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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21 21:52
헬본에서 혹평 받은 사극 드라마 ㄷㄷㄷ
 글쓴이 : 화난늑대
조회 : 3,499  





고증이 완벽하게 해서 욕 처먹었으므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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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모의 21-08-21 21:54
   
진실을 마주하지 못하는 소인배국 ㅇㅅㅇㅋ
     
화난늑대 21-08-21 21:55
   
진실을 마주하기 싫은 호두 ㅇㅅㅇㅋ
감을치 21-08-21 21:5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퍼밀가루 21-08-21 21:56
   
아시아 유일의 패망한 2차대전 전범국가라는 불편한 진실을 계속 강조해주면 얼마나 발광을 할지...ㅋㅋㅋㅋㅋ

토착왜9들이 먼저 들고 일어날수도 있지만...
마르티넬리 21-08-21 21:56
   
문제는 저 시기부터 슬슬 인구, 국력 밀린 어떤 K국이 있음
     
화난늑대 21-08-21 21:57
   
밀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라리 원숭이가 맨발로 세계정복 했다고 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
          
마르티넬리 21-08-21 21:59
   
이미 이앙법도입부터 조선이 한참 늦은터라 부양인구수부터 저때부터 서서히 밀리던 시기였지.
               
화난늑대 21-08-21 22:00
   
서서히 밀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르티넬리 21-08-21 22:03
   
반론 못하고 아닥하는 중 ㅋㅋㅋㅋ

부양인구수부터 차이가 난다는건 선진농법부터가 고려-조선이 밀렸다는 것임.
                         
리로이깁스 21-08-21 22:04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국립정신건강센터
02-2204-0114 서울 광진구 용마산로 127
평일 09:00 - 17:30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휴무
http://www.ncmh.go.kr/ncmh/main.do

아 개대가리 열도산이지
자 네 모국문자다
토착왜구라도 일단 치료는 해준다

土着倭寇でも治療はしてくれる

国立精神健康センター
02-2204-0114 ソウル広津区龍馬山路127
平日09:00 - 17:30
土曜日·日曜日·祝日定休
http://www.ncmh.go.kr/ncmh/main.do
                         
아리가진리 21-08-21 22:07
   
일본
총 확진자 수
126만
+25,892
사망자
15,592
+39

대한민국
총 확진자 수
23.5만
+1,880
사망자
2,202
+5

아아 니네 개쩍빠리들 한테 밀려도 너무 밀렸지...
                         
화난늑대 21-08-21 22:08
   
인구 많으면 부국이냐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진농사법??????????? 우리가 전해준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kseoul777 22-03-23 06:14
   
키가 150은 되나?
               
리로이깁스 21-08-21 22:01
   



얼마나 개 병 신 찐 따 면

이 색 히는 낵아 댓글 수 집 도 안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우 21-08-21 22:01
   
                    
커피향기 21-08-21 22:03
   
익명으로 지원해달라는거 이거 진짜 웃겼는데요 ㅋㅋㅋ
                    
골리앗 21-08-21 22:38
   
방호복 지원해주고싶으면 소녀상 철거하라는거 기가막히네
     
역적모의 21-08-21 21:59
   
     
아이엠미 21-08-21 21:59
   
8yungS1nS3KK1~~
     
미우 21-08-21 22:00
   
     
수퍼밀가루 21-08-21 22:01
   
됐고....아시아 유일의 패망한 2차대전 전범국가의 과거일 뿐 ㅋㅋㅋㅋㅋ
          
마르티넬리 21-08-21 22:02
   
아시아유일의 열강국이자 아시아유일의 근대화국가이기도 했지. 2차대전 패망한다고 그다지 열등감 가질 필요도 없을 듯.
               
수퍼밀가루 21-08-21 22:04
   
그거 믿고 까불다가 핵이나 쳐맞지...ㅋㅋㅋ

열등감 갖던가 말던가 관심 없고 추축국에 아시아 유일의 패망한 2차대전 전범국가 타이틀은

영원히 안 바뀔 듯 ㅋㅋㅋㅋㅋㅋㅋ
                    
마르티넬리 21-08-21 22:05
   
애초에 그 시기의 아시아유일은 좋은 것이든 나쁜것이든 죄다 일본이니까 굳이 프레임화하지 않아도 전부 일본으로 귀속되니까 헛발질 안해도 된단다.
                         
리로이깁스 21-08-21 22:08
   
                         
수퍼밀가루 21-08-21 22:09
   
원자폭탄 피해자 코스프레질 하는 게 역겨워서 그러는건데 뭔 프레임???

확실히 아시아 유일의 패망한 2차대전 전범국가라는 사실을 보는 게 거슬리나보네...ㅋㅋ
                         
마르티넬리 21-08-21 22:12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데 지 혼자 장애걸린 마냥 프레임잡고 노는게 안쓰러워 보임

그 당시의 조선은 전범국 따까리도 안되었다는거.
                         
