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복무했던 부대는 양주에 00공병대대입니다.
이 부대 자리는 원래 터키군이 주둔했던 곳이고 대부분 군부대가 그렇듯 부대 뒤로 산이 있고
앞에는 논이 있고 뭐 그런 외진 동네였습니다.
막사와 기재고 사이 2종 창고 앞엔 큰 나무가 있었는데 고참들한테 듣기에 그 나무에 목메달아 죽은
이등병이 있었답니다.
죽은 이유는 그 이등병이 불침번 말번초였는데 가을 봄 겨울이면 언제나 내무실 바닥에 뿌리는
물(제습효과 때문에)을 제대로 안쓸어 버려 바닥이 홍건했고
고참들이 빡쳐서 아침 점호 끝나고 한따까리 했고, 일병들한테 졸라게 까인 이 이등병은 결국
xx했다란 뭔 그저 그렇고 그런 시시한 얘기였죠.
참고로 제 있던 2중대는 1중대와 막사가 일렬로 연결되어있는데 구형막사라 복도가 없고 그냥 내무실끼리
문으로 쭉 연결된 그런 식의 벽돌 막사였습니다.
아무튼 그 당시 저희 중대는 예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말번초가 바닥에 물을 제거하지 않고
점호 끝나고 내무반 막내가 빗자루로 물을 쓸어내는 그런 시스템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흘러 고참이 되고 분대장을 달게되고 제대를 한달여 남겨 놓고 분대장 자리도 후임에 물려주고
말그대로 말년이 되었을때 얘깁니다.
제가 1월 29 제대했으니깐 아마 1월 중순이나 됐을 껍니다.
한겨울 제일 추울때죠.
새벽에 자는데 빗자루로 쓱쓱 물 쓸어내는 소리가 들리는겁니다.
잠결에 "아그야 뭐하냐" 하고 잠꼬대 하듯이 물었죠.
바로 작은 목소리로 "이병000"하고 관등성명을 대더군요. ]
저는 눈도 안뜨고 그냥 몇시나 됐냐고 물었고 다섯시 몇분이라고 하더군요.
거기까지 대답 듣고는 다시 바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뭐 정확히 얘기하자면 완전히 깨었던건 아니고 몽롱한 상태였죠.
다섯시라고 해도 1월에 새벽은 아직 동트기 전이라 캄캄했고 뭐 별 생각 없었던거죠.
아침에 일어나 보니 1소대,2소대,3소대 모두 뒤집혀졌습니다.
내무실 바닥 물이 싹 다 빠져있던 거죠.
그리고 말번초 섰던 애를 보니깐 상병 말호봉 얘였어요.
그 정도 짬빰이면 더구나 말번초면 제대로 불침번 안서고 대충 1소대 내무실에 붙어있는 다리미실에
짱박혀 잠들어 있었을껀 뻔한데 누가 물을 다 뺀거냐고 물어보니깐 자기는 아니랍니다.
그 앞에 불침번도 분명 물을 계속 뿌렸고 물 빼지는 않았다는 거에요.
소름이 끼쳐서 세벽에 제가 들은거를 동기들한테 얘기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분명 들은 000이병이라는 얘는 우리 중대에 없었죠.
새벽에 내무반을 돌며 빗자루로 물을 뺀 000 이등병은 대체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