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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15 03:49
[한국사] 장수왕은 남하한것이 아니라 서진 했다.
 글쓴이 : 도배시러
조회 : 3,688  

 삼국사기 고구려 도성 천도이력

247 二十一年 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동천왕 평양 왕검성

334 四年 秋八月 增築平壤城 고국원왕 평양성 증축
342 十二年 春二月 修葺丸都城 又築國內城 秋八月 移居丸都城 고국원왕, 환도성 보수후 거주
342 毁丸都城而還 모용황- 환도성 파괴

343 秋七月 移居平壤東黃城 城在今西京東木覓山中 遣使如晉朝貢 고국원왕 평양 동-황성 거주
371 四十一年 冬十月 百濟王帥 兵三萬 來攻平壤城 王出師拒之 爲流矢所中 고국원왕, 백제의 평양성 침공

377 七年 冬十月 無雪 雷 民疫 百濟將兵三萬 來侵平壤城 소수림왕, 백제의 평양성 침공
427 十五年 移都平壤 장수왕 평양성


■ (북)위서 거란국 : 

太和三年[479,장수왕 67년] 高句麗竊與蠕蠕謀,欲取地豆于以分之。
契丹懼其侵軼,其莫弗賀勿于率其部落車三千乘、眾萬餘口,驅徙雜畜,求入內附,止於白狼水東。自此歲常朝貢。

太和三年[479,장수왕 67년] 고구려가 연연(동호족 蠕蠕, 유연)과 함께 훔치는 계략을 꾸몄다.
지두우(地豆于) 땅을 빼앗아 나눠 가지려고 하였는데, 거란이 고구려의 침략을 두려워하였다. 
(거란) 막불하물우(莫弗賀勿于)가 부족을 이끌고 수레 삼천 대, 만여 명, 가축들을 몰아와서 도움을 구하고 (북위로) 
내부(內附)하였다. 백랑수(白狼水) 동쪽에서 멈추었고 이때부터 상시 조공하였다.



1. 장수왕은 도성을 서쪽으로 옮겼는가 ?

삼국사기는 移居平壤東黃城 고국원왕이 평양의 동쪽 황성으로 옮겨서 거주했다고 한다.
[김부식은 동황성東黃城 이 서경(대동강 평양 ? ) 동쪽의 목멱산 산속에 있었다고 주장]
그리고 장수왕은 (서쪽) 평양성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서 알수있는 것은 장수왕이 동쪽 황성에서 서쪽 평양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도성을 남쪽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할 문헌근거는 없다.


2. 그러면 왜 장수왕은 동황성에서 서쪽 평양으로 서진 했는가 ?

북위서 거란국 기록처럼 거란을 건너 서쪽의 지두우를 공략 점령하고자 유연과 모의 했기 때문이다.
단순 노략질이 아니라 점령을 목표로 진행한 계략이기에 긴 호흡으로 준비한 것이다.
유연은 지두우와 인접한 국가이지만 고구려는 지두우 사이에 거란을 끼고 있는 형국이었다.

유연(연연) - 지두우 - 거란 -고구려

여기까지가 문헌으로 접근/추론 할수있는 고구려 장수왕의 서진정책이다.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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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6-15 04:04
   
장수왕은 남진정책이 아니라 서진 정책을 썼죠
그래서 장수왕 이래 요해 (발해), 영주, 평주, 호동이교위, 요동군 등의 제수를 남북조로부터 근 2세기 가량 받았습니다

다만 고구려가 이렇게 영토 서한선을 넓히게 된 데에는
광개토ㅡ장수왕 대에 백제를 묵사발 만든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이 시기에 백제는 요서를 잃고
남조에 가서 붙었죠
     
도배시러 18-06-15 04:10
   
넵, 그러네요.

