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몽골과 싱가폴 이 두 장소 자체가 거론되었을 때부터 결코 북미정상회담에서 '좋은 그림'을 뽑아낼 장소는 아니라고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 먼 곳까지 날아갈 수나 있을지 의심되는 김정은 전용비행기의 수준"도 그렇지만... 북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후 판문점 남측지역 자유의 집까지 130m 정도 넘어온 게 서방세계로의 처음이자 유일한 발걸음인 김정은이 자신의 안전과 체제유지가 아직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몽골과 싱가폴까지 날아갈 수는 없다고 봤거든요. 이렇게 되면 북미정상회담 성사 소식 직후부터 최적의 장소로 거론되었던 워싱턴, 뉴욕, 평양, 판문점, 서울이 다시 주목받을 수밖에 없죠.
트럼프가 문재인과의 통화 직후 트위터에서 "판문점은 어떨까??"라고 넌지시 운을 띄운 걸 보면... 제 추측에 이미 북미회담 성사 직후 정의용, 서훈이 특사로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에게 결과를 설명했을 때부터 한미 양국 사이에 '한반도에 있는 장소 중 하나'는 거론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후 미국도 회담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한반도의 한 곳 + 그 밖의 몇몇 나라'로 넓혀서 장소를 물색했던 것이고요. 그러다가 이번에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실시간 모니터링 해보니 미국이 봐도 장소 자체가 다소 협소하다는 점만 빼놓고는 상징성이나 여러 여건에서 합격점을 주기엔 충분했다고 봅니다.
다만... 이미 판문점, 특히 판문점 남측지역(자유의 집, 평화의 집)은 남북정상회담을 한 차례 하면서 미국과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매력이 떨어졌죠. 평양 한복판으로 들어가 김정은에게 비핵화 서명을 받아냄과 동시에 억류된 인질을 데려오는 '캡틴 아메리카'의 그림이 최상이라 생각하던 트럼프라면 더더욱. 평양이 아니라면 판문점 북측지역(판문각, 통일각)이어야 하는데... 제가 볼 때 판문점으로 장소가 결정된다면 이 두 건물 중 한 곳에서 열릴 것으로 봅니다. 트럼프가 좌우에 폼페이오, 볼턴 등 최측근 참모들을 두고 당당하게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그림이 생중계로 전세계에 타전되면서.
그런데 저는 문재인 정부가 북미대화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그저 협상 성사의 역할 딱 하나만을 보고 일을 기획하지 않았다고 보거든요. '최대의 난제에 종지부를 찍은 세기의 영웅이자 주인공은 트럼프'라는 타이틀은 미국이 갖되 그를 빛내주는 '눈에 띄는 조연'은 한국이 보장받는 그런 딜 역시 한미 사이에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때문에 한국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전세계로 12시간 이상 생중계 하면서 "봐라~ 세기의 이벤트를 이 정도 연출력으로 월드와이드하게 포장하는 한국의 능력을. 북미정상회담은 이보다 더하면 더할 것!"이라는 메시지까지 동시에 전달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다가올 북미정상회담 역시 '한반도 내 그 어느 곳'이라고 예상하되 그곳이 남측이라면 제주도, 평창, 철원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보는 사람입니다. 바로 위에 언급했듯 '눈에 띄는 조연'으로 제대로 무대를 꾸미는 역할을 한국이 보장 받았다면 무엇인가를 연출하기 딱 좋은 장소가 남측에서는 저 정도이거든요.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서 '기획과 연출의 대가'인 탁현민 행정관에게도 전쟁-분단-평화로 이어지는 파노라마용으로 활용할 '꺼리'가 적잖은 장소들입니다.
제주도는 이미 가생이 내에서도 그 이점이 많이 거론되어 굳이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평창은 이제 갓 올림픽을 치러냈기에 최고급 숙박시설과 프레스센터가 있고 장소의 안전성 역시 검증됐습니다. 철원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과 포격으로 폐허가 된 노동당 당사 등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흔이 있습니다. 위의 3곳 모두 탁현민 행정관이 상상력을 펼치기에 좋은 소재들이 널리고 널렸죠.
어쨌든 요 몇 달 간 남-북-미 사이의 숨가쁜 흐름을 볼 때 특히 한국은 정상회담이라는 것을 그저 정상들 간의 만남-협상-타결-악수라는 고리타분한 프로세스로 넘기지 않고 이것을 어떻게든 '문화/관광 컨텐츠'로 연결해 한국/한반도를 영상을 통해 전세계에 실시간 홍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 땅에는 전쟁과 냉전의 산물이 아직도 남아 있고 특히 남쪽은 최첨단 IT/과학기술, 선진 인프라, 완벽에 가까운 공공 치안과 교통시스템, 화려한 역사문화 유산이 있는데 이 좋은 곳을 한 번 방문하지 않으시렵니까" 하는 중입니다. '정치'라는 미묘한 이벤트에 '상업성'을 교묘하게 엮어 광을 팔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럴진데...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21세기 최초/최대의 정치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역사적 북미정상회담의 개최지로 한반도 밖의 그 어느 나라를 추천했다고는 감히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