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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12 13:09
[기타] 스키타이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693  

한편, 기원전 8~7세기쯤 흑해 지방의 초원 지대에 유목 민족인 스키타이족(Scythians)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우라르투의 유적들이 소련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기 이전에는, 러시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보통 이 스키타이족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까닭은 이들이 오늘날의 러시아 영토에 살았던 민족들 가운데 「사기()」에서 언급된 최초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 예컨대 기원전 5세기에 활동했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가 쓴 「역사」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교역과 식민의 대상으로 삼았던 스키타이족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들을 키메리아족 또는 메오티아족(Maeotians)의 후계자라고 지적했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스키타이족이 키메리아족을 정복한 것으로 믿고 있다.

스키타이족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했으며 이란어를 썼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몽골족의 요소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유목민들이어서 천막과 같은 유동적인 집에서 살았는데, 이 집은 주로 황소들이 끌었다. 그들은 말을 몇 마리 갖고 있느냐에 따라 빈부를 따졌으며, 말을 음식으로 쓰기도 했고 말젖을 즐겨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농사를 짓기도 했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족이 "모든 외국적 습관들을 극도로 증오했다."고 썼다. 그렇다고 해서, 스키타이족의 생활 습관이 이웃들의 생활 습관에 비해 세련된 것은 아니었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족의 생활 습관이 훨씬 덜 세련됐다고 보았다. 그들은 적군의 해골을 잔으로 썼으며, 왕이 죽으면 왕이 사랑했던 말들과 시종들을 함께 묻었다. 그들은 또 여신을 숭배했다.

스키타이족은 하나의 제국을 이룩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는 아니었고, 여러 부족들의 느슨한 연합 체제였다. 이들의 물질적 생활은 넉넉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귀족이나 고관의 무덤에서 아주 화려한 금세공 같은 것이 수없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이들의 문화적 영향은 중앙아시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먼 시베리아에서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력한 군대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심은 언제나 전투 태세를 갖춘 기마병 부대였던 것 같으며, 초토 작전에 능했던 것 같다.

위세를 떨치던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Darius)의 군대를 격퇴시킨 것도 스키타이의 기마병 부대였다. 다리우스는 패전한 뒤 귀국해 "스키타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쪽에 있는 것 같아 공격하면 이미 사라졌고, 저쪽에 있는 것 같아 공격하면 거기서도 이미 사라졌다."고 탄식했다. 이것은 스키타이의 기마병들이 얼마나 신속하게 이동하며 싸웠는가를 말해 주었다. 이러한 부국강병에 힘입어 스키타이 제국은 한때 이 지역에서 이른바 스키타이의 평화(Pax Scythia)를 누렸던 것으로 짐작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키타이 제국의 흥망 (러시아사, 2006. 11. 15., 미래엔)


스키타이란 이름이 최초로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아시리아의 에사르하돈(Esarhaddon)왕(재위 기원전 681~669)의 연대기에서다. 아시리아인들은 그들을 ‘아슈쿠자이’(Ashkuzai)라고 불렀다. 기원전 7세기 후반부터 흑해 북안에 여러 개의 취락을 형성하고 스키타이와 교역을 시작한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스키타이’(Skythai) 혹은 ‘스키테스’(Skythes)라고 불렀다. 그러나 스키타이들은 자신을 ‘스콜로텐’(Skoloten), 혹은 ‘슈크’(Shk)라고 일괄 지칭하였다.

아시리아인들의 ‘아슈쿠자이’나 그리스인들의 ‘스키타이’란 이름은 이 ‘스콜로텐’이나 ‘슈크’의 음사로 추측된다. 고유문자를 갖지 않은 스키타이에 관한 연구는 아시리아인과 그리스인들이 남긴 문헌기록이나 스키타이의 거주 유적과 분묘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키타이와 동시대를 살았던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425?)가 쓴 『역사()』(Historiai)와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Strabōn, 기원전 64~기원후 21년경)이 남긴 17권의 『지리서()』(Geographica)를 들 수 있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 사이에 남러시아 초원지대를 본거지로 하여 활동한 이란계의 유목민이다. 그들은 기원전 7세기 전반에 강대한 유목민인 킴메르를 그들의 본거지인 북캅카스로부터 축출하고, 기원전 625년경에는 메소포타미아에 침입해 이집트까지 위협하였다. 그후 수차례에 걸쳐 서남아시아에 대한 침투를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강력한 기마 기동력을 보유한 스키타이는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지 도시들과 교역을 하는 한편, 우랄 산맥을 넘어 멀리 알타이 지방까지 진출하는 동방 원거리 교역에도 종사하였다.


