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 없죠.. 15세기 부터 서양은 대항해시대이고 원양항해를 하려면 함선의 거대화와 거대한 돛을 이용한 항해는 필수적이니까.
연안방어를 위한 수군을 키운 조선입장에선 무리하게 배를 크게 건조할 필요도 없고 (물론 동아시아에선 판옥선도 매우 큰 배) 멀리 대양까지 나갈일도 없었죠.. 조선사신들도 배타고 가까운 중국산동반도에 가다가 몇번이고 죽을고비를 넘겼다는데
제자리 360도 회전으로 배의 현측을 항상 상대에게 겨눌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서양 범선들을 압도 할 수 있죠.
그것은 거북선 뿐만 아니라 판옥선도 마찬가지.
거기에
첨저선 형태의 범선은 판옥선이 해내던 T자형 전술이나 학익진을 해내기가 무척 어렵죠.
항상 움직이고 있는 적을 향해 일제히 현측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풍향을 감안하여
함대전체를 적을 향하여 사거리 내에서 크게 우회 해야 하고 이건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확률이 낮은 전술이죠. 당시 시대에서도 그렇고 도고헤이하치로의 시대에서도 그렇습니다. 항모가 나오기 전까지도...
영화 배틀쉽에서 미주리호가 외계인 배에 현측을 드러내기위해 한 행위들을 보면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제자리 턴조차 가능한 판옥선은 이 행위를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고
집단 함포전에서 무적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거북선의 원래 목적도 메카닉 테란에서 벌쳐와 마찬거지여서 적의 진격속도를 늦추고 진형을 흐트려 놓는건데...
단순히 범선VS거북선 만 보는것이 아니라
집단전 형태로 가면
서양 범선은 판옥선=시즈탱크, 거북선=벌쳐 메카닉 조선함대에 '동시대'에서는 상대가 안됩니다.
배의 현측을 드러내는것을 목적으로 한 집단 함포 전술의 최초가 한산도 대첩이고
그 이전까지 적함대에 현측을 내주는것은 xx행위나 다름없었죠.
서양도 당시에는 별거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백병전이 주를 이루었고
당시 이순신 함대는 백병전 자체를 배제한 온니 함포전술을 추구했고(명량해전같이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한.. 그때도 백병전이 아니라 적의 접촉을 최대한 거부한 공성전에 가까움)
이순신함대에서 유독 사상자가 적게 나온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죠.
그래서 그게 문제죠. 철저히 내해용 제한적인 작전만 펼칠수있는 수군이죠.
일단 함포수와 파괴력 속도면에선 체급이 큰 당시 서양군함들이 우세하죠. 당시 서양의 전투함들은 대개 작은건 400톤 큰건 600~700톤은 가뿐히 넘으니까요, 영국 스페인 전쟁당시 무적함대가 원정온다면 내해라면 어찌저찌 전술의 우세가 있을진 모르겠는데 영국의 해군이 온다면 그마저도 어렵습니다. 내해에서의 전술적 움직임이 용이하단것 외엔 모든게 당시 유럽열강들 해군의 크기와 규모, 화력이 강하죠, 덩치가 넘사벽인 당대최강의 1급 전열함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죠. 애초에 임진왜란당시 조선이 승승장구한건 이순신 개인의 능력이 너무 대단한거지 토대자체는 그다지 좋지 못했어요, 상대가 일본이고 가진 배가 안택선 수준이라 다행인거지, 심지어 원균은 이순신이 이끌던 함대를 그 후달리는 일본수군에게 괴멸당했죠
임진왜란이 1592년이고, 영국 해군과 스페인 무적함대 간의 결전이 1588년이니 당시의 영국 함대와 우선 비교해 보죠.
우선 1590년대 무렵이면 아직 영국 해군 함정의 제식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헨리 그레이트(앙리 그라세 디우)나 기함으로 사용되던 몇몇 함정은 1000톤급에 육박하는 초거대함인 반면 나머지 전용 군함들은 그렇게 큰것도 아니고 상선에서 징발된 임시 군함도 많았습니다.
