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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2-14 20:55
[기타] 이것의 해석은 어떻게 변명 할 수 있나요
 글쓴이 : Player
조회 : 1,988  

실제 외세를 끌어들인 장본인은 백제였습니다.
왜를 끌어들여 신라는 물론 고구려까지 쳤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한일간 아주 드러운 악연의 역사관이 시작됩니다.
백제는 시종일관 왜세로 신라 괴롭히기를 멈출줄 모르죠.
 
남생이 고구려인이죠? 신라인이 아녔습니다.
당나라는 전쟁피로로 그냥 소강기에 들어갈때였구요.
그러면 남생 한놈 죽이기로 매국노 어쩌고 하실껀데, 남생 독단으로 했을꺼 같나요?
국내성에 세력으로 뒀었어요. 이들이 불리한 세로 당나라에 출병해달라고 구걸합니다.
 
결국 고구려가 망하는 도화선 점화는 고구려내에서 이뤄진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평양성문 개방역시 고구려인 스스로 대미를 장식한거구요.
 
국제적 고립이고 어쩌고는 변명이에요, 소강기에 당을 끌어들인게 고구려였어요.
 
상식에 벗어난 논쟁 좀 그만 하시죠.
 
검색질과 인터넷 토막지식으로 키배틀하는 사람들 일단 툭 던져넣고
살붙이는 사람들은 포인트 다른데서 버세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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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 13-02-14 21:27
   
지금의 현실과 다를바가 없네요
굿잡스 13-02-14 21:37
   
참고로 첨언하자면

삼국시대 당시에 열도는 자체 국가란 개념이 없는 공간이죠.

즉 가야가 신라를 압박하다 광개토 태왕의 중무장 기마병에 깨지면서 본격적으로

열도로 넘어가고 이후 백제가 아스카 도시문명을 기반으로 소위 분국형태로 다스린 외치 지

역이라고 해야 옳은.

백제가 서울 한성백제의 왕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에서 고구려에 박살나면서 이후 내려와

천도하면서도 웅진 이후 사비성에도 건재할수 있었던 배경은 백제의 왕자들은 열도에서 외치

수업을하고 본국에서 왕으로 등극하는 식이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열도라는 공간은 딱히 이민족이나 외국의 개념은 아닌 시절임.

사람들이 혹 왜의 신라 괴롭힘의 단편적 기록만을 보고 마치 왜가 신라 정도의 국가적 정치

체에 위용을 과시한 중앙집권적 군사력을 가진줄 착각하는데 이는 가야 백제의 또다른 휘하

부대 정도로 인식해야 할 부분이죠.(당시 동북아 주변 배경을 탑재하고 봐야  좀더 정확한

이해가 도출됨)


실제 우리의 삼국시대인 열도의 고분시대의 유적들을 보면 그냥 우리 지방 군벌들이

열도를 개척하기 바쁜 상황으로 그 흔한 도시문명이나 밀집 촌락은 나타나지 않고

있음.
굿잡스 13-02-14 21:40
   
아래는 6세기경 발견되는 열도 고분시대 최대 취락 모습입니다. 

어느 정도인지 참고 하시길.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3703&sca=&sfl=mb_id%2C1&stx=eogkseo
굿잡스 13-02-14 21:52
   
그리고 고당 3차에서 평양성 이전에 철옹성이요 요충지로 지목되던  신성이 사부구라는 놈에 의해

성주를 포박한채 성문을 열어 주는 내부 분열이 전황을 움직인 핵심적 작용을 했습니다. 이후 이 신성을

구하기 위해 온 고구려 대군도 이 때문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는 등. 이때문에 부속 수십개의 성이

너무도 쉽게 떨어지는 요인이 되죠.


전쟁의 피로에 지친 당 조정이 고구려 내분으로 거란 4대 부족을 거느리고 투항한 남생에 의해

고구려의 허실과 빈틈을 적시에 파악하게 되었고

다시 3차의 대대적 고구려 공격이 시작되면서 철옹성 같았던 신성마저 내부 분열로 알아서 내어주는

가운데 사방으로 밀려 오는 적에 의해 고구려는 유기적 군사적 움직임을 놓쳐버리고

평양성마저 고립된채 이후 함락되어 버린 것이죠.
굿잡스 13-02-14 21:54
   
민족이 같아도 다른 국가체에서는 위정자의 정치적 이상이나 노선은 달라 질수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북한과 남한이 같은 민족이라도 극렬히 다투는 형세가 나오듯.


