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수만리 떨어진 변방으로 내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위험한 건 우리가 다하는데 저들은 한 것도 없이 공(功)을 다 차지하다니...
미나, 사나, 모모를 빼앗긴건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네. 안 그렇소이까, 장군?"
화가 잔뜩 난 혈가(孑歌)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나도 찜해 놓은 리사를 빼앗겨 요새 잠을 못 이루고 있소이다.
하필이면 저 먼 라수파가수(羅樹波可首)로 떨어져
내 그토록 좋아하는 회덮밥을 못 먹는 것도 분한데..."
진파(進破)도 주먹을 꽉 쥐며 말하였다.
"이대로는 아니되오. 노인네들 다 갈아치워야지..."
"우리를 따르는 젊은 장수들이 많으니 일을 도모함이 어떻소이까?"
"좋소이다. 오늘 밤 연회에서 해치웁시다. 연회에서는 노인네들 경호도 허술할 것이니..."
"우하하하하! 미나, 사나, 모모야 조금만 기다리거라. 이 오라비가 간다. 샤샤샤~"
"불악평구(佛樂坪救) in your area....벌써부터 우리 이뿌니 리사 얼굴이 선하구려...하하하"
그날 밤,
진영 내 모든 장졸들은 웃고 떠들며 상으로 내려진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고 마시고 있었다.
장수들만을 위한 연회가 열리고 있던 사령부 장막 안의 분위기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이번에 진파(進破)와 혈가(孑歌) 자네들 공이 실로 대단했네.
물론 좌군사와 나의 뛰어난 계략과 통솔력 덕분이긴 하지만 말일쎄 하하하
이리와 한잔 받으시게들"우군사 아이유장(亞二柳將)이 술병을 들며 말하였다.
"아..이리 좋은 날 풍악이 빠지면 섭하지. 뭐하느냐 수봉아, 냉큼 한 곡조 뽑지 않고..."
좌군사 치저랑(治抵郞)의 말에 수봉이 냉큼 일어나 "그 때 그 도령"을 부르기 시작했고
연회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자네들 앞으로도 우리를 잘 좀 보필해주게나" 술을 따라준 후 아이유장이 말하였다.
그러자 진파(進破) 왈, "장군, 우리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 좌군사 치저랑(治抵郞)이 진파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하였다.
이 때 혈가가 "웃기고 있네"라는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술 잔을 바닥에 던져 깨버렸다.
이것이 신호라는 듯 연회에 참석한 젊은 장수 몇 몇이 칼을 들고 일어나 혈가와 진파 옆에 섰다.
"좌군사, 우군사! 군(軍) 통솔을 좀 대국적으로 하셔야지요.
미나, 사나, 모모, 리사 다 데려가고 말이야...모범을 좀 보이십쇼!"
치저랑과 아이유장을 향한 혈가의 날선 비판에 진파도 거들었다.
"두 분 군사(軍司) 이제 그만 하십쇼! 하야(下野) 하십시오!
왜 목숨 걸고 원정을 오셨습니까? 제발 정신을 차리십시오!"
혈가와 진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들을 따르는 젊은 장수들이
치저랑과 아이유장을 포박하려 준비해 둔 밧줄을 들고 다가섰다.
그 순간,
"멈추시오!"라는 책사(策士) 부분모달의 목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병사 수십명이
장막 안으로 뛰어들어 혈가와 진파 그리고 이 둘을 따르는 젊은 장수 무리를 에워쌌다.
"반역을 꾀한 이들 무리를 당장 포박한 후 옥에 가두라!"는 부분모달의 명(命)에
혈가, 진파를 비롯한 모반을 꾀한 젊은 장수들 모두가 포박되었다.
평소 진파, 혈가와 이들을 따르는 젊은 장수들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부분모달은
이 날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연회에 조금 늦게 참석할 것이라 알려놓고
사전에 모반을 진압할 준비를 해 둔 터였다.
혈가, 진파가 주도한 소장파(少壯派) 장수들의 모반은 이렇게 어이없이 끝나고 말았다.
"오...자네 덕에 살았네 그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했어"
치저랑과 아이유장이 급히 달려와 부분모달의 손을 잡으며 울먹였다.
"저런 괘씸한 것들 같으니...좌군사, 저들을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아이유장이 치저랑에게 물었다.
"전장에서 반역은 곧 극형 뿐이외다. 내일 당장 시행합시다."
치저랑의 단호한 말에 부분모달이 말하였다.
"좌군사 말씀이 지당하옵니다. 다만 그들을 극형에 처하면 우리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 염려되오니 그들과 그들이 이끄는 휘하 병사들을 본국으로 송환한 후
본국에서 처리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라 사료되옵나이다"
"오...그래. 듣고 보니 자네 말이 맞구먼. 그렇게 하세나"
이렇게 하여 진파와 혈가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젊은 장수들은 물론 그 휘하
병사들 모두 날이 밝는대로 본국으로 강제송환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날 밤은 유난히 달이 밝았다.
논의를 마치고 장막 밖으로 나온 부분모달의 눈에
전서구(傳書鳩) 한 마리가 북쪽 숲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본 부분모달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퍼지는 걸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