스키타이의 동방교역


스키타이는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명저 『역사』(제4권 13장과 16~36장) 속에 기술되어 그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헤로도토스는 말모라도 출신의 이리스데아스가 동행()하여 잇세트네스인들이 살고 있는 곳까지 왕복한 사실을 전하면서, 스키타이인들의 동방 교역로를 소개하고 있다. 기록은 다음과 같다.

“이리스데아스는 흑해 동북방에 있는 아조프해에서 출발하여 돈강을 건넌 후 볼가강을 따라 북상하다가 우랄 산맥을 넘어서 줄곧 동진한 끝에 드디어 잇세트네스인들이 살고 있는 말타아 산맥 지대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7명의 통역원이 필요할 정도로 연도(沿)에는 각기 다른 여러 민족이 살고 있다. 돈강 유역에는 사우로마다이인이, 돈강으로부터 볼가강 중류까지의 지역에는 브테노이인과 케로스인이, 그 동북 편에는 인구가 많은 둣사케다이인에 이어 유르가이인과 스키타이 분파, 알켓바이오이인이 각각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쪽에 잇세트네스인들의 거주지가 있다.”

스키타이가 동방 원거리 교역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물품을 교역했는지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에도 언급이 없으나, 당시 스키타이가 그리스의 식민지를 통해 그리스인들과 주고받은 물품들을 살피면 스키타이의 동방 교역품 내역을 추측할 수 있다. 스키타이는 그리스에 말 · 기장 · 콩류 · 아마 · 모피 · 황금 등을 수출하고 금은 장식품과 상아 세공품 · 청동기 등을 수입했는데, 동방에서 가져간 물품은 동방 특산의 모피 · 견직물 · 세공품일 듯하다. 스키타이의 동방교역은 동물 문양 등 특유의 스키타이 문화와 그에 수반된 그리스문화가 동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스키타이의 문화 유적


남러시아 일원을 중심으로 수세기 동안 활동한 스키타이가 창조한 문화는 그 변화과정을 전기 · 중기 · 후기 3기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는데, 시기마다 스키타이에 의한 동서교류상이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① 전기: 쿠반 · 아조프 시대(기원전 6~5세기). 이 시대의 유적(분묘)은 주로 쿠반강에서 아조프해 연안에 이르는 지대에 산재해 있는데, 분묘는 목재를 이용한 목곽묘()이며 말을 부장()한 경우가 많다.

마이코프(Maikop)시 근교의 켈레르메스(Kelermes) 고분에는 24필의 말을, 같은 시 부근의 울스키즈(Ul’s kij) 고분에는 무려 360필의 말을 부장하였다. 이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아키나케스형 단검과 삼각촉() 같은 스키타이계 무기류가 있으며, 유물의 내용이나 문양에서는 아시리아페르시아를 비롯한 고대 오리엔트의 영향이 역력하다. 이 시대는 스키타이의 전성기다.

② 중기: 드네프르 시대(기원전 4~3세기). 이 시대에 스키타이는 사르마트(Sarmat)인들에게 쫓겨 드네프르강 유역으로 이동하여 그리스 식민도시들과의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하여 스키타이 문화에는 일련의 문화적 접변()이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고분 유적에서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 아조프해 남안의 케르치(Kerch) 시 근교의 체르톰리크(Chertomlyk) 고분과 솔로하(Solokha) 고분은 이 시기의 대표적 유적이다.

쿨오바 고분은 돌을 깎아 만든 석실분()이고, 체르톰리크 고분은 지하에 3개의 목곽을 가진 목곽분()으로 말 11필이 부장되어 있다. 솔로하 고분은 지하를 뚫어 수광()과 묘실을 만든 분묘다. 이 시기에는 목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목곽분은 적으며, 말의 부장량은 줄어들었다. 이에 반해 그리스 식민도시들과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호화로운 그리스 제품에 대한 스키타이인들의 기호나 이용은 급증하였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문화적 접변을 가져왔다.

③ 후기(): 크림 시대(기원전 2~1세기). 이 시기에 스키타이는 사르마트인들에게 쫓겨 크림 반도로 이동해 정주하였다. 그들의 수도는 신페로폴(Sinferopol)시 동남쪽에 위치한 네오폴리스였다. 이 고도 유적에서는 양건연와()와 목재 주택, 지하창고 등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었다.

지하창고에는 그리스나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도시에서 수입한 도기가 다량 비축되고, 그리스어 명문()이 새겨진 조각품도 소장되어 있었다. 이러한 유적에서는 기마유목민족으로서의 스키타이식 맹위() 같은 것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 문화에 흡수 · 동화되었으며, 결국 스키타이 문화는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스키타이의 사회와 문화


스키타이는 강력한 세력으로 수세기 동안 동분서주하였지만 한번도 통일된 국가를 건립하지 못하고, 그저 여러 유목부족들의 공동체로서 존재하였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스키타이 사회는 총체적으로 왕족() 스키타이(돈강 하류에서 쿠반강 유역), 혼혈 스키타이(그레코 스키타이, 드네프르강 하류), 농경 스키타이(드네프르강 중류), 유목(목축) 스키타이(드네프르강 동쪽)의 4대 집단(부족군)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왕족 스키타이는 지배집단으로서 각지에 태수()를 파견하고 부족장을 통솔하였다.

