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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1 23:17
[기타] 신라 김씨 금 태조 완안 아골타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2,028  

http://blog.daum.net/lowsalt/7165801


강화도 마니산 개천각에 우리민족의 위대한 인물 24인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환웅천제, 치우천황,단군왕검,고주몽, 대조영...완안 아골타의 영정이 나란히 걸려 있고,매년 봄,가을 두번 제사를 지낸다.

치우천황은 중국이 동북공정작업을 하면서 만주 일대를 다스린  그들의 시조 천황으로 편입한 인물이고 ,완안 아골타는 금 나라를 세운 태조다.

왜 낮설은 두 인물이 우리민족사의 주요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걸까.

우리 한민족사의 웅대한  단면이 그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여진족 추장 완안 아골타는 여러갈래로 나뉘어 있던 여진족을 통합하고, 발해 유민을 규합하여 세력을 키운다.

당시 만주 일대를 지배하던 거란족의 요나라는 여진족의 통합을 경계하고, 각개 분리 정책을 취하고 있었는데

1115년, 요는 10만명의 군으로 징벌코자 했으나  아골타가 이끄는 1만 여진족에게 격파되고만다.(팔리성 전투)

이후에 다시 70만 대군을 동원, 재차 공격을 했으나 패함으로써 만주 일대의 패권이 거란족에게서  여진족에게 넘어간다.

패권을 쥔 아골타는 1125년 금(金)나라를 건국하고 황제가 되는데 이 인물이 금나라 태조 완안 아골타다. 

금나라 태조가 된 완안 아골타는 계속 남진하여 송나라 수도 카이숭을 점령하고 , 송나라 황제 휘종과 흠종 부자를 포획한다. 

중국 대륙과 중화민족이 북방 이민족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순간이다.

아골타는 황제가 된 뒤에 성(姓)을 '완안'으로 명명하는데 , 완안은 왕이라는 뜻, 그의 이름이 완안 아골타가 된 것이다.

이 때 금나라군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이 금 태조의 넷째 아들 완안 올출인데

그의 후손들은 그의 성은 김(金)씨이며 그의 이름을 완안올출로 부르지 않고 김올출이라 부르고, 비문에도 김올출로 표기하고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금나라 태조 완안 아골타의 성은 김(金)씨였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마니산 개천각에 완안 아골타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그것은 완안 아골타가 우리민족이며 신라 김씨의 후예로써 여진족과 발해 유민을 규합해 대륙을 경영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금나라는 신라인,여진족, 발해유민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였으며 황실은 물론이고 지배계층이

우리 한민족이였다는 사실이 속속 들어나고 있다. 그 근거들로서는

1."금 태조 아골타는 우리나라 평주인이다."(마니산 개천각 비문)

2."여진 추장은 신라사람이다."(송막기문)

3."형 아고내는 고려에 남고,둘째인 金의 시조와 동활리는 여진으로 왔다.

  이 금 시조의 8대 손이 태조 아골타다. 고려에서 온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였다."(金史, 황실의 뿌리)

4."金은 신라왕 김씨에서 유래했고, 국호 金도 이를 딴 것이며 그외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흠정만주원류고,여진족이 세운 또 하나의 나라 후금( 청)의 공식 역사서) 

5."아골타의 시조 함보는 고려에서 왔다고 말하거나, 신라에서 왔다고 말해도 무관한 것 같다.

  한반도에서 온 것은 틀림없다."(현 중국 요녕성 다렌대 왕우량 교수)

6."평주의 승려인 금준이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 금나라의 선조가 되었다."(고려사)

7."경순왕 김부가 려(고려)왕에 항복한 후 그 외손 완안 아골타, 즉 권행(김행)의 후손..."(해사록)

8.고려 윤관장군이 여진을 정벌하고 고려에 귀속한 두만강 북방 여진족의 근거지 9성을 돌려달라는 글(고려사)

  "일찍이 저희 여진의 선조가 대방(고려)으로부터 나왔으니..이 오아속(아골타 이전의 여진족 추장)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9. "여진인과 발해인은 같은 뿌리, 한 집안이다."(金史)

10."아버지는 김계종이고, 우리는 그걸 따랐습니다. 저는 金씨입니다." (청 건륭제 7대손 김괄교수 인터뷰)

    청 황실의 姓 아이신줘러는 만주어이고, 한자어로는 金씨들, 김씨 집안을 뜻한다.

