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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13 12:13
[통일] 열국시대와 왕검성 추정 성곽의 문제점.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5,609  

평양시 토성동 일대의 토성(소위 낙랑토성으로 추정)
 
아래 평면도를 주의 깊게 보시길.
 
a0114420_49a66cc76e010.jpg

               http://roks821.egloos.com/viewer/8000827
 
 
 
고조선 말기 서토내지의 전국시대의 혼란과 멸망 속에서
 
요서일대의 유민들의 이주가 본격화 되었고 이런 가운데 위만이 고조선 준
 
왕을 몰아 내고 소위 위만 조선(BC198년~BC 108년)으로 정권교체가 될때
 
이미 고조선 내지의 북방지역은 철기시대의 본격적 도래와 맞물려 열국시대
 
로 분화되고 있든 양상임. 즉 삼국시대에 가장 큰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을 끼친 중축 세력이였던 북만주의 강자 부여부터(최소 기원
 
전 2세기부터 700여년을 이어온 왕조임) 동예, 옥저 및 남으로 내려간
 
고조선 준왕의 삼한등.
 
 
 
강점기때 잽은 거의 날림으로(오늘날 풍납토성도 하나 발굴해서 연구하고
 
정립하는데 10년 이상이 걸렸음) 저기 한번 훓어 볼까 뭐 이런식의 거의 
 
도굴수준의 탐사가 많았는데(실제 이런식으로 해서 사진 몇장씩 찍고 대충
 
추정 포장하고는 우리 유물들을 대대적으로 열도로 유출) 
 
서북한 일대에도 고작  70여기에 비해(이때 발굴한 토기등도 우리나 잽쪽에
 
지하창고에 쳐박혀 있다 해방 이후 50여년이 훌쩍 지나서 21세기 최근에 와
 
서야 신진 학자들에 의해 토기의 편년부터 특징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되기
 
시작. 한마디로 그 이전까지는 평양설 어쩌고 주장하는 인간들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잽의 날림 소리를 금과옥조마냥 쳐했다는 사실
 
이죠) 북한은  3000천여기의 고분 발굴등 상당한 데이타를 축적해놓았습니
 
다.
 
무엇보다 한나라식 인위적 형태의 토성들은 그 외형상 쉽게 드러나기에
 
육안으로도 확인되는게 특징인데(한마디로 눈을 씻고 봐도 수백년 지배
 
운운 쳐하면서 한나라식 성곽하나 제대로 나온게 없는 해괴한 ㅋ)
 
진짜 코메디는 서북한 일대 즉 위만조선의 수도라는 평양일대의 왕검성 추
 
정 토성동 일대의 소위 낙랑토성을 설명하면서 마치
 
이게 이후 낙랑군의 행정치소마냥 강조하기 위해 한나라식 토성의 특징인
 
평지성에 장(정)방형 어쩌고 뻘소리를 국내에서도 어떤 인간들이
 
여전히 늘어 놓았다는 사실임.(이건 이미 이런 서북한 일대의 소위 낙랑 토
 
성내에 나오는 토기들의 연구를 통해 한사군 이전의 출토 토기양식부터(활
 
석혼입계 토기등)  토성 자체 역시도 한사군 이전 고조선 재지세력의 막쌓
 
공법으로 확인되는 상황임)
 
 
 
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초딩 사회시간에 등고선 기초 개념만 알아도 저기가 무
 
평지에 그기에 성곽의 모양이 정방형(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형태) 어쩌
 
잘 모른다고 일반인들에 구라 캐소리를 하는지 참.(우리식 자연 지세를
 
이용한 굴곡있는 토성임을 쉽게 확인 할 수 있겠죠.)
 
