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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6 18:31
[한국사] 낙랑이 평양이 된 이유? (후한서 왕경전 한 구절)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389  

대동강 남쪽 강변에 아주 오래된 고분들이 널려 있습니다.”

 

190910, 통감부 고건축 촉탁이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는 평양일보 사장인 시라카와 쇼지(白川正治)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세키노는 당장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갔다. 과연 시대를 알 수 없는 고분이 군집해 있었다. 세키노 일행은 서둘러 고분 2기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발굴 결과는 흥미진진했다. 벽돌()로 만든 무덤방에서 청동거울 2점과 각종 무기, 토기, 그리고 오수전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석암동 전실분이다. 발굴유물둘은 대부분 일본으로 반출됐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11월 말, 도쿄대 교수인 하기노 요시유키(萩野由之)와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이끄는 발굴단도 똑같은 형식의 무덤을 조사했다.(석암동 을분) 이곳에서는 ×’명 칠기부속금구와 청동거울, 금동식기, 귀고리, 팔찌 등이 확인됐다. 이 유물들 역시 일본으로 반출된 뒤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소실됐다.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 평양 대동강변 고분 2기를 조사한 세키노 다다시와 하기노 발굴팀의 판단은 둘 다 고구려 고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19102,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즉각 반론을 폈다. 1903년과 1905, 자신(도리이)이 지안(集安)에서 확인한 고구려 고분들과 이 석암리 고분의 구조는 명백하기 다르다는 것이었다. 특히 벽돌로 만든 전실묘(塼室墓)가 중국 한나라의 무덤과 흡사하며, 출토유물 역시 랴오둥(遼東) 지역의 한나라 무덤과 닮았다는 것이었다. 도리이는 이것은 낙랑고분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쏟아지는 낙랑유물(이상한 유물들의 폭증)

 

그로부터 2년 뒤인 1912, 인류학자 이마니시 류가 고구려설을 폐기하고 도리이의 학설을 좇아 낙랑설을 제시한다.

 

자신이 1909년 발굴한 석암동 을분에서 나온 칠기 부속금구의 명문, ×’ 명을 낙랑 왕씨와 관련시킨 것이다. <후한서> ‘왕경전을 보자.

 

왕경은 낙랑 남한인이다. 왕경의 8세조는 왕중(王仲)이라는 인물이었다. 제북왕 흥거가 반란을 난을 일으키면서 왕중에게 병사를 맡기려 했지만, 왕중은 화가 미칠까 두려워 바로 동쪽바다를 건너 낙랑 산중으로 달아났다. 이에 낙랑군에서 집안을 이루게 되었다.”

낙랑 왕씨가 바로 <후한서>에서 일컫는 왕중-왕경의 집안이라는 것이다. 도리이의 낙랑설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세키노도 슬그머니 낙랑설을 인정한다

이렇게 해서, 왕경전을 통해 세키노도 평양을 낙랑으로 인정하였고, 평양은 뜬금없이 낙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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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3-26 19:08
   
王景字仲通, 樂浪䛁邯人也 - 후한서 순리렬전
왕경의 자는 중통이요, 낙랑군 남감(䛁邯 : 전한 낙랑군 25현중에 하나) 사람이다.
history2 18-03-26 19:29
   
남감이 동북아 지도에서 평안남도 순천시로 되어 있군요....남감이 아니라..... 난감하네요
칼리S 18-03-26 19:32
   
저기요.

현 평양이 낙랑이라는 건 쪽바리사학자들이 처음 내놓은 게 아니라, 고려와 조선의 정치가(=정사편찬자)들의 일관된 생각입니다.

삼국사기 뿐만 아니라 조선초의 각종 관찬지리지들 모두 현 평양을 낙랑으로 보고 있는데, 그럼 이들이 식민사학자들의 영향을 받았나요?
     
history2 18-03-26 19:47
   
아 네 저도 부족한 지식이지만 알고는 있습니다...제가 언급하는건, 일본인 학자들이 낙랑을 평양으로 인식하게 된데에는, 한국의 정사편찬자 보다는 왕경의 영향력이 컸던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총독 테라우치의 대화혼의 조선정신 유입 지령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요...세키노가 자기확신에 의해 장무이묘나 점제현비를 낙랑으로 바꾼것 같지는 않습니다. 본인도 고심한 흔적이 보이고요
     
삼바 18-03-26 19:48
   
식민사학자는 평양설만 주장한다고 식민 사학자 아닙니다.
평양설 주장하면서 그 근거가 일제가 생산한 논리 논거를 사용하여 평양설 주장하는 자가 식민 사학자입니다.
그러니 일제식민 사학의 논리와 관계없이 평양설 주장은 식민 사학자 아닙니다.
그러나 현대 평양설 논자 대부분은 일제 식민사학에서 생산한 논리 논거로 평양설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북통일 18-03-26 19:51
   
삼국사기 뿐만 아니라 조선초의 각종 관찬지리지들 모두 현 평양을 낙랑으로 보고 있는데,
--------------------------------------------------------------------------------------
조선 지리지가 낙랑을 평양에 비정했다는 건 아는데,
삼국사기에서도 낙랑을 평양으로 비정하였다고요?
자료 좀 제시해주세요.
          