왕족 스키타이와 유목 스키타이는 기마에 능해 주변 그리스 식민지들과 활발한 교역을 진행하였는데, 그리스에서 포도주 · 올리브유 · 금속제품 · 장신구 · 갑옷 · 투구 등을 수입하였고, 꿀 · 가죽 · 물고기 · 밀 · 우랄산 황금 등을 수출하였다. 스키타이들은 그리스인들과의 우호 공존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였으며, 정복전쟁에서 획득한 포로들을 노예로 공급하였다. 그리스에서 이들 노예는 하인 · 도공() · 궁사() 등으로 고용되었으며, 한때는 도시경찰에 임용되기까지 하였다.

말 위의 궁술가()로 묘사되는 스키타이들은 도시도 성채도 없이 가재()를 실은 수레를 집으로 삼아 이동하면서 살았는데, 그들의 기동력이나 전투력은 당대의 그 누구도 따를 수가 없었으며, 사회 전체가 군사적 색채를 농후하게 띠고 있었다.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들의 가장 중요한 특이성은 그들을 공격한 어떠한 적도 그들로부터 도망갈 수 없고, 그들이 피하고자 하면 어느 누구도 그들을 잡을 수 없다는 점이라고 자탄 어린 지적을 한 바 있다. 각 부족별로 기마 전사단()이 조직되었으며, 병력은 건장한 남성의 징병으로 충당하나 필요에 따라 지원병도 포함시켰다. 부족장은 언제나 진두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전투를 지휘하며 퇴각을 불허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하면 스키타이들의 무사정신과 승전욕, 그리고 형제관계는 특별하였다. 무사가 첫번째 적을 죽이면 적의 피를 마시는 의식을 거행하며, 살해된 적의 머리가죽을 벗겨서는 무두질해 손수건이나 옷으로 쓰기도 하고 말고삐에 매달아 과시하기도 한다.

적의 두개골은 가죽이나 금으로 덧씌워서 사발로 사용하고 벗겨낸 오른팔 가죽은 화살통 덮개로 쓰기도 한다. 형제관계는 서로의 신성한 의무로 간주해 엄숙한 서약을 통해 의형제를 맺고, 상호 충절을 확인한다. 그리스 작가들의 서술에 의하면 이러한 서약의식으로 손가락을 베어 피 몇 방울을 포도주가 가득한 술잔에 떨어뜨린 후 검과 창, 전투용 도끼, 화살촉 등을 술잔 속에 담근다. 그러고 나서 엄숙한 기원문을 낭독하고 술잔을 들이킨다.

스키타이들의 무사정신이나 스키타이 사회의 군사적 성격은 마구()와 기마전술용 무기가 발달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유물 중에는 안장 · 가죽 등자() · 청동제 갑옷 · 짧은 활 · 방패, 특히 양인() 단검인 아키나케스(Akinakes)형 단검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스키타이들의 종교의식은 토테미즘, 샤머니즘적이다. 그들은 자연현상을 의인화()한 신들과 동물들을 숭배하였다. 그러나 신을 위한 신전이나 조상()을 세우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전쟁신()은 각별한 의의가 있는바, 전쟁신을 위해서는 공물과 희생을 바칠 특별한 제단을 세웠다. 해마다 마른 장작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리고 그 꼭대기에 아레스(Ares, 전쟁신)의 상징인 오래된 철검을 꽂아놓곤 하였다.

-후략- 길어서 짤림

[네이버 지식백과] 스키타이 [Scythai] (실크로드 사전, 2013. 10. 31.,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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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 18-03-13 17:22
 
저는 스키타이 -흉노-훈-돌궐 모두 다인종, 다부족 공동체로 보는 입장입니다.
그러기에 여러 문물의 융합의 용광로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결국, 그런 까닭으로 위 언급된 그리고 언급 안되었지만, 유목민족들은 각자 불리우는 이름은
달라도 결국은 같은 정체성과 성격을 지니고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점이 우리가 스키타이를 서양의 역사가 아닌, 우리와 함께 한 역사의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분명 스키타이에도 퉁구스계나 고아시아계 부족도 함께 했을 것이고 코카서스도 함께 했을 것 입니다.
그건, 스키타이가 코카서스인일 거란, 추측과 다르게 헤로도토스의 스키타이에 대한 기록에서도 찾을수 있습니다.......암튼 유목민족의 초원의 역사도 반드시 우리가 연구해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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