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기념주화 발행한 카자흐스탄이 우리 민족?
▲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이 발행한 단군 기념주화./카자흐스탄 중앙은행 홈페이지 캡처
[물밑 한국사-21] 지난 10월 31일 연합뉴스에 짧은 기사 하나가 실렸다. 카자흐스탄에서 단군을 기념하는 주화가 발행됐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내용 없이 나온 이 기사는 기사 길이와는 관계없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연합뉴스는 이 단신을 실은 이후에 카자흐스탄이 단군 기념 주화를 발행한 이유를 좀 더 설명하는 후속 보도를 내놓았지만 이 기사는 앞의 기사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유사역사학 중에는 카자흐스탄이 우리와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 주장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은 우리나라의 단군을 시조로 섬긴다고 한다. 15세기께 킵차크한국의 후예인 아불 하이르 칸이 우즈베크 울루스를 이끌었는데 몽골족 일파인 오이라트의 침공으로 패하자 일단의 무리가 이탈했다. 이들은 '떨어져 나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카자흐라고 불렸다. 16세기 초에 카심 칸의 지휘 아래 강력한 세력으로 군림했다. 이들은 한때 스텝 지역을 모두 지배한 강력한 국가를 세웠지만 17세기에 오이라트 족의 침공으로 약화되었고 러시아가 남하하면서 오이라트족을 러시아가 막아주리라 기대하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러시아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20세기 초에 들어와 민족주의 발흥과 더불어 카자흐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유혈 폭동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1919~1920년에 걸쳐 소련 적군이 카자흐스탄을 점령해 소련에 속하게 되었다. 소련 붕괴 후, 1991년에 독립했다. 우리나라와는 1992년에 수교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나라의 역사는 15세기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단군신화로 볼 때 기원전 24세기로 올라가는 단군과 무슨 연관이 있을려야 있을 수가 없는 나라인 셈이다. 하지만 유사역사학의 주장이 나온 후, 거대한 고조선 제국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이 기사에 열광적인 댓글을 달았다. - 카자흐스탄은 단군의 통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이들도 단군의 후예다. - 카자흐스탄 비석에 단군의 기록이 쓰여 있다. - 다른 나라는 없는 역사도 지어내는데 우리는 있는 역사도 축소한다. - 카자흐스탄이 환국 영역에 속했기 때문에 기념주화를 만든 것이다. - 카자흐스탄에서는 단군을 선조로 모시고 주화도 내는데 우리는 뭐하고 있는가. 물론 이런 이야기는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카자흐족은 우리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그럼 이 동전은 대체 무엇인가? 왜 카자흐스탄은 이런 기념주화를 만든 것인가? 이 동전은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전설, 민담을 기념하여 발행하는 일련의 시리즈 중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다. 카자흐스탄에는 11만명의 한국계 사람이 살고 있다. 왜 이 먼 중앙아시아의 나라에 한국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일까? 그 유래는 일제강점기 때로 올라간다.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에 정착해 있던 한국인들을 강제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시켰다. 당시 연해주에는 2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일제의 폭압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을 일궈서 간신히 삶의 터전으로 바꿔놓았는데 난데없는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었다. 2차 대전을 치르고 있던 스탈린은 결국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과도 싸우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서 도망쳐온 사람들을 믿을 수 없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등 뒤에서 칼을 맞을 위험을 아예 지워버리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1937년 10월 22일, 한국인들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인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에 버려졌다. 이 폭력적인 이주 과정에서 수천 명의 한국인이 죽었다.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은 현재 고려인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념주화인 것이다. 연합뉴스의 후속 보도에서는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의 기념주화 수석 디자이너인 바세이노프 알마즈의 발언이 실려 있다. "각 민족의 전래동화나 신화 속 인물을 형상화해 만들고 있다. 고려인의 정신적 지주는 바로 단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디자인에 이를 활용했다."(연합뉴스, 2016년 10월 31일, '카자흐 정부, 11만 고려인 위해 단군 기념주화 발행')
▲ 카자흐 전래 동화의 주인공 알다르 쾨세 기념주화./카자흐스탄 중앙은행 홈페이지 캡처
단군 기념주화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13년 여름에는 카자흐 전래 동화인 알다르 쾨세 기념주화가 만들어졌다. 알다르 쾨세는 눈치가 빠르고 꾀가 많은 소년이다. 아버지 알단이 사기꾼에게 숱한 고생을 한 것을 알고 사기꾼들을 혼내주겠다고 마을을 떠나 서민들을 괴롭히는 악당 사기꾼들을 골탕 먹인다는 재미있는 민담의 주인공이다. 2013년 겨울에는 슈라레 기념주화가 나왔다. 타타르족과 바슈키르족의 전설에 나오는 괴물로 머리에는 뿔이 나 있고 털이 난 몸, 긴 손가락을 가지고 있다. 숲속에 살면서 변신을 하기도 하고 사람을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 타타르와 바슈키르의 전래 동화 주인공 슈라레 기념주화./카자흐스탄 중앙은행 홈페이지 캡처
그럼 카자흐스탄이 알다르 쾨세나 슈라레를 자기들 시조로 숭배해서 이런 기념주화를 만들었다고 할 것인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단군 기념주화에 붙은 설명을 보면 이 점은 더욱 확실해진다. 기념주화에는 '단군전'이라는 한글이 쓰여있다. 여기 쓰인 '전'은 이야기를 의미하는 '傳'이다.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의 설명문에는 한국 전래 동화(the Korean fairy tale)인 단군신화(The Legend)라고 적혀 있다. 아래 내용은 단군신화에 대한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의 설명이다. "단군-한국 최초의 국가형태였던 고조선의 전설적 시조. 한국 신화 단군은 하늘 신의 손자다. 일설에 따르면 단군은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고, 1908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환국도 없고, 역대 단군 이름도 없다. 카자흐족과 조상이 같다는 말도 당연히 없다. 연합뉴스는 동전에 단군과 환웅이 그려져 있다고 설명했는데, 그것은 곰과 호랑이가 있으면 환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의 생각에 따라 쓴 것이다. 동전에는 한 사람밖에 그려져 있지 않고 그 사람은 단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