당시 영국 해군은 조선 수군처럼 제식화가 제대로 이루어진 해군이 아니죠. 훗날 영국 해군에서 함정의 등급 규정을 만든 이후에도 조선 수군처럼 똑같은 규격의 배만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적당히 만든 후에 승무원수나 함포 탑재수에 따라 1,2,3,4,5,6등식으로 구별했을 뿐이죠. 따라서 일률적으로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1588년의 영국 해군 함정중에 헨리 그레이트를 제외하면 드레이크의 기함인 리벤지나 하워드의 기함 아크로얄, 리전트 정도가 800톤 이상의 대헝 함정입니다. 판옥선과 거북선의 배수량은 불확실하지만 서울대 조선공학과 교수였던 고 김재근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총톤수로 판옥선이 227톤, 거북선이 285톤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대형 함정에 비하면 조선의 주력 군함들이 크기가 작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영국 함대에서도 800톤급에 육박하는 대형 함정들의 숫자는 극소수입니다. 영국 함대 vs 스페인 무적함대의 결전 당시 영국 해군에서 500톤급이 넘는 선박은 위에 언급한 헨리 그레이트, 아크로얄 등을 합쳐 불과 13척이었고, 나머지 150여척은 모조리 100~150톤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100톤이 안되는 배들도 20여척 있었습니다.
오히려 판옥선 보다 작은 배들이 영국 해군의 주력이었고, 그나마 이 배들은 상설 수군이 아니라 갑자기 끌려나온 상선이 다수였습니다. 이에 반해 1593년의 최전성기의 조선 수군은 227톤의 판옥선만 250척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800톤급 이상 영국의 대형 함정들도 탑재 가능 최대 함포수에 상관없이 실전에선 대포를 20~46문 정도만 탑재했습니다.
판옥선의 탑재량이 20~30여문이고, 좌수영 거북선의 총혈이 36개 임을 고려하면 함포 탑재량에서는 막상 큰 차이가 없습니다. 선체 강도는 판단하기 쉽지 않은데 티크목을 사용한 것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완전 장악한 이후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0년대라면 당시 영국 함정은 느릅나무로 주로 만들었습니다. 느릅나무의 비중은 0.53인데 이에 반해 판옥선의 주재료인 한국산 적송의 비중은 0.53~0.73입니다. 적송 중에 제일 약한 종류가 느릅나무 평균치와 비슷한 것이지요. 굴곡강도 수치가 없는 상태에서 비중만으로 경도에 관해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비중이 이 정도라면 기본적인 경도는 한국산 적송이 유리할 겁니다.
조선시대 각종 배의 외판 두께는 기록상 영조척 4~7치입니다. 이 정도면 대략 12~18cm 정도가 됩니다. 이런 두께는 현대 목선의 두께보다도 더 두꺼운 것이며, 동양 삼국 중에서도 한국의 전통선박이 가장 배의 외판을 두껍게 만듭니다. 판옥선의 장점 중의 하나입니다.
배수량 500~1000톤급에 해당하는 13척의 대형 함정을 제외하면 나머지 영국 배들은 조선 판옥선보다 외판 두께가 더 얇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더구나 적송의 비중 자체가 느릅나무보다 높은 수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봐선 최소한 영국 배들은 조선 배보다 외판이 더 두꺼워야 비슷한 강도를 가질 겁니다.
함포도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데... 스페인 함대와의 결전당시 당시 영국 함대 전체에서 가장 많이 탑재한 대포가 Calverin인데 이것이 1530문, Demi-Calverin 계열이 344문 정도였고, 캐논이 55문, Canon-Perier이 43문 정도였습니다. 다 합쳐서 영국 함대의 각종 포가 2000여문 정도 됩니다. 조선군의 경우 판옥선에 탑재하는 함포수가 10~30문 내외였습니다.
임진왜란 다음해인 1593년에 조선 수군이 최강을 자랑했을때 경상,전라,충청 3도의 수군의 판옥선만 250척이었습니다. 사후선, 협선 같은 잡다한 배를 제외하고 판옥선만 계산해도 250척 x20문=5000문이라는 어마어마한 함포 탑재량이 나옵니다.
