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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07 17:07
[북한] 동독과 정상회담때 김일성의 본심이라네요..(상) 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1,295  

동독(東獨)공산당 정치국·서기장실 비밀 문서(文書) 중, 김일성(金日成)호네커 정상(頂上)회담 기록이 공개 됐다. 

"  "  의 글자가 금지어로  되있어서   연 으로 썼습니다.

 



천기(天氣) 누설에 가까운 본심토로·비화(秘話) 공개… 김일성의 관점에서 본 한국 현대사(現代史)… 그 의외의 육성 증언(證言)..



『팀 스피리트 훈련 때마다 우리는 한 달 반이나 경제가 마비된다. 이 난국을 타개하려고 평화협정을 위한 3자(者) 회담을 제의했더니, 미국(美國)은 중국을 끼워 4者 회담을 하자면서 빠져나가고… 우리는 남으로 진군(進軍)할 힘도 없다』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 김일성(金日成)은 호네커와의 회담에서 이 훈련기간 동안에 북한경제가 마비될 만큼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ㅋㅋ 김일성의 고충이란다..  많이 똥 줄 탔겠지.~



●『반공(反共) 민간정부가 군사정권보다 유리… 노동자·농민이 일어날 수 있으니』


●『박정희(朴正熙)를 고립시키려고 남북회담(7·4) 시작』


●『문화대혁명 때 중국군이 두만강 넘어 침입… 확성기로 5년간 비방…울며 겨자 먹기로 눈물 흘리면서 참았다』


●『팀 스피리트와 남한 군사력에 대응하느라 노동력이 부족』


●『전두환(全斗煥)은 독종개, 레이건에게 선거자금 제공했다』


● 고르바초프, 김일성(金日成)의 서울올릭픽 불참 요구를 거절


●『84연에 김정일(金正日)에게 국가경영 맡겼다』


●『남한은 1백만(萬) 대군, 우리는 45萬』


●『아무리 학생들이 데모해도 미군이 주둔하는 한 남한 정권은 변동 없다』

김일성(金日成)호네커의 세 차례 대화록이 입수 공개 된것을 나중에 알았다.

1990 연 독일이 통일되자 동독(東獨) 공산당의 기밀문서(文書)가 서독정부에 넘어갔다.

 

이 文書 중에는 당(黨) 최고권력 기구인 정치국 문서와 월터 울브리히트, 에리히 호네커, 에곤 크렌츠 같은 역대 黨 서기장 집무실의 문서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나라의 청와대 문서와 같은 최고급 기밀문서들이다. 이 문서 중에는 북한에 관한 문서도 수천 페이지나 있었다. 북한은 東獨을 사회주의권(圈)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국가로 생각해 왔다.

 

 

東獨의 발달한 군사·과학기술을 배우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북한과 동독 수뇌부는 인간적으로도 무척 친밀해졌다.

 

김정일(金正日)이 東獨에서 유학했고 강성산(姜成山) 현(現) 총리·연형묵(延亨默) 전(前) 총리 같은 많은 기술자들도 이 나라에서 공부했다.



특히 김일성(金日成)은 東獨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와 친했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이기도 했다. 김일성(金日成)은 몇 달 아래인 호네커를 「동생」이라고 부른 것으로 기록돼 있을 정도이다.

 

東獨이 망한 뒤 러시아에서 망명생활 중이던 호네커를 평양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특별기까지 보냈던 것이 김일성(金日成)이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우리 안기부(安企部)와 독일 정보기관의 협조에 의해 좌절되었다.

 

1977 연에는 평양에서, 1984년엔 베를린에서 1986 연에는 평양에서 김일성(金日成)호네커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 세 차례 정상회담에서 오고간 완전한 대화록은 약 1백30페이지에 이른다. 이 기록을 포함하여 수천 페이지의 1949∼1989 연 사이 북한관련 비밀문서는 공식적으로는 공개돼 있지 않다.