칼리S 18-03-26 20:26
   
삼국사기 권37

平壤城似今西京 而浿水則大同江是也 ...
               
꼬마러브 18-03-26 20:56
   
浿水와 平壤의 위치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는 것은 주류사학계에서도 널리 이용되는 통설입니다. 예를 들어 주류사학계에서는 동천왕의 평양을 지금의 평양에 비정하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칼리S님이 제시하신 <삼국사기>의 기록만으로는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칼리S 18-03-26 21:03
   
에휴 좀 제대로 읽고 댓글을 하세요.

제가 말한건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이나 그 후의 조선 초기 관찬지리지의 편찬자들이 현 평양에 낙랑이 있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즉 쪽바리사학자들이 처음 들고나온 논리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통설이었다는 겁니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건 님 생각이고,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꼬마러브 18-03-26 21:08
   
요지는 칼리S님이 인용하신 "平壤城似今西京 而浿水則大同江是也"이라는 구절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말하는 기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칼리S님은 이 문장을 "삼국사기는 낙랑군을 평양에 비정한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시지 않았습니까?
                         
비좀와라 18-03-26 21:11
   
옛 장성[古長城] 【세속에서 전하기를, ‘만리장성(萬里長城)’이라 하는데, 인산군(麟山郡) 서쪽 진병곶강(鎭兵串江)으로부터 쌓기 시작하여 의주(義州) 남쪽을 지나서 삭주(朔州)·창성(昌城)·운산(雲山)·영변(寧邊)에 연하여 뻗치고, 희천(熙川) 동쪽의 옛 맹주(孟州) 지경에 이르며, 함길도 정평(定平) 지경에 닿았다. 】
 - 세종실록 154권, 지리지 평안도 지리지 / 평안도-

세종실록 지시지에 보면 평북지방에 만리장성이 있다고 나와 있거든요?

그럼 지금 만리장성이 평북에 있어요? 당연히 당시의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죠.
                         
칼리S 18-03-26 21:11
   
... 안 보이세요.

삼국사기 권37 좀 읽어보시라고 다 안 쓴 겁니다.

님도 가서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칼리S 18-03-26 21:12
   
비좀와라

// 세종실록지리지 평양부 가서 읽어보세요.
                    
촐라롱콘 18-03-26 21:29
   
-꼬마러브님-

 [삼국사기 제37권 잡지 제6(三國史記 卷第三十七 雜志 第六)]- 고구려편

平壤城似今西京 而浿水則大同江是也 何以知之
唐書云 平壤城 漢樂浪郡也 隨山屈繚爲郛 南涯浿水
평양성은 지금의 서경(西京)인 듯하고 패수(浿水)는 바로 대동강(大同江)이다.
어떻게 이를 알 수 있는가?
『당서(唐書)』에는 “평양성은 한나라의 낙랑군으로서 산굽이를 따라 성을 둘러쌓았고
남으로 패수가 놓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남북통일 18-03-26 21:48
   
세종실록에선 백제의 초기 도읍지를 전주라고 하고 있지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 초기 도읍지가 전주인가요? 아니죠.
그런데, 백제 초기 도읍지가 한성인 걸 모르면서 고구려의 평양 위치를 정확히
밝힌다는 거 자체가 힘들텐데요
                         
도배시러 18-03-26 21:59
   
대동강 평양에서 남쪽으로 천리 떨어진 곳이 전주이죠.
나름 문헌근거에 충실했던 분들이죠.
그리고 당시 거리 표기법에 대해 반론없이 받아들였다는것을 알수있죠.
               
도배시러 18-03-26 21:13
   
平壤城似今西京 평양성 사금서경
似 : 닮다, 같다, 비슷하다 사
평양성은 오늘날 서경과 유사한듯 하다.

고구려는 처음에 중국 북부 지역에 있다가 점점 동방의 패수 옆으로 이동하였다.
高句麗始居中國北地  則漸東遷于浿水之側

中國北地 => 상곡 ?
                    
