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명배금 정책?
인조에 대해 가장 큰 오해가 친명배금 정책입니다. 일단 한명기 교수의 얘기를 언급하죠
인조의 대후금정책은 기미책, 현상유지책 이었다.
- 정묘, 병자호란과 병자호란 한명기 교수 -
광해 11년 12월 17일 병인 5번째기사
의주 부윤이 호인에게 포로였다 도망친 황덕영 황덕창의 탈출을 보고하다
(전략) 그리고 노추는 아들과 딸이 매우 많아 장수로 삼은 자가 세 사람인데, 그중 제3자인 홍대시(홍타이지)가 늘 그 아비에게 우리 나라를 침범하자고 권하고 있으며, 장자인 귀영개는 「사면으로 적과 응전할 경우 원한 관계에 있는 대상이 너무 많으니, 이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이치가 전혀 아니다.」고 하면서 화친을 주장하고 있는데,..(후략)
한명기 교수는 인조의 외교정책이 친명, 후금에게는 기미책을 펼쳤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묘호란의 원인은 청 내부사정과 외부사정이 겹쳐 일어난 전쟁, 호란의 원인은 청의 사회 경제적으로 대기근이 왔고 가도의 모문룡문제와 홍타이지 본인의 조선에 대한 강경책이 맞물려 일어난 전쟁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란은 사실 피할수 없는 전쟁이었죠. 저 실록의 기사를 보시면 이미 누르하치가 살아있었을때 부터 홍타이지는 전쟁을 주장하고 있었고 결국 홍타이지가 권력을 잡게됬죠.
그리고 첫 문장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나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적에게 굴복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라는 명제만 보더라도 전쟁을 원인을 피해측에게 묻는 것도 참으로 말도 안되는 것이죠. 나치의 폴란드 침략을 폴란드에게 "폴란드, 너가 잘못해서 일어난 전역이야!" 라고 할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호란에서의 대처는 비판할수 있겠지만 호란의 원인을 피해측인 인조정권에게 묻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부가설명을 하겠습니다. 인조때 외교는 광해때 외교의 연장선이라고 불립니다. 광해군때부터 시작된 후금에 대한 기미책과 명에게 들어간 막대한 양의 뇌물. 이것이 인조때 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말이죠.
광해 11년 12월 17일 병인 5번째기사
의주 부윤이 호인에게 포로였다 도망친 황덕영 황덕창의 탈출을 보고하다
(전략) 그리고 노추는 아들과 딸이 매우 많아 장수로 삼은 자가 세 사람인데, 그중 제3자인 홍대시(홍타이지)가 늘 그 아비에게 우리 나라를 침범하자고 권하고 있으며, 장자인 귀영개는 「사면으로 적과 응전할 경우 원한 관계에 있는 대상이 너무 많으니, 이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이치가 전혀 아니다.」고 하면서 화친을 주장하고 있는데,..(후략)
이미 홍타이지는 누르하치가 살아있을시절 (광해군 즉위시절) 조선정벌을 건의하던 사람이고 그가 왕이 되면 광해건 누구건 조선정벌은 필연이었죠.
(2) 인조는 청을 선택했어야 한다?
인조가 청을 선택했어야 한다는 말이 네티즌들에게서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의견이 타당한가? 아니죠. 명나라는 이자성의 난 전까지 청이 넘기 힘든 나라였습니다. 이미 영원성을 넘지 못했고. 몽골쪽으로 우회해서 들어온 청군을 원숭환이 뭉게버리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대로 버텼으면 청군은 자멸입니다. 왜냐? 내부적으로 대기근이 왔고 그것을 조선에게서 충당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죠. 명도 내부적으로 시궁창이었지만 청도 내부가 시궁창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말이죠.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 그건 지금 우리가 역사를 알고있으니 가능한거죠. 그때는 사실 몰랐던 겁니다.
(3) 인조는 업적이 없다?
인조가 외치에서 최악이었고. 인사문제도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치에서도 최악이었나? 아닙니다. 인조는 내치에서 평타~평타 이상 정도는 했죠. 우선 대동법 확대실시가 있죠 내부적으로 가뭄이 와서 이원익등이 반대해 결국 폐지되었지만 강원대동법이 존속되었고 대동법이 확대실시되는 기반을 마련하죠. 그리고 군사적으로도 병자호란이후 총병의 입지를 강화시키며 조총중심의 편제의 기반을 마련한 것도 인조때입니다. 그리고 호패법 실시를 하며 인구를 파악하죠. 내치에서는 뭐라할곳은 없습니다. 다만 인사문제가 문제였지만 말이죠.
저의 바램이지만 역사교육이 잘되어서 이런 오해들이 없어지길 바랍니다. 제발 교과서가 학자들의 의견좀 반영해 주길..
조선이 잘해주든 말든 홍타이지는 산해관에서 원숭환 못 뚫어서 식량난에 처하자
약탈할 생각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