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야기-
'그만 끝내!'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 하나로 사랑이 끝나버리는
시대.
지고지순한 사랑은 '촌스러워서'못하겠다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면 은근히 옛날이 그리워지곤 한다.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
사이렌 소리를 듣고서도 손을 놓지 못해 애타하던 연인들이 있었고,
손 한번 잡기가 하늘이 별 따기고,
키스 한번 하면 무조건 결혼하는 줄 알았던 청춘 남녀가
있었다.
그랬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사랑이 있었다.
그것도 제주도 섬처녀와 육지 총각 사이에 피어난 말만 들어도 풋풋한
그런 사랑이 말이다.
제주도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사업을 하여 꽤 쏠쏠히 재미를 봤다는
그들에겐 요즘 큰 문제
가 생겼다고 한다.
"어찌된 일인지 애들이 집밖에만 나가면 소식이
끊어집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호주로 결혼까지 해서 보낸 큰 아들 내외가 '돈이
필요하다'고 해, 제법 목돈을 보내준 뒤로
는
뚝 연락이 끊겨 생사조차 확인이 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엔
애지중지 키워놓은
막내딸마저 가출을 해 온데간데 소식조차 없다는
것이다.
"애들을 좀 찾아주십시오! 아니, 생사만이라도
알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고개숙인 그 부부를 위해 며칠 후,
구명시식을 올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니 서슬퍼런 어떤 젊은 여인의 영가가
나타나
"저는 저 남자의 약혼녀입니다"라고 말하며
아저씨를 향해 눈을 흘기는 것이 아닌가.
"제주에서 돈을 벌어온다는 저 남자의 말을
믿고 육지에서 목놓아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1년이 가도, 2년이 가도 소식 한번 오지 않았어요.
저는 결혼할 날만을 기달며 살았는데,
그만..."
약혼자를 기다리다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는 여인
영가.
도대체 무슨 사정으로 제주도로 간 아저씨는 약혼녀마저 버리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에 이르게 된것일까.
눈믈을 흘리며 원한을 품고 서 있는 여인 영가의 말을 다 듣고 난
뒤, 제주도 부부에게
이를 전했더니, 이번에는 아주머니가 통곡을 하며 "다 제
탓이에요"라고 말했다.
1970년대 제주도에 한창 관광단지 조성공사가
진행중이던 무렵이었다.
당시 아주머니의 부모는 제주에서 작은 여관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육지에서 온
건강한 20대 기술자인 아저씨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건장한 구릿빛 피부에 잘생기 외모를 자랑하던 아저씨를 본 순간 그만
넋을 잃고 만
아주머니는 쉴새없이 애정공세를 했지만 아저씨는 쳐다도 안봤다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제주도 처녀는 아니었다.
하루는 마음 먹고 그 잘 생긴 총각에게 다가가 은근히 결혼 얘기를
물어보았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육지에 이미 약혼녀가 있습니다.
돈을 좀 더 벌어 곧 이 곳을 떠날 예정이니 더 이상 묻지
말아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의 속은 더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돈만 벌면 이곳을 떠나 육지에 있는 약혼녀와 결혼한다는 말에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 따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주머니는 큰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사랑하는 육지 총각의 민등록증을 땅에 파묻어 없애 버리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당시만해도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배도 비행기도 탈 수 없었던
시절이었고
분실시에 본인이 직접 행정지로 가서 만들어야 하는 수고가
뒤따랐기에
제주에 있던 그로선 재발급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제주에 눌러 있던 그는
결국 제주도 처녀의 남자가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미안해요. 너무 사랑해서 육지로 보낼 수가
없었다구요."
아내의 고백을 듣고 난 아저씨는 "다 지난 일"이라며 웃어 넘겼고,
두 사람은 내게 "육지에서 죽은 약혼녀 영가를 달래 아이들을
보내달라"며 통사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부부는
"가출한 딸도 찾고 호주로 간 아들 부부에게도
전화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세상의 모든 참사가 척신이 행하는 바이니라.
삼가 척을 짓지 말라. 만일 척을 지은 것이 있으면 낱낱이 풀고 화해를 구하라."
하시니라.
- 증산도 도전(道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