아리가진리 21-08-21 22:13
   
안쓰러운건 고시원에서 고독하게 늙어가고 있는 660원 알바나 하는 토왜 니새끼겠지 ㅋ
                         
리로이깁스 21-08-21 22:14
   
마르티넬리 21-08-21 22:12
  광고글 신고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데 지 혼자 장애걸린 마냥 프레임잡고 노는게 안쓰러워 보임

그 당시의 조선은 전범국 따까리도 안되었다는거.




뭐야 이 ㅂㅅ 은 그저 정신딸거릴 찾는거였네

엽병을 떠는게 역쉬 개종자들 답다

                         
수퍼밀가루 21-08-21 22:17
   
남들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아시아 유일의 패망한 2차대전 전범국가 표현에 발광하는거임?? 너님도 신경 안쓰면 되는 일에 왜 발끈해서 시비거리를 제공하는거임?? ㅋㅋ

프레임 짜기는 개뿔...지 혼자 보기 거슬려서 못 넘어가놓고는 ㅋㅋㅋㅋ
                    
마르티넬리 21-08-21 22:06
   
생물학명조차도 Japonica라고 붙여놓고 선점한 것도 많은데 그게 그 전범국이 한 것이고.
그 전범국에서 만든 학술용어 그대로 베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쓰는 K국이 있고.
                         
아리가진리 21-08-21 22:08
   
쩍빠리 본토인 부끄러운 모습만 나오면 부들부들 거리면서 거품 무는게 딱 토왜 그 자체 ㅋ
                         
리로이깁스 21-08-21 22:08
   
     
tuygrea 21-08-21 22:45
   
응 느그 쪽국 인구 반도 안 되는 그런 K국한테 국력 따라잡히는 중ㅋㅋㅋㅋㅋㅋㅋ
수십년 째 발전이 없어서 지나간 과거의 영광만 붙잡는 J국ㅋㅋㅋㅋ
한국보다 인구 많고 국력(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큰데도 후진국인 나라들이 수두룩한데 그런 나라들이나 좀 신경 써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21-08-22 07:56
   
??ㅋ


■ Jap이 미개한 훈도시 차림인 이유.

100여년 전의 사진에서 보는 일본의 서민의 생활은 참혹했습니다만 일본인들은 에도시대의 서민은 염색된 화려한 옷을 입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에도시대의 서민의 삶 중에서 무엇을 입고 무엇을 덮고 살았을까요?

https://m.blog.naver.com/marich77/40200630476


에도시대 농노제 하에서의 쌀생산

https://m.blog.naver.com/marich77/40200001447


■ 메이지 시대에도 여전히 움집(땅파고 들어앉은 거주지)과 빈약한 판자집을 벗어나지 못했던 Jap.


(Jap)농민의 의복에 관해서는, 삼・무명으로 한정되어 노동에 적절한 염색되지 않은 筒袖・잠방이가 사용. 농민의 주거에 관해서는, 더 비참해서, 가건물기둥에, 토방을 강제. 마루는 불경제로 여겨져 토방 위에 멍석이나 짚을 깔고 잤습니다. 땀으로 부드러워진 멍석이나 짚은, 논의 비료로 사용. <농민의 식사에 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되어 보리나 조가 주식이었습니다. 작은 새의 먹이입니다. 부식이나 간식도 금지.> 오락도, 연중 행사 이외는 금지         

http://blog.naver.com/marich77/40201615696����



마비키 まびき [間引き]   

1930년대 홋카이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아이의 목을 눌러 살해하는 '마비키'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일용할 양식을 축내는 새 식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장, 자장, 잘자거라 자지 않으면 강에  버린다 자장, 자장, 잘자거라 자지 않으면 묻어 버린다'   

이 자장가 중「강에 버린다」,「묻어 버린다」는 마비키의 은어라고 한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6486���


'出羽奥州와 奥州(현재의 동북지방)에서 
매년 1만 6, 7천명, 上総(현재의 지바현)에서는 
3~4만명의 갓난아기가 솎아냄(마비키) 되고 있다' 


ㅡ에도시대 농학자 사토 노부히로


에도시대ㅡ 성장점 최저점시대.
     
굿잡스 21-08-22 07:57
   
■ 미개한 Jap의 오랜 노상방뇨변 문화.

과거 왜국에서는 나라(奈良,710∼794)시대나 헤이안(平安,794∼1192)시대까지만 해도 수도(首都)나 도시라고 해봐야 농촌과 별 차이 없이 공지(空地)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변소를 이용하는 일 없이 집 주위에서 방분, 방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문명국이었던 중국, 한국과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들 나라의 풍습이 전해지기 시작했고 이때 중국의 호자(虎子),한국의 요강(尿岡)등이 들어와 일부 왜국 귀족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다.


