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춘 사건 이후 중국의 식인 문화니 공자도 인육을 즐겨 먹었다느니 하는 출처가 불분명한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이들 주장 근거는 대만 황문웅의 <중국의 식인문화>, 노신의 <광인일기> 등이다.
또 공자가 인육을 즐겨 먹었다는 근거로 인육으로 만든 젓갈 "해"를 공자가 즐겨먹었는데
아끼는 제자 자로가 다른 나라에서 역모에 휘말려 처형당하고 나서 "해"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는 해를 먹지 않았다는 얘기를 든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들은 사실이 아니다.
우선 대만의 황문웅이 누구인가?
철저한 친일 학자로 오로지 일본은 근대, 중국은 전근대라는 시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아주 씨.발 개.새끼일 뿐이다.
일본학자들은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철저히 전근대의 낙후한 역사로 짜집기하면서 특히나 중국의 식인문화에 대해
집요하게 연구했는데 사실 황문웅의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중국에 식인이 널리 퍼진건 당나라 말 혼란기와 이어진 오대십국의 혼란기였다.
황소의 군대는 실제 인육가공 공장 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당말오대십국의 극심한 혼란기가 끝나고 송나라 시대가 되면서 (예전에 송태조 조광윤의 문치주의에 대해 얘기했었다)
식인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물론 그 이전 시대라고 해서 식인이 합법이었다는건 아니다.
단지 극심한 전란과 대기근 속에 벌어진 식인 (사실 그것 조차도 일종에 관용어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
광범위하게 퍼진 문화인양 떠드는건 과대 과장 광고일 뿐이다.
그런식의 식인이라면 서양이고 일본이고 어디고 간에 다 벌어진 거다.
노신의 "광인일기"를 보자.
여기서 사람이 사람을 먹는 사회라는 것은 실제의 식인을 얘기하는게 아니다.
노신이 살았던 그 당시 신지식인으로써 낙후되고 근대화되지 못한 조국에 현실을 개탄하는 차원일 뿐인거다.
공자가 즐겨 먹었다는 "해" 라는걸 보자.
"해"라는건 그냥 고기를 젓갈로 담근 음식의 통칭일 뿐이다.
인육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해"가 아니다.
그런데 설문해자등을 보면 "해"의 뜻가운데 인육으로 만든 젓갈도 있다.
즉 원래 고기를 이용해 만든 젓 이란 뜻의 해는 역사적으로 인육으로 해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음으로 해서
그 글자 뜻 가운데 인육의 뜻도 내포하게 되는것일 뿐이지 해=인육은 아닌거다.
앞으로 돌아가 공자가 평소 해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 가운데 그 해가 인육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당신이 불고기를 엄청 좋아해 돼지불고기든, 소불고기든 매일같이 먹는데 아끼는 제자가 다른나라에서 살해당하고
인간불고기가 됐다고 하는 소리를 듣게된다.
그럼 다시 불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공자가 다시는 해를 먹지 않았다는 구절은 이렇게 해석해야 온당하다.
그리고 공자는 "인육을 먹지 않는것이 군자"라고 까지 했다.
춘추시대 약육강식의 전쟁과 혼란이 극심하던 시대에 식인을 금하는 말을 했다.
이후 공자님 말씀이 금과옥조로 받들어 지던 중국과 한국에서 식인이 무슨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음식이고 문화인양
교묘히 왜곡되고 과장하는건 대체 무어란 말인가.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한 고난의 행군시절 북한에 아사자가 속출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일까지 벌어진다는 얘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들었다.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됐든 많았다고 치자, 사람을 잡아먹는 다는 소문은 과연 누가 실제로 봤나?
아니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쳐도 그게 광범위하게 벌어진 일종의 문화로써 벌어진 일인가?
중국과 조선의 역사 기록에 나오는 식인의 대부분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 밖에 불구대천의 원수를 죽여 그 간을 씹어먹었다든가 죄인을 죽이고는 젓갈을 담아 그 가족에게 먹게 했다든가 하는식에
얘기들은 어떤 문화적 현상이나 역사적흐름 뭐 그딴게 아닌 심리학으로 봐야 할 문제다.
제발 쪽바리들이 교묘하게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부화뇌동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