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족이 현재 중국인인 게 무슨 상관이랍니까? 애초에 만주족이 만주족만의 나라를 만들지 못했는데요. 국적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 현재 러시아에서 러시아 국민으로 사는 만주족 후손들도 있습니다.
중남미 원주민들은 현재 그들만의 나라도 없고 각자 자신들이 속한 나라의 국적을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잉카 제국과 아즈텍 제국의 역사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게 소유권이 넘어갑니까? 중국 정부가 만주족의 역사를 빼앗으려고 한다고 왜 우리도 남의 민족 역사를 빼앗아갑니까?
현재 만주족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버리셨다고 했는데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만주어를 썼거나 현재 만주어를 쓰나요? 현재 만주족들은 여진족의 후예이고 과거 그들의 조상이 여진어와 만주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의 언어이고 그들의 역사죠.
중국 정부의 논리는 그들만의 논리죠. 그들이 만주족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한다고 해서 한국이 만주족의 역사를 가져갈 명분은 없거든요? 현재 만주족이 중국인으로 동화되어 산다고 하셨는데, 여전히 만주족의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있습니다.
언어를 잃은 민족은 많습니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인들이 그들의 켈트계 언어를 잃고 영어를 쓴다고 해서 그들의 켈트족 역사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역사가 되진 않습니다.
중국이 망해야 합니다. 지배층이 뚜렷이 한민족계였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물론 심지어 백제의 역사까지 가져가려고 하니 미친 것이죠.
주필산 전투 때 고연수 휘하의 고구려군 3만 7천여 명이 당군과 싸우다 결국 항복하였는데 이때 고구려군은 살고 말갈 병사 3천 3백여 명은 모조리 땅에 파묻어버립니다. 꼬마러브 님 말대로 고구려인과 말갈인이 구별되지 않았다면 왜 말갈인은 모조리 생매장시켜버린 겁니까? 이 외에도 고구려와 말갈을 구분 짓는 기록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말갈이 후에 여진으로 이어지고 여진족은 결국 금나라를 세우죠. 금나라의 기원인 생여진은 흑수말갈의 후예인데, 흑수말갈은 친당 성향을 보이고 발해와 대립하던 부족입니다. 근데 금나라가 우리와 동족 의식을 갖고 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만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만주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재 멀쩡히 살아있습니다. 국적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 현재 추세로 보면 몇 십년 뒤 사라질 것 같지만요.
그리고 방금 어떤 분이 여진족의 언어가 우리와 비슷하다는 댓글을 쓰셨다가 지우셨는데, 20세기 초반 한국어가 헝가리어, 몽골어, 만주어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에 속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게 마치 기정사실화가 되어 20세기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랄 알타이어 타령을 현재까지 하면 안 되죠. 한국어는 저 언어들과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공유하는 기본 어휘부터가 거의 전무하거든요. 한국어와 가장 가까운 언어는 일본어입니다. 현재 한국어는 사실상 언어계통학적 고립어에 속합니다.
1. 예전 KBS일요스페셜에서 한국어의 여정을 다루면서 우리나라 사투리를 비교했는데 평안도 사투리와 제주도 사투리는 외국어라 할 정도로 말이 안 통했습니다
ㅡ 그런데 여러분이 제주도 방언 어휘를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제주도 방언의 어휘의 어근은 다 우리말입니다
ㅡ 뭍에서 쓰는 어휘의 어근과 동일합니다
ㅡ 음운변동을 거쳐서 다른 말처럼 들리는 것이죠
ㅡ 또 제주도의 후기 구석기ㆍ신석기 문화가 뭍과 동일합니다
ㅡ 또 제주도의 청동기, 초기 철기 문화가 뭍과 동일합니다
ㅡ 또 제주도 인구 구성원의 조상의 과반 이상은 조선시대 후기에 전남과 경남에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ㅡ 제주도 특정지역의 말씨는 경상도 말씨의 어조와 아주 유사합니다
ㅡ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2. 중국 고대 사서에 숙신ㆍ읍루(물길, 흑수말갈의 전신)의 말이 여타 한민족계 동이와 다르다고 적혀 있는데
ㅡ 과연 이들 사서 기자들이 오늘날과 같은 언어학적 이해를 가지고 분석을 한 것일까요?