순소로(糞小路)와 노방변소

19세기 근세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은 노상에서 방뇨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당시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노상에서 방뇨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어 자기 나라에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교토(京都)에는 '분소로(糞小路)'라는 거리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이 거리가 바로 화장실처럼 누구나 가서 대. 소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거리에는 언제나 오줌, 똥이 쌓여 있어서 누구든 이 거리로 들어갈 때에는 신고 갔던 신발을 벗고 입구에 놓여 있는 굽 높은 나막신으로 바꾸어 신고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그후 왜왕이 우연히 이 거리를 지나다 그 내력을 듣고 거리 이름을 바꾸도록 지시해서 오늘날의 금소로(錦小路)가 되었다.

메이지(明治)3년(1870) 일본 정부는 '방뇨 취제의 포고'를 내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요코하마 시내에는 83개소의 노방(路傍)변소가 만들어졌다.

이 노방변소는 일본 최초의 공중변소였는데 큰 변조를 땅에 묻고 그 주위를 판자로 막은 어설픈 것이었다. 

일본 정부의 노력에도 불고하고 노상방뇨의 
풍습은 쉽게 근절(根絶)되지 않았다.

.

■ 서서 오줌 누는 일본 여성

에도(江戶,1596∼1686)시대 일본 교토(京都)의 여자들은 길가의 소변통에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예사롭게 소변을 보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풍습은 메이지 시대 말기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여염집 아가씨. 하인을 거느린 상류층 부인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도로변 벽을 향해 엉덩이를 내놓고 선 채로
오줌을 누면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두고 비웃는 사람도 없었다.


https://m.ilbe.com/view/11188092966


■ “한해 쌀 수확량 12% 접대비로 사용”
옥스퍼드대 루이스 교수 논문

“일본이 조선통신사의 한 차례 방문에 쓴 접대비용은 (일본의) 한 해 쌀 수확량의 12%를 넘었다.”

루이스 교수는 “막부정권은 문명국인 조선과의 교류를 통해 피지배층에 대한 권위를 강화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조선통신사를 지속하길 원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접대비용이 ‘파괴적인 수준’이 되자 이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굿잡스 21-08-22 07:58
   
Jap은 인명경시에 인권도 미개하다보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민까지 인신매매로 팔아 무기 수입 전비 마련이 당연시 되었던 미개 정치 사회가 전통적 역사.(자국민을 노예 수출질 쳐하던 동양의 아프리카국  =Jap)



《수십만 여성들에게 성노예 착취가 이미 당연시 되었던 Jap의 뿌리 깊은 미개 정치 사회상》   

조총과 화약 무기를 수입하기 위해 자국 백성을 노예로 팔아 치우던 막장 Jap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dg00010&logNo=221300104544&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daum.net%2Fsearch%3Fnil_profile%3Dbtn%26w%3Dtot%26DA%3DSBC%26q%3D%25EC%259D%25BC%25EB%25B3%25B8%2B%25EC%259E%2590%25EA%25B5%25AD%25EB%25AF%25BC%2B%25EC%259D%25B8%25EC%258B%25A0%25EB%25A7%25A4%25EB%25A7%25A4%2B%25EC%2588%2598%25EC%25B6%259C����������������������

このように??時代も明治大正時代も大勢の日本女性が?春婦として?り飛ばされたのですが、現代の日本人としては認めたくない事?なのだろう(「明治から大正にかけて、30万人もの日本の若い女性が海外に?られていった」)         

이와 같이 전국시대도 메이지 타이쇼 시대도 많은 일본 여성이 매춘부로서 팔아 치워졌습니다만, 현대의 일본인으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일 것이다. (「메이지부터 타이쇼에 들이고, 30만명의 일본의 젊은 여성이 해외에 팔리고 갔다」)         

러일 청일 전쟁을 위해 30만명의 여성을 매춘부로 수출       

露日戦争と 日清戦争 ために 30万名の女性を売春婦で輸出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t4NB&articleno=1466


"일본 정부는 인신매매와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마리아 루즈 호가 쿨리들과 맺은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창녀의 인신매매는 무엇입니까? 그녀들은 어릴 때 돈으로 팔려서 가혹한 조건 아래 홍등가에 매여 있지 않습니까? 일본인 창녀의 매매가 합법이라면, 페루인 선장의 행위도 합법적인 것이 되지 않습니까." 

디킨스의 표적은 일본에서 합법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예·창기약정(芸·娼妓約定)>도 노예계약이라는 거였죠. 디킨스는 이런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실제 유녀의 연한계약증서 사본과 요코하마 병원의 치유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실제 일본 내에서 인신매매가 행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이러한 변론을 받자 오오에로서도 당장 논리가 궁해질 수밖에 없었죠. 급거 휴정에 들어간 재판정은 한참 후에야 재개장되었고, 고심 끝에 내려진 최종판결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http://m.egloos.zum.com/nestofpnix/v/4214900
서클포스 21-08-21 21:56
   
