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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29 20:08
[잡담] KFX보니까 뿌듯하지만, 우리는 언제즘 추격아닌 추월을?
 글쓴이 : N1ghtEast
조회 : 3,725  

진짜 뭐가 불만이 많은지 몰겠지만 (물론 정당한 우려와 비판은 ㅇㅋ)

한번즘 숨을 고르면서 지나온 현실들을 돌아보면

남들 백 몇년 앞서서 시작된 기술적 바탕과 온 세계 식민지 꿀빨고 전쟁과 경쟁으로 다듬고 발전시킨 자금과 기술력의 총 집합인 군사무기들, 그 정점인 항공기, 전투기

진짜 맨땅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심지어 스텔스기까지 독자로 만들 수 있게 따라잡은 현 상황을 보자면
무수한 노력과 희생과 재능과 열정에 감사할 나름이고
가끔 국뽕 몇사발 들이키고 주정 좀 부려도 충분히 납득된다고도 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 보자면

지금까지는 기존에 나온 것들을 따라잡고 있는 것이지만

언제쯤 아예 새로운 개념과 신기술바탕의 무언가를 내놓고 앞서 나아갈 수 있을지도 궁금해져요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것이란
기존것의 개량이나 퓨전, 진보한 것이 아닌
맨 처음 비행기가 나왔을때, 맨 처음 미사일이란게 나왔을 때, 맨 처음 레이더라는게 나왔을 때
처럼, 맨 처음 레이저란 개념이 나왔을때 처럼, 맨 처음 대륙간 탄도탄이란게 나왔을 때 처럼, 맨 처음 항모란게 나왔을 때 처럼, 맨 처음 잠수함이란게 나왔을때 처럼, 맨 처음 핵이란게 나왔을 때 처럼

아예 새로운 무언가를 우리가 먼저 제시하고 그것이 판도를 확 바꾸고 모두가 허겁지겁 도입하고 따라하려하는
그런 아예 새로운 무언가를 말해요.. 그에 재반된 각종 신개념과 신기술 포함요

우리가 이런 수준으로 앞서야 진정한 국뽕주모를 부를 수 있을거라는 욕심이요 ㅋ

저도 딱히 구체적으로 떠오르는건 없어요.. 말 그대로 새로운 영역이니.. 당장 떠오르는건
로켓을 대체하여 우주까지 물건을 운송할 수 있는 신개념 추진장치?
탄환 포탄 미사일 처럼 뭔가 쏴서 무력화 시키는게 아닌 새로운 타격 개념? 정도

여담으로 SF장르가 우리나라도 흥했으면 좋겠음
이상하고 엉뚱한 상상들이 여기저깃서 나오고, 매체물로 구체화시켜 제시하기....
이런 식으로 사람들 뇌리에 각인시키면 이상하게 과학과 기술도 그 컨셉을 따라가는 듯 해서;;
김구선생님도 살아계시다면 문화라는 의미에 SF도 꼭 넣었을거라 봐요ㅎㅎ;;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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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love 21-01-29 20:14
   
저는 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선생과 학생의 자연스런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

군대서의 강압적인 수직관계
회사서의 경직된 조직 문화
서열문화

이런 사회 분위기상 창의적인게 나오기 힘들어 보임

남들이 만들걸 빠르게 따라 가는건 참 잘하는데......
멍때린법사 21-01-29 20:25
   
sf 장르는 상상력도 필요하지만 자본이 필요해요.. 중국의 sf가 수준급으로 나오는 이유가
그들의 상상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결국 투자하는 자본이 많아서져...
(물론 성공유무는 상관없음. 단지 기술적으로 볼때.. 수준급으로 만든단 이야기..)
     
쿠루루 21-01-29 23:47
   
정확하게 몰라서 그러는데

중국 영화 CG를 우리 나라가 많이 하지 않나요?
제가 듣기로는 그런걸로 아는데 ...

