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을 데려다 만들었다??-.-;; 그렇진 않아요.
중국과 일본의 공동작업이였나? 하여든 제가 예전에 몽골의 황궁을 영상복원한걸 본 기억이 있는데, 위구르의 무슬림 양식은 절대 아니였씁니다.
걍.. 지금 자금성과 비슷하게 한족의 기술자를 데리고 만든거처럼, 비슷했어요.
원나라때 최초로, 궁에 황금색 기와을 올렸고, 기본배치는 자금성처럼 되어있는데,정전같은 건물도 있긴 했는데, 명나라 자금성처럼 전각이 빼곡히 많은건 아니고,, 후편엔 마당처럼 넓게 비워두고 거기에 게르도 치고, 자기 고향에서 하던것처럼 하고 살았어요.
원후기, 원황제가 초원으로 도망가고 원황궁은 전란에 피해를 입음.
그뒤 주원장이 남경을 수도로 삼고 거기에 명초기 황궁 짓고 살다가
연왕 주체가 다시 북경을 수도로 하고, 원황궁 옆쪽?이였나.. 하여든 아예 그자리는 아닌데 그와 가까운 곳에 지금 현재 자금성을 짓습니다. 원황궁 모습을 많이 따랐지만
아예 같진 않고, 특히 몽골족들이 게르친다고 비워둔 공터가 많았지만,
한족이 게르치고 살건 아니니깐.. 뒷편까지 건물 빽빽 채워서,, 후궁으로 씀-그게 지금 자금성의 후방쪽에 있는 동서6궁임.
자금성은 명의 영락제가 만든겁니다..
님이 말하시는건, 자금성의 개념이 아니라, 전반적인 북경의 도시건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북경은 전국시대의 연나라의 수도로써 연경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후 내륙의 장안,함양, 개봉 같은 도시가 뜨면서 황폐화 가던게, 여진의 금나라가 중원공략을 하게되면서 전략적으로 다시 수도의 기능을 키웠죠. (금의 중도)
당시, 발해유민들이 거란의 요나, 여진의 금나라에 복속하게 되면서, 능력이 있는 발해인들이 그들 조정에 등용이 되는데, 금나라 휘하에서 수도의 기본 인프라 건설을 닦았죠.
역사기록엔 장호란 인물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 발해 유민출신의 북경의 설계자이자 건설 책임자입니다.
금나라 뒤엔, 몽골의 원이 들어서면서 대도라고 수도삼았고, 그뒤 명나라가 잠시 남경에 수도를 차렸다가,
연왕 주체가 영락제로 등극하면서 명나라에서도 계속 수도로 쓰고, 그뒤 청나라도 수도로..
북경이 천년넘게 수도로써 큰 역활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