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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2-13 17:10
[통일] 통일신라라는 말은 같은 동일 민족문화권이 합쳐졌을때 말하는거 아님?
 글쓴이 : 퐈이아
조회 : 2,322  

신라 옹호하시는 분들 오류중에 하나가
"외세 문제에 대해서는 각기 다 다른 나라였다.문화와 말도 안통했다"라는게 중점인데
그럼 통일이 아니라 정복이라고 써야 하는거 아님?
신라 옹호하는 분들 맘은 이해가 가지만
이렇게 코에 끼면 코걸이 귀에 끼면 귀걸이식으로 논리방어 하다보면
그걸 듣는 사람 입장에선 어떻게든 신라 옹호할려고 하는 것으로 밖에 안 보임
이제서야 발해의 중요성을 알게되서 그 동안 너무 신라중심사관으로 쓰여진 역사가
남북국시대로 바뀌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이 모순적인 논리로 신라 옹호할려는 건 좀..
통일신라라는 단어를 쓰지를 말던지
아니면 외세의 힘을 빌어서 같은 민족 쓸어버렸다는지
좀 일관되게 논리전개좀 해보세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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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13-02-13 17:51
   
평양성에 먼저 도착한건 당나라군였습니다. 즉 고구려 북쪽 방어선이 쉽게 돌파당했죠,
훨씬 쉽고 가까운 직격로였던 신라군은 당군보다 뒤늦게 도착합니다. 
그러나 당시 고구려 전황은 이미 당군에 평양성이 포위된 상태 였었죠.
결정적으로 신라군이 고구려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 전과가 없었어요.

그리고 신라는 평양성에서 고구려 내분으로 성문따주기 직전 직후의 군사적 행동이 상반됩니다.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지원하고, 압록강 넘어서까지 신라군과 고구려군은 협동작전합니다.
또한 신라지배세력권내 고구려를 가야와 같이 대우하고,
고구려계 왕족에게 왕의 성인 김씨를 사성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평양성 함락이후 고구려부흥은 실패합니다. 이후 나 당간 전쟁에서 당이 발을 빼면서
평양지역 고구려세력은 당과 합의된 경계인 대동강이남 신라쪽으로 넘어오구요.
그래서 평양성이 황폐화 된겁니다.

자 신라가 고구려를 망하게 한 결정적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보급로? 이미 왕성이 포위되서 오늘낼 하다 고구려 스스로 성문을 따버렸어요.
그리고 몇해뒤 신라고려 연합군이 압록강 넘어 당을 치면서 나당전쟁이 발발합니다.

고구려의 경우 신라때문에 망했다라는 건 전후맥락을 보면 아주 널리 퍼진 카더라죠.
그 강했던 대중국 전쟁 수성전 연전연승의 위엄을 그냥 신라의 민족적 배반이라는 평가로
상쇄하려는 의도 그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굿잡스 13-02-13 18:56
   
고구려 부용휘하로 있든 거란 8대 부족은 2차 고당 전쟁에서

고구려에 승리로 돌아가면서

다시 고구려 영향력 하에 들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고구려 내분으로 남생이가

당에 거란 4대 부족을 거느리고 투항했고 이 가운데


나당 연합에 의해 신라는 고구려의 3경중 하나인 한성을 점령하고 남에서 올아와서

평양성을 포위. 이런 가운데도 평양성이 한달 가까이를 버팁니다.


만약 백제가 살아 있어 신라를 견제 했다면 고구려는 평양성 일대에 주둔한 병력을

요동 일대로 급파해서 신성등 여러 성을 유기적으로 지원하면서 훨씬 견고했을 것임.


이미 고구려 내분으로 이런 유기적 군사 동원이 되지 못하고 주변국에 고립되면서

지원해야하는 전선이 사방으로 넓혀지고 그기에 남생같은 고구려의 내부 전략적 허실을

꿰고 있는 상황에서는 고구려가 마냥 버티기 힘들었던 요인이죠.

그기에 신라의 쌀보급은 현대 군사학적으로도 승패에 매우 중요한 한 요소이고요.

신라가 마냥 한개 없다는 식은 전혀 아니라고 보입니다.
          
굿잡스 13-02-13 19:04
   
남생이가 고구려 내분으로 당에 투항 할때

당시 당의 조정 분위기가 어떠했냐면요



663년 8월 당고종은 명을 내려서는 전쟁 준비를 위한 선반 무기 등 일체

중단하고 민생이나 돌보라고 했음.

서역, 거란, 백제, 철륵, 고구려로 이어지는 거듭된 전쟁으로

당나라의 전쟁 수행능력이나 국고도 피로로 한계에 달했다는 말이죠.

이제는 지쳐다 그만하자는 분위기가 압도했는데

이눔의 남생이가 배반해서는

가언충은 당고종에게 말하길.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지난날 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고

구려에게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군대에 중매자(적군 중에 내통하는 자)가

없으면 중도에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남생 형제가 집안싸움으로 말미암아 우리

를 인도해주고 있으니, 우리는 고구려 내부사정을 다 알 수 있으며, 장수들은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당고종은 남생이 처음 항복한다는 사절을 보낼 때도 믿지를 않아서

두번째 가서야 재차 확인하고 믿게 되었음.