도배시러 18-03-26 21:29
   
김부식 1075-1151 생몰연대
요 916-1125
금 1115-1234
송 960-1127 남송 ~1279

김부식 생존시기를 고려할때, 중국북지中國北地 에서 중국은 송나라를 뜻하는듯하니
요나 금의 북쪽지역은 아닌듯하다.
                         
촐라롱콘 18-03-26 21:39
   
삼국사기,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보여지는 졸본-환도성-국내성 등의
고구려 초기 도읍지들의 위치를 제대로 비정하지 못한다거나, 의주-성천 등지의 평안도
일대로 비정하는 상당한 오류도 발견되지만....

그거야 고구려 초기 중심지들은 고려~조선시기 내내 우리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인하는 지리와 정보의 부재와 단절로 인한 것이고
적어도 고려~조선이 파악했던 한반도 이내의 상당수 여러 지역들의 연혁은 지금
기준으로도 비교적 정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배시러 18-03-26 21:44
   
삼국사기 지명을 비정할때 ...
왜 그렇게 비정하는지 근거를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그 근거가 무너지면 뒤집기가 가능하죠,

뒤집기가 가능한 근거를 제시하는게 학문이죠.
근거를 숨기면 학문이 아니고요.
학파에 따라 김부식의 근거를 백퍼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죠.
                    
남북통일 18-03-26 22:12
   
『당서(唐書)』에는 “평양성은 한나라의 낙랑군으로서 산굽이를 따라 성을 둘러쌓았고 남으로 패수가 놓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한지』에는 “등주(登州)에서 동북쪽 바닷길로 나서서 남쪽으로 해변을 끼고 패강 어귀에 있는 초도(椒島)를 지나면 신라의 서북 지방에 도달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한 수 양제(煬帝)의 동방정벌조서에는 “창해 방면 군사는 선박이 천 리에 뻗쳤는데 높직한 돛은 번개같이 달리고 커다란 전함들은 구름같이 날아서 패강을 횡단하여 멀리 평양에 다다랐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렇게 보면 지금의 대동강이 패수인 것이 명백하며 서경이 평양이라는 것도 또한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 [高句麗]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
근거가 좀 미약한듯요
          
촐라롱콘 18-03-26 22:03
   
-남북통일님-

[[세종실록에선 백제의 초기 도읍지를 전주라고 하고 있지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 초기 도읍지가 전주인가요? 아니죠.
그런데, 백제 초기 도읍지가 한성인 걸 모르면서 고구려의 평양 위치를 정확히
밝힌다는 거 자체가 힘들텐데요]].................???
.
.
.
1. 세종실록 148권, 지리지 경도 한성부(京都漢城府)

[[본래 고구려의 남평양성(南平壤城)이니, 일명(一名) 북한산군(北漢山郡)이다. 백제근초고왕(近肖古王)이, 동진(東晉)간문제(簡文帝)함안(咸安) 2년(372) 임신에 남한산(南漢山)으로부터 와서 도읍을 정하여【남한산은 지금의 광주(廣州). 】1백 5년을 지내고, 문주왕(文周王)이 고구려의 난을 피하여 고마나루[熊津]001)로 옮겨 도읍하였고...]]
 

2. 세종실록 149권, 지리지 충청도 공주목

[[본래 백제의 웅천(熊川)이다. 제22대 문주왕(文周王)이 한성(漢城)에서 이곳으로 옮겨 도읍한 지 63년을 지나서, 26대 성왕(聖王)이 또 도읍을 남부여(南扶餘)로 옮기었는데, 당(唐)나라고종(高宗)이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신라의 김유신(金庾信)과 더불어 백제를 평정하고는, 웅진 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고 군사를 머물러 두어 진압하였는데...]]
 

3. 세종실록 149권, 지리지 충청도 공주목 부여현

[[본래 백제의 소부리군(所扶里郡)인데 26대 성왕(聖王)이 웅천(熊川)으로부터 와서 도읍하고 남부여(南扶餘)라 하였다. 1백 20년을 지나 31대 의자왕(義慈王) 때에 이르러, 당나라고종(高宗)이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신라의 김유신(金庾信)과 더불어 이를 쳐서 차지했는데,【곧 현경(顯慶) 5년이다. 】당나라 군사가 돌아가매, 신라에서 백제의 옛 땅을 모두 차지하였다.]]
               
남북통일 18-03-26 22:08
   
정사를 보았다.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계하기를,

“삼국(三國)의 시조(始祖)의 묘(廟)를 세우는데 마땅히 그 도읍한 데에 세울 것이니, 신라는 경주(慶州)이겠고, 백제는 전주(全州)이겠으나, 고구려는 그 도읍한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상고해 보면 알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도읍한 데에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각기 그 나라에 세운다면 될 것이다.”-세종실록 1427년 3월 13일자 첫 부분
-----------------------------------------------------------------------------------
                    
촐라롱콘 18-03-26 22:17
   
국왕과 고위관료 등의 한정된 인원이 참석한 어전회의에서 나눈 대화만을 가지고
당시 조선에서 한반도내에 위치한 백제의 도읍지를 몰랐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상당히 경솔하다고 여겨집니다.