조선시대 밥그릇 가지고 보물 취급 하던 나라 ㅋㅋ
     
나무와바람 21-08-21 22:01
   
ㅋㅋㅋㅋㅋ
     
미우 21-08-21 22:05
   
요강
라크로스 21-08-21 21:56
   
석기시대가 딱 어울리는 부족국가
fox4608 21-08-21 21:57
   
아시아의 갈라파고스...
바야바라밀 21-08-21 22:00
   
고증 잘못했네.. 어떻게 훈도시만 입은 애덜이 없으니....
가생의 21-08-21 22:0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르티넬리 21-08-21 22:02
   
기원전로마는 조선후기까지도 이겨본적이 없으니까 남탓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가생의 21-08-21 22:0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로이깁스 21-08-21 22:05
   
     
아리가진리 21-08-21 22:08
   
일본
총 확진자 수
126만
+25,892
사망자
15,592
+39

대한민국
총 확진자 수
23.5만
+1,880
사망자
2,202
+5

쩍빠리는 이길수가 없음. 항복 ㅋㅋ
     
패널 21-08-21 22:13
   
ㅂ ㄷ ㅂ ㄷ 꼬락서니..
측은지심도 사치네..병맛
     
tuygrea 21-08-21 22:49
   
응 느그 쪽국 인구 반도 안 되는 그런 K국한테 국력 따라잡히는 중ㅋㅋㅋㅋㅋㅋㅋ
수십년 째 발전이 없어서 지나간 과거의 영광만 붙잡는 J국ㅋㅋㅋㅋ
혐한 정신승리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열등감 정신병동 국가 JJOK국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21-08-22 07:43
   
??ㅋ

마르티>

유럽을 석권한 로마제국으로 자위질 쳐할거면

서유럽 즉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지금의 프랑스 영국 및 야만인 취급 받던 독일등은 모가 되는지??ㅋ

이들은 다들 그냥 ㅈ밥들임?ㅋ


그리고 로마제국 붕괴 이후 이탈리아 반도가 어떤 신세가 되는지 전혀 기초 역사 지식 없이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작 천여년 전 즉 중세 고려부터는 중앙집권국으로 본격과 되는 울 역사와 비교질 해대니 안씁일뿐.


11세기에 노르만족의 침략으로 이탈리아 남부가 점령.

15세기말에 프랑스의 침입으로 이태리 반도 거의 전역이 점령 당함. 이후는 오스트리아가 18세기초에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

1796년부터는  나폴레옹의 점령 이후 1815년부터 또다시 군소국가으로 분열.

 1861년에  가서야 겨우 이탈리아 대부분의 영토를 통합하는데 성공.

한마디로 로마제국 붕괴 이후는 이탈리아 반도는 중소도시국들로 분열 유럽 여러나라의 돌림빵 신세로 전락.
     
굿잡스 21-08-22 07:45
   
■ (동북방의 거란, 말갈(여진)등과 열도의 왜(Jap)등에) 수천년 동방문명권을 구축 군림해온
우리 고조선 고구려문명권의 영향력에 대한 자각.


고(구)려(KOREA)의 토대가 되는 초기 고조선 토착재지 5부는

이후

신성한 태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점하며 천하를 지배하는 5부 행정 대도시 문명으로 발전 이후

 남북국시대에 발해 5경과 신라 5소경에 이런 발해의 5경 체계는

다시 북방의 패자가 되는 요의 5경 체계로

대금  역시 고구려계 국무총리가 송을 멸망시키고 북경에 중도 건설을 총지휘. 이후 쿠빌라이는 이런 대금이 닦아놓은 서토 강북을 기반으로 몽골 내부 분열시기에 물자를 통제하면서 대칸에 오를 수 있는 실질적 힘이 되군요.(이를 바탕으로 남송 정벌)

※ 오늘날 서토국의 수도가 북경이 된 연원.


6세기 가장 선진적이라는 열도의 풍경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07&wr_id=179751&page=


Jap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

https://www.dogdrip.net/userdog/296559956



오늘날 도시 배수로와 큰 차이가 없었던 신라 서라벌의 도시 인프라.


■ 유럽 최대 도시라는 로마보다 더 컸던 세계 4대 대도시 중 하나였던 100만의 거대 신라 서라벌.

서라벌은 바둑판 형태의 정렬된 계획도시 아래

일정 블럭의 방이라는 각 구역내 공간에는 각 집안내 우물 옆에 배수로가 집밖 담장의 소배수로를 통해 다시 대배수로 연결되어 있는게 확인되군요(길도 마차가 단니는 도로와 사람이 단니는 인도가 구분)

천년의 신라 수도였던 서라벌은 남북국시대 전성기를 맞으며 지금의 수도 서울 광역시(거대 메트로 폴리탄)처럼 지속적으로 팽창(삼국시대 이미 우리는 유럽 최대 도시인 로마에 비견되는 고구려 3경, 백제 사비성, 신라 서라벌의 5개 이상의 거대 대도시 체재를 구축)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unayoon715&logNo=220882810189&proxyReferer=https:%2F%2F


서라벌 디지털 복원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2096873


발해  

당나라 산둥 등주 공격  

장문휴는 732년(인안 13) 무왕의 명령을 받아 수군을 이끌고 산둥 반도에 있는 당의 국제무역항 등주를 공격해, 당의 동방정책에 큰 타격을 주었다.  

