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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15 12:00
[한국사] 발해국과 소고구려국에 대하여(남북통일님의 글에 대한 보충)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392  

발해국기

 

1)발해국기는 당나라의 장건장이 저술한 발해의 역사서이다.

장건장(張建章:806~866)은 중산(中山) 북평(北平) 출생으로, 당나라의 유주종사로 근무했던 인물이며 833년 발해에 1년간 머물렀다. 당으로 귀국한 후에는 견문한 것을 토대로 834년에 저술한 발해 견문록으로, 발해의 풍속 관품 궁전 등에 대해 기록하였다. 현존하지 않으며, 신당서(新唐書)》 《송사(宋史)》 《통지예문략(通志藝文略)등에 이 책의 서명과 인용된 내용이 전한다.

책은 총 3권으로 알려져 있으며신당서(新唐書), 숭문총목(崇文總目),옥해(玉海)에서 발해를 이야기하면서 한 구절만 간략하게 인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전문은 전해지지 않는다.

신당서 <발해전(渤海傳)>에 이 책을 근거로 발해의 역대 국왕의 시호 연호 관제지리 교통 물산 등에 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어서 그 일부 내용을 복원할 수 있다. , 전국에 51562주가 있으며, 숙신(肅愼)의 옛 땅을 상경(上京)으로 삼아 용천부(龍泉府)로 했다는 기사 등은 이 책을 인용한 것이다. 또한 외부인(중국인)이 바라본 한국이라는 점에서 고려도경이나 신라국기와 비슷한 성격의 책이라 볼 수 있다


2) 황유한의 발해국기: 근현대 중국의 역사학자인 황웨이한(黃維翰)이 저술한 발해 역사서. 314장으로 분류해 작성했으며 1929년에 탈고 했으나 출판되지 못했다. 이후 1933년에 포봉관(鮑奉寬)이 손을 본후 출판을 하게 되었다. 자서(自序)에는 출판 동기가 밝혀져 있는데, 당나라의 장건장(張建章)이 엮은 발해국기3권은 왕응린(王應麟)옥해(玉海)에서 발해를 설명하면서 한 구절만이 인용되었을 뿐 전하지 않으며, 근세에 와서 만주의 당안(唐晏)발해국지(渤海國志), 조선의 서상우(徐相雨)발해강역고를 저술했는데 모두 득실이 있기에 집필한 것이라 하였다.

0450020000672.jpg


 

내용은 상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편은 국호 종족 예속(禮俗), 중편은 지리 직관(職官인물 물산, 하편은 조공중국(朝貢中國교빙일본(交聘日本비린신라(比鄰新羅이국거란(移國契丹유민(遺民잡지(雜識연표 등의 순으로 엮어져 있다.

황유한은 자서에서 지금 군적(群籍)을 망라하는 한편, 해외의 사서까지도 참고하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발해국기 내용 중 발췌)


발해의 옛 강역.jpg

 

상편 국통 중 발해무황제 대무예 기록에서는 시무왕 장서경謚武王 葬西京이라하여 놀라게 한다. 해석하면 시호를 무왕이라 하고 서경에 장사를 치렀다는 기록이다. 이제까지 어떤 역사 기록에도 없었는데 어찌 대무예황제가 압록강 유역인 발해 서경압록부에 묻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발해 2대 황제 대무예大武藝 묘비가 1900년 무렵에 흥경興京에서 발굴되어 사람들이 모여 그의 묘비문을 탁본하여 읽어보니 그를 발해 서경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었었다고 전한다.

 

흥경興京이었던 무순시撫順市 신빈현新濱縣은 발해 압록부鴨淥府 소속이었다 되어있다. 여기서 압록부의 록은 록이 가지변이 되어야 맞는데, 물수변으로 되어있어, 현 한반도의 압록강과 한자가 다르다.