 
서북한 일대는 이런 토성 외에도 평남 온천군 성현리 토성, 황해도 은율군
 
운성리 토성(너비 8미터 깊이 1.4미터 해자), 신천군 청산리 토성(황해도 신
 
천군동서490미터 남북200미터 ), 봉산군 지탑리 토성- 낙랑군 토성과 비슷
 
한 크기로 대방군 치소로 추정 동서 700미터 남북600미터 -, 함남 금야군 소
 
라리 토성(함남 영흥군 동서290미터 남북 170미터)  등이 존재하는데
 
 
 
 
지탑리 토성(이 토성도 보면 알겠지만 한나라식 토성과는 전혀~~ 거리가 멈)
 
 
 
 
 
랑군의 치소로 생각되는 평양의 토성동 토성은 동서 700미터  남북 600미
 
터의 평산성에 장방형의 한나라식 토성도 전혀 아니고 구릉지대가 있기 때
 
문에 지도상으론 0.31km가 맞지만 원추형의 입체로 실제 가용면적은 0.1㎢
 
미만으로 최대치가 1500명 정도의 수용 공간에 이 토성도 이일대에선 최고
 
의 규모라는사실임.
 
 
 
누선장군은 제나라의 군사 7천여 명을 이끌고 먼저 왕검에 도착했다. 우거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누선의 군사가 적음을 염탐해 알아내고 즉시 성을 나와 누선을 공격하니 누선의 군사들이 패해 흩어져 달아났다.
 
.
.
 
이에 태자를 파견해 한나라에 들어가 사죄하게 하고 말 5천필을 헌납하고 군량을 보내기로 했다. 만여 명의 사람들이 무기를 가지고 바야흐로 패수를 건너니 사자 및 좌장군은 그들이 변란을 일으킬까 의심해, 태자가 이미 항복했으니 마땅히 사람들에게 무기를 지니지 않도록 명하라고 말했다. 태자 역시 사자와 좌장군이 속여 자신을 죽일까 의심해 마침내 패수를 건너지 않고 다시 무리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위산이 돌아가 황제에게 보고하니 황제가 위산을 죽였다.
 
 
 
 
-사기 조선열전 중-


 
윗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왕검성에 있던 위만조선은 누선의 7천명 규모가
 
군사가 적음을 알고 수성이 아닌 직접 공격해 버립니다. 그외 거짓 항복으로
 
말 5천필 어쩌고에 1만 어쩌고 하는 걸 보면 이 왕검성의 규모는 최소 1만명
 
내외에 이르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그외 주변 백성까지 아우르면서 1여년을
 
한나라 수륙양공의(5만 7천명)의 거의 6만 대군과 맞쓸 수 있는 정도는 되어
 
한다는 말이죠.(그기에 수세적이지 않고 공세적이고 상당한 성과를
 
낼 정도로 철기로 무장한 군사력 보유) 그럼에도 이 서북한 일대는 이정도
 
규모의 중대형 성곽은 나오지 않고 있다는 말임.
 
 
다시 정리하자면서 서북한 일대를 무슨 한나라의 수백년 지배지 운운 쳐하
 
잽강점기의 캐소리와는 달리 한나라식 토성하나 나오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고고학적 상황하며 이걸 일시 점령 정도라고 생각해 볼 수 도 있지만
 
정작 사기의 위만조선 기록에 보이는 이정도의 중대형 성곽은 서북한일대에
 
발견되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이죠.(이정도는 이후 삼국시대 고구려가 본격
 
적으로 서북한 일대에 성곽을 개발,축조하면서 나오는 상황임)
 
그기에 이 서북한 일대는 세형동검등 청동기 문화가 기원후 1세기까지도 여
 
전히 나오는 공간입니다.즉 발달한 철제무기로 한나라와 맞서든 그런 위만
 
조선의 특징과도 맞지 않는 지역임. 도리어 요서일대의 고조선 유민이나 전
 
국계 혼을 틈타 이주한 영향력이 가미된 고조선 재지세력의 힘이 여전했
 
던 요하일대에서 북한 북부지역과 관련된 연화보 세죽리 철기문화권(연해주
 
두만강일대의 전국계 철기보다 더 우수한 철기문화의 영향이든)을 가진 발
 
해만 일대가 도리어 위만 조선이 차지하고 있든 공간일 가능성에 좀더 무게
 
를 두고 검토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군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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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4-07-13 12:15
   
그리고 한가지 현재 짱국은 대대적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고구려시대 박작산성이고 그위에 시멘트 공구리

쳐발라서는 무슨 연장성 어쩌고 만리장성이 압록강넘어 이병도식 저 북한 내지까지 들어가 있다는 식의 태세로

미췬 뻘짓을 쳐하고 있군요.