 

 

1991 연 독일 내무성은 자유베를린대학(Free University of Berlin) 동북아시아 정치문제 연구소 수석 연구원 서병문(徐炳文)박사(50)에게 북한관련 文書에 대한 분석작업을 의뢰했다.



1978 연 이후 자유베를린대학에서 연구하고 있는 徐박사는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다. 徐박사는 지난 9월 서울대학교와 자유베를린대학이 서울에서 공동 주최한 「독일통일의 교훈」을 주제로 한 국제 학술발표회에서 비공개로 「구동독(舊東獨) 비밀문서(文書)를 통해 본 북한」이란 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다.

 

徐박사는 이 논문에서 비밀문서에 나타난 김일성(金日成)의 남북한 상황 인식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徐교수는 『북한에 대한 정보는 왜곡돼 있거나 선전용인 경우가 많은데 이 문서를 통해 김일성(金日成)호네커의 솔직한 대화와 재소(在蘇) 및 재남한(在南韓) 동독(東獨) 정보기관의 고급 정보보고를 알 수 있어 북한 수뇌부의 동향과 생각을 정확하게 읽게 된다』고 했다.



5·16 군사정부에 위협 느낀 김일성(金日成)

 



북한을 움직여 온 김일성(金日成)이 친숙한 동지 호네커 앞에서 털어놓은 비교적 솔직한 이야기 중에는 北韓의 공식적인 정책이나 선전과는 완전히 딴판인 경우가 많다.

 

1972 연 7·4공동성명을 낳게 한 남북한 접촉과, 1984연의 평화협정체결을 위한(남·북한 및 미국 사이의) 3者회담 제의의 진짜 의도에 대한 김일성(金日成)의 실토도 있다.

 

天氣누설에 해당하는 김일성(金日成)의 이런 육성증언이 믿을 만한 문서에 근거하여 공개되기는 이 기사가 처음이다.



10 연에 걸쳐 호네커와 김일성(金日成) 사이에 10여 시간 동안 이뤄진 대화 중 김일성(金日成)의 말을 추적하면 북한의 변화과정과 김일성(金日成)의 전략 및 인식의 변화가 손에 잡히게 된다.

 

이는 김일성(金日成)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바라본 한반도 정세이자 한국 현대사이기도 하다.

 

재북한(在北韓) 동독정보기관원이 동독공산당 정치국으로 올린 정보보고에 따르면 북한은 5·16군사쿠데타 이전에는 남한內에 지하당 조직을 유지하면서 4·19데모에도 개입하는 등 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고 한다.



5·16전후의 기밀문서를 분석한 서병문(徐炳文)박사는 『동독정보원은 「5·16이 미국의 사주 없이 독자적으로 일어났으나 군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가는 과정에서 韓·美·日 동맹관계가 강화되었다」는 정확한 분석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5·16을 미국이 사주한 쿠데타로 보고 북침을 우려하였다.

 

김일성(金日成)은 한 달 뒤 모스코바·북경으로 달려가 중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게 된다.

 

5·16군사정부를 상당히 위협적으로 본 김일성(金日成)은 1960 연 대에 군사 제1노선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은 북한의 경제를 망치는 결정적인 정책 선택이었다.



반면 박정희(朴正熙)정권은 1965 연 에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월남에 파병하여 韓·美·日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한 바탕에서 경제 제1주의로 나갔다.

 

朴대통령의 「先경제건설 後군사건설 정책」은 김일성(金日成)의 「先군사건설 後경제건설」 전략을 파탄으로 몰고간 대전략(grand strategy)으로서 오늘의 남북한 격차를 만들었다.

 

박정희(朴正熙)의 전략은 먼저 권투선수의 체력(=경제력)을 튼튼히 키운 뒤 싸움기술을 가르쳐주는 식이었다면, 김일성(金日成)의 전략은 발육이 충분하지 않은 단계에서 과도한 맹훈련(=군사력 증강)만 시키는 바람에 권투선수가 발병한 경우이다.