    청 태조의 이름 '아이신줘러 누르하치'의 한자어 이름은 김누르하치이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 '아이신줘러 푸이'의 한자어 이름은 김부의가 된다.

    청 황실의 姓씨는 신라인의 후예 신라 김씨다.

11. 여진인,신라인, 고려인은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본다.( 중국인 학자.)

 

그렇다면 신라인의 후예 신라 김씨와 한 집안 사람이라는 금태조 완안 아골타와의 연결 고리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의문의 사람은 金史( 황실의 뿌리)에  "고려에서 온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였다."고 기록된 함보라는 사람이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는 것을 극구 반대한 마의태자가 그의 뜻이 좌절되자 개골산으로 들어갔다."는 기록만이 존재할 뿐인데

"천년 사직의 신라가 그렇게 순순히 고려에 투항했겠는가. 

상당한 규모의 반고려 세력이 형성 되었을 것이며, 왕건의 압박 등 한반도 내에서 신라 부흥을 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동해안을 따라 후퇴하다가  여진지역으로 밀려들어 갔을 것이다. 

여진에 합류한 신라의 반고려세력은 신라의 황실 및 지배계층이었을 것이며 그 수도 상당한 규모였을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정치,군사 등 나라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집단으로서 여진족,발해 유민들을 통합, 큰 세력을 형성했을 것이다.

이 때 반고려세력을 이끈 리더가 함보였으며 그의 8대 후손 여진족 리더가 아골타였던 것이다."고 사학자들은 추정한다.

 

금나라를 세우고 중원을 평정한  아골타의 지략은 어디서 온 것일까.

팔리성 전투에서 아골타의 만여명이 요군 10만을 격파할 수 있었던 것,

요나라 70만 대군을 무찌르고 요를 멸한 것, 금나라를 세우고 태조가 된 것,

송나라 수도 카이숭을 전격적으로 침입, 송나라 황제 휘종을 사로잡고 중원을 장악한 것 등을

일개 여진족의 추장이 기획했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며, 아골타의 천재성에서 찾기 보다는

여진에 합류한 반고려세력인 신라 지배계층의 국가 경영능력, 함보를 따랐든 화랑도들의 군사전략이

아골타에게 전수 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김함보의 반고려 세력이 정말 있었던 것일까.

강원도 인제군 김부리의 대왕각, 비문에 새겨진 마의태자 이름,

인제군 상남면 다물리의 마의태자 유적지, 다물이라는 동리 명칭, 

내설악 옥녀폭포에 이르는 계곡의 무너진 돌산성 등 

내설악 곳곳에서 발견되는 마의태자의 흔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마의태자가 홀로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갔다."는 고려사에 비추어 보더라도

마의태자,김함보 무리가 개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산세가 험준한 설악산, 금강산 일대를

반고려 저항운동의 거점으로 삼았을 것으로 본다.

이들이 고려에 저항하기는 여의치 않았을 것이며 이곳에서 밀려 함경도를 경유, 여진에 합류했던 것이다. 

 

"금태조 金 아골타(완안 아골타)와 신라 김씨 황실,

청(후금) 태조 金 누르하치(아이신줘러 누르하치)와 신라 김씨 황실,

만주의 역사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신라의 후예와 발해 유민이 세운 금나라, 신라 후예 김씨가 세운 청나라의 역사가 되는데 

중국의 역사와는 상충이 되고, 우리 한민족사와는그 맥락이 이어진다."(명지대 사학과 김위현 교수)

 

강화도 마니산 개천각에서 모시는 우리 민족사의 위인 24명,

환웅천제,치우천황,단군왕검,고주몽,대조영.......과 함께 

금나라 태조 완안 아골타를 모시고 있는 까닭이 있었다.  