동북아의 최강자였던 고구려가 강성할때는 왜 강성했고 후에는

왜 스스로 자멸의 길로 갔는지도 오늘날 교훈으로 새기는 역사적 반조의 지혜로 삼아야 겠죠.
sssangi94 13-02-14 22:59
   
다들 말섞기 귀찮아서 대꾸안하는 거 같은데... 한마디만 합니다.
게시판 전세낸것도 아니고... 눈팅들을 가르치려 들지마세요. 다들 식견있고 님보다는 똑똑한 분들입니다.
아... 이딴 글에 댓글 다는 내가 한심하네요.
네네 통일신라는 지구 최강입니다^__^, 됐습니까?
     
Player 13-02-14 23:15
   
대단한 분이네요, 글도 사용하지 않고,
정신감응으로 수 많은 눈팅분들의 잡념을 융합하시어 대변하시는 능력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지적하자면 마지막 네똥굵다는 초딩같은 수사법이네요.
Player 13-02-14 23:05
   
죄송하지만 지금 제가 말하는 것에 논점을 흩트리시는데요, 상대방이 지치길 바라는 꼬리잡기일 뿐입니다.
지금 연이어 말하는건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고구려가 망해서 대륙패권을 잃었다라는 설을 비판하는 겁니다.

당고종시기 이전부터 양자간의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럴듯 하겠죠.

왜는 이미 야요이시대 시작부터 등장합니다. 즉 신라전신 사로국 성립직후부터 등장하는 세력이에요.
한과 동일족속이 아닌이상 외세가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근거논리 역시 이치에 어긋납니다.
 
그리고 문화수준과 국가단계를 군사적 수준과 동일선상으로 파악하시는데,
말갈의 경우 문화적 수준등은 낮았어도 군사적 역량은 높았습니다.
흉노역시 전체적인 문화 수준과 군사적 능력은 별개였구요.
왜의 경우 심각하게 남성비율이 낮았습니다. 바꿔말하면 잦은 쟁을 해온 증거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 맥 한을 근본으로 생각하고 사실상 가장 타당한 설입니다.
즉 왜는 한번도 동족으로 여겨진적이 없습니다.

아울러 야요이인시기까지 왜 역시 중국 동해지방에서 어디를 경우해서건 일본에 들어온 세력으로 생각하고 가장 타당한 설임에 분명합니다. 여기에 고분시대인들이 산발적으로 유입되지만, 지배세력이 교체되었다고 기본이 변하는건 아닙니다.

말갈 여진 청 역시 같은 맥락이죠, 조상중 한명이 신라인이고 뭐고, 유전자 검사결과 일정한 부분이 현대 한국인과 유사하다고 해서 외세가 아닌게 되는건 아닙니다.
     
굿잡스 13-02-14 23:13
   
근데 님 혹시 저보고 이런 글 적나요??? ㅋㅋ 갑자기 궁금해지네 ㅋㅋ

그럼 님에게 묻죠.


왜는 이미 야요이시대 시작부터 등장합니다>

님 야요인들이 뭐임?? 서열도 본토인들임???

그리고 물론 문명이 낮다고 무력이 약한건 아닙니다.

그러나 북방의 기마민족들은 기본 말이라는 기동성이 이미 문화적 체질로

일상적이라 전투력에도 배가를 줬고 철기 문명도 도리어 이런 기마 민족들이

빨리 체득하는 형태들이 나옵니다.

그럼 서열도의

소위 왜인들이 이런 기마적 전투력이나 혹은 이른 시기 높은 수준의  철기 무장력을

이루었나요?
          
Player 13-02-14 23:44
   
야요이인들은 기본적인 구분요소가 도작 벼농사 집단인거겠죠.
고분시대인들의 기본적인 구분요소는 역시 기마 전투에 능한 집단인거구요.
양자간의 비율은 3세기 4세기 정도에 비율상 균형을 이루다 급격히 역전됩니다.

그럼 야요이인들을 인종학적으로 살펴보면, 중국동부에서 직접이던 한반도이던 큐슈부터 정착한 집단이 시작점을 이룹니다. 이들은 한반도 가야 철기와  다양한 청동기 문화화 중국계 청동기 문화가 섞여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보전중심 세력였습니다.
작전범위가 협소해지면 기마 특성과 보전간 사이는 격차가 좁아지죠.
야요이시기 왜를 보면 말을타고 기마전을 벌였던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현대 일본어는 토착어+ 한국어 +吳계통의 언어가 뒤섞인 형태입니다.
현대중국어에서도 吳語는 별종스럽습니다.