조선왕조실록이야 어전회의에서 오고간 대화들을 가감없이 죄다 기록하는 것이 원칙인데
만약 저 자리에서 백제를 비롯한 삼국의 원도읍지가 어디인지 상고하는 주제가 그날
즉흥적으로 나왔다고 한다면... 당연히 저 당시 어전회의에 참석한 국왕과 몇몇 신하들에
한정된 지식의 범위에서는 미쳐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을수도 있는 일입니다.
.
.
.
그러나저러나 결국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백제의 초기도읍지를
정확하게 비정하고 있는데.. 큰 문제라도 되는지요....???
                         
남북통일 18-03-26 22:19
   
만약 님이 제 주장을 논파하시려면 세종실록지리지에 온조왕이 한양에 도읍했다는 문구를
들고 오셔야지요.
뜬금없이 근초고왕을 비롯한 다른 왕들의 천도 기록을 들고 오니 당황스럽습니다
history2 18-03-26 19:41
   
청나라 건륭제 때 전에 만들어진 《성경통지(盛京通志)》를 대대적으로 보완한 《성경통지》를 중간한

바 있는데 거기 인물조에 왕경(王景)과 그의 애비 왕굉(王閎)을 한대의 인물로 간주 맨 첫번째로 싣고 있다. 이는 그들이 한반도에 있는 낙랑군의 인물로 보았던 것이 아니라 만주 일대에 있던 인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정인보설(鄭寅普說)

왕굉(王閎)의 7대조 왕중(王仲)은 낭야인으로 낙랑산중으로 와서 살았다. 토인 왕조(王調)가 자립하던 때 후한 무제가 왕준(王遵)을 낙랑태수로 임명하여 쳐 평정토록 하여 군이 요동에 이르자 왕굉(王閎)이 결조사(決曹史) 양읍(楊邑) 등과 더불어 왕조를 죽이고 왕준을 맞았으니 갑(甲)이 이르자 을(乙)이 맞이한 것이다. 요동에서 일어난 사실이요, 지금의 평양은 또 산중이 아니다.

 남감은 무려(無慮)와 같은 현인즉 의무려(醫巫閭)의 일대에 은거하였으므로 산중으로 일컬어졌던 것이다.
비좀와라 18-03-26 22:51
   
칼리씨

 - 세종실록 154권, 지리지 평안도 지리지 / 평안도-  라고 출처를 밝혔는데 세종실록지리지 평양부를 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지...

세종실록 154권, 지리지 평안도 지리지 / 평안도가 세종실록지리지 평양부를 말하는 것이고 나는 좀더 구체적으로 출처를 밝힌 것 뿐이고요.

그리고 자꾸 상식에서 벗어난 이상한 소리들을 하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평안도와 함경도의 위치를 설명하는 랜드마크를 만리장성을 삼았습니다.

평안도나 함경도 둘다 만리장성 근처란 말이에요.
     
칼리S 18-03-27 07:09
   
상종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구만.

세종실록지리지의 옛장성에 대한게 무슨 중국 만리장성이라고 생각하나보네 ㅋㅋㅋ. 평안도나 함경도는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평안도나 함경도고,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장성은 고려의 천리장성이라는 걸 대번 알겠구만, 이걸 중국의 만리장성이라고 생각하는 인간도 있구나 ㅋㅋㅋ.

에휴 이런 인간들이 역사를 논한다고 깝치니, 유사역사나부랭이들이 욕 먹지 안그래요? 기본적으로 머리에 생각이 있으면 저걸 고려때 쌓은 장성으로 생각하지, 그걸 중국 만리장성으로 생각하다니 ㅋㅋㅋ
현조 18-03-27 11:05
   
패수(浿水)와 대동강(大同江) 이라는 공통 지명인데, 흥미롭게도 현재 산서성(山西省)의 대동부(大同府)에서 흐르면서 하북성(河北省)의 북경(北京)에 관통하여 흐르는 영정하(永定河)는 원래 습수(濕水) ' 열수(洌水)이라고 불리우는 지명이기도 합니다.  습수(濕水)는 산서성(山西省)의 대동강(大同江)이라고 하지요.

따라서, 낙랑(樂浪)의 평양(平壤)은 상곡(上谷)의 북평(北平) 지대에 속하는 왕험성(王險城)이라는 의견이 타당하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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