우리 CG 수준이 헐리우드에 비해서 떨어지지만
높다고 알고 있는데 ...
     
아바타1979 21-01-30 00:48
   
중국영화 SF는 우리나라나 미국업체서합니다.
이름귀찮아 21-01-29 21:33
   
그건 일종의 도박이조

그런 도박은 재정이 빵빵한 미국이나 중국정도? 가능합니다

중견국가들은 이미 개발단 첨단 기술 따라가는것도 못하는 나라들이 절대 과반이조
neutr 21-01-29 21:40
   
제가 보기에 뭐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은 그만한 역량이 아직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상상력도 그런 개념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 같은 기반이 있어야만 나오는 것이고..
그걸 실현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
태강즉절 21-01-29 21:59
   
개인에게도 흥망성쇄가 있듯 ..국가도 그런거죠...업치락 뒤치락..
과거 우리가 대포쏘며 해전하고 화전 날릴때 ...쟤들은 칼쌈이나 했다오 ..아니 미국은 존재도 안 한..ㅎㅎ
뭐 언젠간 뒤집어질 수도 있는거겠죠..살아 생전엔 못볼지도 모르겠지만..
알파2021 21-01-29 22:01
   
새로운 뭔가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비행접시형 비행기, 레이저검, 로보캅 등 영화에서나 보든것들이 이삼십년 내에 가능할지 기대해봅니다.
sunnylee 21-01-29 22:08
   
간단함.. 문과 출신 외계인 말고..
이공계  실무종사자 외계인만 납치하면 됨..
아무 21-01-29 22:24
   
한국이 추월할 일은 없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도 한국은 패스트팔로워였지 리딩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일단 국가 규모가 새로운 것을 창발해낼 사이즈가 안됩니다. 그게 되려면 정말 한국의 교육과 사회를 완전히 갈아 엎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막대한 부를 얻을 만한 자원이나 지정학적 위치도 아니구요.

특정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리더가 될 수 있지만 그 역시 패스트팔로워로 빨리 받아들이고 소화했다가 종주국이 꼬구라질 때 그 자리를 차지하는, 천운이 받쳐줄 때나 가능해요.

한국의 롤모델은 영국이나 미국 같은 대륙급 국가가 아니라 핀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가 되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굳이 1등하고 반장할 필요 있나요?
     
내안의Blue 21-01-30 00:01
   
잘못 알고 계시군요.
과거 우리민족이 지정학적 불리함과 자원의 빈곤함, 그리고 국가 규모의 상대적 약세로 인류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다릅니다.
정보화 시대에 지정학적 불리함이란 따질 필요가 없고, 그로 인한 문화와 부의 소외는 별개의 문제이며 물리적 자원의 빈곤함을 인적 자원의 양성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세계에 보여줬습니다.
더구나 천년의 로마와 산업혁명 이후의 영국의 발전은 나라의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의 수준이 더 중요한 것이란 것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역량을 제한하는 사고는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고, 자해하는 것이며, 그것은 주로 우리 좌우의 오랑캐들이 심히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것들이 수시로 우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현실의 우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미래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

언제 우리가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습니까?
그런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래 전 김구 선생님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그 시절에 문화강국의 우리를 꿈꾸시지 않았던가요?

향후 세계는 점점 더 소수의 문화강국이 세계의 정신문화를 지배하게 될 것이고, 소수의 강대국이 지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겁니다.
앞서려 하지 않고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라는 정체성을 잃게 되는 날이 올 겁니다.
나는 그런 우리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후손들에게 그런 나라를 물려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바람노래방 21-01-30 00:45
   
동아시아 첫 시작이 리딩 국가였는데, 뭔 ....
     