고무줄 만리장성… 中, 고구려-발해땅까지 연장

http://news.donga.com/3/all/20120607/46816671/1
굿잡스 14-07-13 12:54
   
열도내 우리 유적 -신롱석산성(神籠石山城:고고이시산성)

사가현(佐賀縣) : 오츠보산성(おつぼ山城, 1.87km)
사가현(佐賀縣) : 쿠마산성(帯隈山城, 2.4km)
후쿠오카현(福岡縣) : 코우라산성(高良山城, 2.8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녀산성(女山城, 3.0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라이산성(雷山城, 2.3km)
후쿠오카현(福岡縣) : 하키성(肥木城, 2.63~3.0km)
후쿠오카현(福岡縣) : 카케노우마성(鹿毛馬城, 2.3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고쇼카다니성(御所ヶ谷城, 2.5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도바루성(唐原城, 2.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미야지다케성(宮地岳城, 2.5km)
야마구치현(山口縣) : 이와키산성(石城山城, 4.0km)
에히메현(愛媛縣) : 에이누산성(永納山城, 2.8km)
카가와현(香川県) : 키산성(城山城)
오카야마현(岡山縣) : 키노산성(鬼ノ山城, 3.2km)
오카야마현(岡山縣) : 오메구리고메구리산성(大廻小廻山城, 3.0km)
효고현(兵庫縣) : 시로산성(城山城)

평균 2~3km, 최대 4km의 산성.
 


고구려계가 일부 남하하면서 서울 송파구일대 연인원 100만명이 동원된 기원전 2세기부터

늦어도 2세기경에는 완료된 백제 한성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등이고 지배할 수 있었던 또한

지배했음을 알 수 있는 합당한 근거가 나오듯 혹은 우리 고조선 가야 백제세력이 서북한보

다 훨씬 열악하고 인구수도 적던 미개한 열도에도 저런 수많은 성곽을 쌓았음에도(서구에서

도 로마가 역시 미개한 영국에 론디니움부터 여러 수많은 병영기지인 체스터와 118킬로에

이르는 하드리아누스 성벽 등을 축조)

소위 한제국이라는 그것도 이보다 훨씬 발달한 도시문명을 이미 갖춘 서북한 일대를 수백년 지배

쳐 운운하면서도 제대로된 한나라식 성곽하나 나오지 않으면서도 주구장창 무슨 한나라 지배 영토니

식민지니 캐소리가 지금까지도 나올 수 있다는 자체는 인류역사상 가장 웃긴 코메디임.

(잽이 만들어논 해괴한 임라일본부설만큼 쌍벽을 이루는 아니 더 심한 뻘소리죠)
뭐꼬이떡밥 14-07-13 13:06
   
사진 액박이요
     
굿잡스 14-07-13 13:10
   
아님 링크 타고 보시길.
          
뭐꼬이떡밥 14-07-13 13:11
   
링크 또한.. 액박이라..
               
굿잡스 14-07-13 13:19
   
ㅋ 그래요? 이건 잘 보이는데요? 님 컴이 좀 이상하신듯(아님 깔아 논 프로그램 영향인듯)

정 안보이시면 구글에 들어가서 낙랑 토성으로 쳐보세요 평면도사진으로

성곽 형태나 등고선등으로 높이위치등이 확인되니.
                    
뭐꼬이떡밥 14-07-13 13:28
   
저 크롬쓰는데 크롬이라 그런걸까요?
NordicBerry 14-07-13 13:13
   
굿잡스님 잘 봤습니다

쪽바리들의 역사왜곡은 그냥 기분 좀 나쁘고 끝인데

짱깨들 역사공정은 진심 소름돋내요.

