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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5 11:53
[한국사] 온조는 부여씨인가? 해씨인가? 2
 글쓴이 : 지수신
조회 : 1,026  

(앞 글에서 이어집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나의 관심은 문제의 史本記가 삼국사기냐 아니냐, 유학자들과 불교도들 중 누가 잘못?했느냐 따위에 있지 않다. 여기서 나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온조가 건국한 초기 백제 왕가의 성씨 즉 온조의 성씨가 실제로 해씨였느냐, 부여씨였느냐에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세 가지 경우의 수에 따른 상기의 가설에서, 각각의 경우에서 온조가 건국한 초기 백제 왕가의 성씨 즉 온조의 성씨는 어느 쪽이 될까?

 

일단 가설 23에서는 답이 간단명료하게 나온다.

가설 2를 따를 경우, 조선시대 유학자들에 의해 개변되기 전의 삼국사기에 해씨라고 쓰여 있었으므로 온조는 해씨가 된다.

가설 3을 따를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삼국사기에는 처음부터 온조는 부여씨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 된다. 하지만 삼국유사의 편찬자들이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당대에 더 가까운 사료에서 해씨라고 하였으므로, 역시 온조는 해씨였던 것으로 보아야 맞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설 1의 경우에서는 어떤가?

여기서는 삼국사기와 중요한 차이 즉 온조의 성씨를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 이른바 史本記의 정체가 문제가 된다. ‘史本記는 삼국사기 이후에 다시 편찬된 책인가, 아니면 삼국사기 이전에 있었던 온조와 더 가까운 시대의 사료인가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고려 시대에, 보다 정확히는 삼국사기 편찬 이후 삼국유사 편찬 전까지의 기간에, 삼국시대의 정사를 다시 편찬했다는 기록이 있었던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없다. 삼국사기 이후로 다음 전시대 正史편찬은 조선왕조의 동국통감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史本記는 삼국사기보다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사료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에서는 온조가 부여씨라고 하였으나 그보다 이른 시기의 사료인 史本記에서는 온조가 해씨라고 한 것이므로, 온조는 해씨였다고 보아야 맞다.

 

결론적으로 가설 1,2,3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느냐는 적어도 이 주제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쪽을 따르든, 어차피 온조는 해씨가 되기 때문이다.

 

두 사료가 모순될 때 더 이른 시기의 사료를 따르는 것은 무난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무책임한 취사선택에 불과한 것이다. 이른 시기의 사료가 맞다면, 늦은 시기의 사료에는 왜 틀린 내용이 기록되었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설득력 있는 논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의 건국서문은 왜 잘못되었는가 하는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 삼국사기에서 채택한 사료, AA에서 옮겨적은 A에서는 왜 온조의 성씨가 부여씨로 되어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정말로 A온조의 성씨는 부여씨라고 말하고 있는가, 혹시 많은 독자들이 A를 오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부터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앞 단락에서 피력했던 이야기를 재론할 수밖에 없다. A는 건국서문이다. 기원전 18년 이전의 일들을 간추려 놓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기원전 18년의 건국 이후에 대한 이야기들은 언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A에서 부여씨를 운운한 문장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보자.

 

A-2

온조는 강 남쪽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 이때가 전한(前漢) 성제(成帝) 홍가(鴻嘉) 3(서기전 18)이었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 없어서 위례(慰禮)에 돌아와 보니 도읍은 안정되고 백성들도 평안하므로 마침내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다가 죽으니,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에 귀부(歸附)하였다.

후에 내려 올 때에 백성(百姓)들이 즐겨 따랐다고 하여 국호를 백제(百濟)로 고쳤다. 그 계통은 고구려와 더불어 부여(扶餘)에서 같이 나왔기 때문에 부여(扶餘)를 성씨(姓氏)로 삼았다.

 

이 기록에서 주관적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인과와 평가 부분을 배제하고, 단지 일의 선후관계만을 뽑아 정리하면 이렇다.

기원전 18년 온조의 십제 건국 -> 비류의 죽음 -> 비류가 세운 나라가 온조가 세운 나라에 병합됨 -> 국호를 백제로 고침 -> 왕실의 성씨를 부여로 삼음

 

앞 단락에서 말했듯이, 기원전 18년으로 못박힌 온조의 건국 이후에 나오는 일들은 언제 있었던 일인지 밝혀 놓지 않고 있다. 즉 온조의 십제 건국 이후에 따라오는 사건들은 온조왕대의 일인지 의자왕대의 일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A는 백제 왕실이 성씨를 부여씨로 삼았다고 했을 뿐, 온조의 성씨가 부여씨라고 하지 않았다. 밝히지 않은 어느 시점에서부터 백제 왕실이 스스로 부여씨를 칭했다는 말이지, 온조 당대부터 부여씨였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A, 삼국사기의 건국서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오해의 소지가 있게 쓰여진 기록일 뿐이고, 그것을 무신경하게 읽은 많은 독자들이 오독하였을 뿐인 것이다.

