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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02 23:50
[한국사] 600 vs 18700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1,248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02/486263/789752372/824718754/483ba8ffd06010ad1760aae6a0e496aa.JPG

1592년 음력 4월 15일

부산진 전투

 

새벽부터 시작된 공격에

정3품 절충장군 부산진첨절제사 정발 이하 병력 600여명과

백성 2천이 결사항전하였다

 

정발 장군은 이전부터 북방과 중앙 비변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장수였으며

조선 조정은 전쟁의 위협이 커지자 불과 전쟁발발 몇개월 전에

 그를 최전방인 부산진에 부임시킨다

몇 개월간 수성을 위한 노력과 병사들의 훈련에 박차를 가했던 정발 장군이었지만

침공한 왜군의 수는 조정은 물론 그 역시 예상치 못한 규모로 중과부적이었다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02/486263/789752372/824718754/ab193517a793e7b765cae617ef8474a7.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군이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 1차 공격은

 수비군의 격렬한 저항에 막혀 7시에 공격을 중지한다

수 시간동안 교착상태에 빠졌지만,

왜군이 10시경부터 부산진성의 약점을 파악하여 두 방향으로 공격하자

병력을 나눌 수 밖에 없었던 조선군은 결국 정오 12시에 성문을 돌파당한다

 

이후 2차례의 시가전이 벌어졌지만 결국 해가 지기 전에 부산진은

완전 함락당하고 군민 3000여명은 학살당한다

 

조선군민의 저항이 없을걸로 예측했던 왜군의 입장에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후에 조선 통신사 황신에게 일본 장수 마츠우라 시게노부는

 "우리는 부산진 전투에서 좌절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며,

포루투갈 선교사 프로이스의 기록에도

 "거의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싸웠다",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히 높은 훌륭한 병사들"

"가죽흉갑과 철제투구, 개머리판 없는 소총과 수많은 터키식 활로 무장했다"

라고 적고 있다

 

왜군은 곧이어 인근에서 마찬가지로 수성을 하던

다대포진과 서평포진의 격렬한 저항을 가볍게 제압하고

다음날인 음력 4월 15일 동래성으로 향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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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톳불 17-11-03 00:05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터키와 우리나라가 합성궁을 쓰기에 생긴 게 비슷해서 터키식 활이라고 표현한 것 같네요.
촐라롱콘 17-11-03 00:35
   
당시 조선이 전반적인 방어태세가 미흡했고, 일본군에 비해 군세가 열세였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고을과 고을의 수령방백들이 만약 부산진의 정발, 동래성의 송상현처럼 저항했다면

실제 역사에서와 같이 사실상 일본군이 한양까지 진군하는 동안 거의 일본군 제1군인 고니시군만의 힘으로

한양까지 점령당하는 일방적인 열세는 겪지 않았을텐데.....

제가 멋대로 추측한 가정으로는... 조선의 여러고을들이 강력히 저항했다면

대략 영남의 북단에 해당되는 상주-문경 즈음에 이르러 사실상의 전투력이 고갈되어 전력충원없이

더 이상의 북쪽방면으로의 진격은 어려웠을 것이며....

그리고 상주로 급파된 순변사 이일과 충주로 급파된 도순변사 신립 또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병력을 모으고

비록 급조된 병력이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군사훈련도 실시하면서 최소한 적어도 조직력은

좀 더 끌어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가정을 해 봅니다.
     
일경 17-11-03 12:01
   
당시 조선의 방어태세가 미흡했지만 이는 어쩔수 없었다 생각이 듭니다.

조선은 북쪽의 오랑캐 침입을 제외하면 거의 전투 경험이 없는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 일본은 정말 동아시아에서 존재감이 없는 국가였고요.

일본이 처들어 올거라고 다들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 규모일 것이라 생각을 못 한 겁니다.
(참고로 임란 이전의 지도들을 보면 일본이 매우 작게 그려져 있는 지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이본에 대한 인식이 작았다는 반증이죠.)

일본군이 한양까지 진격하는 와중 만난 조선군은 규모가 1천이 넘는 병력이 거의 없습니다. 결사항쟁이고 머고 이정도 격차면 그냥 고속도로죠;;;
     
Leaf 17-11-03 12:26
   
부산과 동래처럼 큰 저항을 못했기에(살아남았기에) 후 일 의병이 활동할 수 있었겠죠. 부산이나 동래처럼 전투를 치룰 수 있는 군관민 전부가 싸웠다면 전투치룰 인원이 없어서 의병도 못 일어났을 듯. 물론 한양까지 쉽게 뚫린거는 육전에서 강했던 신립장군이 조총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서 문경이 아닌 충주에서 싸운게 가장 큰 원인이겠죠. 아무래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 최정예군대로 멕아리없이 털리니 그 보다 능력이 부족한 장수나 병사들이나 겁을 먹었을테고요. 거기다가 왕은 도망가고 있고.
감방친구 17-11-03 00:52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인조 때에 또 당하고
구한말에 또 당하고
6.25 때 또 당하고

남북대치의 전쟁 중인 나라에서
정말 방산비리 해처먹는 거 보면
국가반락죄로 처벌해도 모자를 판에
늘 집행유예ㅡ
뭐꼬이떡밥 17-11-03 02:08
   
이 기록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일본은 백성들이 전쟁이 나면 눈치를 보고  이기는 쪽에 진상을 합니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이 충격을 받은것이죠
싸움은 무사들의 것인데 백성들이 싸움에 참가를 하니까요

또하나는

조선이 얼마나 백성들을 위한 나라였는가 입니다.
정말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무능한 조선이였다면

백성들은 절대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서 싸우지 않았겠죠.

그만큼 통치를 잘해왔다는 증거 입니다
     
감방친구 17-11-03 02:46
   
말씀을 들으니 이 역시 수긍이 가는군요
     
장진동 17-11-03 07:53
   
님 비약이 심하시네
전국토가 털렸는데 무슨 충성심
조선이 무슨 백성을 위한나라라고 쉴드까지 쳐주십니까
          
버섹 17-11-03 11:02
   
비약이 아니라 일본군이 의병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한 건 사실이죠...
비록 의병이 사대부의 노비들이 많았지만...
진주성이나 이치 전투 등 많은 전투에서 백성들의 참여가 있었죠...
조총으로 무장한 강력한 왜군에게 투항하지 않고,
저항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조선민으로의 자부심이 있지 않고 뭣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장진동 17-11-03 18:54
   
그건 자기 터전을 지키려 한거지 조선을 지키려한건 아닙니다,조선민의 자부심은 님 조국에가서 부리세요 ^^
                    
자기자신 17-11-04 02:52
   
장진동//조선을 지킬렸고 한것데 무슨소리세요 터전이요? 나라가 없어지면 그게 무슨 소용이죠? 그터전도 전부다 일본인들의소유가 될텐데 님이나 그런소리 역사갤러리에 갔어 하세요 조선을 지킬렸고 일어선것예요 나라가 있어야 자기네터전도 있습니다 알았어요^^그리고 이상한소리 하시네 여긴 한국이지 외국이 아닙니다^^
기적 17-11-03 02:38
   
왜놈들에겐 선제기습공격이 정석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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