즉 야요이계 주세력은 吳부근부터 시작된 남만계 일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굿잡스 13-02-15 09:47
   
이들은 한반도 가야 철기와  다양한 청동기 문화화 중국계 청동기 문화가 섞여서 나타납니다.>??? ㅋㅋ

부산에서 대마도 이키 큐슈로 이어지는 고작 200여 키로의 대한 해협을 사이에

둔 서열도와 저 멀리 서토지역 중 어디의 문명 인종적 왕래나 유입이 현실적으로

활발했을 것 같나요?( 기본 한반도를 중심으로 3중 무역이 이루어 진게 그냥 나온

게 아니죠)

지나식 몇개 나타나는 걸로 어쩌고 할 사항인지?

귀찮아서 이전 동게에 올라온 글로 대신합니다. 참고해서 읽어 보시길.
                    
굿잡스 13-02-15 09:49
   
antijap
이거 웃기는 쪽바리네 아주 전형적인 견강부회를 하는구먼 요시노가리에서 지나식 청동거울과 동전만 발견되면
그게 당시 실체도 없는 겨우 1000명 내외의 사람이 모여 살던 자칭 왜 최대의 촌락이 지나와 교역이 활발한게 되나?
일개 촌락도 나라와 무역하나 ㅋ 그것도 본국인 가야 허락도 없이..쯧쯧..

참고로 한국의 고대 취락지역의 인구의 예를 들면 풍납토성의 경우 연대(年代) 측정한 결과 기원전 199년까지 나왔지.
아직 일부만 측정했기 때문에 기원전 3세기 정도까지는 올라갈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주변 인프라를 조사한 결과 풍납토성은 최소한 1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기원전 3세기에 그러한 도시가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고대 한국과 왜의 국력을 이야기 해주는 거란다.

물론 풍납토성조차도 한국의 중심지는 아니라는 게야 한국의 중심지는 당시 북방이었으니까
고고학적으로 더욱 인구분포나 기본 인프라가 풍납정도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라는 이야기야.
고대에서 도시를 이야기하려면 인구 1만은 적어도 되어야 한다는 소리지 그런데
인구 1000명의 일개 부락정도의 요시노가리가 도시? 뻥두 작작 쳐라 쪽바라~

풍납토성 유적지는 조금 크니까 비교 대상이 안된다구? ㅎ 그럼 요시노가리정도의 유적지의 예를 들어 줄까 그런건 널려 있어 한국 남부에..
전라남도 담양의 태목리유적에선 말이다 마한(馬韓) 유적으로 고속도로를 공사할 때에 발견된 것인데
특별하게 이곳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집중발굴한 것이 아니라 공사중에 일부분만 발굴했는데도 주거지의 숫자가 435개나 발견된단다.

한 집안 당 보수적으로 잡아서 4명이라구 해도 거의 2000명에 육박하지 ㅋ 그건 일부니까 나머지 다 발견하면
모 얼마가 더 늘어 날진 모르지 ㅎㅎ 그런 기본적인 촌락이 한국에는 널려있다는 거야..
니들처럼 기를 쓰고 발굴해서 고작 1000명이 아니라..이칭구야..고인돌분포도나 고인돌 숫자만 봐도
그건 거의 상식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거지 한국이 세계에서 고인돌이 제일 많은 나라라는 건 알쥐이~쪽바뤼 ㅋ


그리고 요시노가리 유적의 환호취락이라는 게 그보다 년대기적으로 500년이상이나 앞선 진주 대평리 유적이나 그보다 훨씬 상한인
부여 송국리 것을 그대로 빼다 박아 놓은 듯 한게 무슨 대수라고 환호가 무엇인지 아시냐는 둥 설레발을 펼치시나.
짝퉁 대평리나 짝퉁 송국리가 요시노가리인 것은 아시나

요시노가리 후기 유적지에서(서기 1내지 3세기) 발견되는 지나식 동경 몇점과 동전이 나왔다는 것을 침소봉대해서
당시 실체도 불분명한 즉 1000명정도 모여 사는 곳이 고작이었던 당시 왜에서 뗏목타고 지나와 교역하나

정신 좀 챙기시게 쪽바리씨 서기 1내지 3세기면 왜는 이미 서기전 3세기부터 건너가기 시작했던 가야인들이 완벽하게 왜를 장악하던 시기야
요시노가리가 짝퉁 진주 대평리라는 의미는 한국식 청동기 기술과 한국식 자루달린 세형동검, 간석기, 유리대롱옥 경북 영천 어은리에서
출토된 한국식 동경과 판박이인 동경, 옹관묘, 아가리에 점토 두른 덧띠문늬 토기 , 무문토기 등등 모두 한국 그 자체의 복사판이라는 소리지