태강즉절 21-01-30 01:09
   
내가 그렇다고 한다면 개솔마라 할테니 갠적으로 아는 ..딴넘 설레발로다가 ㅎㅎ
동양사학을 전공하고 베이징에 5년간 유학한 미 나름 명문대 사학과 교수넘 왈..
(그넘 선배들이 워낙 빵빵한지..미 정계에 많이 포진...짐세서니 엘고어니 등등^^)
일례로다...고구려가  G 5 국가였다고..당시 짱개와 아시아 2강이었다고...
동시대 그 둘과 필적할만한  국가가 유럽에 몇개나 존재했겠수? (아틸라한테도 그냥  털린넘들)
-아프카 남미 오세아니아는 그냥 무시하고!!-
역사적으로?...그건 왜넘 역사나 그랬겠지요...당췌 먼소린지...
     
굿잡스 21-01-30 01:35
   
한국이 추월할 일은 없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도 한국은 패스트팔로워였지 리딩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

??ㅋ

요하와 연해주 한반도를 아우르며 열도를 천여년 직접 개척  지배하며

수천년 독자적 고조선 고구려 동방문명권을 구축한

우리 문명사를 단순 패스트 팔로워였다?ㅋ(독자적 문명권을 구축하고 전파하던 위치를?)

서토 문명사와 우리 대한문명사가 어떻게 다르게 독자적으로 진화했는지를 다시 공부 해보길 바라군요(도리어 서토 황하 하한족들은 수많은 이민족 정복왕조로 점철되면서 이민족 문화에 강제주입 당하는 피지배 노예층으로 수시로 전락)

더구나 세계 유일 독자적 표음 창제품인 한글 외는 세계 대다수 및 유럽 조차 이집트 파생  문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명사.

독자적 신석기  토기 문화 이래 적석총 지석묘 문화와 비파형의 독창적 청동기 문화

1600여년전 이미 세계 최초의 문무겸비의 귀족 뿐 아니라 서민을 위한 선진 교육제도 경당,

현존 세계 최고의 목판기술력과 중세 암흑기를 깬 종교 지식 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려 금속활자의 발명,

세계 최초의 함포 함대사(진포 대첩),

세계 최초 장거리 로켓 신기전, 세계 최초의 시한폭탄 비격진천뢰, 세계 최초의 철갑선

세계 최초의 민중 상언이나 격쟁등 선진 여론 공론정치등

현대에 와서는 디지털 문화의 전환기에 당시 시디 음반시장에서 mp3나 음원서비스  문화등은 이미 우리쪽에서 나온 혁신적 디지털 음원 문화(기존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가 음원 선택 소비) E스포츠  프로 게이머 웹툰 웹소설 5G 세계 최초 전자정부법을 만들고 구축 세계 선도등



[한자의 원형] 복골 및 갑골문자

https://que-sais2020.tistory.com/m/384?category=924910


서토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초의 고조선 금속갑옷 

http://cafe.daum.net/luck5194/MFUT/283?q=%B5%BF%BA%CF%BE%C6%20%B0%A9%BF%CA%C0%C7%20%BF%F8%C1%B6%20%B0%ED%C1%B6%BC%B1-%20%B0%ED%B1%B8%B7%C1����
   

고대 한류로서 갑옷문화의 국제적 위상(1)   
고조선 갑옷이 중국에 준 영향   

http://m.breaknews.com/a.html?uid=196626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해동의 두 번을 비록 지난날 원정했으나, 감히 고구려 요수를 건너지 못했고, 백제 큰 바다의 물결을 넘을 수 없었다. 해마다 자주 병사를 보냈으나, 중국이 부서지고 소모되었다. 이미 지난날의 일이지만, 나는(당 고종) 그것을 후회한다.

- 『册府元龜』 卷981 外臣部36 備禦4 唐 高宗(678)

요동(KOREA)에서 헛되이 죽지 않으리(无向辽东浪死歌)'

http://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wr_id=190581


근대 독소전쟁 이전 고대 세계 최대 대전

고(구)려 VS 수나라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wr_id=1553119&sca=&sfl=wr_subject%7C%7Cwr��


USA 캘리포니아 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discover誌“1998년 6월호「일본인의 뿌리」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인 조몬인.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켰다.”
          