즉, 압록부의 압록강은 지금의 대요하遼河로 들어가는 지류이고 대요하가 발해 압록강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무순은 혼하가 흐르는 지역이고, 혼하는 요하가 쌍태자하와 대요하로 갈리기 전, 대요하에 합류한다. 다만 무순을 지나는 구간의 유량이 서경압록부의 수운을 뒷받침 해 줄지는 의문이다)

묘는 신빈현 노성老城 안쪽 홀한정忽罕井 옆 사당 부근일 수도 있다.

발해 중경 현덕부 현주는 영강주혼동군이었던 대파고성의 남쪽에 있고, 요하투의 북쪽에 있고, 그리고 개원의 동북방에 있다.

발해 첫 번째 중경성, 옛 현주성은 동요하 요하투 유역이면서 평정산平頂山 안에 있다. 동요하 유역의 평정산을 고려하면 이는 공주령시 쌍성자진과 연화산진 사이에 있는 구릉산으로 고려된다. 여기서 송화강의 가지와 동요하의 가지가 각각 발원한다.

 

참고) 푸순(무순) 요하의 지류인 훈허강[渾河]의 중류 남안에 있으며, 선양[瀋陽] 동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다. ()나라 때에 이미 원시적 취락이 존재하여 우리민족의 동방 진출의 거점이 되었으며, ()나라 때 상업도시로 발전하였다.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에 푸순 석탄광의 채굴이 개시되면서 시작되었다. ·일전쟁 이후 노천굴에 의한 채광 확장과 더불어 1924년 구시가(舊市街)의 동쪽에 신()시가지가 건설되면서 근대도시로 발전하였다. 푸순 [Fushun, 撫順(무순), 抚顺] (두산백과)


쌍성자진 가까이에 대조양보大朝陽堡가 남아 있는데 이는 평정산중에 세워진 현주 홀한성에 연결된 마을로 고려된다.

대조영의 사후에 새로 지은 발해 중경성은 발해중경현덕부의 첫 번째 수주首州인 노주盧州로서 장춘시長春市 관성자寬城子.

지금 장춘시 관성자역 북쪽에 있던 관성자성은 성둘레가 남북 4, 동서 7리로 기록되었다. 성둘레가 무려 22리다.

요나라 상경임황부가 27, 금나라 상경이 21.5, 그리고 영안현 동경성의 성둘레가 28리다.

영강주는 호종동순일록 에서 길림시吉林市 오라고성烏拉古城에서 80리 물길인데 장춘시長春市 유수현楡樹縣 대파진大坡鎭 대파고성大坡古城이다.

발해 중경 노주와 발해 구국이 모두 장춘시에 있다. 숙신고지肅愼故地가 장춘시라고 장춘시는 주장한다. 발해 현주는 공주령시 연화산진 동북 산성이다. 고구려, 발해 압록수는 바로 그 남쪽에 있다.

발해 구국 터인 대파고성 부근에서는 돈화현의 육정산 고분보다 100년 빠른 발해 초기 고분이 대량 발굴되었다. 물론 전한시대 숙신肅愼 고분도 발견되었다. 발해고지가 숙신고지였으니 당연하다.

발해국기를 통해, 발해 중경을 길림 남쪽 소밀성으로 보고, 발해 구국을 길림 동남쪽 돈화현 오동성으로 규정한 발해사는 모두 허구임이 증명이 된다.

발해: 중경 -장춘, 서경-무순으로 추정됨 


참고) 발해의 지리에 관한 내용 


1)요서지리지

염주鹽州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염주는 본래 발해 용하군이고 해양, 접해, 격천, 용하 4현이 있었는데 다 폐지하였고 개주와 140리다.

鹽州 本 渤海龍河郡, 故縣四 海洋, 接海, 格川, 龍河 皆廢 隸開州 相去 一百四十里

두만강가의 발해 염주에는 해양, 접해, 격천, 용하 등 4현이 있었는데, 요나라가 발해 염주 이름을 가져다가 압록강의 발해 용하군에 설치했는데, 발해 용하군에는 해양, 접해, 격천, 용하현이 있었지만 다 없앴다.