즉 그곳을 건설한 사람들은 가야계 사람들이라는 의미이고 전기 야요이를 거쳐 후기 야요이인 1내지 3세기경 되면
모국인 가야를 통해서 수입된 지나식 동경이나 지나동전같은 거야 얼마든지 들어 올 수 있는건 역사가 아니라 상식이야
그걸 부풀려서 겨우 1000명정도가 모여 사는게 최대였던 당시 가야식민지 왜의 역량으로 지나와 교통을 해 푸하하하 犬笑

역사에 기본지식은 있는 쪽바리인가 이 친구는..ㅋ 야요이로부터도 훨씬 후인 삼국시대에조차도 백제와 신라에 얹혀서
지나에 사신을 파견했던 왜의 천박한 국력으로 그보다 훨씬 고대인 서기 1세기와 3세기경에 지나와 직접 교통했다고? ㅋ

귀 씻고 잘 듣게나 쪽바라 AD. 1세기면 이미 전기 야요이를 거쳐서 왜를 완벽하게 장악했던 모국 가야가 왜 그 자체였기 때문에
당연히 가야를 통해서 왜가야였던 요시노가리에서 출토된 여러 문물들을 지나의 교역에 가야가 사용했을 터이고
그때 교역의 댓가나 교역상품의 일부가 왜가야인 요시노가리에 흘러 들어 오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ㅎ

그리고 이 멍청한 쪽바리는 청동투겁창이 왜 고유의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네 이 대목에서 한참 웃었어 ㅋㅋ
그리고 기원 후가 되면 양유적 간에 역전이 이루어진다고 소설쓰고 자빠져서 다시 한번 기암을 하고 웃었어요 ㅋ
덱끼 아무리 쪽바리라고 해도 그렇지 fact도 없이 우기면 되나 ㅋ
한국식 원형 청동기 투겁창을 제사용으로 길게 조금 倭式으로 변형시키면 그게 한국과 倭의 문화가 역전되는 건가 ㅋㅋ
달랑 그거 한점가지고..아놔~ 이거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여행보낸 쪽바린지 참..어이상실이네..
그리고 두번째 거짓말 진주 대평리에서 이주해 간 고대 한국인들이 뭐하려고 다시 청동투겁창을 가져다 쓰니 ㅋ
자기 머릿속의 상상과 역사적 팩트를 완전히 혼동해요 이 쪽바리 이런 정도의 역사지식을 가지고 주제넘게
무신 오지랍을 떨고 있는지 기가 차지도 않아서 원 ㅋ

먼저 첫번째 거짓말인 청동투겁창이 일본 고유의 것이라고 누가 그러대? 쪽바리 우익이? 아니면 아키히토가? 아니면 니 소설?

니가 말하는 청동 투겁창은 후기 야요이시대에 왜가야에서 모국인 고대한국의 실전용 청동투겁창을 지나치게 길게 개조하여
장식용이나 제사용으로 개작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해야지 이 쪽바라
단순히 두루뭉술해서 청동투겁창이 '왜고유의 유물로 인정되는..'이라고 뻥을 치면 되겠니
그리고 니가 말하는 길게 개작된 청동투겁창이 '왜 고유의 것'이라는 것도 아직 추정일 뿐이란다. 쪽바라.

니가 말하는 짝퉁 '倭式 제사용 청동투겁창' 말고 원 청동투겁창은 말이다.
BC10세기경부터 요녕일대 서북한일대를 거쳐서 BC 3세기경 대전 괴정동, 화순 대곡리의 돌널무덤 등 주로 무덤유적에서 출토되고
이어서 기원 전 1세기경 경주 안계리일대 영천 용전리 고분에서도 출토되는 길이 20센티 이하의 원 청동투겁창을 말하고
그것은 (후기 요시노가리 유적으로서 AD1내지 3세기에 개조된 니가 말하는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변형된 倭式 제사용 청동투겁창보다)
년대적으로 훨씬 이른 시기에 한국에서 발견되는데 무슨 얼어죽을 왜 고유의 양식 운운하면서 개가 풀뜯어 먹는 소리를 찍찍 해대는가 !!

그리고 요시노가리보다 적어도 500년은 빠른 진주 대평리에서 좃빨랐다고 이미 제사용으로 용도가 변형된 제사용 청동투겁창을
왜 수입해다 쓰겠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게 니 두번째 거짓말이란다.

