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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08 10:09
[한국사] 백제와 낙랑 정정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668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은연 중에 계속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ㅡ라고 생각하였네요

낙랑군은 요서에 있었는데 말이죠

이게 요동ㆍ현도ㆍ낙랑의 한 군현의 소재지를 일괄 고찰 정리하지 않은 탓입니다

백제 초기의 낙랑은 서북한의 낙랑국이 맞고
246년 고이왕 대에 245 년 만에 등장하는 것은 낙랑군이 맞네요

이렇게 정정합니다

그리고 백제는 그 건국 최초기에 요동 남부, 경기 북부에 해당하는 두 거점의 이원 체제였다는 추정은 계속 고수하겠습니다

그리고 서기 44년 살수 이남 낙랑의 한나라 재귀속 문제는
꼬마러브님의 견해를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 문제는

1) 살수 이남이 다시 한나라 땅이 됐다는 고구려 본기 44년 기록에서 이 '다시'라는 부사어
ㅡ 그렇다면 37 년 이전에는 이곳이 한나라 땅이었다는 뜻인가?

2) 패수는 두 곳인가?
ㅡ 백제는 그 건국 초부터 패수를 경계로 고구려와 맞대고 있었는데 이 때는 낙랑국이 존재하고 있을 때이다
ㅡ 백제 초기의 낙랑은 백제 동쪽에 있었다
ㅡ 패수를 대동강에 한정한다면 설명이 안 된다
ㅡ 즉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로서의 패수는 요동의 패수라 봐야 타당하다
ㅡ 가뭄이 들어서 패수와 대수 사이의 백제 가호 1,000여 호가 고구려로 대량 이주한다
ㅡ 이 패수가 대동강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백제를 괴롭히던 낙랑국이 가만히 두고 봤겠는가
ㅡ 물론 서북한에도 패수라는 이름의 강이 있었다고 동시에 상정해야 한다

3) 살수는 두 곳인가?
ㅡ 고구려 남쪽 국경으로서의 살수, 낙랑국의 북쪽 경계로서의 살수, 살수이남이 다시 한나라 차지가 됐다는 44년 기록의 살수는 서북한에 비정할 수밖에 없고 살수의 이름을 지니고 있던 청천강으로 볼 수밖에 없다
ㅡ 그러나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의 살수, 강감찬 귀주대첩의 다하ㆍ타하로서의 살수는 압록강 위치 고찰과 맞물려 요동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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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2-0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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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7-06-09 12:45 답변
이에 대해서는 후한서와 책부원구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책부원구> 한국(韓國)의 염사 사람인 소마시 등이 낙랑으로 와서 공물을 바치니 황제께서 소마시를 염사읍의 군사로 삼아 낙랑군에 속하게 하였고 계절마다 조알하게 하였다.

 <후한서> 건무(建武) 20년(서기 44년), 한국의 염사 사람인 소마시 등이 낙랑군에 배알하고 조공을 바쳤다. 광무제는 한염사읍군에 봉하고, 낙랑군에 복속시켜 사철마다 입조시켰다.

- 이 기록에 나오는 한국이 낙랑국일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낙랑국이 위치했던 평양지역이 원래 마한의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 기록에 따르면 낙랑국(한국)은 낙랑군에 속하기를 바랬으며, 서기 44년(건무20년)에 한사군의 낙랑군에 속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어서, 삼국사기를 보면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삼국사기> 대무신왕 27년(서기 44년) 가을 9월, 한나라 광무제가 군대를 보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았으므로, 살수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 광무제가 살수 이남의 낙랑을 군현으로 삼았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서기 44년입니다. 위의 <후한서>의 기록 역시 서기44년이고요. 다시 말해, 교차 검증이 된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평양의 중국계 유물들이 후한시대의 것이 집중되서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본다면 딱딱 들어맞죠.

낙랑국은 고구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중국에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삼국시대 후기의 신라처럼 말입니다.

 꼬마러브 17-06-09 12:51 답변
다만, 실제로 당시 한나라가 한반도의 낙랑국을 군현으로 다스렸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낙랑군이 두 곳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나라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쟁취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한나라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던 것이고.
앞서 말했듯 평양 지역의 중국계 유물도 이런 식으로 설명이 되는 겁니다.
Marauder 18-02-08 12:07
   
그렇다면 기존의 평양설은 어떻게 바꾸시는건가요? 꼬마러브님 말처럼... 후대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다라고 생각하시는건가요?
     
감방친구 18-02-08 15:50
   
아니 이 얘기가 어떻게 그 얘기가 됩니까
          
Marauder 18-02-08 16:24
   
낙랑 = 평양이 기존설 아니었나요. 평양을 요서로옮기거나... 낙랑과 평양을 분리해야하는데 평양을 요서로 옮기면 요동성과 기존 지리 자체가 무너지게되고...
그렇다고 낙랑과 평양을 분리하시진 않으리라 생각해서요.
               
감방친구 18-02-08 17:10
   
아니 그게 뭔 말입니까(샘 오치리 말투로)?

제가 헷갈렸다고 님까지 그러시면 안 됩니다 ㅠㅠ
가난한서민 18-02-08 12:09
   
제 생각엔 백제 초기엔 요동에 있었고 백제의 왼쪽엔 낙랑군이 있었으며
백제의 아래에는 마한이 있었을거 같습니다. 이후에 마한을 병합하고
마한땅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생각합니다. 백제 건국설화에도 남으로 내려가서 건국했다고 하고
모두 알다싶이 백제의 百(일백 백)濟(건널 제) 라고 100개의 가구가 건너서 백제[百濟]라 하였다. 라고 나와있잖아요
고구려는 이땐 그 백제의 오른쪽에 있다가, 나중에 요서를 차지하고 요서로 수도를 옮겼다고 생각합니다.[평양성]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감방친구 18-02-08 15:58
   
꼬마러브 18-02-08 13:23
   
대무신왕 27년(서기 44) 가을 9월, 한나라 광무제가 병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서 낙랑을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살수(薩水)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二十七年 秋九月 漢光武帝遣兵渡海 伐樂浪 取其地 爲郡縣 薩水已南屬漢

"다시"라는 부사어는 없네요.