기사의 고무줄 만리장성을 보니, 이것들이 우리를 반도사관틀에 얽매려는 의도가 있어보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것에 전혀 죄의식이 없는 나라들이라

그 대처가 치밀해야하는데 걱정입니다
뿡뿡 14-07-13 15:21
   
지금까지 이렇게 왜구나 서토애들한테 역사적으로 처발리는게 이시미나도 이시미나지만 이병도의 스승에 데한 충성심으로 평양을낙랑으로 지목한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이병도가 친일 왜곡 사이비 사학자가 아니라고 빨아대는 인간들이 있다는게 그것도 가생이...참 무섭죠...낙랑 이라는 말뚝 박아놓도 단군 고구려를 위해 힘썼다는 개 소리죠...시작이 식민이였다는게 중요한거죠...
Windrider 14-07-13 15:25
   
쪽바리도 다를거없어요. 역사책 만단위로 불태우고 일본에 유출도 잔뜩하고 심지어 왜곡까지 잔뜩해놨는데 쪽바리나 짱개나 그게그거.
     
뿡뿡 14-07-13 15:28
   
죄송하지만...어그로 절대 아니고요...십만 단위로 태웠어요...ㅠ.ㅠ
Windrider 14-07-13 15:30
   
아 그렇군요. 저도 만단위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밝혀지지 않는거까지 생각한다면 백만이 넘을수도 있겠군요.
     
뿡뿡 14-07-13 15:34
   
그렇죠?  조선 총독부 기록보면 나와있죠...ㅋ 이토오하고 히로히토가 가져간 책도 장난 아닙니다...수거령으로요...아키히토 집에 고문서 향이 자욱할겁니다...
뿡뿡 14-07-13 15:33
   
그리고 동북공정의 기본 베이스는 조선편수회 자료이기때문에 이병도가 얼마나 개색히 인지는 알아야하죠... 동북공정하고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지거든요...일본 역사 교과서 보고 놀란게 동부꽁장 내용이 들어가있다는거...왜구들은 남의 나라 역사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을까요?...ㅋ 이미 일본 사학계는 맨붕 올대로 왔는데 말이죠...ㅋ
없습니다 14-07-13 15:50
   
한사군이라지만 실제로는 낙랑의 위치 문제이죠. 다른 군들은 짧은 시간만 존재하다 없어졌거나 이동해 버렸으니..
낙랑의 위치에 관해서 삼국사기 이래로 조선의 유학자들은 평양으로 파악했었고, 후기의 실학자들은 요동지역으로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들어서 평양지역에서 대량의 낙랑유물들이 발굴되면서 낙랑의 위치는 평양이었을 확률이 높아졌고 특히 2005년에 평양에서 낙랑소속 25개 현의 위치와 인구를 수록한 목간이 발굴되면서 더이상의 논란은 무의미해졌습니다.
     
뭐꼬이떡밥 14-07-13 15:57
   
낙랑의 위치가 평양인거죠?
          
없습니다 14-07-13 15:58
   
               
설설설설설 14-07-13 16:06
   
아니요. 애초에 북한학계 자체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북한에서 평양에서 낙랑목간을 발견했다고 대놓고 떠벌린일이 상당히 궁금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북한 자체에서는 낙랑은 이미 토착세력에 의해 이미 그 전에 착출되었고 낙락국으로 비정시키고 아예 한국사의 일부 즉, 우리가 새롭게 건국한 나라로 비정시키고 배우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아직 학계내에서도 낙랑 자체에 대해서 이런 저런 논점이 많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장 삼국사기 기원후 32년 대무신왕 기록을 보더라도 그 떄 낙랑이 아예 착출 당하거든요. 낙랑 자체가 기록이 이상한 부분도 많아서 확실하게 알기위해서는 통일 자체가 답이예요.
               
없습니다 14-07-13 17:56
   
북한학계는 정치가 학문에 앞서기 때문에 1차사료만 가져오면 됩니다. 낙랑의 세세한 행정자료가 평양에서 발견되었다는것을 말하죠.
                    