니가 무식한 것 같으니 또 본좌가 정확하게 fact를 말해주마.
요시노가리에서 발견되는 倭式제사용 청동투겁창이 발견 되는 곳은 진주 대평리가 아니라
요시노가리의 모국인 금관가야의 양동리 고분 출토유물이란다. 그리고 AD. 4세기경에 발견되는 역시
가야계 유물인 고성의 송학동 고분군에서 출토된단다.
이 양동리와 송학동에서 출토되는 제사용 청동투겁창은 AD. 1세기에서 AD. 4세기 것이란다 뽁바라.

뭔가가 그려지지 않아? 아무리 무식한 쪽바리지만..니가 워낙 무식하니까 본좌가 다시 정리해주지
제사용으로 변형된 倭式 긴 청동투겁창은 倭의 본국이던 금관가야나 가야제국에서 의례용으로 식민지이던 倭가야에게
주조를 명하여 생산된 것을 본국에서 가져다 쓴 개념이거나 잘 봐줘야 같은 국가간의 물물교환 형식이라는 게 합리적이지,
실체도 불분명한 AD1세기 무렵 야요이시대의 倭가 자생적으로 문화를 발전시켜서 지나와 교통하고
본국인 한반도에 영향을 끼쳤다는게 말이 되냐 ㅋ 에라이 이런 후로꾸(니들말이지 이거 후로꾸-영어 倭에 가서 참 고생한다 ㅋㅋ)
같은게 아직도 설치고 다니나 정신챙겨라 쪽바라..ㅋ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340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5%BC%EC%9A%94%EC%9D%B4&sop=and&page=1
                         
굿잡스 13-02-15 09:52
   
저 양반이 쪽발이의 망상질에 말은 좀 거칠게 한 부분은 있지만

열도에서 드러난 고고학적 상황이나 연구를 국내와 비교 교차해서

나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적어 놓았으니

링크 타고 정독해 보시길(몇개의 링크글들이 올려져 있음)


전 이만.
     
굿잡스 13-02-14 23:15
   
아울러 야요이인시기까지 왜 역시 중국 동해지방에서 어디를 경우해서건 일본에 들어온 세력으로 생각하고 가장 타당한 설임에 분명합니다. 여기에 고분시대인들이 산발적으로 유입되지만, 지배세력이 교체되었다고 기본이 변하는건 아닙니다.

>???

그리고 님이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서열도의  짱국식 고고학적 근거들이 무엇이 있는가요??


고견 부탁드림^^
굿잡스 13-02-14 23:23
   
지금 연이어 말하는건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고구려가 망해서 대륙패권을 잃었다라는 설을 비판하는 겁니다. >

뭐 이점은 여러 각도로 생각할수 있죠. 첫째는 아래 제가 말했듯 3차 시기 고구려 내분에 의한

남생의 투항이 없었다면 당 조정은 이미 전쟁의 피로로 각종 선박이고 더이상 하지 말며 일상 생활에나

힘써라고 했던 평화가 만연했던 분위기였으니.


그러나 전체적 판도를 보면 당은 수나라의 패배를 거울 삼아 다른 전략을 구사하죠.

이점eh 앞서도 설명했지만

고구려의 겉가지들을 계속해서 쳐나갑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나당 연합의 합동 작전도 이루어지고.


그런데 고구려 수도의 함락은 결정적 단초가 고구려 내분임이 맞으나 전체적 판도에서 보면

이런 당의 겉가지 치기와 이왕이면 한손 보다 합동해서 싸우는 형태의 전략으로 고구려는 여러 모로

지속적인 국력이 감소를 보였다는 점임. 결국 전쟁을 하면 일반 백성들은 농사를 짓기가 힘들고

1,2년 정도만 땅을 개간 하지 않으면 땅에는 잡초들이 무성한게 농사입니다.


주요인과 여러 복합적 요인들이 지속적인 유기적 관계로 발생했다는 점으로 설명 되겠죠.
애드온 13-02-14 23:39
   
그당신 백제는 막강한 재력과 군사력이 있섰습니다. 왜는 호랑이등에올라타는심정으로 벡재에게 굴종을 했던거구요
왜에서 온 용병은 3000명정도 되었습니다.
백제에선 안받겠다고 물린 용병들이었지만 왜에선 자신들의 충정을 보이고 일본 자국에서 백제와 친하다는
명분을 세우기위해서 왜는 용병들에게 살아서 돌아오지말라고하죠...
신라는 당나라와 동등한 위치가아닌 머리숙여 빌었습니다. 왜처럼..
그래서 인해전술 당나라군대가 들어온거구요...
뭘좀 자세히 알아보시고 게시판에 글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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