던 그는

이 명령이 무엇을 뜻하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군대가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지 못한다면 만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

 

차마 해산령을 부하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그는 짤막한 유서를 남긴채

그의 집무실에서 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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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장이 자결하고, 그의 유서를 통해 모든 전말을 알게 된 1연대 장병들은

분노에 몸을 떨었고 이내 억누르고 있던 반일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그들은 무기고를 깨부숴 이미 반납했던 총기를 되찾아

일본군과 교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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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영문도 모른채 무기를 반납하고 훈련원으로 향하던

바로 옆 병영의 2연대 1대대 장병들은 갑작스런 총성에 발길을 멈췄다

그리고 이어서 병영으로 들어온 1연대의 장병들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마찬가지로 반일장교였던 2연대 1대대장 이기표 참령이

항명죄로 경질된 것에 격앙되어 있던 2연대 장병들 역시 즉시 전투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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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부는 어느 정도의 소요사태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한국군이 봉기하자 통감부는 즉시 바로 인근에서 그들을 감시중이던

일본 육군 13사단 9중대와 10중대에게 진압명령을 하달하였다

하지만 예상외의 거센 저항에 9중대와 10중대는 진압은 커녕

병영으로의 진입조차 불가능한 교착상태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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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일본군은 남대문 문루에 기관총 2정을 설치하여 제압사격을 시작했다

1연대와 2연대의 병영은 남대문에서 바로 내려다 보였기 때문에

이 제압사격은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거기다 곧이어 13사단 7중대와 12중대가 급파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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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병력과 화력, 탄약, 장비 등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한국군은 이내 병영의 방어선이 돌파당하며 2연대 병영이 함락당한다

이 와중에 일본 13사단 9중대 가지와라 중대장을 전사시켰지만

1시간 후, 1연대의 병영 역시 함락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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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투로 인해

봉기하였던 한국군 1200여명 중에

68명이 전사, 100여명이 부상을 입고 500여명이 포로로 사로잡혔다

포로로 잡히지 않은 나머지 병력은 극적으로 탈출하여 훗날 정미의병에 가담하였다


 

포로로 잡힌 병력은 의외로 퇴직금의 명목으로 은사금을 지급받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부상을 입은 장병들에겐 은사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이들의 일부는 이후 남한대토벌 작전에 동원되었으며,

 그 중의 또 일부는 친일세력이 되고 말았다

 

반면 일본 육군은 4명이 전사하고, 약 3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군 해산명령이 하달되자

강화와 원주의 진위대도 봉기하였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진압되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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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야 17-10-08 00:29
   
읽다보니..피가 끊어 오르는군요 ~
국산아몬드 17-10-08 00:31
   
일본놈들이 미리 사태를 예상하고 있었군요. 미리 기관총까지 준비한 걸 보면
     
레스토랑스 17-10-08 00:34
   
이때 기관총만 없었더라면 일본군이 패배할수도 있었다고함
          
국산아몬드 17-10-08 00:51
   
http://dopsh.tistory.com/5

1898년 옴둘먼 전투에서 수단 반란군과 영국군 교전에서 기관총 덕분에
영국군은 47명 전사, 340명 부상인 반면 수단 군은 9700명 사망, 13000명 부상이라네요
기관총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셀틱 17-10-08 01:16
   
장고
crocker 17-10-08 22:46
   
어차피 일본군이 조선인 도적들 잡은거라고 그냥 왜곡하겠죠.
일본인들이 제국주의 침략을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게 안타깝네요.
비정상회담에서도 일본분이 일본은 세계사는 배우지만 일본사는 의무교육이 아니라고 그러던데
씁쓸합니다. 20년전이나 지금이나 어쩜 똑같은지..
한사니 17-10-09 06:34
   
쪽발이는 영원히 우리의 원수 입니다..반성을 하지않는 원숭이..
그런..섬나라 여행가서 좋아라 희희낙낙하는 사람들보면......
마리치 17-10-09 23:47
   
제 생각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유를 간단히 말하면, 일본은 유럽으로 가서 신무기를 사들이거나 배워왔고, 우리는 그러질 않았기 때문에, 서구의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대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저는 이 부분이 제가 배웠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제대로 씌어지지 않았었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 때에도 조총으로 큰 피해를 입어 명군의 도움 없이는 왜군을 철퇴시키기가 어려웠지요. 일본군에게 조총이나 서구의 신무기가 없었다면, 조선이 그렇게 쉽게 당할 수 없지요(창, 칼, 화살로만 한반도에서 싸운다면, 왜군이 쉽게 이기지 못할 것이고, 임란 직전의 조선 조정도 조총의 위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붙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여야가 서로 정쟁을 하더라도, 적에게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신무기의 개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필요함 -과 배치에 항상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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