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인턴쉽으로 생활할 때였습니다.
하와이대(UH) 부설 연구소 인턴이라 대학 기숙사를 외부 스튜디오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죠.
작은
기숙사는 아니지만, 자는 방 이외에는 다 층별 공용이라 며칠만 있으면
다 안면을 트게 되는 좋은(?) 구조의 기숙사였습니다.
특히
저녁 시간에는 식당 겸 부엌에 자연스레 다 같이 모여 먹거리 준비하고
식사하면서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죠.
하와이에 도착해서 짐 풀고, 정리하면서 슬슬 적응해 갈 때 즈음, 맞은편 방에
살고 있던 일본인 친구를 기숙사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냉장고도 공용이라 각자의 식재료를 넣어두는데, 그 날 따라 이 친구가
냉동실을 뒤적 거리다가 난처한 얼굴을 하더니 뭐라고 궁시렁 거리더군요.
뭔 소린가 싶어 쳐다봤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혹시 얼린밥 남는 거
있으면 하나만 빌려줄래?" 였습니다.
그때까진 이야기도 한 번 안 해본 친구가 그러니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선뜻 얼린 밥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몇 번을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니 요리를 시작하더군요.
저는 저대로 요리를 해서 테이블에 앉았죠.
이 일본인 친구가 자기 먹거리를 가지고 오더니, 제가 앉은 테이블에 앉더군요.
"한국인?" 이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답 했더니,
"여기 한국인들 많던데, 무슨 일로 왔어?" 라고 묻기 시작하면서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식당에서 마주치다가 친해지기 시작했지요.
어느날, 저녁을 같이 먹다가, 이 친구가 묻기를,
"내일 주말이라 강당에서 영화 상영을 한다는데 같이 볼래?" 라고 제안을
하더군요.
저도 별 약속도 없고 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다음날, 같이 영화도 보고, 교내 식당에서 점심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 친구가 한참 말이 없더니 묻는 말이,
"혹시 남자에 관심 있어?" 이러더군요.
그 전까진 게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만, 그 질문 한마디에 눈치를 챘습니다.
동시에 당혹스러움과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난감한
맘이 순간 교차를 했죠.
이럴 땐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는게 좋겠다 싶어,
"음.. 나는 여자를 좋아해. 게이가 아니야." 라고 대답을 했죠.
이 친구도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아 그래? 그렇구나. 미안해, 기분은
안 나빴어?" 라고 이야길 하길래,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줬죠.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한국은 동성애자를 보기도 힘들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용납이 안되는 분위기'라고, 그리고 '나는 네가 보통의 남자로만 보이니 나한테
더 이상 다른 관심을 갖지는 말아달라' 라고 했더니,
그냥 친구로 잘 지내자더군요.
그렇게 1년여 동안 기숙사 floor 메이트로 잘 지냈습니다.
이 친구가 여성쪽이라 (홍석천씨 생각 하면 되겠습니다.) 밥 먹으면서 새로
사귄 남자친구 험담도 들어주고, 때때로 그 친구의 일본인 친구들과도 술도
같이 먹고, 같이 놀러도 잘 다녔지요.
제가 귀국 하고 나서는 한국에도 한 번 놀러 왔었네요. 마침 그땐 제가 취업을
못하고 있을 때라 여기저기 안내도 해 줬구요.
하루는 한국의 목욕탕에 가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며 말렸습니다. 약간의 겁도 줬지요. '목욕탕에서 너 게이인 거 들통나면
맞아죽는다'고.. ㅋㅋ
요즘도 가아끔 페북을 통해서 인사는 합니다.
지금은 뉴욕에서 교수질 하고 있더군요. (전공이 일본 문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