, 요나라 염주는 본래 발해 용하군龍河郡이었으며 해양海洋, 접해接海, 격천格川, 용하龍河 4현을 두었었는데 폐지하였고, 개주와는 140리이다.

용하군은 지금 북한의 용천군龍川郡이 되었는데, 이 용천군 동남방에 염주鹽州가 남아있다.

다음 목주穆州의 설명을 본다. 요나라 목주穆州는 본래 발해 회농군會農郡이며 회농會農, 수기水岐, 순화順化, 미현美縣등 발해 4현이 있었으나

모두 폐지하였다. 동북으로 개주까지 120리이며 회농현 하나로 통일하였다.

穆州保和軍刺史本渤海會農郡故縣四會農水歧順化美縣皆廢户三百隸開州東北至開州一百二十里統縣一會農縣

 

발해 회농군의 위치는 개주 서남 120리로서 단동시丹東市 동구현東溝縣 고산진孤山鎭으로 추정된다.

다음 하주賀州의 설명을 본다.

요나라 하주賀州는 본래 발해 길리군吉理郡이며 홍하洪賀, 송성送城, 길리吉理, 석산石山 4현인데 모두 폐지하였다.

賀州刺史本渤海 吉理郡故縣四洪賀送城吉理石山皆廢户三百隸開州

발해 남해부가 요양시遼陽市 북쪽까지 있었고, 요양시 동남쪽, 본계시 부근은 발해 삼로군杉盧郡이 있었다.

요나라 노주盧州는 발해 중경 노주의 이름만 빌려서, 발해 삼로군杉盧郡 위치에 두었고 삼로군에 발해는 5현을 두었는데, 산양현山陽縣, 삼로현杉盧縣, 한양현漢陽縣, 백암현白巖縣, 상암현霜巖縣 등이다.

요나라 노주는 재경 동쪽 130리에 있다. 이 발해 삼로군의 흔적이 본계시本溪市 삼송산성杉松山城이다.

을 한으로 읽는 것이 부여식 혹은 일본식이다. (日本 ; 니혼!!! , 고구려 홀본 忽本 발해 홀한성 忽汗城) .

그래서 본계本溪에 흐르는 강이 역시 한수여서 거기 삼로군에는 한양현이 있었다지금의 압록강 유역에는 발해 용하군, 길리군, 회농군 등이 있었다.


2) 명나라 때 전여성田汝成이 지은 요기遼紀 에서 서기 1448, 정통正統13년조에 개원開原에서 동북쪽으로 평정산平頂山 에 현주폐성顯州廢城, 요나라 때 중경中京이 있다고 하였다.

開原 東北 平頂山中 有 顯州廢城者 遼時中京也..肥饒之地 不下萬頃...遼河套

개원의 동북방에 발해 현주성이 있었다. 노주 중경성이 세워지기 중경이기도 했다. 개원 동남방의 길림시 화전현 소밀성은 발해 중경이 절대 아니다.

요나라 중경은 적봉시赤峯市 녕성寗城이고, 또 현주顯州도 아니므로 여기서 말한 중경은 발해 중경 현덕부 현주가 옳다.


3)청나라 양빈楊賓이 지은 [유변기략柳邊紀略 卷1]에서

요하투는 개원의 서북에 있고 구현주의 남쪽에 있다. 遼河套 在開原西北 舊顯州城下라고 하였다.

요하투遼河套는 요하의 만곡부彎曲部를 의미한다. (: 河流 或山脈 轉折 彎曲的地方하투河套; 황하의 만곡부, 음산산맥 아래..).

요하투는 지금 동요하가 이수현梨水縣을 통과하는 만곡부다.

이 부위를 개원開原의 서북이라 한 것이 맞는데, 동시에 또 구현주舊顯州의 남쪽이라 한 것이다.