발해 무왕의 대외팽창에 위협을 느낀 동북만주의 흑수말갈이 발해와 우호관계를 단절하고 당과의 연결을 꾀하여 발해를 위협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무왕은 흑수말갈의 정벌을 결정했으나 무왕의 동생 대문예가 발해와 당 사이에 전면전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흑수말갈의 정벌을 중지시키려다가 실패하고 당으로 망명했다.당에 대한 강경책으로 돌아선 발해는 수군을 동원하여 등주를 공격 초토화시켜버리고 육지로는 요서로 밀어버림. 


   
흑수의 땅은 모두 발해에 복속되었다.  
-발해고 무왕-  

발해가 점차 강성함에 따라 흑수 역시 그 소속이 되었다.  
-당회요 말갈-  



'고려(KOREA)국왕대흠무언(高麗國王大欽茂言)'   

≪속일본기(續日本紀)≫ ㅡ남북국시대 발해 문왕(文王) 대흠무가 왜국에 보낸 국서에.


천통 인안 대흥등 독자적 연호 사용.


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당대 서토 당나라 장안성의 최대 건물인 함원전의 11칸보다 큰 무려 19칸)





USA 캘리포니아 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discover誌“1998년 6월호「일본인의 뿌리」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인 조몬인.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켰다.”


"Jap 가타카나 기원은 신라 향찰·이두"  

히로시마대 교수  

http://blog.daum.net/damule/8881879
     
굿잡스 21-08-22 07:47
   
여진(女真)의 추장은 곧 신라인인데, 완안씨(完顏氏)라 호칭하였다. 완안(完顏)은 한어(漢言)로 「왕(王)」과 같다.

ㅡ『송막기문』남송 홍호가 포로로 잡혀간 송 군주의

송환을 위해 15년간 대금의 유배생활을 보내면서 쓴 견문록.


■ 정강의 변 : 서토 송이 신라계 황제와 발해인 연합의 금나라에게 패하여 수도 변경(지금의 카이펑/개봉)이 함락되고, 송의 군주였던 휘종과 흠종 그리고 수많은 자녀들이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


女真酋長乃新羅人 (송막기문- 남송기록)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다")   
"其初酋長本新羅人" (몽골  금지(金志))   
(여진의  초기지도자는 신라인이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금사 (金史))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에서왔을 때  60세였다.)


중세 고려(KOREA) 서북 경계

https://www.incheo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4376


https://news.v.daum.net/v/20171113202247651


大金皇帝寄書于高麗國皇帝

"대금 황제가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 ㅡ帝王韻紀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40313/61666261/1
     
굿잡스 21-08-22 07:49
   
■홍호가 '송막기문'을 작성하기 이전부터 송나라 사람들은 이미 여진(女眞) 지역을 신라(Silla)로 비정.

이는 송나라에서 수차례 제정된 ‘편칙(編勅)’의 내용을 통해 확인.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으로도 잘 알려진 소식(蘇軾, 1036~1101)의 문집에는 ‘상려(商旅)들이 외국과 왕래하는 것을 금지해주실 것을 간청하는 상소[乞禁商旅過外國狀]’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은 해상(海商)들이 고려에 왕래하는 것을 금지해왔던 편칙이 신종(神宗, 재위 1067~1085) 시기에 와서 크게 완화된 점을 비판하고 이를 다시 금지시킬 것을 주청하는 내용.

그리고 ■여기서 고려와 함께 신라(新羅)라는 명칭이 병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편칙의 내용들은 송사41)나 속자치통감장편42)등에서도 확인)

송나라에서 제정된 편칙들 가운데에서 시행된 시기가 가장 이른 <慶曆編勅>으로 1035년에서 1043년까지
이다. 즉, 가장 이른 시기의 편칙도 작성된 시기가 최소 신라가 망한지 100여년이 흐른 뒤.

따라서 여기서 나오는 ‘신라’라는 명칭은 우선 935년까지 한반도에 있던 신라를 가리키다 볼 수 없다. 더불어 신라라는 명칭의 앞에 ‘고려’라는 명칭이 병기된 것을 생각해 볼 때 고려하면 ‘신라’라는 명칭이 당시 한반도에 있던 ‘고려’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편칙에서 ‘신라’라는 명칭은 ‘고려’의 다음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의 뒤에는 현 중국의 산동반도(山東半島)
에 위치한 등주(登州,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봉래(蓬萊) 지역) 및 래주(萊州, 지금의 산동성 래주시(萊州市)
지역)라는 지명이 나온다.

