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명숙님이 79년에 박씨 부녀중 닭님 부친 시대에 당한 사건이다!
▶시기 : 1979년
▶사건명 :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내용 :
'크리스찬아카데미'는 한국사회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건강한 중간집단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사회교육 프로젝트를 1972년 그리스 크레타에 모인 세계기독교사회운동단체협의회에 보고한 후, 이를 한국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세계교인협의회(WCC)에 요청. WCC의 지원을 받아 74년부터 우선 5 개~년 계획으로 교육을 실시 한다.
이에 역사와 사회를 향한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뜬 수강생들은 각자의 일터로 돌아가 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했으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종 조직을 결성했다.
결국 중앙정보부는 마침내 이들을 향해 '용공 매도'라는 전가의 보도를 뽑아 들었다.
맨 먼저 한명숙이 79년 3월 9일 오전 10시, 중부경찰서 김형사라고 거짓신분을 말하는 중정 요원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이후 간사 6명이 차례로 연행되었다.
또 산업사회 교육 이수생이던 노조 여성지부장 최순영(YH무역), 이총각(동일방직), 박순희(원풍모방), 장현자(반도상사), 이영숙(콘트롤데이타) 등이 끌려간 데 이어 마침내 3월 27일 원장 강원룡이 중정으로 연행되었다.
이들이 연행된 후 중정은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사무실과 집안의 모든 자료를 훓어갔다. 그리고 구속자들은 수사 중 각목, 담배불을 이용한 고문, 따귀를 맞는 등 각종 가혹행위를 당했고, 허위자백을 강요 받았다.
이런 상태에서 중정은 혐의사실을 조작하고, 검찰은 이를 그대로 인정하여 법정 최고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논고를 통하여 어처구니없게도 아카데미의 후원자인 WCC는 소련의 비밀경찰인 KGB(국가안보위원회)의 손아귀에 있다고 단언했다. 법원 역시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하여 징역 7년 등으로 형량을 듬뿍 얹어 선고했다.
4월 16일 중앙일간지들은 일제히 중정의 발표문을 그대로 받아 대서특필했다.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아 WCC와 독일교회연합회, 유럽에큐메니칼연합, 미국연합장로교회 등에서 항의 방문을 하기도 했다.
이에 각국 교회기관들이 정부에 공한을 보내고 학술원 원장 이병도를 비롯한 교수 137명이 용감하게도 용공혐의를 뒤집어 쓴 정창렬의 석방진정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래서인지 해가 바뀐 80년 1월, 항소심은 정창렬과 황한식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1심에서 가장 큰 범죄였던 지하비밀서클 조직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인정했다.
▶문제점 및 쟁점 :
불법수색, 강제연행/ 혹독한 고문, 허위자백 강요/ 증거 불충분한 재판, 조작/ 옥고
이렇게 한명숙 전 총리를 감옥에 넣었는데 그 다음해에 닭님 부친이 대갈통에 총 맞아 뒤져버림!
이후 세월이 흘러 닭님의 시대에 들어서 한명숙 전 총리를 6년 재판끝에 실형을 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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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쯤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정말 오랫동안 질질 끌어오다가 6년만에 "유죄, 징역 2년 확정"하는 능력을 대법원이 보여주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측근 인물에 대한 대표적인 표적수사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심 정권이 바뀌었으니 별일이야 있겠냐 싶었다, 준 사람이 그게 아니라 하고, 받은 사람도 그런일이 아니라해도 검찰이 끝까지 "의혹"을 제시하면서 6년만에 닭님 시절에 이루어진 작품이라 하겠다!
그러고 한명숙 전 총리가 감옥에 들가신후? 닭님도 1년? 2년도 안된 후에 감옥에 쳐 들가시게된다!
이러하니 이게 한명숙 전 총리의 저주라 아니할수가 있겠는가?
두 부녀가 한 전 총리를 엮어서 때마다 감옥에 보냈는데 부친은 대갈통에 총맞아 죽고, 그딸은 ...,
중사! 이 사실에 근거한 소설에 반박 좀 해주실텐가? ^^*