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공사관의 설계자는 건축기사 사바찐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직접 목격했던 러시아인 건축기사 사바찐은 개화기 조선의 근대 건축물에 큰 영향을 준 대표적인 서양인이다. 그는 1883년에 묄렌도르프를 따라 서울에 도착했다. 이 때부터 러일전쟁 후 조선을 떠날 때까지 22년 동안 조선의 토목과 건축분야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일부 학자들은 사바찐이 묄렌도르프의 지휘 하에서 주어진 역할만을 수행했기 때문에 조선에 종합적인 도시계획을 도입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개화기 조선의 많은 건축물에서는 ‘톈진식 러시아 양관풍’이라는 그의 건축기법이 담겨져 있다.
사바친은 1884년에 왕궁의 축조설계와 서울의 전차 선로 설비안 등을 설계했고, 1885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인천 세관 소속의 시설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러시아공사관을 비롯하여 프랑스공사관, 독일영사관저 등 각국 외교사절을 위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또 그는 손탁호텔을 설계하기도 했고, 명동성당의 신축공사 때 자문을 했으며,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설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사바찐은 독립문도 설계했다. 독립문 설계자가 사바찐이라는 것이 오늘날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바친이 독립문을 설계했다는 몇몇 기록과 더불어 독립문과 러시아공사관의 입구에 세워진 아문(러시아 아치)이 매우 유사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근대건축에 남긴 사바찐의 족적은 특히 덕수궁 궁전계획에 담겨있다. 그는 덕수궁의 중명전(重名殿), 정관현(靜觀軒), 구성헌(九成軒), 돈덕전(惇德殿) 등 조선의 근대식 궁전 건물의 설계자였던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남아있는 중명전은 1896년 공종이 ‘궁궐도서관(King's Library)’으로 건립한 서양식 건물로서 건축사적 의미와 더불어 역사적 의미를 갖는 중요한 건물이다.중명전은 미국공사관과 러시아공사관 사이에 위치한 전각으로서, 일본의 강압을 미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려 막아보겠다는 고종의 의지가 드러나는 건축물이다.
9.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