東獨 공산당 정치국 文書의 북한관련자료를 보면 북한은 1970년대 중반까지는 남한이 북한보다도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열세(勢)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정보부측의 계산에 따르면 1969 연 북한을 앞서고 남한은 1인당 국민소득에서도 북한을 앞서고 있었고 1976 연 부터는 군사비 지출예산에서도 앞서기 시작한다).



남한은 백만 군대 갖고 있다



1972 연 美國의 닉슨 대통령이 북경과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데탕트 시대를 열게 된다. 김일성(金日成)은 이것을 미국의 약화로 보았고 이 자신감을 기초로 해서 남북한 접촉을 시작하게 되었다.

 

1977 연 12월 9일 오전 10시부터 평양에서 열렸던 김일성(金日成)호네커 정상회담에서 김일성(金日成)은 7·4공동성명 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북한은 충실한 국가입니다. 때문에, 남한의 많은 지식인들이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우리나라로 왔습니다.

 

대학과 전문학교에 있는 나이 많은 교수들과 박사들이 남한에서 우리나라로 왔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명한 자연과학자, 중요한 화학자 다른 전문가들 등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남한이나 일본에서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조국을 건설하고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美 제국주의자들이 남한을 30 연 이상 지배하고 있지만 오늘날 남한의 학생들은 우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학생들은 오늘날까지 단 한번도 우리를 반대하는 시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하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반대로 남한의 학생들은 괴뢰정부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美 제국주의자들과 남한 하수인들의 준동을 억누르고 남한 민중들에게 사회주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국제적 수준에서 북한이 전체조선을 대표하는 자주국가임을 증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길은 어렵습니다.



조선은 부르주아 혁명을 수행해보지 못한 후진 식민국가입니다. 그 때문에 당신 나라와 우리나라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 국가는 발전된 나라로서 혁명을 수행했고 우리나라는 봉건 후진 식민국가로서 혁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가 해방되기 앞서 경제를 완전히 파괴시켰고 우리가 재건을 시작하고 있을 때 미(美) 제국주의자들이 다시 경제를 완전히 파괴시켜버렸습니다.

 

농업도 마을도 모두 파괴했습니다. 평양에 남아있던 것이라고는 단지 집 세 채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념물로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잿더미 위에서 재건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無에서 시작했던 것입니다. 물론 소련이나 중국 그리고 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도움은 대단히 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움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건설하자」라는 구호를 내세웠습니다. 우리나라는 분단되어 아직도 통일이 안되었기 때문에 군사적 부담은 상당히 큽니다.

 

남한 괴뢰 도당들은 백만의 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76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 군사력은 백만입니다.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군사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한 번의 3개연 계획과 6개연 계획, 그리고 7개 연 계획을 수행했고 지금은 제2차 7개연 계획을 수행하려고 합니다. 우리 인민들의 생활수준은 아직 유럽만큼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민족경제를 창출할 것이고 우리 힘으로 설 것입니다. 우리 당은 5차 당대회의 결정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5차 당대회는 혁명 과제를 내놓았습니다. ①사상(이데올로기) 혁명 ②기술혁명 ③문화혁명. 사상혁명은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세계혁명의 적인 美 제국주의와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美 제국주의자들이 사상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사상적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그 때문에 全인민을 확고히 결속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적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 조건하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을 한번도 수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시기는 상당히 깁니다. 그 때문에 사상혁명은 중요합니다》



군사독재정권보다 반공(反共) 민간정부가 대남(對南)전략에 더 유리..



다음 대화에서 김일성(金日成)은 남한의 공산화가 日本의 공산화에도 유리한 고지(高地)를 선점(先占)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조선의 통일은 사회주의 진영에도 이익이 되고 일본 내에서도 혁명을 자극하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정책은 조선의 분할에 있습니다.

 

두 개의 조선을 존속시키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으며 우리와 평화협상도 안하고 그들의 군대를 남한에서 철수시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남한의 애국자들이 권력을 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내를 갖고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한에서 박정희(朴正熙)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지 않고 정당한 민주인사가 정권을 잡는다면 그 사람이 반공주의자일 수도 있겠지만 어째든 그런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면 통일의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박정희를 고립시키고 남한의 민주화 투쟁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인내심을 갖고 투쟁해야 합니다. 남한에서 어쨌든 민주인사가 권력을 잡으면 조선의 평화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군사력을 감축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한을 공산주의로 만들고자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언했기 때문에 그들도 우리의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노력해서는 안됩니다.

