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사기 고구려 도성 천도이력
247 二十一年 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동천왕 평양 왕검성
334 四年 秋八月 增築平壤城 고국원왕 평양성 증축
342 十二年 春二月 修葺丸都城 又築國內城 秋八月 移居丸都城 고국원왕, 환도성 보수후 거주
342 毁丸都城而還 모용황- 환도성 파괴
343 秋七月 移居平壤東黃城 城在今西京東木覓山中 遣使如晉朝貢 고국원왕 평양 동-황성 거주
371 四十一年 冬十月 百濟王帥 兵三萬 來攻平壤城 王出師拒之 爲流矢所中 고국원왕, 백제의 평양성 침공
377 七年 冬十月 無雪 雷 民疫 百濟將兵三萬 來侵平壤城 소수림왕, 백제의 평양성 침공
427 十五年 移都平壤 장수왕 평양성
■ (북)위서 거란국 :
太和三年[479,장수왕 67년] 高句麗竊與蠕蠕謀,欲取地豆于以分之。
契丹懼其侵軼,其莫弗賀勿于率其部落車三千乘、眾萬餘口,驅徙雜畜,求入內附,止於白狼水東。自此歲常朝貢。
太和三年[479,장수왕 67년] 고구려가 연연(동호족 蠕蠕, 유연)과 함께 훔치는 계략을 꾸몄다.
지두우(地豆于) 땅을 빼앗아 나눠 가지려고 하였는데, 거란이 고구려의 침략을 두려워하였다.
(거란) 막불하물우(莫弗賀勿于)가 부족을 이끌고 수레 삼천 대, 만여 명, 가축들을 몰아와서 도움을 구하고 (북위로)
내부(內附)하였다. 백랑수(白狼水) 동쪽에서 멈추었고 이때부터 상시 조공하였다.
1. 장수왕은 도성을 서쪽으로 옮겼는가 ?
삼국사기는 移居平壤東黃城 고국원왕이 평양의 동쪽 황성으로 옮겨서 거주했다고 한다.
[김부식은 동황성東黃城 이 서경(대동강 평양 ? ) 동쪽의 목멱산 산속에 있었다고 주장]
그리고 장수왕은 (서쪽) 평양성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서 알수있는 것은 장수왕이 동쪽 황성에서 서쪽 평양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도성을 남쪽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할 문헌근거는 없다.
2. 그러면 왜 장수왕은 동황성에서 서쪽 평양으로 서진 했는가 ?
북위서 거란국 기록처럼 거란을 건너 서쪽의 지두우를 공략 점령하고자 유연과 모의 했기 때문이다.
단순 노략질이 아니라 점령을 목표로 진행한 계략이기에 긴 호흡으로 준비한 것이다.
유연은 지두우와 인접한 국가이지만 고구려는 지두우 사이에 거란을 끼고 있는 형국이었다.
유연(연연) - 지두우 - 거란 -고구려
여기까지가 문헌으로 접근/추론 할수있는 고구려 장수왕의 서진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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