편칙의 내용과 당시의 항로를 따져봤을 때 43) 편칙에 언급된 이들이 사용한 항로는 현재의 요녕성(遼寧省) 일대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당시 이 지역은 요나라
와 여진세력이 있었던 곳으로 신라는 여진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다.44)

■더불어 송사에는 1119년 송나라로 왔던 금나라의 사신들이 송에 입조했을 때 신라에서 왔던 사인(使人)
을 대하던 예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ㅡ금나라 시조의 출자지(出自地)에 관한 재론(再論)(강 준 영) 중


 蘇軾文集(소식문집)  卷31, 乞禁商旅過外國狀, “……除已具處置畫一利害聞奏外, 勘會熙寧以前「編敕」, 客旅商販, 不得往高麗·新羅及
登·萊州界, 違者, 並徒二年, 船物皆沒入官.……「元祐編敕」亦只禁往新羅.……一, 「慶曆編敕」: 「客旅於海路商販者, 不得往高
麗·新羅及登·萊州界.……一, 「嘉祐編敕」: 「客旅於海道商販者, 不得往高麗·新羅及至登·萊州界.……「熙寧編敕」……自海
道入界河, 及往北界高麗·新羅并登·萊界商販者, 各徒二年.……「元祐編敕」……或乘船自海道入界河, 及往新羅·登·萊州界
者, 徒二年, 五百里編管.……堪會元豐八年九月十七日指揮, 最為害事, 將祖宗以來禁人往高麗·新羅條貫…….”
     
굿잡스 21-08-22 07:50
   
■요동(KOREA)에서 헛되이 죽지 않으리(无向辽东浪死歌)'

산을 내려가 도적으로 지주의 소와 양을 먹고 사네.
관군이 침범하면 앞서 나가 칼을 들고 맞설 거야.

어차피 요동으로 가면, 헛되이 죽느니만 못해
설령 내 머리 잘린다 해도 뭐 어떠리!

-왕박(王薄)의 '요동에서 헛되이 죽지 않으리(无向辽东浪死歌)'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북방 유목 선비족이 남하하여 서토 북위 대국을 세우고 다시 끊임없는 분열을 거듭하다 결국 북조에 의해 300여년 시대의 남북조 시대를 종식시키고 등장한게 선비족 통일왕조 수나라군요.

이 당시의 수나라는 북방 유목기병의 전투력과 서토 하한족을 노예로 한 풍부한 노동력과 토지를 바탕으로 엄청난 물량빨까지 손에 넣게 되면서 지금으로 치면 2차대전 시기 미국급의 국력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수나라의 압도적 국력에 바탕한 갑옷으로 무장한 100만대군의 기세 앞에 호전적 전투 유목제국인 돌궐마저 깨깽하면서 이제 동아시아는 동방문명권의 전통적 천자[天子]였던 우리 고(구)려(KOREA)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군요.


그러면서 4차에 걸친 고수(려수)전쟁으로 근대 세계 최대급인 독소전쟁 이전 고대 세계 최대급의 동아시아의 운명을 건 수많은 종족들이 참여한 서토와 우리 동방문명권간에 문명대전의 불이 붙게 됩니다.


서토의 남북조 시대에 북위 북조가 열리기 전  강북은 북방 이민족의 남하가 본격화 되면서  오호 십육국 시대(五胡十六國時代: 304년 ~ 439년)을 열게되었고 이에 앞서 고구려는 태조대왕시기 대국의 위치에 오르면서

이후 172년 한나라의 10만 대군의 침입에 고구려의 명림답부가 좌원대첩에서 이들 한나라 군대를 몰살시키고 5세기에는 난립하던 북방의 전투 유목 민족까지 굴복시키면서 만주일대를 석권하게 되군요.(거란 후대 요, 실위 후대 몽골, 말갈 후대 금,청등 고구려 휘하 부용세력화)

이런 가운데 요서의 모용씨 후연(後燕)을 공략해서 압박하자 고구려계 고운이 등극한 북연을 동족의 예로 대우하다 이후 북위의 침공에 장수태왕이 수만의 군사를 동원 요서일대의 북연의 물자와 사람들을 고구려 내지로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  화룡성(和龍城)에서 북위 군사와 맞닿게 되는데 북위는 이런 고구려의 위세에 눌려 쳐다보기만 하게 되군요.

■ 서토 북조사를 연 북위도 고(구)려의 준식민지급.

이후 북위는 북방의 난립하던 세력을 병합하면서 북조사를 열게 되고 이후 고구려와 혼인동맹을 하게 되면서 고구려 귀족이 시집을 가게 되는데 고조의 여동생 문소태후가 후에 세종을 낳고 고구려계 세종이 북위의 황제로 등극. 이렇게 되면서 고구려계 고조가 북위 조정을 장악하면서 붕당을 설치하고 아예 고총, 고도열등  수많은 고구려인들이 활약하는 등 따로 우리 고구려인만을 추대하는 벼슬까지 만들게 됩니다.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http://blog.naver.com/csred7/80130397982������


(이때문에 고구려의 장수태왕이나 문자명태왕이 서거를 하면 북위의 황제나 최고 권력자가 애도를 거행하는 기록들이 그래서 나오게 되는 역사적 배경)


겨울 12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그때 그의 나이는 98세였다. 임금의 호를 장수왕(長壽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효문(孝文)이 이 소식을 듣고, 흰색의 위모관(委貌冠)과 베로 만든 심의(深衣)를 지어 입고 동쪽 교외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하였다. 
  
