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가끔 우리 스파를 인수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동업자 친구 말에 따르면
최근엔 하루가 머다 하고 우리 스파를 인수하고 싶다고
사람들이 찾아 온다고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여기에 스파를 오픈하기 이전에는
이 지역엔 유럽에서 건너와 장기거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스파를 오픈할 무렵에는 그 전에는 안 보이던
러시아인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러시아인들에 더해
역시 그 전에는 안 보이던 중국인들까지 이 지역을 뒤덮기 시작했다.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새로운 건물과 업소들이 하루가 머다하고 들어서고
넘치는 관광객들로 이 지역은 유래가 없을 정도로 흥청대고 있었다.
사업하는 사람들에겐 엄청난 기회이기도 하지만
대신 임대료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경쟁도 훨씬 치열해졌다.
요지에는 이미 업소들이 다 들어차 있는 상태이고
외곽까지 새로운 업소들이 마구 생겨나고 망하고 또 새로 들어서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 스파가 오픈한 후 어느 날,
우리 스파 바로 옆 3층 건물이 새단장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노란 머리의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백인남자와
남자보다는 좀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태국 현지인 여자가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 있고
그 옆에 60대로 보이는 백인여자가 초초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내가 쳐다보고 있으니 노란머리가 와서 내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노란머리가 먼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자기는 스웨덴에서 왔고 여기서 주로 술집에서 놀았단다.
그렇게 술집 여기저기 다니며 태국 현지인 여자들과 놀다가
그 중 한 명과 동업으로 여기에 술집을 내기로 의기투합을 했고
스웨덴에선 백수라 돌아가봤자 어차피 할 일이 없다는 얘기까지.
난 순간...응? 이 블록은 호텔 투숙객들, 장기거주 유럽 아재들,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주로 왕래하는 곳이고 유흥업소가 들어올만한 곳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쨋든 1층은 술집, 2층은 숙박업소로 꾸민다고 한다.
1층 술집의 마담은 술집에서 만난 태국인 여친에게 시킬거고
2층 숙박업소는 1박에 1,000~1200바트(3만7천원~4만4천원) 정도로 저렴하게 할 생각이며
주로 1층 술집 손님들을 위한 숏타임용이라고 씨~익 웃으면서 내게 말해준다.
이모의 건물 임대업무까지 맡아 하는 내 동업자 친구 말을 들어보니
옆에 서 있던 60대 백인여자가 이 노란머리의 어머니였고
임대계약도 어머니가 하고 임대보증금과 한달치 선불인 임대료도 어머니가 지불했다고 한다.
이후 이 노란머리와 그의 사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내 동업자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다.
노란머리는 술집 오픈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업자였던 태국인 여친을 내쫓고
새로운 태국인 여친을 데려왔고, 돈까지 투자하고 마담 노릇까지 도맡아 했지만 쫓겨난
동업자 태국인 여친은 계속해서 찾아와
내 돈 토해내 XXX야, 넌 날 이용만 해먹고 버렸어 이 XXX야...그러면서
걸핏하면 술집 앞에서 대판 싸우고 난리가 아니었단다.
술집 손님들끼리 술먹고 싸워서 경찰이 빈번하게 출동
게다가 사장인 이 노란머리까지 마약하고 헤롱대는 통에 또 경찰 출동.
장사가 잘 될리가 만무.
임대료도 계속 밀리고 게다가 호텔과 이모 건물에서 장사하는
다른 업소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이 미치니
건물주인 이모도 빡쳐서 6개월도 안되서 내보냈다고 한다.
첫 대면에서 봤던 노란머리 어머니의 걱정스런 표정이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여튼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인해 도시에 돈이 흘러 넘치고
게나 고동이나 다들 한 몫 잡으려고 눈이 시뻘개져 있는데
요지엔 이미 다들 자리를 잡고 있고 매물로 나오는 것들도 없으니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미 장사를 하고 있는 업소를 큰 웃돈을 주고서라도 인수를 노리는 수 밖엔 없으니
우리 스파에도 자꾸 인수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난 운이 좋았다. 스파 오픈 직후부터 이 모든 일들이 벌어졌으니...
스파씨.바~쎼쎼~헤헤
"그래서, 어떻게 인수를 하고 싶대?" 내가 물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투자한 투자금의 두배 + 연평균 수익기준 3년치를 내고 인수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인수가 정 어려우면 우리가 투자한 금액의 몇 배를 지불할테니 지분은 우리랑 똑같은 비율로
받아도 좋다며 투자자로 끼워 달라는 사람도 있고,
달라는 대로 줄테니 팔라는 사람도 있고...."