굿잡스 21-01-30 02:15
   
서토 북조사를 연 북위도

고구려의 준식민지급이라 말해도 할 말 없던 것이

북위가 고구려와 동맹 강화를 위해 당시 고구려 귀족 가문과 혼인을 하는데 이 문소황후의 아들이 8대 북위 선무제로 등극하군요.

이후 지지 기반이 약했던 고구려계 선무제는

자신의 외삼촌인 고조와 고현을 불러 들이고 아예 고구려인만 따로 추대하는 고려국대중정(高麗國大中正)이라는 벼슬까지 만들어 북위 조정내에 고구려파벌 붕당을 만들어 장악해버림.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http://blog.naver.com/csred7/80130397982������


(이때문에 고(구)려(KOREA)의 장수태왕이나 문자명태왕이 서거를 하면 북위의 황제나 최고 권력자가 애도를 거행하는 기록들이 그래서 나오게 되는 역사적 배경)


겨울 12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그때 그의 나이는 98세였다. 임금의 호를 장수왕(長壽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효문(孝文)이 이 소식을 듣고, 흰색의 위모관(委貌冠)과 베로 만든 심의(深衣)를 지어 입고 동쪽 교외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하였다.
 
七十九年 夏五月 遣使入魏朝貢 秋九月 遣使入魏朝貢 冬十二月 王薨 年九十八歲 號長壽王 魏孝文聞之 制素委貌布深衣 擧哀於東郊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장수왕 79년(서기 491)


28년(서기 519), 임금이 돌아가셨다. 호를 문자명왕(文咨明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영태후(靈太后)가 동당(東堂)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했다.
 
二十八年 王薨 號爲文咨明王 魏靈太后擧哀於東堂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명왕 28년(서기 519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해 전체적으로 일본고사기들이 조작되었음을 밝혔다.


"일본 가타카나 기원은 신라 향찰·이두"  

히로시마대 교수  

http://blog.daum.net/damule/8881879


요서 선비족 왕조를 이은 고구려계 북연등이나 내몽골에 출토되는 나뭇잎 형식의 우리 (고조선)고구려계 금(동)관 출토나(이런 우리 고조선 고구려 천하관을 알 수 있는 금관은 애초에 서토 내륙 황하 하한족에서는  나오지 않는 우리쪽에서 두드러지는 큰 특징 중 하나.

전세계에 지금까지 출토된 금관 14개 중 10개가 우리쪽에서 발굴. 나머지도 북방 유목쪽. 우리는 신라의 계림을 상징하는 출자 금관부터 우리 고조선 고구려 통치자의 태양신을 상징하는 불꽃 문양이나 조우관 나뭇잎 형식등 광명 하늘숭배  천손사상을 바탕으로 한 두드러지는 독자적 금관 양식이 주류)

서토 북조사를 연 북위에 황제로 등극한 고구려계등 선비족 문화에도 당시 우리 고구려의 정치 문화 인적 영향력과 투사력이 상당했던 시기.
     
굿잡스 21-01-30 01:44
   
중세 고려(KOREA)는 5,60만의 수도인 거대 대도시인 개경을 중심으로 동격의 서경(평양)과 전통적 100만의 거대 서라벌을 동경으로 서울인 남경의 유럽 최대도시라는 로마 이상의 대도시들을 거닐고 있었고

이건 당시 중세 영국이나 프랑스 Jap같은 나라는 꿈도 못꾸던 도시규모였군요.(도시규모가 크다는 말은 그만큼 소비지향적 도시의 특성상 도시내 상업 규모나 활동 부동산 가격(GDP)등도 고대나 현대나 높다는 의미)


영국 론디니움(런던 고대도시명)과 신라 서라벌의 도시규모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5&wr_id=833564

유럽 최대 도시라는 로마보다 더 컸던 세계 4대 대도시 중 하나였던 100만의 거대 신라 서라벌.

