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축구협회 엠블럼이 삼족오, 세발 까마귀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물이었던 세발 까마귀를 자신들의 엠블럼으로 사용하고 있네요.
어찌하여 일본은 삼족오를 자신들 국대의 상징물로 쓰고 있을까요?
고대로부터 일본은 까마귀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와는 반대로 까치를 싫어하고 까마귀를 길조로 여겨왔죠.
그런 탓에 오늘날 일본 거리 곳곳에 까마귀들이 가장 흔한 새가 되어 있는것입니다.
한데 우리도 삼국시대까지는 까마귀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길조로 여겼던 민족이죠.
그러다 고려시대 유교가 들어오면서 까마귀를 싫어하고 까치를 좋아하는 중국의 가치가 함께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고려, 조선 합쳐 천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까마귀를 싫어하게 된 것이죠. 왜 싫어하는지도 모른채 말이죠.
중국은 고대부터 까마귀를 싫어했습니다.
음양오행에서 검은색은 북방을 나타나내는 색이고, 까마귀는 북방의 새죠.
그래서 북방민족들에게 무수한 침략을 당해왔던 고대 중국인들은 까마귀를 무척 싫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데 우리는 북방민족 그 자체였기에 까마귀를 좋아하고, 세발 까마귀를영물로 여겼던 민족입니다.
우리는 일본처럼 전혀 까마귀를 싫어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유교의 영향으로 중국의 가치를 받아들여 점차 싫어하게 되었던 것이죠...
한데 일본은...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무수한 사람들이 까마귀를 좋아하는 가치도 함께 가져갔던 것이죠...
유교의 영향력이 우리보다 미미했고, 외침도 거의 없었기에 지금까지도 까마귀를 좋아하는 의식이 남아 있어 길거리에 가장 흔한 새가 된 것이고, 삼족오를 국가대표 엠블럼으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연오랑 세오녀라는 신라의 설화가 있습니다.
이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왕과 왕후가 되었다고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죠.
비슷한 시기, 일본서기의 기록에 신라왕자 천일창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신라왕자가 일본에 와서 작은 왕국의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죠.
두 나라의 기록에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바위 배를 타고 간 것도 같으며, 연오랑과 세오녀가 떠난 곳이 영일현, 일본서기의 신라왕자 이름은 천일창으로 둘 다 해가 들어가 있는 것 등을 보면 아마 동일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떠나자 신라는 해을 잃어 깜깜해졌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신성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한데 두 사람의 이름에는 모두 까마귀 오자가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신성시 여기던 까마귀에 대한 가치가 일본에 까지 전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