 

아마도 A의 최초 작성자는 그러한 착각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독자가 무신경하게 읽으면, 마치 온조 때부터 부여씨였던 것처럼 여겨지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애매하게 써 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온조가 부여씨였다고 날조하지는 않았다. 그는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역사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에서 역사 기록이란 함부로 날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함부로 날조한 거짓말을 역사랍시고 써 놓으면 그 시비를 아는 자에 의해서 오래지 않아 발각될 것이고, 거짓을 날조한 자는 권력에 의해 무거운 책임을 추궁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전선동의 일인자로 너무나도 흔히 인용되는 괴벨스도 “100%의 거짓보다는 진실과 거짓의 적절한 배합이 훨씬 더 큰 효과를 낸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장황하게 썼지만, 골자는 백제 왕실, 정확히 말해 온조의 성씨가 해씨였다는 간단한 결론이다. 나는 이것이 잃어버린 백제 역사를 복원해 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온조를 부여씨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결코 백제 역사의 진상에 접근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굳이 이처럼 장황한 과정을 통하여 그 간단한 사실을 논증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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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위하늘 18-07-05 12:59
 
저도 이부분이 흥미있어 해왔는데, 제가 수집한 설명이 2가지 더 있습니다. 근거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해설일 뿐이니 검증이나 사료를 요청하시진 마십시오. 그리고, 제 주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주장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

1. 대성-소성 구조: 부족이 모여서 대부족과 그 안에 소부족이 나뉘는 것 처럼 전체 대부족을 대표하는 성씨가 부여이고, 그중에서 소부족을 특징해서 구분할 때에 '해'씨를 사용했다는 의견. 비슷한 예로 흑치상지가 부여씨 계열의 왕족 출신이라 것. 온조의 아버지로 알려진 우태에 대해서도 부여우태와 해우태의 2가지 이야기가 있죠. 분명히 우태는 해부루의 손자이기 때문에 해우태가 맞습니다만 부여의 왕족이죠. 저는 두가지를 모두 사용했다는 의견에 좀 더 점수를 더 주고 있습니다.

2. 백제 왕계가 부여씨 vs 해씨 의 대결구도에서 몇번 주도권이 왔다 갔다 했다는 의견: 전에 여기에서도 잠시 활동했던 분이 이런 논조로 이야기 하셨음. 즉 초기에는 해씨였다가 중간에 다른 계열로 바뀌면서 부여 성씨가 등장... 몇번 왔다 갔다함... 이런 의견이었습니다.
버섹 18-07-05 17:40
 
온조는 해씨죠...
그 밑으로 다루, 기루, 개루 모두 해씹니다...
부여왕 해부루의 일가들이죠.
그러다 고이왕대에 위씨가 왕이되었는데, 근초고왕부터
부여씨가됩니다...
근초고왕은 멸망한 부여왕족의 후손으로
남하해 백제의 왕권을 차지했는데 이때 성씨를 자신의 멸망한 나라 부여로 바꾼 거죠..
     
지수신 18-07-05 20:32
 
근초고왕이 멸망한 부여왕족의 후손이라는 근거가 있나요?
버섹 18-07-05 17:43
 
고구려도 5대 모본왕까지 해씨죠...6대 태조대왕때 쿠데타를 일으켜 고씨가 왕권을 잡았고 해주몽의 성도 아예 고씨로 바꾼 거죠.
해모수의 아들이 고주몽인 것도 말이 안되고, 창업군주한테 붙이는
태조를 6대가 칭하는 것도 말이 안되죠...주몽이후 왕들도 해명, 해색주 등 해씨였죠
관심병자 18-07-06 08:51
 
그렇다면 《집사》에 나오는 키얀의 후손 종족의 이름인 ‘키야트(《사국사》의 ‘키요트’)’는 무슨 의미인가?
 
이 키요트씨는 1008년에 편수된 《송본광운(宋本廣韻)》을 참조하면, 놀랍게도 바로 ‘걸(乞)’씨의 옛 소리(8~9세기경 한자음)이다. 이 자전은 이 한자를 “去(거)-訖(흘)” 반절(反切), 곧 우리말 소리로 “걸”이라고 해두고 있고, 당시 남방 송인들의 소리로는 이를 라틴 문자로 표기하면 ‘khiot/qiot’로 기록했는데, 이 둘째 소리는《집사》 등이 말하는 ‘키야트’ 소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걸”과 “키요트”는 단지 우리말로 소리를 냈는가 당시의 남방송인들의 소리로 내었는가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고 둘은 사실은 같은 ‘걸(乞)’의 소리이다. 그런데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아버지 이름은 걸걸중상(乞乞仲象 또는 乞乞仲相)으로 아버지 때의 성씨는 ‘걸(乞)’ 씨였는데, 아들 대조영은 그 성을 고쳐 자신의 성을 “대(大)” 씨라고 썼다.
 