                                               - KBS,역사 스페샬 참고, 의견을 붙이다.- 小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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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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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10-21 23:37
   
그런데 문제는 여진 통합의 중심이 신라유민이었다 본다면
요나라 때까지의 여진 문화의 후진성과 야만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하는 것이죠
     
Attender 17-10-22 00:00
   
으음..... 역시 금나라와 요나라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예를들면 유물이라던지 유적이라던지.........아무래도 금나라와 요나라에 대한 연구가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많이 부조 한 듯 싶습니다 조금도 연구를 하고 신중하게 결론을 내려야..::::( 그런데 문제는 짱깨들이 우리 고고학자들 하고 과학자들을 만주로 들이지 않을려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홍산문화 유적과 사해유적 등을 더 발굴하고 연구해야 하는데요........)
피닉 17-10-21 23:45
   
그런데 여진 사람이나 한반도 사람이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진 동질의 문화공동체를 가졌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다른것 같은데?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면서 뭐 저런 족속들이 다 있나 하고 욕하게 되는데, 그기에 맞대응하기 위해서 여진을 이용하는것인가요?
     
감방친구 17-10-22 00:58
   
사실을 탐구하는 차원인 것이죠

숙신의 후신이 읍루,
읍루의 후신이 물길,
물길의 후신이 흑수말갈입니다

숙신-읍루-물길은 지금의 연해주 지역에
흑룡강과 바다 사이에서 살던 종족으로
부여에 복속돼 있었습니다

그러다 부여가 너무 세금을 많이 뜯어가니까 반란을 일으켜요
결국 부여는 이들(동)의 반란과 선비(서)의 침략, 고구려(남)의 강성으로 나라가 망하고 일부는 선비에 의해 요서로 끌려가고 나머지는 고구려에 복속됩니다

이후 중국계 국가(이름을 까먹음)의 도움으로 요서 지역에서 나라가 재건되나 다시 쫄딱 망합니다

물길은 고구려에 의해 완전히 제압됩니다
이들이 여러 말갈 가운데에 흑수말갈입니다

고구려가 망하고 지배에서 벗어나는데

이들 흑수말갈은 발해가 들어서고 나서도 정벌되지 않고
흑수, 즉 흑룡강 중류 삼림지대에 고립되어 여전히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생활을 이어가다가 발해 선왕(성왕이었나?) 때에 완전히 정벌돼 복속됩니다 이 때가 발해의 전성기로 영토로서는 만주와 연해주 전체를 차지합니다

그러다 이들이 발해 후기에 해당하는 9세기 즈음에 여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을 합니다 숙신의 전음인 것이죠 숙신과 여진은 쥬션, 슈션, 슈르젠, 주르첸 등으로 그 음가가 동일합니다

그러다 발해가 망한 10 세기에 이르러 발해인들이 대거 요나라에 의해 지금의 요서, 요동으로 끌려갑니다 나머지 발해 유민들은 북한지역에서 발해 부흥 운동을 하며 소국들을 세우구요

이런 와중에 공지가 돼 텅텅 비어버린 남만주에 여진이 남하해 터를 이곳 저곳 잡습니다

이 때의 여진은 흑수말갈의 후신뿐만 아니라 만주 곳곳의 남아있던 부족단위의 발해 지방민들까지 아우르는 명칭으로 보입니다

이때까지 이들의 문화수준은 석기ㆍ초기 청동기 수준을 못 면했습니다 호전적이기만 할뿐 농사며 목축이며 원시적이었고 갑옷 만드는 기술도 없었습니다

또한 이 요나라 시기에 여진족들이 엄청 핍박을 받습니다
몽골지배 시기의 남송인들이 받던 핍박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동단국 거란인들에게 여진족 여자들은 성노리개였고 남자들은 전쟁터 화살받이였습니다

그래서 이들 여진족들이 고려 땅 안에 많이 들어와서 살게 됩니다

들어와서 가만히 살면 되는데 난동을 피우니 우리가 알고 있는 윤관의 동북9성 개척에 의해 여진족들이 뭉치게 되고

이들 여진족을 통합한 게 완안여진입니다

이전까지는 여진족들은 고려의 지배력 아래에 있었고 송이든 요든 여진과 통하려면 고려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시기 고려의 북방국경은 지금의 요동반도 중부에서 남만주일대까지입니다

이 완안 여진의 시조가 바로 김함보라는 고려인, 또는 신라인이고
이는 금사, 만주원류고, 송막기문, 고려사 등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서 교차검증이 완벽한 사실입니다

허나 쟁점은 정말 기록대로 김함보 한 사람이 간 것이냐 아니면 김함보로 대표되는 신라유민 일부가 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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