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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09 01:27
[통일] 고 문익환 목사님을 기리며
 글쓴이 : 으라랏차
조회 : 2,539  

이 글은 고 문익환 목사님의 부인 고 박용길 장로님이 돌아가셨을 무렵 썼던 글입니다.


고문익환 목사님을 실제로 만나뵙지는 못했습니다.

그분이 한창 활동 하시던 때 저는 초딩 중딩 때여서 그분에 대한거는 단지 방북했던
통일 운동가란 정도 뿐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학교앞 새마을문고에서(아마도 당시 운동권 재야에서
학교앞 새마을 문고등에 그런 책 기부하기 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그 분에 두 하늘 한 하늘 인가 하는 수필과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책 등을  읽고
태어나 처음으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던 정도 였습니다.


그때 읽은 책 가운데 안수길의 북간도란 책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동북 삼성이라 불리는 만주지역에 우리 민족이 정착해 살게 된 이야기 였지요.

조정래의 소설 만큼이나 재미나게 읽었던거 같습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문익환 목사님과 만주는 어떤 운명처럼 저한테 다가 오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몇달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등록금에 쓸돈 빼고 나머지
돈을 가지고 무작정 인천에서 대련가는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배값과 배에서 한달짜리 선상 비자를 받고 나니 손에 쥔 돈은 20만원 남짓 . 

렌민삐로 바꾸니 천몇백원 했던거 같습니다. 

아무튼 대련에 도착해 시내 여기 저기 다니다 자전거점포에서 중고자전거를 200원에 샀습니다. 
등에는 배낭을 메고 자전가 앞에는 그날 빤 빨래를 널고 다니며 그때 부터 자전거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차 목표는 대련에서 장춘까지 가는 거였습니다. 

기차나 버스를 타면 대여섯시간이면 충분히 갈 거리였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자전거를 타고
만주를 일주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대련가는 배를 탈때부터 자전거 여행을 생각한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단지 그 땅에 한번 가보자 였을뿐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간건 아니었습니다.
중국어도 할줄 몰라 여행 회화책 하나, 지도 하나 딸랑 들고 떠난 길이었는데 
암튼 꽤나 무모하고 엉뚱하면서 나름 열정만은 많았던 20대 초반 나이때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거 같습니다.  

대련에서 어찌 어찌 죽을 고생하고 길에서 잠도 자고 주유소에서도 자고 진짜 힘들다 하는 날은
10위안 짜리 여관에서도 자고 점심엔 라면 하나 부셔먹고 저녁엔 3위안짜리 도시락 사먹고 하면서
근 오일만에야 장춘에 도착할수 있었습니다. 뭐 제대로 길 찾아 갔다면야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
을텐데 빙 돌아 가기도 하고 암튼 정말 힘들었습니다.

똥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어깨며 허리며 안 아픈데가 없더군요. 

자전거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어 이제는 기차타고 대련으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돌아가는 배표를 산게 날짜가 근 20일 정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지금 돌아가봐야 
뭐하겠나 싶어서 다음 목적지로 장춘에서 길림시로 하루만에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길림에서 다시 교하 교하에서 둔화 둔화에서 조양천 조양천 까지 목표로 삼은 
도시를 하루나 이틀 걸려 도착하면서 결국 연길시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중간 중간 고생한 얘기는 말할 것도 없겠죠.

산에서 산적도 만나고 (진짜 산적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끊임없이 이어진 옥수수밭 사이로 차한대 안지나가는 길에서 어두워 졌는데 자전거 타고 가다
갑자기 차가 휙 지나가 밭두렁 사이로 쳐박혀 자전거 타이어가 휘어서 낑낑 끌고 가다가 
간신히 마을에 도착해 고친일 등 

그러나 장춘에서 연길까지 가는 길은 대련에서 장춘 가는 길보단 훨씬 아름답고
좋은 기억들이 많았습니다. 

아 그때 카메라를 왜 안가져 갔는지 ㅜ,.ㅜ 
시골 마을 사람들한테 거의 구걸하다시피 얻어 먹기도 하고 (그런데 중국 시골 마을 인심
은 우리네 옛날 시골과 다를게 없습니다. 시골 어머니가 더우니깐 목마를때 먹으라고 오이도
싸주고 , 시골 마을 경찰 혼자 있는 파출소에서는 씻겨 주고 재워주며 한국 젊은이 정신력 좋다고
어디 어디 조심해서 건강하게 잘 다니라고 하고., 어느 계곡 관광지에 조선족 식당 사장님 
역시 우리민족이다라고 하면서 안받겠다고 하는데 억지로 백원인가 얼마인가 뭐라도 사먹으라며
쥐어주고 등 가슴 짠해지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연길에 도착해서 10위안짜리 다인실여관 (이런 여관은 밥도 줍니다)에 묵어 이틀인가 
꼼짝없이 앓았습니다. 