차근차근 풀어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감방친구 18-06-15 05:49
   
백제가 노룡과 유성 사이에 요서군, 진평군의 2개의 백제군을 두고 그 치소를 진평군 진평현에 둔 게 중국사서 기록에 의하면 동진 시기인데 4세기거든요

모용선비가 용성으로 돌아온 게 396년,
그리고 그 뒤에 광개토대왕에게 후연이 깨지고 북연이 들어서죠

그런데 모용선비와 백제 사이에 전쟁기록이 없어요

요서 백제 동쪽에 낙랑군이 있던 게 3세기 중엽부터 304년 기록까지

그렇다면 304 년 이후인 서진 말기에 낙랑군이 노룡, 창려 지역으로 교치가 되고
이후 모용선비가 하북지역을 접수

노룡 낙랑군은
당빈이 장성 연결보수 ㅡ> 낙랑군 노룡 교치 ㅡ> 모용선비가 하북 접수

모용선비가 하북접수하여 중원을 도모하던 때에
백제는 노룡~유성에 2군 설치
               
도배시러 18-06-15 05:55
   
요서 백제의 위치가 평주 북평군 ~ 영주 유성 사이인데...
이때의 평주는 난하의 서쪽.

어양~평주 3백리인데... 평주는 난하의 서쪽
          
감방친구 18-06-15 05:51
   
삼국사기 백제 본기 3~4세기 기록

고이왕
13년(서기 246) 여름, 크게 가뭄이 들어 보리를 거두지 못하였다.
가을 8월, 위(魏)나라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毌丘儉)이 낙랑태수(樂浪太守) 유무(劉茂)와 삭방태수(朔方太守) 왕준(王遵)과 함께 고구려를 쳤다. 임금이 그 틈을 타서 좌장 진충을 보내 낙랑 변경을 습격하여 백성을 잡아왔다. 유무가 소식을 듣고 분노하니, 임금이 침범 당할까 두려워 백성들을 돌려보냈다.
十三年 夏大旱 無麥 秋八月 魏幽州刺史毌丘儉 與樂浪太守劉茂朔方太守王遵 伐高句麗 王乘虛 遣左將眞忠 襲取樂浪邊民 茂聞之怒 王恐見侵討 還其民口

책계왕
고구려가 대방(帶方)을 쳐서 대방이 우리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앞서 임금이 대방왕의 딸 보과(寶菓)를 부인으로 삼았기에, 임금이 이르기를 “대방은 장인의 나라이니 그 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드디어 병사를 내어 구원하니 고구려가 원망하였다. 임금은 고구려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아차성(阿旦城)과 사성(蛇城)을 수리하여 대비하였다.
責稽王[或云 靑稽] 古尒王子 身長大 志氣雄傑 古尒薨 卽位 王徵發丁夫 葺慰禮城 高句麗伐帶方 帶方請救於我 先是 王娶帶方王女寶菓 爲夫人 故曰 帶方我舅甥之國 不可不副其請 遂出師救之 高句麗怨 王慮其侵寇 修阿旦城蛇城 備之

2년(서기 287) 봄 정월, 동명왕의 사당에 참배하였다.
二年 春正月 謁東明廟
13년(서기 298) 가을 9월, 한(漢)나라가 맥인(貊人)들과 합세하여 침범하였다. 임금이 나가서 막다가 적병에게 해를 입어 돌아가셨다.
十三年 秋九月 漢與貊人來侵 王出禦 爲敵兵所害 薨

분서왕
7년(서기 304) 봄 2월, 몰래 병사를 보내 낙랑(樂浪)의 서현(西縣)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겨울 10월, 임금이 낙랑 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해를 입어 돌아가셨다.
七年 春二月 潛師襲取樂浪西縣 冬十月 王爲樂浪太守所遣刺客賊害 薨

진사왕
5년(서기 389) 가을 9월, 임금이 병사를 보내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략하였다.
五年 秋九月 王遣兵 侵掠高句麗南鄙
8년(서기 392) 여름 5월, 초하루 정묘일에 일식이 있었다.
가을 7월, 고구려왕 담덕(談德, 광개토왕)이 4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와서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석현성(石峴城) 등 10여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임금은 담덕이 병사를 부리는데 능하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막지 않았기에 한수 북쪽의 여러 부락이 함락된 것이다.
겨울 10월, 고구려가 관미성(關彌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임금이 구원(狗原)에 사냥을 나가 열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11월, 임금이 구원의 행궁에서 돌아가셨다.
八年 夏五月丁卯朔 日有食之 秋七月 高句麗王談德 帥兵四萬 來攻北鄙 陷石峴等十餘城 王聞談德能用兵 不得出拒 漢水北諸部落 多沒焉 冬十月 高句麗攻拔關彌城 王田於狗原 經旬不返 十一月 薨於狗原行宮