이것을 보면 원래 대조영의 아버지와 그 선조 때의 성씨인 ‘걸(乞)’ 씨는 고구려-말갈어, 곧 우리 말 ‘크다’라는 말의 ‘클(大)’씨를 원래의 한자의 뜻은 버리고 그 한자의 소리만을 빌려서 우리말 소리를 적는 표기방식인 고구려-발해식 이두(吏讀)로 적은 것이다. 아들 대조영은 원래의 자기 가문의 ‘클(乞)’ 성씨를 같은 “뜻”의 한자말로 바꾸어 ‘대(大)’ 씨로 쓴 것이다.
 
단, 이 ‘대(大)’ 씨 성씨를 한자의 뜻을 살려서 한자를 쓰되, 그 한자의 우리 말 뜻으로 그 한자를 읽는 표기방식인 고구려-말갈식 향찰로 쓰면 설사 ‘대(大)’ 씨라고 썼더라도 고구려-말갈어 구어로는 ‘클(대=걸)’로 읽었던 것으로 추정되어 그 성씨는 여전히 “클(乞)” 씨였음을 말한다. 결국 키얀의 후손인 ‘키야트’ 씨족의 명칭은 ‘걸씨(乞氏)’, 곧 ‘클씨(大氏)’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키얀의 성씨도 ‘키요트’씨, 곧 ‘걸씨’, 달리 ‘클씨’라는 이야기이다.
 
라시드의 《집사》에 의하면, 몽골어에서 ‘키얀(Qiyan, Kiyan)’은 ‘산 위에서 땅 아래로 흘러내리는 가파르고 빠르며 거센 격류’를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오늘날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몽골어”에는 그런 뜻을 가진 “키얀”이라는 말 소리는 전혀없다. 그렇다면 라시드가 말한 “몽골어”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몽골어가 아니라, 제3의 언어인데, 그것은 알고 보면 바로 고구려-말갈어가 자주 채용하여 쓴 한자 낱말 “澗(간)”의 옛소리이다. 이 고구려-말갈식 “澗(간)”자는 ‘[세차게 흐르는] 산골 물 간(澗)’이다.
 
이 말은 라시드가 “몽골어에서 ‘키얀(Qiyan, Kiyan)’은 ‘산 위에서 땅 아래로 흘러내리는 가파르고 빠르며 거센 격류’를 말한다고 한다”고 한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성씨를 붙여서 그 “키얀”이라는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 그것은 ‘걸-간(乞-澗)’ 혹은 ‘대-간(大-澗)’이라는 성명이다.
 
http://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770§ion=sc2


윗글 내용이 '클=걸=대' 로 변한 과정에 대한 추정입니다.
크다는 뜻의 한글 클과 같은 음의 한자가 없어 비슷한 음을 가진 한자로 걸이라고 적었고 나중에는 같은 뜻을 가진 한자로 대를 사용했습니다.
부여, 해 역시 한글을 뜻으로 적었느냐 음으로 적었나 차이 정도 라고 생각합니다.
부여는 '불'이란 단어에서 나온것으로 추정되고,
우리말로 '해'(sun)와 '불'(fire)은 뜻에서 서로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밝다, 따뜻하다)
이런식의 표기의 다른예로 고구려의 미천왕은 호양왕이 되기도 하고 을불이라는 이름도 있었습니다.

한글 한자 영어로
뜻으로 볼때,
쌀 = 米 = RICE 이고
아름답다 = 美 = Beautiful

이걸 음으로
쌀 = 미 = 라이스
아름답다 = 미 = 뷰티풀

이런 표기가 시간이 지나 유례가 가물가물 해졌을때 한자 米의 음을 중심으로 봤을때 밥을 왜 아름답다고 기록했을까 이런식이 되는것.
현대인이 봤을때 米는 쌀미자로 먹는 쌀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가정해서 미래에 한자와 한글이 거의 사라졌을때 米를 한글음 'MI'로 읽는다는것만 알려졌고, 한글 'MI'의 발음은 한자어로 Beautiful의 뜻이다라는것만 남고 'MI'의 발음에 rice의 뜻은 잊혀졌을때의 상황인거죠.
     
지수신 18-07-07 11:20
 
고대인들이 '해=태양'과 '불=화염'을 구분하지 않았다는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큰=클=걸=大 와는 좀 다른 문제 같습니다.

'부여'가 '불'에서 나왔다는 말도 뭐 갖다 붙이기 나름이겠죠.
'벌=벌판'에서 나왔다는 썰도 들은 적 있네요.

음운학은 참고 사항이지 그것만으로 모든걸 해결하려 들면 이야기가 산으로 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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