3. 뿐만 아니라
ㅡ 이들 숙신ㆍ읍루계는 연해주 삼림ㆍ평원 지역에 고립돼 살아가던 소수인구의 종족입니다
ㅡ 우리 부여ㆍ고ㆍ백ㆍ신ㆍ가야가 철기문화를 꽃 피워가던 그 시대까지도 돌화살촉 쓰고, 돼지기름 몸에 바르고 살던 사람들입니다
ㅡ 기원후 6~7세기까지도 신석기, 초기 청동기수준의 문화를 지녔던 종족입니다
ㅡ 즉 애초에 언어가 같았다 하더라도 또 지배를 받았던 하더라도 수천 년을 고립돼 원시사회를 살아갔다면 언어가 이질화, 화석화 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닙니까?
ㅡ 이들은 10~11 세기까지도 제대로 농사지을줄도 모르고, 법도 없었고 갑옷조차 만들지 못 했습니다
ㅡ 또 이들은 이후 요나라, 몽골의 지배를 근 200 년을 넘게 받습니다
ㅡ 요나라 거란과 몽골은 이들 여진족을 특히나 핍박했습니다
ㅡ 그렇다면 이들 여진ㆍ만주어에 거란어ㆍ몽골어의 영향이 강하게 미쳤음을 충분히 추정해 볼 수 있죠
ㅡ 발해 300 년, 요ㆍ금ㆍ몽골 400 년, 도합 700 년을 우리와 분리돼 있었습니다
ㅡ 그러면 그 사이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우리말에 수많은 한자어들이 들어와서 자리잡고 또 우리만의 언어세계 속에서 순우리말들도 생성ㆍ발전ㆍ소멸의 과정을 거쳤지요
최초의 여진족은 신라인 김함보였고, 여진족은 (아이신(Aisin)=gold=김)을 뜻하는 "김씨족"의 말갈발음을 한자로 쓴 것입니다. 김함보와 함께 이주한 신라(혹은 고려인)들이 말갈족과 섞이면서 여진족이 새로 탄생했기 때문에 초기 여진언어는 신라어였습니다. 이는 양심있는 중국학자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왕우량교수(중국다렌대학):"(고려와 여진은) 동일한 언어, 동일한 지역, 동일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다시말해 여진인과 신라인(나중 고려인)은 민족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금나라의 시조가 된 최초의 여진족 김함보는 당연히 신라어를 썼고, 그 동생 보활리도 당연히 신라어를 썼습니다. 김함보부족이 이주초기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갈족과 통혼하여 지도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이 가능했을 겁니다. 함께 이주한 김함보부족은 모두다 신라어를 썼을 것이고 그 사이 낳은 아이들도 신라어를 썼을 겁니다. 그 뿐아니라 함경도 지역에는 이미 그 이전부터 이주한 고구려인과 신라인들 그리고 후에 이주한 고려인들이 상당수 있었을겁니다. 이들이 섞여서 김씨족(여진족)은 초기 신라어(혹은 고려어)를 썼을겁니다.
뿐만아니라 신라왕족과 귀족들은 골품제에 의해서 가족친척끼리만 결혼을 했습니다. 김함보와 결혼한 여인은 말갈족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김함보부족 내에서만 결혼을 했을겁니다. 당시는 신라 왕족과 귀족만이 김씨를 썼므로 김함보부족도 그랬을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이주후에도 상당기간 신라어가 통용되었을 겁니다.
김진광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4일 미리 배포한 자료를 통해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갈은 임진강ㆍ한강 상류와 신라 북쪽에서 출몰하며 백제ㆍ신라와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말갈로 불린 이들은 임진강과 한강 상류의 강변을 생활 근거지로 삼아 적석총을 조영한 집단"이라고 '삼국사기' 본기에 나오는 말갈의 실체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신라 북쪽변경을 침범한 말갈과
통상적인 말갈의 범위는 상당히 다릅니다만.....???
'말갈'이란 명칭을 마치 특정한 민족-종족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 듯 한데
말갈은 한반도북부를 포함하여 현 중국동북지방, 연해주, 흑룡강 이북~오호츠크해 일대에
걸친 퉁구스계통의 수많은 부족들을 싸잡아 통칭한 민족과 지역명이 모두 혼재된 개념입니다.