내가 도대체 뭐할라고 여기까지 왔나. 
생각해보니 연길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습니다. 

연변이라고 하는 동네에 대해서 막연히 북간도란 소설을 읽은거 밖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지요.
뭐할라고 이런 개쌩고생을 했나 갈데도 없는데란 생각도 들고 암튼 그랬습니다. 

도저히 자전거를 다시탈 엄두가 안나 (아마 그때 엉덩이 다 까지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도문시에 갔습니다. 아 혼자 간건 아니고 그때 여관에 같이 묵었던 조선족 남자가
자기 집이 도문이라며 연길엔 병원치료 때문에 있었는데 돌아가는 길이라고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거기도 가서 구경하라고 해서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두만강변에 작은 국경도시 도문에 가니 한국사람이 보이더군요.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저 한국사람들이 낯선 외국인처럼 느껴지고 암튼 그런 기분이
들었지요. 

두만강다리 밑에 혼자 걸어 내려가 감상에 빠져 라구요를 큰소리로 불러 제끼자 강 건너편에
북한군 초병이 보였습니다.  덥냐고 물어보니 좆나게 덥다고 소리치더군요.

강건너 북한에 산에는 정말 나무한그루 없는 민둥산 뿐이고 망원경으로 보니 포장도 안된
산길에 북한 주민들은 죄다 걸어서 다니고 있었습니다.

마음 아프고 짠한 구경을 마치고 다시 연길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은 하루 자전거 안탔으니 이제 괜찮겠지 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용정으로 갔습니다.
오전에 출발했는데 오후 늦게서야 용정에 도착할수 있었습니다. 

용두레 우물가 가서 보고는 대성중학교에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토지나 북간도에 주무대로
나오는 원래 연변자치주에 주도였던 용정시.) 
물어 물어 (현재 이름은 용정 제2중학이었나? ) 암튼 도착하니 어느새 날은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
습니다. 그때 마침 한국단체관광객들이 막 구경 마치고 버스를 타고 있는데 아줌마들
\\\"아 볼거 없네 \\\" \\\" 이건 뮝미\\\" 하더군요.   

관리인 아저씨가 시간 끝났다고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자전가 타고 대련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고 사정하니깐 들여보내주더군요. 말씨가 한국사람 같고 꽤나 인자하게 생긴 아저씨였습니다.

용정제2중학 한쪽에 마련된 옛 대성중학교 (간도에 자리 잡은 우리 민족이 세운 거의 첫번째
제대로된 교육시설) 전시실에 들어가 이것 저것 구경하다 보니 문익환 목사님에 사진이 있는게
아닙니까. 대성중학교는 윤동주 시인에 모교로 서시 시비가 있고 해서 찾아간거였는데 뜻밖에도
문익환 목사님에 사진과 유품 그리고 그분의 한국에서의 행적등이 자세히 전시되어 있더라고요.

암튼 문익환 목사님에 얼굴을 보니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흐르던 눈물은 어느새 대성통곡으로 바뀌어 버렸지요. 관리인 아저씨가 깜짝 놀라 문목사님과
어떤 관계시냐고 물어보면서 다독여 주시는데 아니요,. 그냥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문목사님이 용정에서 태어나 해방된 조국이랍시고 찾아왔다가 갖은 고초를 겪으며 사신걸로만
알고 있었지 이분 얼굴을 여기서 보게 될줄이야.

내가 별다른 목적없이 충동적으로 떠나 이 개고생을 한건 문목사님을 만나기 위해서 였었나?
그간의 고생했던 힘들었던 순간들과 서러움들이 복받쳐 올라 만감이 교차하면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운명적인 끈 같은게 나를 여기로 불러서 문목사님을 뵙게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볼 뿐이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에 부인이신 박용길 장로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초를 겪으셨으면서도 오롯히 반듯하고 꼿꼿하게 계셨을지
마음이 아프고도 아픕니다. 또한 너무나 커서 갚지 못할 큰 빚을 안겨주신 문목사님이 생각나 
비통하기 이루 말할수가 없습니다.  

삼가 고인에 명복을 빌며 고 문익환 목사님과 저 하늘에서 편히 잠드시라 하고 싶지만
분단된 조국에 가슴 아파 편히 잠드시지도 못할 두분 이시니 더욱 더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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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zipz 13-12-09 05:47
   
동아시아게시판입니다.
chicheon 13-12-09 11:56
   
고 문익환 목사님이 아니라 뒈진 문 익환 좌좀비
봉이야 13-12-11 15:34
   
정신차리세요.
정크푸드 13-12-20 11:47
   
대단하네요.

중국이나 연변에 대해 안좋은 이야기(인신매매, 사기등)가 많은데 경험하신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인식에 변화가 생기는 듯 합니다. 산적을 만나고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웃다가꽥 13-12-20 12:09
   
혼자 기리십시요..그러나 강요는 하지마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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