아신왕
2년(서기 393) 봄 정월, 임금이 동명왕의 사당에 참배하고 또한 남쪽 제단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다.
진무(眞武)를 좌장으로 삼아 병마에 관한 일을 맡겼다. 진무는 왕의 외삼촌으로서 침착하고 굳세며 지략이 많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에게 감복하였다.
가을 8월, 임금이 진무에게 말하였다.
“관미성(關彌城)은 우리나라 북쪽 변경의 옷깃처럼 중요한 곳이다. 지금 그 땅이 고구려의 소유가 되어 있으니, 이것을 과인은 애통해 하는 바이다. 경은 마땅히 마음을 기울여 치욕을 갚아야 할 것이다.”
임금은 마침내 병사 1만 명을 동원하여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칠 것을 계획하였다. 진무는 병졸보다 앞에 서서 화살과 돌을 무릅쓰면서 싸웠다. 석현(石峴) 등 5개 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먼저 관미성을 포위했으나, 고구려 사람들이 성을 굳게 지켰다. 진무는 군량미가 계속 이어지지 못하여 병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二年 春正月 謁東明廟 又祭天地於南壇 拜眞武爲左將 委以兵馬事 武 王之親舅 沈毅有大略 時人服之 秋八月 王謂武曰 關彌城者 我北鄙之襟要也 今爲高句麗所有 此寡人之所痛惜 而卿之所宜用心而雪恥也 遂謀將兵一萬 伐高句麗南鄙 武身先士卒 以冒矢石 意復石峴等五城 先圍關彌城 麗人嬰城固守 武以糧道不繼 引而歸
          
도배시러 18-06-15 05:53
   
> 자치통감, 백제의 북부여 침공
顯宗成皇帝下永和二年(丙午,AD346)
  春,正月,丙寅,大赦。
  己卯,都鄉文穆侯何充卒。充有器局,臨朝正色,以社稷為己任,所選用皆以功效,不私親舊。
  初,夫餘居於鹿山,為百濟所侵,部落衰散,西徙近燕,而不設備。燕王皝遣世子俊帥慕容軍、慕容恪、慕輿根三將軍、萬七千騎襲夫餘。俊居中指授,軍事皆以任恪。遂拔夫餘,虜其王玄及部落五萬餘口而還。皝以玄為鎮軍將軍,妻以女。

백제가 부여를 털고나서 모용외가 다시 털었다는 것으로 볼때
우연의 일치이거나 백제-모용씨 합작품이 아닐런지...
               
감방친구 18-06-15 05:57
   
그런데
모용ㅡ백제의 커넥션을 증거할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도배시러 18-06-15 05:58
   
요서백제가 모용씨와 충돌을 하지 않은 이유를 제시하라면
백제-모용 합작으로 추론할만 것으로 이게 있다는것이죠
                         
감방친구 18-06-15 06:05
   
더 구체적 기록이 절실
               
감방친구 18-06-15 05:58
   
우연의 일치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 당시인 동진 시기에 노룡ㅡ유성에 백제군이 있었다고 중국사서들은 적고 있으니까요

이 모용선비라는 게 상당히 웃긴데요
               
감방친구 18-06-15 06:00
   
백제 동성왕의 이름
모대(牟大), 마모(摩牟)
<삼국사기>
말다(末多)
<일본서기>
               
감방친구 18-06-15 06:08
   
                    
도배시러 18-06-15 06:17
   
唐故宣威將軍難元慶墓誌

 