굿잡스 14-07-13 18:35
   
북한학계는 정치가 학문에 앞서기 때문에 1차사료만 가져오면 됩니다. 낙랑의 세세한 행정자료가 평양에서 발견되었다는것을 말하죠. >??ㅋ

북한 학계 어쩌고 운운보다는 북한에서 주장한 왜 황해도 같은 곡창지대에 고작

6천 정도로 비정될 수 있는지 이 내용부터 반박해 보시는게 순서 아닐까요?
     
굿잡스 14-07-13 16:16
   
20세기들어서 평양지역에서 대량의 낙랑유물들이 발굴되면서 낙랑의 위치는 평양이었을 확률이 높아졌고 특히 2005년에 평양에서 낙랑소속 25개 현의 위치와 인구를 수록한 목간이 발굴되면서 더이상의 논란은 무의미해졌습니다. >?? ㅋ

고조선 재지 낙랑(국)이 고구려 아래에 있었던건 확실해 보이니 낙랑 유물이 발견되는건

어찌보면 당연하죠. 그러나 이게 한나라의 낙랑군인지 아니면 고조선 재지 낙랑국인지가

문제인 것임.(무엇보다 아래에서 내내 강조하지만 수백년 지배지 운운하면서 한나라식 토성

하나 나오지 않고 그기에 왕검성 추정 어쩌고 하면서도 전혀 그런 중대형 성곽하나 발견되지

않는다는 건 윗글처럼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는 말임)


그리고 님은 낙랑 목간 어쩌고 이야기하는데 애초에 북한 학자들이 이 목간을 내놓은 이

유는 도리어 평양일대가 이런 한사군 지역이 아니라는 증거로 내놓은 것임.
          
설설설설설 14-07-13 16:18
   
고조선 재지 낙랑(국)이 고구려 아래에 있었던건 확실해 보이니 낙랑 유물이 발견되는건

어찌보면 당연하죠. 그러나 이게 한나라의 낙랑군인지 아니면 고조선 재지 낙랑국인지가

문제인 것임. << 정확히 집어 주신것 같습니다. 확실한건 낙랑 자체가 아직 논점이 많은 부분이 라는것이죠.
          
뭐꼬이떡밥 14-07-13 16:20
   
목간을 내놓은게 평양일대가 한사군이 아니란 증거라니요?
               
뿡뿡 14-07-13 16:26
   
북한 역사학자 손형종은 논문에서 “목간의 호구 통계가 얼핏 서북한에 낙랑군이 있던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검토하면 요동반도 천산산맥 일대에 위치했다는 확고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목간에 나온 낙랑군을 평안, 황해도 지역으로 가정할 경우 인구가 밀집한 곡창 지대인 황해도 중심에 해당하는 군 남쪽 관할(남부도위) 3개현 인구수가 600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기록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요동반도 남단이 인구통계에 걸맞는 지리 경제적 조건을 지녔다면서, 요하 부근의 별도 낙랑군 주재설을 입증하는 근거로 뒤집어 보고있다.
목간 출토지가 평양인 것은 요동 낙랑군의 관리가 목간을 들고 도망해왔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뿡뿡 14-07-13 16:21
   
낙랑 위치 평양설 누가 주창한줄은 아시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낙랑고분 유물중 키포인트는 귀틀묘인데 중국은 그냥 석묘만 나오죠?...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4-07-13 16:26
   
잠시 북한이 왜 낙랑 목간을 가져 공개했는지 정황을 설명해 드리죠

<윤 학예사의 말대로 “목간의 호구 통계가 평양, 서북 지방이 낙랑군 통치 지역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각 현 관리들이 중앙의 명령에 따라 통계를 보고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목간 통계에서 낙랑군 직할지역이 가장 인구 밀집도가 높은 것으로 나온 만큼 조선현(평양)이 통치의 중심이라는 사실도 명확히 입증됐다는 것이다. 한족과 토착민을 갈라 인구통계를 냈다는 점에서, 당시 낙랑사회는 한족이 토착 사회 속에 융화하는 단계까지 이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하는 지지자들의 주장