七十九年 夏五月 遣使入魏朝貢 秋九月 遣使入魏朝貢 冬十二月 王薨 年九十八歲 號長壽王 魏孝文聞之 制素委貌布深衣 擧哀於東郊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장수왕 79년(서기 491) 


28년(서기 519), 임금이 돌아가셨다. 호를 문자명왕(文咨明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영태후(靈太后)가 동당(東堂)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했다. 
  
二十八年 王薨 號爲文咨明王 魏靈太后擧哀於東堂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명왕 28년(서기 519) 



이후에도 이런 북위 조정내에 고구려계가 득세하자 선비족계열에서 고구려계 고조를 제거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동방의 천자로 있던 고구려의 위세에 북위내 다른 고구려인들을 함부로 하지 못했고 이후 북제등도 고구려계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군요.

하여튼 이런 가운데 결국 남북조시대가 끝나고 들어선 통일 수나라는 선비족의 기병 전투력과 물량빨을 통해 2차 고대 세계최대 대전급인 400만을 동원하기 전 1차에서도 30만의 대군으로 고구려를 공격하다 대패를 당하게 됩니다.

이후 2차는 아예 수양제가 친정 즉 직접 군을 이끌고 참가하게 되는데
이런 고수간의 대전에 우리 고구려도 더이상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되자 먼저 요서 임유관의 보급기지에 선제 공격을 가하면서 동아시아 대전의 서막에 불이 붙게 되군요.


현대에도 그렇지만 이런 세계 대전급 전쟁은 글자 그대로 인력과 물자가 무제한으로 갉려 나간다는 점에 이런 엄청난 수나라의 침공은 결국 서토 내부에서 수많은 민중의 막대한 희생으로 점철되었고 결국

지금까지도 요동 즉 고구려를 침공하면 헛되이 죽게 될거라는 노래가 아직까지도 전해질 정도에
이당시 얼마나 민초들의 고초가 심했는지 아예 전쟁에 끌려가 죽느니 산에 들어가 숨어 도적질을 하던지 자기 손을 스스로 잘라 이것을 복수(복된 손)이라고 해서 고구려와의 대전에 참여를 하지 않는걸
더 복으로 여길 정도였군요.


그렇게 수나라의 4차 대전은 결국 수나라의 멸망을 가져오게 됩니다.(그리고 여담으로 수나라가 북방등 여러 주변 세력과 전쟁을 하는 과정에서 수나라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했던 말이 고구려와 싸움은 하지 않겠다 였군요.ㅋ 이정도로 당시 통일왕조 수나라 군대나 민간에서 조차 고구려와의 싸움은 엄청난 공포로 각인)


http://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wr_id=190581


■도표로 한눈에 보는 천년 사직 고(구)려(KOREA)의 위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1002&logNo=30152299778
     
굿잡스 21-08-22 07:53
   
■[한자의 원형] 복골 및 갑골문자

https://que-sais2020.tistory.com/m/384?category=924910


“요양과 심양 일대는 본시 고려의 땅이요, 백성은 고려 백성이다 .
이제 의로운 군대가 들어와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케 하노니…”

ㅡ『고려사』권42 1370년 12월


요령성 평강지구에서 출토된 ‘새’ 토템족이 ‘곰’ 토템족, ‘범’ 토템족, ‘이리’ 토템족을 휘하에 거느린 동안의 청동장식.

https://news.v.daum.net/v/20190911104226227

요령성 평강지구에선 우리 고조선 건국 신화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기원전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하늘숭배를 상징하는 새토템 천족이 예맥계를 상징하는 호랑이족과 곰족을 아우르면서 몽골의 전신인 실위와 산융등의 토템인 이리(늑대)를 하위로 거닐고 있는 청동 장식(현 대한민국 대통령의 상징도 봉황)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고조선의 대표적 발달한 청동합금의 비파형 동검부터

나팔형 동기.

https://m.cafe.daum.net/dobulwonin/Fkcc/17?boardType=2&q=

심양 정가와자 유적과 같은 계열인

충남 예산 나팔형 동기의 용도 복원안

http://m.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431

"이번 전시에서 필자가 가장 오랫동안 관찰한 유물은 '나팔형 청동기'이다. 글자 그대로 나팔 모양을 닮은 청동기인데 암석 거푸집이 아니라 밀납 원체를 사용한 제작이다. 흔히 '실납법'이 라고 한다. 이와 흡사한 청동기는 놀랍게도 만주 심양의 정가와자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정가와자 유적, 특히 3319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고조선의 왕묘이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한반도의 청동기문화가 만주의 고조선 청동기에 계보가 있음을 시사한다 ㅡ정인성 교수


남해서 청동기시대 고인돌 무덤·비파형 동검 발굴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913


동아시아 문명사에서

수렵에서 저장 개념의 혁명적 신석기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의 발명지인 한반도를 중심으로 요하로 북방 초원길(동서양 문명의 하이패스 길)을 따라 유라시아로 이미 점차 교류.