"옴마야~그래? 또...?"
"본인 소유 세븐일레븐 편의점 2개랑 바꾸자는 사람도 있고..ㅎㅎ"
"앗...진짜?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호텔사장인 이모의 친구들 중에 도심 번화가 포함 도시 전역에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10개 정도 가지고 있던
친구가 있는데 그 이모 친구 얘기였다.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뭐라고 했어?"
"스파 오너가 한국인인데 여기 없다. 그 사람한테 물어봐야 한다고만 얘기해줬어"
"아, 그래? 그래서 니 생각은 어떤데? 팔고 싶어? 그동안 관리한다고 힘들었을텐테 니가 힘들면 팔지 뭐.."
동업자 친구를 슬쩍 떠 보았다.
"음...솔직히 호텔일이랑 같이 하는게 힘들긴 한데.....그래도 내 스파니깐 괜찮아.
난 제발 안 팔았으면 좋겠어...진짜!! 안 팔거지?"
"그래? 음.....미안하지만 난 팔건데?"
내 말을 듣자마자 나이 40도 훌쩍 넘은 숙녀가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글썽인다.
우리 스파에 대한 동업자 친구의 애정이 듬뿍 느껴지며 괜한 농담을 했다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팔긴 팔건데....지금은 아니고....언젠가....다른 누구도 아닌 너한테 팔고 싶어. 온전히 니 스파가 될 수 있게..."
내 말을 들은 동업자 친구는
"아........" 짧은 외마디 소리를 내며 한 손으로 급히 얼굴을 가렸지만
두 줄기 굵은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까지 가릴 순 없었다.
"그나저나 베트남 애 돌아간다구? 왜?"
"응...걔가 장남인데 집에 계신 엄마가 많이 편찮으시대. 그래서 할 수 없이...걔 때문에 울 엄마도 덩달아 걱정중이야. 옛날에 엄마랑 베트남 여행 갔을 때 걔네 집에 가 본 적 있는데 지붕이 새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게....."
이모의 호텔 식당에는 동업자 친구 어머니의 먼 친척인 20대 베트남 청년 한 명이 일하고 있다.
내가 호텔에 머물던 시절
이 베트남 청년은 이곳에선 자기와 같은 이방인인 나한테 친근감을 느꼈는지
내가 식당에 앉아 있으면 한가할 때 가끔 내게 와서 말을 걸곤 했었다.
어설픈 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한국 드라마를 보고 배웠다며 꼬박꼬박 날 '형님'이라고 불렀다.
예의도 아주 바르고 일도 열심히 하는 친구였는데
전부 태국인인 다른 종업원들 사이에서 꾀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힘든 일은 죄다 자기한테만 시키고 근무시간 지나서도 일을 시킨다며
너무 힘들다고 내게 하소연을 자주 했었다.
그래...남의 나라에서 그것도 그 나라 사람들 밑에서 거친 일 하는데 어떻게 힘이 안들겠냐?
이 형도 외노자 출신이라 쬐금은 이해한다.
지금 베트남이 동남아 국가들 중 최고의 성장율을 보이는 국가들 중 하나이지만
여전히 1인당 GDP는 태국의 약 1/3 수준이다.
이 친구가 태국에 와서 일하고 있던 시절엔 격차가 더 심했다.
식당 3층에서 숙식하며 지내면서 월급은 꼬박꼬박 전부 집에다 송금하는데
어머니 약값, 동생들 학비로 다 쓰여서 돈이 모이지가 않는다고
동업자 친구로부터 그 친구 집안사정을 대충 들었던 일이 기억이 났다.
가족 모두를 혼자 책임지고 있는 가장인데 어머니가 위중해서
더 이상 집을 비울 수가 없으니 돌아가서 어머니랑 동생들을 옆에서 돌보고
거기서 일자리를 새로 구해야할 처지인 모양이었다.
내 몫으로 동업자 친구가 들고 온 지난 분기 스파와 호텔 투자 수익금 봉투를 열어 봤다.
80만 바트가 조금 넘게 들어있다.
동업자 친구에게 봉투를 건네주며 그 친구 갈 때 주라고 했다.
두번 다신 태국에 오지 말고, 베트남에서 성공하라는 말도 전해 달라고 했다.
온 세상이 암흑처럼 느껴질 때 한 줄기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