북한 쪽은 왜 자기네 주장과 맞지 않는 목간 자료를 공개한 것일까? 손형종은 논문에서 “목간의 호구 통계가 얼핏 서북한에 낙랑군이 있던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검토하면 요동반도 천산산맥 일대에 위치했다는 확고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목간에 나온 낙랑군을 평안, 황해도 지역으로 가정할 경우, 인구가 밀집한 곡창지대인 황해도 중심에 해당하는 군 남쪽 관할(남부도위) 3개현 인구수가 600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기록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요동반도 남단이 인구통계에 걸맞는 지리 경제적 조건을 지녔다면서, 요하 부근의 별도 낙랑군 주재설을 입증하는 근거로 뒤집어 보고 있다. 목간 출토지가 평양인 것은 요동 낙랑군의 관리가 목간을 들고 도망해왔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 북한측 주장


북한의 주장이 나름 일리가 있는 이유는 황해도 일대는 북한에서도 가장 풍부한 곡창지대이면서

(실제 고구려도 이땅을 얻고 나서 기존의 식량 부족분을 상당수 해결)

나아가 고구려의 3경중 하나인 한성이 이르면 4세기 초반경에는 축조가 되었던 지역으로(이전 고조선

재지 도시문명이 확인되는 상황)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약10.5킬로미터로 외성의 둘레가 약 7950미터,

내성은 4700미터에 이르는 대형 성곽이 존재했던 곳임.

즉 비록 기원전 45년경의 인구조사의 시간차가 나지만 이당시 황해도 일대를 6천명 정도로 파악했다는

건 납득되기 힘들 정도로 나름 척박한 지형이라는 것임.
     
뭐꼬이떡밥 14-07-13 16:30
   
6천은 숫자가 적긴 적군요..
굿잡스 14-07-13 16:39
   
그리고 2010년에 정인성 교수가 발표한 <대방태수 張撫夷墓의 재검토>에서도 드러났듯이

장무이묘는 기존 잽학자의 학설(세키노 타다시) 이후 가장 강력한 대방군 치소 지역의 유력한 증거마냥 제

시되었지만 <장무이묘가 궁륭상으로서 축조 연대가 353년으로 알려져 있는 석개천장의 동리묘보다 시기

가 올라가야 한다는 기존 견해는 수정의 여지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무이묘를 구성하는 많

은 속성에서 고구려적인 요소가 있음을 밝히고 그것을 근거로 장무이묘가 4세기 중엽 이후의 고구려 고분

이라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위에 언급한 전돌로 현실을 구축하고 석개한 여러 고분들은 실제 대방군이

사라진 4세기 이후에 축조된 것들이라고 한다). 즉, 이처럼 장무이묘가 시기도 4세기 중엽으로 떨어지고,

그 성격도 대방군과 관련된 인물의 고분이 아닌 고구려 고분이라고 한다면 대방군의 위치를 황해도로 보

고, 그 치소를 장무이묘에서 가까운 지탑리 토성으로 판단했던 지금까지의 견해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소리가 된다. 이제는 신천리에서 발견된 토성과 안악지역에서 확인되는 전실묘, 은율군에서 발견된 수십기

의 전실묘 등을 토대로 대방군치의 위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생긴 셈이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발표했음

http://yeohwi.egloos.com/viewer/1107454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고구려가 한나라와 초기부텨 격렬한 투쟁을 하면서 이것이 본격화되고

한나라 군현과 충돌하면서 이들 포로들이 내지(즉 평양이나 황해도일대로)로 끌려 오는 경우들이 빈번해지고

실제 존재했다는 말임, 그중에 이런 장무이 역시도 다르지 않는 고구려의 포로로 잡혀 와서는

이후 죽는 과정에서 잽학자들이 제대로 고구려 고분의 성격과 특징을 파악하지 못한건지

의도적 정치적 목적하에 무시한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마치 이곳 황해도가 대방군 마냥 유

력한 근거로 그리고 국내 평양설 지지자도 생각없는 답습하에 도배로 쳐 주장.