고구려에 이런 틈이 없었다면 당나라가 3차 전쟁을 할 의지도 이길 신념도 없었을

것이라는 거죠.
굿잡스 13-02-13 19:10
   
그리고 연남생의 투항만 아니면 피로에 지친 당 조정이고 전쟁을 하지도 않았겠지만

이런 지친 가운데 이루어진 당의 팽창 정책으로 인한 무리한 3차 고구려 정벌은 결국 장기적으로

당나라를 빨리 패망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668년 고구려 정복후 그 지역에 안동도호부 설치. 도호부의 치소는 평양

676년 지금의 요양(遼陽)인 요동고성(遼東故城)으로 치소 이동

677년 무순(撫順)의 신성(新城)으로 치소 이동

발해가 들어서는 698년 안동도독부로 격하,

714년 지금의 하북성 노룡현(盧龍縣)인 평주(平州)로 치소 이동

743년 조양시의 요서고군성(遼西故郡城)로 치소 이동

지덕년간(756-757)에 안동도독부 폐지.(정확히는 사료의 불분명)

 

발해의 건국으로 당나라는 영주지방 서쪽으로는 거의 통치력을 상실.

발해의 건국이 이전에도 이미 676년 당나라는 보장왕을 안동 도독으로 내세우면서까지

통치를 꾀하려 하지만 오히려 보장왕이 유민과 같이 반기를 들어버림.
     
굿잡스 13-02-13 19:13
   
무리하게 넓어진 고구려 정벌은 일순 성공한듯 보였지만 단기간 내에

고구려 내지에서 거듭되는 고구려 부흥군에 의해 도륙 물려나면서 거듭되는 전쟁으로

피로가 극에 달했고 이 때문에 이후

당나라 중앙의 국고는 바닥을 들어내면서 나온게 절도사라는 제도임.

결국 이 절도사를 통한 각 지방 군벌에 대한 자체 독립적 힘이 강해지면서 여러 반란과

고구려 유민 이정기의 제나라등 세금도 내지 않은 수많은 번국들이 생겨 나면서

당나라 조정은 유명무실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됩니다. 이런 가운데 토번이고 이후 거란

등이 성장하면서 북방 이민족의 패권 시대가 도래함.
Player 13-02-13 20:22
   
신라의 군량미 보급은 1차때 한번였습니다.
그 것도 남쪽에서나 가능했지, 2차 3차는 전혀 상관 없었어요.

더구나 1차는 백제멸망직후 기세로 한번 올라갔었죠, 결국 실패로 끝나고 물러 납니다.
즉 기세도 올랐고, 당본토 증원군이 있었고, 신라에게 군량미 보급받았던 당시는 오히려 실패합니다.


그리고 6년이 흐른뒤 신라의 별 움직임 없이 2차 3차 당이 압박하면서 우세를 점하게 됩니다.

결국 마지막 평양성 함락직전이라고 판단한 신라가 움직여 온것이죠.

그리고 1달이라고 하지만, 당시 공성 군작전시간으로 보면 오래 버텼다라고 보기 힘든 시간입니다.

더구나 평양성 함락 당시 신라는 이미 대당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남쪽에선 신라보다 웅진도독부의 당세력이 존재하던 시기였구요.

이는 평양성함락직후해에 신라의 웅진도독부 공격에서 들어 나죠,
그리고 그 다음해에 본격적으로 고구려 잔존세력과 함께 대당 전쟁을 개시합니다.

백제가 멸망하지 않았더란면, 이란 가정은 백제가 신라에 공세를 펴지 않았떠라면,
고구려가 신라의 손을 한번 잡아 줬더라면과 같이 무의미한 이야기죠.

결국 고구려의 완전한 소멸측면에서 전쟁을 바라보자면,
신라는 전체시기와 물량면에서 보면 오히려 고구려측에 서있었습니다.
     
굿잡스 13-02-14 15:03
   
나당 연합에 의한 백제의 멸망은 고구려에게도 뼈아픈 것이죠.

기존 수나라가 고구려만을 직접 건드리다 요동성 하나  점령못하고 수백만명이 대패하면서

결국 나라까지 무너지자 당나라는 고구려의 겉가지를 철저히 다 자르고 자신의 편으로

들게 합니다. 

이에 따른 고구려 진격상의 초기 불필요한 체력 저하부터 긴 보급로 문제등

이 해결되면서 고구려의 북과 해상 그리고 남으로 전천후로 압박한게

고구려의 군사 운용에도 어려움을 줬던 것임.


그리고 2차 고당 전쟁이 결과적으로 고구려의 승리이지만  소정방이 이끈 평양도행군등

이 고구려에 고립되자 김유신이 이끈 보급품과 쇠뇌를 이용해 성공적인 철수를 도운

행적들이 있음(당시 고구려 군사 1만명을 격퇴).


신라가 그냥 그저 놀고 먹지는 않았습니다.^^
광개토주의 13-02-13 21:16
   
서강대 전 총장 이종욱이 얘 지금 어디 있나?

내 눈에 띄면 죽여버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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