심지어 구당서-신당서의 기록 일부에 의하면 말갈에 해당하는 가장 광의적인 범위는
더욱 머나먼 캄차카반도 인근지역의 종족-부족까지 싸잡아 말갈의 일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일부 사학자들 가운데는 초기신라와 백제의 변경을 괴롭힌 말갈의 실체를
퉁구스계통이 아닌 우리민족계통인 예인 또는 맥인으로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말갈 이후에 등장하는 '여진'이란 명칭에는 말갈에 비해서는 지리적 범위보다
특정 계통의 민족-종족적인 특징이 훨씬 많이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여진'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부족들을 살펴보자면 그들간에도
상당한 이질성이 상존했습니다.
게다가 김함보 당시의 완안부는 수많은 잡다한 여진부족-부락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설령 신라계의 김함보가 완안부의 시조가 된다고 하더라도
금나라를 세우게 되는 아골타시기보다 무려 150~200년 가까운 차이가 납니다!
이는 다시말해 북만주에 근거지를 둔 완안부의 지리적 특징을 감안하면
한반도와는 무려 150년~200년 가까이 직접적인 교류가 없이 단절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함보시기로부터 150년~200년 세월이 지나 완안부가 흥기하던 시기
완안부족의 단편적인 특징을 기록한 요,송,고려의 기록들을 보다라도
이들은 개의 생피에 곡물을 말아먹는 것을 즐겼을 정도로 당시의 문명인들 기준으로는
여타 수많은 여진부족들가운데서도 가장 야성이 강하고 이질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완안부가 적어도 흥기하기 이전에는 한반도의 고려와는 아무런 문화적-인적 교류가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며... 또한 완안부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언어-문화적으로 우리와
관련성이 희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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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개인적으로 동아게에서 자주 보여지는 오류 하나를 지적하자면...
울나라 역대왕조들이 말갈,여진의 전체 범위로 따지자면 일부분을 지배하고 예속시킨 것을
가지고... 마치 말갈,여진 전체를 지배하고 예속시켰던 것처럼 확대해석하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전체 한민족출신 가운데 일부분에 불과한 조선족들이 중국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서.. 우리 한민족 전체가 중국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논리와도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짱깨들이 현 중국의 범위에 들어가는 땅덩어리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싸잡아 중국의 역사로 간주하는 것을 우리입장으로서는 당연히 비난합니다.
그리고 비록 사이즈는 훨씬 작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역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우리역사로 간주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 다른 지역은 몰라도 제주도와 울릉도가 직접적인 우리 영역으로 들어온
시기는 고려시기에 접어들어서입니다.
물론 제주도는 백제-통일신라, 울릉도는 신라시기에 이미 예속되기는 했지만..
고려초기만 해도 제주도와 울릉도 토호들의 왕경방문을 '내조'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비록 예속되기는 했지만 엄연히 다른 나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제주도-울릉도의 고려시기 이후의 역사 뿐만 아니라
그 이전 적어도 섬에 사람이 살았던 시기부터 싸잡아 우리역사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으로만 따지자면 짱깨들의 행태를 비난만 할 입장은 못됩니다.
물론 또다른 이웃나라 일본 또한 북해도와 오키나와지역에 대해 짱깨들과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구요~~~
중국이 고구려의 말갈- 여진을 학대한것과 고구려가 말갈-여진을 학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주류역사관이 원하는 제국주의적 단일민족국가를 이루려는 의지가 없던게 선조들입니다.
주류역사학이 바라는 것은 우리선조들이 일제치하처럼 복속민들을 유린하기 바라는거죠.
니들 조상도 일본인과 똑같다.
그런데 가까운 중국을 보아도 변방민족을 흡수해버리지 않습니까 ?
마한은 54개국으로 주변민족을 흡수합니다. 제국주의적 사관으로 보면 미친 짓거리인거죠.
홍익인간은 프로파간다로 끝나야할 정치구호인데... 실천을 하면 어쩌란걸까요 ?
중국은 타민족을 자기 역사에 편입하는게 가능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고요. 둘다 일본처럼 배타적이지 않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