서라벌은 바둑판 형태의 정렬된 계획도시 아래

일정 블럭의 방이라는 각구역내 공간에는 각 집안내 우물 옆에 배수로가 집밖 담장의 소배수로를 통해 다시 대배수로 연결되어 있는게 확인되군요(길도 마차가 단니는 도로와 사람이 단니는 인도가 구분)

천년의 신라 수도였던 서라벌은 남북국시대 전성기를 맞으며 지금의 수도 서울 광역시(거대 메트로 폴리탄)처럼 지속적으로 팽창.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unayoon715&logNo=220882810189&proxyReferer=https:%2F%2F


서라벌 디지털 복원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07&wr_id=2096873

한국의 고대 건축물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wr_id=1991579&sca=&sfl=wr_subject%7C%7Cwr_


중세 고려를 보면 알겠지만 북방의 패자 거란 요를 상대로 2,30 만의 대군을 뽑아내거나(이 당시 요제국은 몽골을 철저히 피지배 종속시키고 서토 송은 이리 저리 따구리 당하던 시대.

이런 요제국을 상대로 고려는 크게 6번의 대전을 치르면서 귀주에서 회전으로 요나라 정예 10만을 대패시켜버리면서 폭주하던 호전적 거란을 쇠퇴시킴)

여진 정벌에 20여만의 대군 원정에(몽골같은 유목민족도 인구 대비 10프로 이상을 군사 동원 하는건  벅찬게 기본)

몽골과의 전쟁시 수도를 통채로 강화도에 단기간에 천도시켜버리거나 몽골의 요구에 수많은 배를 단기간에 만들어냈던 생산력을 보였군요(당시 이정도 도시규모와 군사동원력, 생산력을 보여주는 단일 왕조는 유럽등 세계사에서도 손꼽을 정도)


그 경계선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강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었다. 
 
-《고려사》

(윤 5월) 갑자일에 거란에서 오윤판관 야율골타를 파견하여 동북 여진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 하였으나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고려사 5권, 현종 17년


중세 고려 역시 서토 송이 거란 요에 굴복한데 비해 6차례의 대전을 치르면서 마지막은 10만 정예 요를 대패시키면서 최근 관련 연구 논문들을 보면 기미주 형식으로 흑룡강 일대까지 발해 후신 동북방세력을 경영.

이후 요동의 오랜 지역 공동체였던 신라계 황제 (완안부)가 대거 문화적 행정 수준이 높던 후신 발해인들을 황실의 외척으로 받아들이고 연합한 대금이 반요의 요, 송을 멸망시키는 흐름이군요.


“요양과 심양 일대는 본시 고려의 땅이요, 백성은 고려 백성이다 . 
이제 의로운 군대가 들어와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케 하노니…” 

『고려사』권42 공민왕 경술 19년(1370) 12월
     
굿잡스 21-01-30 01:49
   
남북국시대 발해 이후 등장하는 북방의 패자 거란의 요나

이후 발해후예 부흥국 세력과 신라계 황제 결합의 대금등이

우리쪽 고구려나 신라등과 지속 언급 얽혀 있는 것도
(실위 후대 몽골등도 고구려 휘하 부용세력)

유럽으로 치면 천년 로마제국의 역사와 영향력에 바탕한 주변 봉신 부족 세력들이 이후 국가를 세워도(부족 개념이던 폴란드의 본격 왕국개념의 틀이 되는 피아스트 왕조도 10세기에서야 등장) 그 역사의 직간접적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이들 동북방의 거란, 말갈(여진)등과 열도의 왜 역시

수천년 동방문명권을 구축 군림해온
우리 고조선 고구려문명권의 영향력 때문임을
우리 역사에 대해 스스로 자각할 필요가 새삼 있을 것이군요.