이런 기반 위에 중동의 채도 즉 채색 토기가 요하일대로 전파되어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보다 앞서 출현.

즉 유럽의 그리스 로마 지중해에 비견되는

동아시아의 서해 요하 즉 고조선 선대  문화권 지역이

빗살무늬토기문화+채도 문화+거석문화(적석총 고인돌등 이에 반해 서토 하한족은 땅  파고 묻는 매장 풍습)+세석기문화가 유일하게 중첩되어 나오는 엄청난 신석기 교차 지역 문화

이런 발달한 신석기 요하문화와 이후 청동 철기등도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보다 더 이른 시기에 나오는등

이런 선진문화로 무장한 일부가 갈라진 동방 이민족이

동북방에서 남하 황하 하한족을 정복 군림하고 나온게

서토 최초의 실체하는 정복 왕조인 상왕조(동북아 공용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 창조)



신석기 혁명, 빗살무늬 토기의 발명지. 

유라시아의 동쪽, 한반도가 가장 앞선 지역이었던 이유 

https://news.v.daum.net/v/20171015140004655?rcmd=rn&f=m



"제천행사 '무천'은 동예 아닌 고조선 풍속"


'돈황문서' 고구려사료 첫 발견


돈황문서의 하나로 포함된 토원책부(兎園策府)라는 글 주석에 고조선의 풍속으로 10월에 제천행사인 무천이 열렸고, 출정에 앞서 소를 잡아 발굽의 형상으로 길흉을 점치던 우제점(牛蹄占)이 있었다는 기록을 새로 발견했다.

현재까지 국사교과서에는 고조선 이후 동예가 '무천', 부여는 '영고(迎鼓)', 고구려 '동맹(東盟)'이란 제천행사를 지낸 것으로 실려 있다.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050614.010141015020001


군사적인 행사가 있으면 역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소를 잡아 그 굽을 관찰하여 길흉을 점치는데, 굽이 흩어지면 흉한 것으로 여기고, 합쳐지면 길한 것으로 여긴다.

ㅡ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우제점)

위략에 말한다 :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며, 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번도 파괴당한 적이 없다.

그 인장에 이르기를 '예왕지인(濊王之印)'이라고 하였고, 나라에 예성(濊城)이라 이름하는 옛 성이 있으며, 대개 본래는 예맥(濊貊)의 땅으로, 부여가 그 중의 왕이 되었으니, 스스로를 가르켜 '망인(亡人)이라 한 점에도 이런 까닭이 있을 것이다.


ㅡ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


“단군(檀君)은 실로 동방의 천황(天皇)인데,

그 사우(祠宇)도 잘 정비하고 있는지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근신(近臣)을 보내 치제하고자 하니 입시한 승지가 가서 거행하고, 사전(祠殿)이 허물어진 것을 수리하지 않았으면 또한 본도(本道)에 신칙하여 즉시 수리한 다음 장계로 보고하도록 하라.”


檀君, 實爲東方之天皇矣。其祠宇, 亦安保其能修治耶? 欲爲遣近臣致祭, 入侍承宣, 其往擧行, 祠殿如不修廢, 亦爲申飭本道, 俾卽修治, 仍爲狀聞, 可也。


ㅡ승정원일기  영조 8년
     
굿잡스 21-08-22 08:15
   
현대의 쭝국(쭝공)이라는 특정 국가명사와는 달리

※ 근대 이전의 쭝국(China)이란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들을 정복 지배 군림하면 누구나 될 수 있던 추상 지리 명사.

그리고 그때마다 이민족의 복식등 문화들이 강제 주입 중구난방화(현재는 본인들도 본인게 몬지 제대로 모르니 한복등 주변국에 온갖 해괴한 역사, 문화공정질)

서토국 (하)한족= (북방과 동방 이민족에 수시로 털리고 정복 당한)피지배 노예사로 점철.
감을치 21-08-21 22:04
   
역시나 바로 부들부들거리면서 조선 찾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금전 방역 게시물에선 왜 좆본 찾냐고 지랄하더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콤한농약 21-08-21 22:07
   
벼엉신들.. 진실앞에만 서면 쪼그라들어.
청천 21-08-21 22:40
   
임진왜란 당시 요강과 개밥그릇 가져가서 집안 보물로 삼던 원숭이들
하늘나무 21-08-21 23:32
   
우울할 때 보면 좋겠당~ㅋㅋ
이등박근 21-08-22 01:23
   
ㅂ ㅅ 하나 기어들어와서 매타작 당하네 ㅋㅋㅋ 왜 저러고 사냐? 좋은 말만 듣고 살아도 짧은 인생을 자청해서 욕이나 쳐듣고 좋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