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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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입장에서 현재의 한국은 냉전기 서독과 비슷함.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서독은 냉전기 자유진영 최전선의 방패 역할을 수행했음. 군사력만 봐도 한국의 해공군력은 수위권이며, 특히 육군력은 전 세계 4~5위 안에 들어가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임. 미국이 적절한 해공군 지원만 해 준다면 한국은 중국의 침공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는 국가임. 뿐만 아니라 한국군은 미중전쟁 발발 시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국가임. 경제력도 마찬가지임. 그에 비해 대만은 냉전기 핀란드와 비슷함. 군사력, 국력, 지리적 위치, 중국으로부터의 안보 리스크 모두 한국(서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함.

결정적으로 친중 여론과 중국 스파이가 넘치는 대만은 안보 측면에서 미국이 그렇게까지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못 됨. 한국도 친중 여론이 일부 있긴 하지만 대만에 비해서는 아주 양반임. 오히려 혐중 여론이 훨씬 더 높지. 바로 여기에서 미국이 한국과 대만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발생함.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과거 서독처럼) 자유진영 최전선에 위치한 핵심 동맹국으로서 강대한 중국의 압력을 정면에서 받아낼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과 (이를 위한) 경제력을 갖춰야만 함. 한국을 더욱 부강하게 만드는 게 바로 미국 자신을 위하는 길임.

그런 관점에서 미국은 한국에서 반도체 (특히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을 빼앗아갈 이유가 전혀 없음. 미국 경제에서 반도체 제조업은 아주 일부일 뿐이지만 한국 경제에는 사실상 전부임. 반도체 제조업을 빼앗아 가는 순간 한국 경제는 멸망함. 더불어 미국에서 반도체를 제조하려면 막대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만 함. 핵심 동맹국의 경제를 반병.신으로 만들면서 반도체 제조업을 뺏어와도 정작 그로 인해 미국은 큰 비용 부담까지 떠안게 되는 상황임. 미국 입장에서 손해만 크지 실익이 전혀 없음. (여담으로 나는 마이크론이 미국 뉴욕 주에 대규모로 짓는 FAB이 과연 이익이 남을지가 의문임. 보조금 많이 받는다고 해도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는 반도체 제조업이 남아 있어야만 함. 미국보다 훨씬 더 낮은 비용으로 반도체 제조를 담당해서 국제적 분업을 통해 한미 양국의 경제적 효익을 극대화하고, 거기에서 얻은 경제적 이익을 군사력에 투자해서 대중국 포위망에 기여해야만 함. 한국으로의 반도체 제조 '프렌드 쇼어링'은 한미 양국 모두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임.

마치 반도체 제조업은 온라인 게임으로 치면 ‘기사 전용 장검’과 비슷함. 이 아이템은 기사 직업이 장착해야지만 아이템의 능력이 극대화됨. 법사나 궁수 같은 다른 직업이 억지로 장착하려고 하면 아이템 성능만 까먹음. 여기에서 법사가 미국이고 기사가 한국임. 미국은 반도체 제조업을 한국이 가져야 혈맹 전체의 효익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음. 미국이 굳이 빼앗아갈 이유가 전혀 없음. 오히려 중국 반도체를 조져서 한국 반도체, 한국 경제, 궁극적으로 한국의 군사력을 육성하는 게 훨씬 더 이득임. 그래서 미국이 이번에 그렇게 한 것임.

하지만 대만과 TSMC는 한국과는 상황이 전혀 다름. 대만과 TSMC가 파운드리 선단공정을 독점하기에는 대만은 대중국 리스크에 너무나도 취약하고, 또 파운드리 선단공정이 이제 너무나도 중요한 산업이 되어 버렸음. 그래서 미국은 대만과 TSMC를 박살낼 것임. TSMC가 한국 기업이기만 했어도 이 꼴은 안 당했을 것임. 나는 그래서 미국도 삼전 파운드리가 TSMC의 점유율을 빼앗아 가는 것을 내심 원할 것이라고 생각함. 대만보다는 한국이, TSMC보다는 삼전이 훨씬 더 믿을 수 있고 안전한 파트너거든. 어차피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 인텔 파운드리가 TSMC를 전부 대체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과거 일본 반도체가 박살났던 사례도 한국과는 그 상황이 전혀 다름. 미국을 넘볼 정도로 급성장한 일본 경제와 반도체 회사들이 미국의 경제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니 미국이 플라자 합의로 일본 경제와 반도체를 박살낸 것임. 한국, 대만, (과거) 일본의 사례 간 차이점을 이해해야만 함.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건 아님. 우선 장기적으로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철수시켜야 함. 적국인 중국에 전 세계 메모리 CAPA의 30%가 위치한 현재 상황은 상당히 큰 안보 리스크임. 미국이 충분히 배려를 해 주는 동안 삼전과 하닉은 점진적으로 중국의 반도체 공장을 한국으로 철수시켜야만 함. 그러면 별 피해는 없을 것임. 두 번째로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해야만 함. 한국이 나름 강력한 국가라고 해도 초강대국인 중국의 위협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건 사실임. 일본이 좆같게 구는 건 맞지만 현실을 직시해야만 함.

결론적으로 내 생각에 미국은 한국의 발전을 지지하는 지구상 몇 안 되는 국가임. 그것이 바로 미국의 국익에도 이득이 되기 때문임. 더욱이 중국의 위협이 커지면 커질수록 한국은 미국에 더더욱 소중한 국가가 됨. 예컨대 과거 서독이 어디 남유럽 이런 곳에 있었다면 미국으로부터 별로 지원받지 못했을 것임.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반도체도 그렇고 2차전지도 그렇고 절대 미국이 한국에 가혹하게 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제 발표한 IRA 세부 사항(첨부 참조)을 보니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음. 머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미국이 한국 반도체를 얼마나 지원하고 지켜주려 하는지 그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