고(구)려(KOREA)의 토대가 되는 초기 토착재지 5부(선대 고조선)는 이후 신성한 태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점하며 천하를 지배하는 5부 행정  대도시 문명으로 발전 이후

 발해 5경과 신라 5소경에 이런 발해의 5경 체계는

다시 북방의 패자가 되는 요의 5경 체계로

금  역시 고구려계 국무총리가 송을 멸망시키고
북경에 중도 건설을 총지휘. 이후 쿠빌라이는 이런 요,금이 닦아놓은 강북을 기반으로 몽골 내부 분열시기에 물자를 통제하면서 대칸에 오를 수 있는 실질적 힘이 됩니다.(이를 바탕으로 남송 정벌)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40313/61666261/1

여진(女真)의 추장은 곧 신라인인데, 완안씨(完顏氏)라 호칭하였다. 완안(完顏)은 한어(漢言)로 「왕(王)」과 같다.

ㅡ『송막기문』남송 홍호가 포로로 잡혀간 송 군주의

송환을 위해 15년간 대금의 유배생활을 보내면서 쓴 견문록.


정강의 변 : 서토 송이 신라계황제와 발해인 연합의 금나라에게 패하여 수도 변경(지금의 카이펑/개봉)이 함락되고, 송의 군주였던 휘종과 흠종 그리고 수많은 자녀들이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


大金皇帝寄書于高麗國皇帝

"대금 황제가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 ㅡ帝王韻紀



서기 1334년 5월, 원(元)나라 사람의 요청으로 고려 사경승(寫經僧·불경의 글과 그림을 필사하는 승려)이 제작한 감색(紺色) 종이에 금가루로 그린 변상도(變相圖·불교의 경전 내용이나 가르침을 알기 쉽게 그린 불화)가 발견됐다. ‘고려사(高麗史)’는 원나라가 고려 사경승을 원으로 보내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을 정도로 고려의 사경(寫經)기술이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그림은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현전 최고(最古) 유물로 평가된다.

https://www.google.co.kr/am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3/06/23/2003062370319.html%3foutputType=amp



몽골 황실과 조정내에는 다양한 고려 양식(고려 의복이나 모자 신발 바둑 고려청자 고려한지 나전칠기 화문석 약과 시루떡 상추쌈등) 뿐 아니라 이런 수준 높은 불교 예술 문화나

세계제국의 통치자였던 대도의 쿠빌라이가 병석에 눕자 주변에 이름난 의원들도 못고치던 병을 신라시대 설총의 후예라는 고려 의원 설경성이 쿠빌라이와 이후 성종을 고치는등 뛰어난 고려 의술을 펼치거나

서구로의 중세 암흑기를 깨고 종교 지식 혁명을 촉발시킨 세계 최초의 고려 금속활자 기술도 이 시기에 전파 및 고려국 유학등이나 고려 몽골간의 다양한 학문 연구 결속과 증진등 여러 방면에서 고려와 몽골간에 수준 높은 문화적 정치적 교류가 증진되었군요.

서토 한족을 노예로 지배한 몽골제국에서 수준 높은 고려(KOREA)의 다양한 문화가 상류 문화로 자리하면서 이후 서토 명 한족 왕조시기에서도 여전한 영향력을 발휘.
역전의용사 21-01-29 22:35
   
통일부터 하고 인국, 영토, 경제력 더 키운 뒤에나 가능
아차산의별 21-01-30 00:48
   
우리도
시대를 앞서간  무기가있었죠
중세해전사를 다시쓴
거북선 건조  !

당시  동서양  어느나라도 상상치못했던
거북선
bbak 21-01-30 19:31
   
천조국 처럼 천조 쓸수 있으면 가능합니다.
커서 21-02-01 16:10
   
리딩하는 나라로 넘어가는 상황이라 보여지는데..... 다른의견의 댓글들이 잇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