 

외국군대는 물러가야 합니다. 남한 민중이 그들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한반도 통일의 문제를 해결할 때 우선 두 개의 한국을 만들려는 것에 반대해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함께 투쟁해야 합니다.



남한의 애국세력이 민주화 투쟁을 더 많이 펼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박정희(朴正熙) 괴뢰정부를 완전히 고립시켜야 합니다. 며칠 전 정부의 억압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박정희(朴正熙)가 무너졌을 때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계속될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민주적인 상황이 이루어진다면 노동자와 농민이 그들의 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의 대화에서 김일성(金日成)은 분명히 대남적화(對南赤化)전략의 본질을 공개하고 있다.


①군사독재정권보다 反共 민간정부가 유리하다


②민간정부下에서는 노동자·농민의 활동이 자유로워질 것이다(각종 규제의 완화로, 또는 對南공작에 의해)


③그렇게 되면 남한 국민들은 사회주의를 선택하게 된다. 김일성(金日成)이 박정희(朴正熙), 全斗煥정권을 반대한 것은, 남한 內 민주화 세력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은 군사정권의 철권통치로 남한에서 그들 조직의 활동이 위축돼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함이었다.



7·4 공동성명의 배경



《이제 나는 북쪽과 남쪽 사이의 회담에 대해, 그리고 남북 공동성명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됐냐 몇 마디 할까 합니다.

 

1972 연 북쪽과 남쪽의 적십자회담이 열렸습니다. 우리는 적십자사 회담보다 정치회담을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정희(朴正熙)는 제네바에서 만나자고 대답해왔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왜 제네바에서 만나야 합니까,

 

평양이나 서울은 안됩니까. 우리는 말했습니다. 제발 평양으로 오라고. 그리고 그들은 왔고 우리는 만났습니다. 박정희의 대변인이 왔습니다. 물론 그는 美 CIA의 남한지부 간첩이었습니다.



나는 그(편집자주(注)이후락(厚洛)정보부장 지칭)에게 말했습니다.

 

왜 당신들은 한반도 통일의 문제를 외국의 의지해 풀려고 하느냐고. 조선 민족은 오랜 역사를 지녔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외부의 간섭없이 독자적으로 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미국이나 일본에 기대에 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측에서의 개입을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독자적으로 풀려고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남침할 것이라고 항상 주장합니다. 우리는 남침할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통일 문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제3의 과제는 민족 대단결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믿어 왔고 우리는 마르크스를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원하고 우리는 공산주의를 원합니다.

 

자본주의 국가 內에 공산당이 있는 예는 많습니다. 우리는 미군이 남한에 없다면 훌륭히 한 민족으로서 단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우리는 남한에 사회주의를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한도 우리에게 자본주의를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단결을 원합니다. 그들은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세 가지 기본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도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박성철(朴成哲) 동지가 서울로 갔습니다.

 

두명의 박씨가 만났습니다(편집자注朴正熙와 朴成哲의 비밀회담을 의미). 우리는 이 세 가지 원칙을 다시 한 번 천명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명서를 작성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마도 발표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서명하라는 지시를 미국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도 서명했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유엔군은 결코 외세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반공법을 폐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문제가 없다고 하며 폐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반공법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고? 그것을 없앨 것인지 아닌지? 그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현재 대화는 중단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두 개의 조선을 만들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입니다.



박정희(朴正熙)와 협상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박정희와 함께 협상을 진행한다면 박정희에 반대하는 남한의 정치세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미국은 항상 박정희와 우리를 함께 앉히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와는 협상을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았고 남한의 많은 애국자들을 감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박정희는 계속 미군이 남아 있기를 구걸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나라의 통일은 없고 분단의 고착과 두 개의 조선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상...   (하) 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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