발사체의 경우 영국 해군에서 가장 대구경인 캐논의 포탄이 68파운드(51.408근)였습니다. 이에반해 조선의 최대형 발사체인 대장군전이 56근으로 대구경 캐논의 포탄에 비해 위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숫적으로 주력인 영국 Calverin의 포탄이 18파운드(13.6근)입니다. 조선 수군의 경우에도 영국 해군과 마찬가지로 다소 구경이 작은 황자총통 정도가 주력이었고 완구나 불랑기 계통도 많이 탑재했습니다. 황자총통의 발사체인 피령전의 무게는 남아있지 않지만 황자총통은 구경 40mm급으로 결코 Calverin에 밀리지 않습니다. 조선의 완구에서 발사하는 단석(돌탄환)이 11~30근 정도 됩니다. Calverin의 최대사거리는 2000m, 유효사거리는 300미터 정도이고, 캐논의 최대와 유효사거리는 1500m, 250미터 정도입니다.
황자총통의 경우 최대사거리 기록과는 상관없이 육박/해박의 실제 실험결과는 철환을 발사했을때 사거리가 약 1600m에 달했습니다. 현재 실제 실험결과가 당시 기록보다 짧은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사거리가 더 길어질 가능성도 높은 상태입니다. 사거리에서도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 편이죠.
당시 발사체는 폭발력이 없는 단순한 덩어리 포탄-Solid Projectile입니다. 유럽 해군이 조선 해군에는 없는 체인 포탄 같은 Expanding Projectile을 사용했다면 조선 수군은 유럽에는 없는 초대형 화살형 발사체인 장군전 계열이 존재했으므로 발사체에서도 조선이 열등하지 않습니다. 당시 유럽에선 조잡한 조립포에서 전장 주조포로 전환을 마치던 시점이었고, 동양에서 이미 주조포 기술을 완성한 상태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라면 유럽이 후장포 기술에선 조선보다 앞섰지만 전체적으로 함포 기술이나 성능이 일방적으로 동양권보다 앞섰던 것은 아닙니다.
급을 논하기 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현재까지 거북선의 원형이나 실물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 형태의 고증도 미완의 상태입니다.
어떤 전문가는 배의 바닥이 평평했다고도 하고
또 어떤이는 바닥이 V자 형태였다고도 하고
용두가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도 아직 미지수...
그렇죠. 일단 가장 유력한 내용은 판옥선을 개조한 평저선으로 하부의 용두를 통해 물살을 가르는 효과를 얻고 후방으로 길게 현판을 늘여서 와류형성을 후방으로 빼어 평저선이 가지는 저속을 극복해낸 결과물이면서 바지선처럼 상부와 하부가 동일한 넓이인 것이 아니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일반적인 용골형의 함선형태를 어느정도 차용한 하이브리드 함선에 가깝습니다. 또한 후방에 무게중심을 놓아 앞부분이 살짝 들리는 형태를 만들어 현대의 모터보트가 고속주행중 선두가 들리면서 고속주행을 하는 형상이 연상되도록하여 당대 동아시아 최고의 함선이라고 할만합니다. 이러한 선체형상을 이용하여 노를 동체의 좌우로 길게 늘이는 형상이 아니라 동체의 아래쪽, 그러니까 45도 보다 높고 90도 보다는 약간 낮은 각도를 만들어내서 노의 힘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게 한점, 노와 돛을 동시에 활용한점을 보면 고속주행성능을 무시할 수 없죠. 거기에 평저선의 가장 큰 장점중 하나인 선회성과 안정성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측방에 대량의 화포를 장착하고도 서양의 함선에 비해 작은 크기를 가지고도 높은 명중률을 뽑아낼 수 있는 강력한 함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좋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은 이러한 장점을 활용하여 빠른 선회를 통한 학익진을 이용하여 강력한 화망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관계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고려말 조선초에 이미 귀선, 즉 거북선이 문헌에 언급되고 있으며,
판옥선 등 여러 종류의 선박을 건조하고 사용한 기술력과 노하우가 뒷받침 되었기에 임란의
거북선이 나온 겁니다. 해전전술도 역시 마찬가지이구요. 이순신 장군의 역량과 업적이 분명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오로지 이순신 장군의 역량에 의한 것이라고 얘기하면 곤란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