( 그외 앞선 시기부터 전국계의 혼란과 멸망 유민의 이주들이 본격화 되기도 했든)
굿잡스 14-07-13 16:48
   
그동안 잽강점기 시절 잽학자들의 겉핥기식으로 보던 서북한 일대의

고고학적 성격이나 특징 규명은 최근의 본격적 연구를 통해서 기존에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든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견해나 결과들이 점차 도출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존 답습형식으로 무슨 서북한 일대가 한나라의 일방적 지배지나 식민지모양도 전혀 아니였고

도리어 고조선 재지세력의 영향력이 훨씬 지배적이였다는 사실부터 기존에 소홀히 검토되었던 사항들이

조금씩 구체적이고 명확히 드러나면서 뒤집히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임.


그리고 무슨 명도전이나 혹은 목간처럼 혹은 포로들이나 이주 유민들이 죽은 사례들을 단순 대입해서

이동성의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나아가 그 당시에도 국제적 교류나 경제적 무역소같은

지역이 없지 말라는 법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경제,문화 교류현상들로 일어날 수 있는 혼재

양상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이곳이 한사군의 지배지역의 근거라는 단세포적 사고는 분명 신중

히 좀더 명확히 검토되고 깊이 연구되어야 할 사항입니다.
없습니다 14-07-13 18:00
   
일부사람들이 주장하는 낙랑군/낙랑국 별개설에서 나오는 낙랑국은 한민족의 국가로 비정됩니다.
하지만 일제시대 평양지역에서 60기가 발굴된 이후 현재까지 2000여기 발굴로 나온 유물을 보면 묘장제까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물들이 나오죠. 낙랑이 평양에 존재하였다는건 의심할바 없으며, 이 설을 뒤집을려면 고고학의 물적증거를 전부 부정해야 가능합니다. 그러면 그건 이미 역사학이 아니라 소설이나 정치학의 분야로 가는거죠.
     
뿡뿡 14-07-13 18:17
   
참고로 저는 낙랑은 한국사에 포함되는 엄연한 한국사의 한부분이라 생각랍니다.
     
굿잡스 14-07-13 18:38
   
일제시대 평양지역에서 60기가 발굴된 이후 현재까지 2000여기 발굴로 나온 유물을 보면 묘장제까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물들이 나오죠. >?? ㅋㅋ

풍납토성등 서울일대도 짱국식 토기나 북방계 무덤양식등 여러 문화들이 나옵니다. 그

럼 서울 백제의 한성수도는 짱국 식민 지배의 근거임??(하긴 어떤 똘라이는 한술 더 떠서

이곳을 대방군 치소 어쩌고 캐소리를 하긴 하더군요) 아님 고구려도 적성총에서 이후 서토식

영향도 가미되면서 자체 발전한 봉토석실분 무덤양식들도 무시되어 버린 채 다 식민지배

지성격으로 단순 주장될 수 있는 것입니까? 님같이 단순 답습용 사고와 주장을 하니 무

슨 정작 장무이묘가 고구려 고분양식인지도 제대로 이해도 조사도 않고 무슨 대방군의

결정적 증거마냥 앵무새소리나 하면서 이어져 온 것 아닙니까?(님은 이 당시 고대사는 무

슨 경제, 문화, 인적 교류는 없이 모든것니 폐쇄 단절된 공간마냥 착각 하시는? 그리고

위에서도 누누히 말했지만 그리 수백년 지배할 정도면서 한나라식 행정치소하나 확인되

지 않는것임? 이런게 이지역을 해석함에 기본적으로 최소한 어떤 성격의 공간으로 깔고

봐야하는지 이해가 도통 안되심??)
뿡뿡 14-07-13 18:13
   
1. 평양 낙랑군설운 고조선의 아사달이 평양이라는 전제하에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살이 있는데 아사달이 평양이라는 근거 주세요...
2.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중 중국양식의 유물을 답해주세요. 혹은 일본이 쌥쳐간 유물중에서 말씀해주셔도 좋습니다.

3. 낙랑고분에서 항상 출토되는 세형동검과 귀틀묘 양식이 중국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와 이것들이 고조선의 세력 영역으로 볼수있는지 없는지 근거를 대주세요...

4. 평양에서 출토되는 낙랑유물로 보아 낙랑국 혹은 한사군의 낙랑인지 확신할수 있는 근거개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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