君諱元慶 其先即黃帝之宗也 □餘之爾類焉. 昔伯仲枝分 位居東表. 兄弟□□ 爰國臣韓. 妙以治民之難 □□姓矣 □丘序舜典 所謂歷試諸難 卽其義也. □祖珇 仕遼任達率官 亦猶今宗正卿焉. 祖汗 入唐爲熊津州都督府長史□□中大夫、使持節支潯州諸軍事、守支潯州刺史 遷忠武將軍、行右衛翊府□郎將. 並仁明識遠 在政□□ □□詞宏 邦家共達. 君幼而聰敏 無所不精. 尋□游擊將軍、行檀州白□府右果毅、直中書省.
(중략)
以開元十八年六月廿八日 □於□州龍興縣之私第 春秋六十有一.
(중략)
乃爲銘曰:
(중략)
其一 達率騰華 遼陽鼎貴 德邁將軍 □□衝尉. 其二 氣蓋千古 譽重三韓. 子孫孝養 恭惟色難.
(하략)
http://contents.nahf.or.kr/id/NAHF.gg_039
                         
도배시러 18-06-15 06:29
   
仕遼任達率官 요遼의 지역에서 달솔관 직위를 가졌었네요. 달솔은 백제관직이고... 흠

難元慶.. 難씨 성은 난하 부근에 존재할거라 생각된다능...(심증)
                         
감방친구 18-06-15 06:39
   
진평군은 진나라 평주의 준말로 보이고
요서군은 진평군 동쪽으로 생각됩니다
          
감방친구 18-06-15 05:56
   
백제와 고구려는 근 400 년 가량
군사ㆍ외교적 교류가 없다가
백제 진사왕,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인 389 년에 백제가 고구려 남쪽을 선제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거든요

그리고
백제가 고구려에 발리고
모용선비는 하북에서 발린 후인
396 년에 모용선비가 룡성으로 천도해서 고구려를 침략 700리를 빼앗으며 개기다가 광개토대왕한테 뒤지게 뚜들겨 맞고요
도배시러 18-06-15 06:05
   
백제 고구려 최초의 군사충돌 369년 ***
39년(서기 369) 가을 9월, 임금이 병사 2만을 보내 남쪽으로 백제를 침입하도록 하였으나 치양(雉壤)에서 싸우다 패하였다.
三十九年 秋九月 王以兵二萬 南伐百濟 戰於雉壤 敗績

24년(서기 369) 가을 9월, 고구려왕 사유(斯由, 고국원왕)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雉壤)에 와서 주둔하며 병사를 풀어 민가를 노략질하였다.

===> 369 이전까지는 고구려나 백제의 문화/군사용품의 차이가 고고학적으로 미미해야한다고 봅니다.
     
감방친구 18-06-15 06:09
   
그러네요
제가 근초고왕 대를 깜박했네요
     
감방친구 18-06-15 06:09
   
389가 아니라 369년
          
도배시러 18-06-15 06:10
   
외우기 쉽습니다.  369~  369 ~
               
감방친구 18-06-15 06:10
   
ㅎㅎㅎ
지수신 18-06-15 11:32
   
평양천도와 '지두우분할'사이의 시간간격은 무려 52년입니다.
지두우분할을 반세기 전에 약조했다는것은 좀 많이 무리한 이야기 같습니다.
강산이 5번 변할 시간인데요 ㅎㅎ

고국원왕이 '평양동황성'으로 천도한 것은
모용씨 전연에게 완패했기 때문에 동쪽의 협소한 지역으로 물러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후 광개토왕이 후연을 박살내고 북연을 부용국화?하여 서쪽으로 세력을 크게 넓혔으므로
장수왕은 강대해진 국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포석으로써
서쪽의 보다 넓고 윤택한 요동평원 지역으로 옮긴 것으로 볼 수 있겠죠.
     
도배시러 18-06-15 14:35
   
장수왕이 남하했다는 주장보다 조금 더 개연성이 있습니다.
물론 52년의 시간갭을 고려한다면 억지스런 주장이 맞습니다.

개로왕 사망 475년, 거란의 북위 내부 479년
427년 장수왕 평양<=동황성
          
감방친구 18-06-16 03:51
   
동황성이 아니라 황성으로 봐야 합니다


고국원왕 13년(서기 343)
移居平壤東黃城
1) 평양의 동황성으로 거처(도읍)를 옮겼다
2) 평양의 동쪽 황성으로 거처(도읍)를 옮겼다

안장왕 11년(서기 529)
王畋於黃城之東
ㅡ 왕이 황성의 동쪽에서 사냥하였다


고구려의 도읍변천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0396&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B%8F%99%ED%99%A9%EC%84%B1&sop=o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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