구현주는 발해 신주에서 400리 육로 거리로서 천보 때 발해 초기 왕도이기도 하다. 훗날의 발해 중경성은 장춘시 관성자로서 노주(盧州)로 고려되고 그 이전의 발해 중경성 현주는 별도일 것이다. 왜냐하면 장춘시는 송화강 아래에 있고 요하투 북쪽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고)

818년 당나라에 조공한 고덕무의 소고구려가 본계시부터 대동강까지 , 요동반도에 자리했던 것을 짐작해 보면. 819년경에 대인수 황제가 이 고덕무 소고구려를 병탄하여 임진강까지 확보하고서, 그때 발해 군현이 새로 설치되었을 것이다.

특히 단동 봉황성은 성둘레가 10000m에 달하는데, 만주에서 제일 큰 산성山城이다평지성까지 치면 5위 정도의 규모이다.

그러나 그렇게 성이 큰 데도 불구하고, 고구려 수도가 여기 있었던 적이 없다

(북한은 이 지점은 고구려의 평양이 한 때 있었다는 주장을 내 놓은 적이 있다. 필자역시 서안평 지역에 고구려의 평양이 한 때 있었다고 추정을 했었다 )

다만, 당나라 안동도호부 도독으로 임명받아 자립하였던 고덕무의 소고구려(699~820) 때에 도성으로서 이 단동 봉황성이 건설되었을 수도 있다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713년 당나라가 고려대수령高麗大首領으로 인정한 고정전高定傳은 그 고덕무의 후예다.당나라 사자 최흔은 대련 땅을 가졌던 고정전의 소고구려를 거쳐서, 발해에 들어가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하고 돌아간 것이 된다.

위 내용을 통해, 다시한번 발해국의 5경의 위치 고찰과, 고덕무의 소고구려국(비록 기미국이였지만 121년을 유지함)의 역사를 확인해 보고, 또한 정안국의 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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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3-15 12:14
   
히스토리님, 이 글 본인이 직접 거론된 사서 직접 찾아 고찰한 후에 직접 쓰신 건가요?
history2 18-03-15 12:18
   
제가 직접 문헌을 찾을 정도의 실력은 안되고요,,,,,여러문서 중 발해, 소고구려, 정안국 중 제가 원하는 내용을 취사 선택했습니다... 다만 저 역시 위의 내용에 100% 만족은 안됩니다...지형지리 때문에...남북통일님께 도움이 될까하서요
감방친구 18-03-15 12:18
   
저는 제가 직접 사서를 비교 분석 고찰하여 발해 서경압록부가 현 압록강이 아니라 혼하 일대이며 무순을 중심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님에게도 그렇게 설명한 바가 있죠

또 정안국은 무순 지역에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님은 발해 회원부 자리를 거론하셨고요

그런데 불과 일이주 사이에 생각을 전환하신 것은 물론 이렇게 풍부하게 다양한 근거를 사서를 거명하며 논설을 하고 계신데 어떻게 된 건가요?
history2 18-03-15 12:18
   
정안국 내용 항상 검색해서 일단은 저장해 놓거든요 ....
history2 18-03-15 12:19
   
제 글에는 무순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을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감방친구 18-03-15 12:19
   
잘 알겠습니다
아무튼 내용 자체는 저에게도 도움이 되는 풍부하고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history2 18-03-15 12:20
   
수량이라는 부분에서 ... 이 글은 님의 글과는 상관이 없는 곳에서 발췌 했습니다
history2 18-03-15 12:20
   
다음 블로거인 향고도라는 분의 글이네요 ^^ 다 는 아니고 혼하 부분만요
history2 18-03-15 12:22
   
그리고 지난번 독산님도 무순이라는 멘트를 주셨는데, 무순을 다들 서경 압록부로 설정을 하셔서 다소 의아하긴 합니다... 발해국기라는 책 때문인것 같아서 책을 구해 읽어보려 합니다
남북통일 18-03-15 13:54
   
일단 발해의 강역을 한번 유추해 보고 싶은데.......
흠.....
발해 강역에 관해서는 신당서와 요사의 사방 오천리 구절 외에는 증거가 더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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