또한 적어도 위만조선과 한의 경계였던 패수는 지금의 난하 부근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나
한사군이 세워진 이후, 여러 유민들이 도미노처럼 한반도로 밀려 들어오면서
지명도 같이 이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낙랑군과 낙랑국, 고구려현과 고구려국 등의 이름이 서로 중복되듯이요.

고구려와 백제 경계로서의 패수는 낙랑국에 의해 막혀있으므로 서북한에 위치할 수 없겠죠.
     
감방친구 18-02-08 15:53
   
그러네요
이래서 기록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자, 그럼 다행이고 계속 힘차게 나아가 봅시다 ㅎㅎ
감방친구 18-02-08 18:28
   
1)위만이 동으로 건넌 패수와
2)고ㆍ백이 남북으로 국경으로 삼은 패수
는 다른 곳

1)은 난하, 혹은 백하
2)는 태자하

추정

또한
살수대첩과 귀주대첩의 살수는 혼하 상류, 청하, 또는 태자하 상류에 비정함이 타당
고구려 남계로서의 살수는 현 청천강에 비정함이 타당
하다

낙랑군 수성현 문제로 낙랑군 소재지를 찾는 것은 무용하다고 판단됨

낙랑군은 3세기에 하북성 방면, 만리장성 안으로 교치됐기 때문에

태조대왕의 요서 10성의 타당성
이미 후한 말부터 만리장성 밖은 한나라의 통제력이 상실, 간접통치 지역
     
도배시러 18-02-08 22:27
   
낙랑군 수성현은 역주상곡군 수성현 과의 혼선이라고 주장하고 싶네요.
당나라 역주상곡군 수성현에서 진장성의 축성이 시작했다고 통전은  주장합니다.
그리고 낙랑군 수성현에서 또 헤메기도 하지요.

당나라 역주상곡군 수성현에 북위의 남영주 낙랑군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시대를 헛갈려서 여기가 낙랑군 수성현이라고 해도 근거가 충분합니다.
깊게 살펴보지 않는다면 헛갈릴 요소가 다분한, 지명변경이 잦았던 지역입니다.

진서지리지 낙랑군 수성현의 기록은 당나라때 편찬했구요.

연나라 무수 - 전한 북신성 - 신성 + 청원 - 북위 남영주 낙랑군 - 신창 -  수나라 수성현 - 역주 수성현
          
감방친구 18-02-09 02:44
   
역사라는 게 말그대로 역사는 역사네요
하나부터 열까지 천 년, 이천 년, 수백 년 전 사안이 다 구슬 엮이듯 연결돼 있으니까요
               
도배시러 18-02-09 02:53
   
간혹 지명이 자주 변경되는 경우가 있는데... 추적하기 까다롭습니다.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8세기까지 추적해야 알수있는 지명이더만요
징기스 18-02-09 10:45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주장은 이제 식빠들 말고는 다들 통설로 믿던데 그게 아니었나요?
현조 18-02-09 18:19
   
백제(百濟) 국명에 관하여 다른 이견으로 제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백가(百家) 그러니까 백여 가문의 백성들과 함께 제주(濟州)와 해주(海州)에 정착하였다는 생각입니다. 그 지명들은 역시 산동성(山東省)의 청주(靑州) 지역에 속하는 곳들이지요.

실제로 그런 기록이 나와 있는데요. 堯時嵎夷為青域, 測景自當在朝鮮也(요시우이위청역, 측경자당재조선야). 인데 직역하자면 " 요나라(堯) 시대, 우이(嵎夷)는 청주(靑州) 지역이고, 측경(測景)하니 스스로 당연히 조선(朝鮮)에 있었다 "는 거지요.


[後漢書]及杜氏[通典], 皆以東夷九種為嵎夷;
其地在漢樂浪玄菟郡界; 而[青州]首書"嵎夷既略", 則朝鮮·句麗諸國禹時實皆在青域..
[후한서]급두씨[통전], 개이동이구동위우이;
기지재한낙랑현토군계; 이[청주]수서"우이기략", 견조선·구려제국우시실개재청역..

▶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두우(杜佑)의 통전(通典)에 의하면,
모든 동이(東夷)의 구종(九種)은 우이(嵎夷)이다;
그 지역은 한나라(漢) 당시의 낙랑(樂浪)·현토(玄菟) 군등의 경계(안)에 있고;
청주(青州)는 수서(후한서)가 이르기를 "우이(嵎夷)가 이미 다스린 곳"이고,
보기에 조선(朝鮮) · 고구려(高句麗) 등 여러 나라가 우(禹) 임금시대에 실제 다 청주지역에 있었다..

-

당연히 고구려(高句麗)에서 내려왔으면 백제(百濟)가 처음 나타나는 지역은 산동성(山東省)의 청주(靑州) 주위에서 이웃하는 제주(濟州)와 해주(海州) 지역이라는 것을 짐작케할 수 있습니다.
     
도배시러 18-02-11 01:05
   
산동반도 청주는 고대의 요동입니다.
황하 하류라서 퇴적물에 의해 지형변화가 수시로 있고
하천 범람에 의한 홍수가 잦은 지역이죠

홍수기록과 비교해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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